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정우현은 건강하고 젊은 어머니를 다시 보게 된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아, 아빠의 목소리가….’
생전 아버지의 모습을 사진으로만 많이 봤을 뿐, 실제로 본 기억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남아 있는 기억도 무척이나 단편적이고 어렴풋했다.
‘…이랬구나… 부드럽고 참 듣기 좋은 음성이다.’
하고서 아기가 된 우현이 너무 기뻐 말을 했다.
“아으응…! (보고 싶었어요!)”
“어머, 얘 봐.”
그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고 말을 했다.
“옹알이 하네.”
“하하, 그러게!”
아버지도 기뻐하며 웃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정우현이 생각했다.
‘그렇지, 난 아기. 아직 말을 할 수는 없구나. 그치만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아!’
하고선 아기의 언어로 되는 대로 마구 말했다.
“으갸갸아…! 까으으응! 아으아앙!”
“어머어머!”
“하하하!”
“엄청 웃네, 우리 아가!”
연신 꺄르륵 웃는 정우현이었다.
* * *
정우현은 무럭무럭 자랐다.
단란한 가정생활 가운데 그는 아기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음식을 마구 흘리고 먹으며 대소변을 기저귀에 싸는 일 말이다.
처음엔 용변을 보고 나서 얼른 부모를 찾지 않았다.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너무 찾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때로 울기도 했다.
그럴 땐 어머니가, 때로는 아버지가 와 기저귀를 갈아 주었다.
‘음, 조금 부끄럽지만….’
정우현이 기저귀를 갈아주는 부모님을 보며 생각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기저귀부터 떼고 싶다.’
그러고서 그의 훈련이 시작됐다.
다리에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생후 3개월, 그는 아기 침대의 난간을 붙잡고 연신 일어서기 위해 힘썼다.
다른 아기들은 마냥 젖병을 물고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보며 누워 있을 때, 그는 일어서는 연습을 했다.
‘…후.’
그가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는 것을 반복하며 생각했다.
‘워낙 아기 몸이라 근력이 약한 것은 물론 무엇보다 균형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동포동하고 작은 손으로 아기 침대의 난간을 우선 잡고, 난간에 힘을 실어 일단 일어선다. 그러고는 천천히 손을 뗀다.
어렵기는 했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고, 마침내 그가 해냈다.
3개월 만에 그가 두 발로 우뚝 서게 됐다.
즉각 정우현은 기쁨의 소식을 크게 알렸다.
“으갸갸카으응! 아아르르가으! (저 일어났어요! 빨리 봐 주세요!)”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남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곧 그의 퇴근 시간이었다.
사실 어머니의 된장찌개는 아들 정우현도 좋아했지만, 아직 아기라서 먹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한참을 요리에 집중하고 있는데, 아들 우현이의 방에서 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 큰 옹알이였다.
‘…아까 기저귀 갈아 줬는데, 우유도 먹이고.’
그러면서도 혹시나 무슨 일이 생겼을까, 부엌칼을 얼른 내려놓고 아기방에 들어가는 어머니다.
“…어머!”
“아아아르가갸!”
“…세상에!”
놀랍게도 아들 정우현이 아기 침대 위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작고 포동포동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지도 않았다. 오로지 역시 아직은 짧은 두 다리로, 침대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꾸구… 까갸?”
정우현은 모처럼 어머니를 놀라게 하는 한편 스스로가 자랑스러워 애교 섞인 옹알이를 했다.
“우리 아가!”
어머니가 정우현을 안고서는 번쩍 들었다.
“어떻게 섰어? 어떻게! 우리 아가!”
“꾸루루아르르. 아끄리르가. 하끄! (별거 아니에요, 한 삼십 분 힘 좀 써 보니 됐어요!)”
“어머, 어머, 우리 아들!”
하고서 어머니가 너무나 기뻐 아들을 안고 제자리를 빙그르르 돌았다.
“아까르르, 꾸라라아으! (엄마, 어지러워요, 그만 놓아주세요!)”
“우리 아들! 엄마는 너무 기쁘다! 오늘 처음으로 일어선 날이네요? 아구구구!”
“아그아앙, 라끄라우우? (근데 주방에서 무슨 냄새 나지 않아요?)”
된장찌개였다. 가스 불에 올려놓은 된장찌개 끓어서 졸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까먹고 있었다. 그러다 냄새가 더 진해지자 뒤늦게 알아차렸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아들! 엄마, 이따 올게! 아빠 밥 좀 차려 주고!”
