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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화 (1/200)

1화

“할머니, 이제 괜찮으시겠어요?”

“아이고, 그래. 번번이 이렇게 신세를 져서 어떡해.”

“아니에요, 어차피 가는 길이었는데요.”

하며 정우현이 상냥하게 웃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정우현은 오르막길을 걷고 있는 할머니의 무거운 짐을 들어 주기 위해 일부러 가던 길을 돌아서 걸었다.

“고맙네, 삼촌. 삼촌은 분명 복 받을 거야.”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봬요.”

정우현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할머니 집 대문 밖으로 나왔다.

마음이 가벼웠다. 할머니는 분명 복을 받을 거라 했지만, 딱히 그런 걸 바라지도 않았다.

만약 자기 이득을 생각하고 그럴 사람이었다면, 애초 길을 돌아서 할머니를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

그는 그냥 진심으로, 그저 돕고 싶었을 뿐이었다. 실로 정우현이라는 사람은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아, 이왕 이쪽에 온 거, 어머니 드실 과일도 사 가야겠다.’

하고 그가 인근 청과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거리 한쪽에서 탱탱볼을 혼자 튕기며 노는 소녀를 발견했다. 대략 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데, 혼자서 밝은 낯으로 놀이에 열중이었다.

‘…아아, 나도 어릴 때 저거 많이 가지고 놀았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소녀를 보고 걷고 있는데, 순간 탱탱볼이 굴곡진 땅에 튕기더니 궤적이 바뀌어 소녀가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향했다.

“…어, 어.”

문제는 탱탱볼이 가는 방향이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차도였다는 점이다.

소녀는 다른 것 없이 오로지 탱탱볼을 잡기 위해 차도로 뛰어갔다. 여전히 해맑은 표정으로.

‘…위험해!’

정우현이 생각했다. 차도 한쪽 끝에서 커다란 트럭이 소녀를 향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 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순간적으로 빠르게 달렸다. 소녀를 구해낼 수 있을까? 그것도 안전하게? 만약 구해 낼 수 없다면 소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럼 나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차도로 뛰어들고 있는 나는?

이따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그저 소녀가 트럭이 달려오는 차도로 뛰어들고 있었고, 이것으로 그는 전력을 다해 차도를 향해 달려갈 뿐이었다.

항상 그랬다. 곤경에 빠진 이를 보면, 계산하지 않았다. 판단하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힘닿는 대로 도왔을 뿐이다.

“…꼬마야!”

이제 막 탱탱볼을 손에 넣어 기분이 좋아진 소녀가 정우현의 목소리에 환히 웃으며 뒤를 돌았다.

빠아아아아아앙!

하지만 트럭이 바로 앞에 있었다.

“뭐야…!”

트럭 운전수가 갑자기 골목에서 튀어나온 소녀를 보고서 뒤늦게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완전히 정차하기엔 무리였다.

“비켜!”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정우현이 마침내 소녀를 밀치며 외쳤다. 소녀는 그대로 반대편 도로로 넘어가 쓰러졌다.

‘…하, 다행이다.’

정우현은 그런 소녀를 보고 아주 잠시 미소 지었다. 그러고선 코앞에 있는 트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아아아아악!”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운전수가 소리를 질렀다. 그대로 트럭은 정우현을 멀리 쳐 버렸다.

정우현이 허공에 붕 뜨더니 한순간 시야가 희미해지며 땅에 떨어졌다.

그는 눈이 감기는 그 순간까지 혹시나 소녀가 조금이라도 차에 치이지는 않았는지,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 * *

“…하아아.”

턱수염이 수북하고 풍채가 큰 자가 권좌에 앉아 하품을 크게 하고 있다.

“…재미가 없네, 재미가 없어…. 어찌 이렇게 뻔한 자들만 여길 오는고.”

“…대왕님, 이번에 만나게 될 자는 분명 대왕님의 흥미를 끌 것이옵니다.”

갓을 쓰고 위아래 검은 옷을 입은 창백한 자가 말을 했다.

“…뭣이?”

“예, 제가 잠깐 이력을 살폈는데 생전 행적이 특이해서….”

