3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
어린 아기가 아직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고 옹알댈 뿐인데도, 어머니들은 십중팔구 아기의 욕망을 알아차리고 말을 알아듣는다.
어머니는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연신 무어라 옹알대는 아들 정우현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
“…변기 사 달라고?”
“꾸아! (네!)”
한편 정우현이 그런 제스처를 취하는 가운데 한 손으로 화장실을 가리킨 것 또한 효과가 있었다.
어른들이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으로 어필한 것이다.
어머니는 의아했지만, 일단은 해 보자는 마음으로 곧장 남편에게 전화했다. 왠지 자기 아들이라면, 정우현이라면 당장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여보!”
남편이 쾌활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 오늘 퇴근할 때 아기 변기 좀 사 와.”
“…변기?”
“응. 우현이 한번 사용해 보게.”
“무슨 소리야. 변기라니.”
“여보, 잔말 말고 사 와요. 나, 우현이 맘마 줘야 하니까 끊을게.”
하고서 정말 전화를 끊는 어머니였다.
회사에 있는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니, 무슨 기저귀를 벌써 뗀다고 해.’
하고서 옆에 있는 여 상사에게 물었다.
“대리님, 보통 아기들이요. 기저귀 언제 떼죠?”
상사는 네 살짜리 아이를 한 명 키우고 있었다.
“응? 보통 한 24개월 돼서? 빠른 애들은 16개월쯤부터 천천히 뗀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너무 일러. 오히려 이불 빨래하는 일만 잦아질걸.”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하고선 다시 생각을 이었다.
‘역시 터무니없어.’
그러다가는 잠시 아들 우현이를 떠올렸다.
놀라운 속도로 일어서서는 심지어 걸음마까지 하게 된 아들 우현이를.
‘…아니야, 혹시 모르니….’
“뭐 해, 정기석 씨.”
여 상사가 말했다.
“얼른 일하자고.”
“아, 예, 예.”
* * *
아버지가 집에 왔다.
손에는 아기용 변기가 들려 있었다. 워낙 작아서, 변기라기보다는 장난감처럼 보였다.
“사 왔구나!”
아내가 기뻐 화답했다.
“응… 근데, 여보. 이건 좀 아닌 듯싶어.”
“빠빠르르, 아으! (아빠, 오셨어요!)”
정우현은 퇴근한 아버지의 모습에 기뻐서 두 발로 걸어 다가갔다.
새롭게 과거로 돌아온 이래, 역시 가장 기쁜 점은 거의 사진 속으로만 본 아버지를 품에 안고 눈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꿈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들! 오늘도 재밌게 놀았나요!”
하고서 아버지가 정우현을 번쩍 들고 안았다. 그리고 볼에 뽀뽀도 했다.
옛날 아버지들 하면 으레 떠올릴 수 있는 편견과 달리, 아버지 정기석은 무척이나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고서 그는 아들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정우현은 물론 그 와중 똑똑히 봤다, 아버지의 손에 변기가 들려 있음을.
이제, 다시 결전의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위해 그간 용변을 참기도 했다. 아기의 몸으로 용변을 참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참아야 했다. 부모와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정우현은 제자리에 곧게 서서는 낮에 어머니 앞에서 했던 것처럼 스스로 기저귀를 풀었다.
“…어어….”
아버지가 놀라기 시작했다.
“이것 봐, 애가 벌써 이런다니까.”
“…뭐 하는 거지?”
“여보, 얼른 그거 깔아 봐.”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있는 아기 변기를 거의 뺏다시피 들고는 쪼그려 앉으려 하는 아들의 엉덩이 밑에 깔았다.
정우현은 보란 듯이 배에 힘을 주었다. 부끄러웠지만, 부모에게 보이는 마지막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하고서 있는 힘껏 볼일을 치렀다.
“아아아….”
아버지가 말을 잃었다.
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며 한껏 미소 짓고는 정우현과 눈을 맞췄다.
“아기, 이제 기저귀 안 할 거예요? 우리 아들 다 컸네…!”
드디어 기저귀로부터 해방된 날이었다.
* * *
이제 다음 목표가 생겼다.
언어였다. 그간 가장 불편했던 기저귀를 떼기 위해 온 시간을 기울인 경과, 언어 발달은 상대적으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말을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옹알이와 제스처, 그리고 눈빛으로만 소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훈련에 돌입했다.
무얼 말하든 아직은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집중하며 연습한 결과 대강 몇 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
첫 단어는 집에 항상 같이 있는 어머니를 지칭하는 마마였다. 두 번째 단어는 아버지를 지칭하는 빠빠였다.
마마와 빠빠를 처음 내뱉은 날, 집안은 다시 한번 시끄러워졌다. 부모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뻐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다음 날부터였다.
“…마마. 맘마 쥬세요오….”
“…어?”
어머니가 놀라 아들 정우현을 바라봤다.
“…맘마, 쥬세요오….”
“아들. 지금 밥 달라고 한 거야…?”
“…네에….”
아기가, 말을 했다. 분명히 말을 했다.
부모는 알고 있었다, 으레 아기들이 엄마와 아빠를 부르는 호칭만큼은 부정확하게나마 일찌감치 입 밖에 내뱉는다는 걸.
한데 그를 넘어, 분명한 뜻이 표현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정우현은 아직 생후 16개월도 안 됐다.
“…어머!”
“…무어얼… 그으렇게 노올라요…?”
“세상에!”