“아르가가라구, 가르아. 아루거그아, 아루호루우. (네, 천천히 오세요, 이제는 좀 누워서 쉬고 싶네요.)”
어머니가 정우현을 다시 아기 침대에 사뿐히 누이고는 재빨리 주방으로 갔다.
* * *
그날 저녁은 그야말로 정우현의 가정에 오래도록 기억될 날이었다.
무려 아들이, 그것도 아직 생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들이 자리에서 섰으니 말이다.
정우현은 조금 쉬고 있다가, 아버지가 올 때 맞춰 다시 일어섰다.
여전히 조금 어려웠지만, 확실히 할수록 쉬워졌다.
“여보!”
“응?”
어머니는 아버지가 오자마자 그를 맞이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알아?”
“…무슨 일? 여보, 근데 되게 기분 좋아 보이네?”
“당연하지! 오늘 우현이가 자리에서 일어났어!”
“…뭐라고?”
“혼자 일어나서 섰다고! 침대 위에서!”
“…에이, 설마….”
아버지가 어머니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우리 같이 육아 책 읽었잖아. 생후 3개월에 서는 아기가 어딨어. 빨라야 6개월이라고.”
“…아니야! 정말 내가 똑똑히 봤다고!”
“…여보, 우리 아들이 밤에 잠도 잘 자고 잘 울지도 않고, 부모 속 하나도 안 썩이는 기특한 아기지만, 그건 좀 아니지….”
순간 어머니가 굳은 표정을 짓고 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그러고는 강하게 힘을 주며 아들의 방에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보여 줄게! 우리 아들 일어서는 모습!”
하고 둘이 드디어 정우현의 방에 들어섰는데, 아버지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우현이 아까보다 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두 발로 굳게 서 있었던 것이다.
“아가르라푸, 빠쁘? (오셨어요, 아빠?)”
“하하하하! 이것 봐! 정말이지!”
어머니는 자신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바로 입증해 보였기에 기분이 좋아 크게 웃었다.
한편으로는 아까보다 더 꼿꼿이 서 있는 아들 우현이가 또 놀랍기도 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꾸류루루, 까그갸? (뭘 그렇게 놀란 눈을 하고 있어요?)”
“아니, 우리 아들은….”
하고서 이번엔 아버지가 아들을 번쩍 들었다.
“…천재가 틀림없어!”
“우아아, 빠빠르치추! (우와, 아빠 최고!)”
정우현이 한껏 웃었다. 부모는 그게 또 귀엽고 기뻐서 더 환호성을 지르며 행복해했다.
* * *
서기 훈련에 이어 바로 걷기 훈련에 들어갔다.
정우현이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 기저귀를 떼기 위함이다. 부모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다른 무엇보다 혼자 용변을 보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생후 4개월, 마침내 그는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안정적으로 빠르게 걷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신중을 기하면 아무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혼자 걸을 수 있게 됐다.
물론 첫걸음마를 한 날 집안은 또 난리가 났었다.
부모는 사진을 찍어 두고 엄청 기뻐하다가, 아버지는 여기저기 마구 전화하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야! 내 아들이 걸음마를 한다니까!”
수화기 너머 상대방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내가 이런 거 갖다 거짓말을 왜 해! 궁금하면 와서 봐봐!”
정말 몇몇 친척이나 지인은 그들 부모의 안부가 궁금하다는 명목으로 아들 정우현을 보러 왔는데, 하나같이 걸어 다니는 아기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그 후 펼쳐지는, 아기 우현이에 관한 놀라운 일들을 모두 단번에 믿게 됐다.
정우현의 놀랍고 위대한 삶은 이제 시작이니까.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이래, 그는 집안일을 하는 어머니 곁을 자주 맴돌았다.
그러고선 어느 날 드디어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배가 아파 온 것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손길에서 잠시 떨어져, 정우현이 다시 우뚝 섰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왜 그래, 아가?”
비장한 표정으로 정우현이 천천히 자신의 기저귀를 스스로 벗었다.
아직 손 근육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 조금 어려웠지만, 이 역시 미리 연습해 둔 덕에 비교적 재빠르게 해낼 수 있었다.
“어머! 왜 그래! 기저귀를 왜!”
어머니는 물론 놀라며 다시 기저귀를 채우려 했지만, 정우현은 그런 어머니의 손길을 모처럼 뿌리치고는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으응?”
그리고 용변을 보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아아르 바루루, 사르루아끄. (아기 변기 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