“…그래? 좋다! 그럼 얼른 한번 보자! 오늘은 그자를 마지막으로 하겠다!”

“옙!”

하더니 순간 정우현이 풍채가 큰 자의 앞에 나타났다.

“이 자이옵니다.”

“…으음. 생긴 것으로 보면 그냥 평범한데?”

‘…뭐지… 이 사람들은.’

정우현이 주위를 둘러봤다. 불분명한 형체에 어두운 구름 같은 것이 온통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거기에 비쩍 마르고 창백한 사람은 마치 시체처럼 보였고, 앞에 커다란 의자에 앉은 사람은 그야말로 너무 무섭게 생겨서 보는 것만으로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둘은, 염라대왕과 저승사자였다. 정우현이 트럭에 치여 목숨을 잃고 저승에 오게 된 것이다.

“정우현.”

염라대왕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별로 크게 말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예.”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나는 염라대왕이다.”

“아아….”

“너는 죽었다.”

하고서 염라대왕이 저승사자를 쳐다봤다. 얼른 진행하라는 뜻으로.

이에 저승사자가 커다란 두루마리를 펼치더니 곧장 읽었다.

“…망자 정우현은 서기 2022년 2월 2일 오후 4시 23분 32초에 30세의 나이로 3톤 트럭에 치여 사망하였음.”

“아아….”

염라대왕이고 뭐고,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죽기 직전 그의 마지막 기억은 트럭에 치인 게 분명했으니까.

“사자.”

순간 염라대왕이 고개를 틀어 저승사자를 불렀다.

“…예?”

“뭐가 특이하다는 거지? 평범하게 생겨가지고,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도 흔해 빠졌는데.”

“아, 그러니까 이 사람이…. 원래 죽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명부에 따르면, 딱하긴 하지만 다섯 살짜리 소녀가 일찌감치 여기에 왔어야 했거든요….”

“그런데?”

염라대왕이 귀찮다는 듯 물었다.

“이 자, 정우현이 그 소녀를 살리고 대신 죽은 겁니다.”

“…그렇군.”

하고 대왕이 무심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리고 살펴본 이 자의 삶이 더 가관인데요.”

“뭐가?”

“잠시 읊어 봐도 되겠습니까?”

“오케이.”

“서기 1992년, 정우현은 엄마 배에 있을 때부터 효심이 가득했습니다. 여느 태아처럼 뱃속에서 마구 팔다리를 펴고 기지개를 하다가 엄마가 아파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그 이후로는 일절 몸을 크게 움직이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으음.”

“1993년, 태어났습니다. 자연 분만을 하는 엄마를 위해 몸을 최대한 옹송그리고 한 번에 빠르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1995년, 여동생이 태어났습니다. 여동생이 태어나자마자 본인 또한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칭얼대지 않고 동생을 돌봤습니다. 1996년, 아빠가 등산하다 낙상으로 돌아가셔서 집안이 쑥대밭이 됐지만, 울음을 참았습니다. 엄마와 동생을 위해 장례식장에서조차 의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어허.”

“1997년, 어린이집에 갔습니다. 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장난감을 잃어버리고 울자, 다음 날 정우현은 집에 있는 장난감을 몽땅 가져와 그냥 줘 버렸습니다.”

“그만.”

순간 염라대왕이 저승사자의 말을 중단시켰다.

“…계속 이런 식이냐?”

“…예. 사실 이와 같은 일이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다 말하면 오늘 업무가 제시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여 생략하고 생략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대체 뭐….”

하고 염라대왕이 눈치를 보며 서 있는 정우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이런 놈이 다 있어.”

“…그만할까요? 아직 진짜 중요한 부분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럼 더 생략해서. 짧고 간결하게.”

“…예. 2004년, 가난한 형편에 수학여행을 자진해서 가지 않았습니다. 2006년, 자신의 친구 또한 좋아한다는 이유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여학생을 포기했습니다. 2008년, 통장에 모아 놓은 용돈을 몽땅 홍수에 집을 잃은 수재민들에게 보냈습니다. 2010년, 성적이 부진한 친구의 학습을 돕는다고 자신의 공부는 뒷전이었습니다. 2011년, 수능을 보러 가다가 길바닥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강아지를 살린답시고 동물 병원에 데려가 재수를 하게 됐습니다.”