그제야 어머니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아들 정우현은 확실히 천재라고. 천재도 그냥 천재가 아니라, 무지막지한 천재라고.
단순히 다른 아기들보다 훨씬 일찍 걷고 기저귀를 빨리 떼는 것에선, 운동 신경과 신체 감각이 극도로 발달한 아이인 줄만 알았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놀라웠지만, 이렇게 말을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자신이 낳은 아기지만, 분명 천재였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정우현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코 평범해질 수 없으며, 평범하게 키워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 * *
며칠 후 아버지 정기석은 연차를 내고 직장을 안 갔다.
회사에선 갑자기 예고도 없이 웬 연차냐고 욕을 좀 먹었지만, 그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아들 정우현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로 한 것이다.
“…우현아.”
아버지가 낡고 작은 자가용 승용차를 운전하는 가운데 뒷좌석 카시트에 단단히 앉아 있는 아들을 불렀다.
“…빠빠!”
“…지금 아들 어디 가는 줄 알아?”
“…모올라요!”
“….”
믿을 수 없었다. 아들이 갑자기 어느 날 말을 한다니. 그것도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이해력 또한 어른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아내와 달리 아버지는 솔직히 걱정됐다. 남들과 지나치게 다른 것, 그런 것을 아버지는 경계했다. 혹시나 아들이 잘못된 건 아닌지, 위험한 삶을 살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병원에 가는 거야. 우리 아들 얼마나 똑똑한지 보려고!”
어머니는 남편과 달리 사뭇 상기된 목소리로 크게 말했다.
“….”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정우현은 모두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말을 하는 자신을 두고 부모님이 설왕설래했으니까. 놀라움도 잠시, 어머니는 곧 자기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그런 얘기를 뻔히 말을 할 줄 아는 아기 앞에서 하고 있는데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했다.
부모는 아들 정우현이 말만 할 뿐, 아직 그저 아기라고 생각했다.
* * *
병원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가장 큰 한국대학교 병원의 부속 심리 센터였다. 어머니가 직접 전화해 아들의 지능 검사를 예약했다.
가장 큰 병원답게 예약하고 기다리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고 했지만, 어머니가 다급하게 수화기에다 대고 말을 했다.
“…우리 아들이 말을 해요!”
“…예, 아기들은 다 말을 하지요.”
“아니요, 갓 두 살이 됐는데도 말을 한다니까요! 단어가 아니라 정확하게 문장으로요!”
“….”
“아, 그리고 6개월도 안 돼서 혼자 일어서서는 걷고 기저귀까지 뗐어요! 우리 아들 기저귀 차지 않고 잠을 자고 변기에서 용변 본 지 꽤 됐어요!”
“…농담하시는 거죠?”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래서 없는 형편에 이렇게 검사 의뢰하고 갑자기 전화드리는 거예요!”
“…잠깐 기다려 보세요.”
하고는 수화기 너머 사무적이기만 했던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한순간 바뀌었다.
중년 여성이었다. 그러고서 어머니는 검사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유아 지능 검사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더군다나 한국 최고의 병원에서 시행하기에 프리미엄이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주저하지 않았다.
아들은 천재가 확실하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확신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어머니를 보며 뒤에서 정우현이 생각했다.
‘…쩝,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하다가는 생각을 고쳤다.
‘아니야, 지난 생에 고생만 한 어머니다. 이번엔 행복해지셔야 해. 내가 천재라는 게 공식적으로 밝혀지면 가장 기뻐할 사람이 누굴까. 아마도 어머니겠지.’
그러고서 그는 아기처럼 음식을 흘려 가며 먹었다.
* * *
병원 심리 센터에 도착했다.
안경을 쓴 단발의 여자가 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그들을 맞이했다.
그녀는 아동 발달학에 있어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김은정 박사였다.
박사는 부모와 짧게 인사하고 얼른 정우현과 눈을 맞췄다.
“안녕, 네가 정우현이니?”
“…아안녕하세요오, 바악사니이임….”
“….”
순간 그녀가 말을 잃었다.
분명 아동 발달학적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시기의 아기가 분명하게 명료한 언어를 사용해 의사 표현을 하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박사는 어머니 황희진으로부터 아이의 생년월일 등 인적 정보를 먼저 전달받았고, 아이가 생후 몇 개월인지 정확히 확인한 상태였다.
박사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즉각 부모를 보고 말을 이었다.
“당장.”
“….”
“당장 검사를 실시하겠습니다.”
“…아, 예.”
“유아 지능 검사는 원래 최소 만 3세의 아이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검사입니다. 하지만 이번엔 특별히 이 아기, 우현이한테 실시해 보겠습니다.”
“예, 예.”
박사는 그래도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하겠다는 듯 정우현을 보고 환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현이, 오늘 기분은 어때? 여기 뭐 타고 왔니?”
“…오오느을… 기이분 매우우 좋아요오… 아빠 차… 타오고 왔어요오…!”
“…아, 그래….”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박사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비용은요”
“예.”
갑자기 비용 얘기를 하는 의사 앞에서 부모는 다소 위축됐다.
이 검사가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었지만, 막상 금액을 귀로 들으려니 한껏 긴장된 것이다.
“무료로 하겠습니다.”
“…아.”
“정우현 이 아기가 말을 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학계의 주목을 받기 충분합니다. 연구 대상이라는 것이지요. 솔직히 하자면, 오히려 우리가 부모님들께 사례하고 아기를 좀 연구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