“…아아….”

“2013년, 대학에 붙었지만, 가세가 더욱 기울어 일부러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 군대에서 고문관 후임을 돌본답시고 자진해서 휴가를 반납해 복무에 임했습니다. 2018년, 중소기업에 취직했지만, 회사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자진해서 무임금 야근을 밥 먹듯 했습니다. 2021년, 몸이 편찮은 동네 할머니를 위해 거의 매일 30분이나 길을 돌아갔습니다. 그러고는 2022년, 소녀를 살리겠답시고 트럭에 치여 죽어 버린 것입니다.”

“….”

염라대왕은 어느새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병신 새끼.”

하면서도 그의 두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고 있었다.

염라대왕은 저승사자가 정우현의 일생을 간략하게 얘기할 때, 그 과거를 생생하게 두 눈으로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소리 없이 눈물을 한참 흘리다가는, 순간 염라대왕이 노한 표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정우현!”

“…예.”

“대체 어찌 이리 살아왔느냐!”

“…그저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후, 역대급이로구나. 어쨌거나 네 삶은 참 딱하다만, 뭐, 내 일은 쉬워지니 좋다. 옜다, 판결한다. 정우현. 그대는 극락에, 그것도 가장 드높은 극락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가서 공자 그리고 슈바이처, 테레사 등 여러 성자 성녀와 이제 편히 농담도 하고 즐기며 영원히 살아가거라.”

“…안 되는데.”

순간 정우현이 혼잣말을 했다.

“…뭣이?”

“…아,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염라대왕의 커다란 두 눈이 더욱 동그래졌다. 뒤에 있던 저승사자도 깜짝 놀라서 창백한 얼굴의 핏기가 더욱 가셨다.

“…집에 계신 어머니는 편찮으시고요, 동생 시집도 보내야 하고, 빚도 갚아야 하고 저는 아직 세상에서 할 일이 많습니다….”

“예끼! 그럼 죽지를 말든가!”

“하지만 애가 위험에 처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여하간 그래서 너는 지금 극락에, 그것도 가장 드높은 극락에 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냐?”

“…예.”

“…홀리 쉿….”

염라대왕이 짧게 뇌까렸다. 저승사자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어떻게 할까요, 대왕 님.”

“…극락은 오로지 망자의 선의와 노고를 기려 상을 내리는 것. 즉 망자를 위한 선물이지. 한데 이 자는 선물을 원치 않는다 하니, 제아무리 극락이라도 이 자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러고선 그가 잠시 고심하더니 한순간 의미심장한 눈으로 정우현을 보고 말을 이었다.

“정우현.”

“…예.”

“내 너에게, 극락 대신 다른 선물을 내린다.”

“…어떤?”

“다시 한번 삶을 살 기회를 주겠다.”

“아아!”

“또한 이전의 삶이 갸륵하고 딱하여 특별한 능력 또한 줄 것이니, 이번 삶은 부디 호구처럼 살지 말거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선의도 자신이 건강하고 행복해야 의미가 있다. 너는 계속해서 비참해지는 가운데 다른 사람들에게 선의를 베풀어 봤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 단적으로 지금 너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목숨을 잃어, 그토록 네가 사랑하는 네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친구가 몹시도 괴로워하고 있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네가 잘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느냐?”

“….”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당장 눈앞에 어려운 사람을 돕는답시고, 정작 본인은 돌보지 않은 정우현의 잘못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준 능력을 이용해 너부터 행복해지고 잘 살아라. 그러고서 남에게 선의를 베풀든 말든, 그건 알아서 하고.”

하고서 그가 저승사자를 보고 말했다.

“자, 얼른.”

“…예.”

“실행하도록.”

탁!

염라대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승사자가 오른손 엄지와 중지를 맞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한순간 정우현 주위에 있던 어두운 연기가 그를 감싸더니 그의 몸이 빙그르르 무지막지하게 빨리 돌기 시작했다.

* * *

정우현이 눈을 떴다.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머니였다. 어머니 황희진이, 그것도 젊었을 적 모습으로 주름살은 거의 없이 정우현을 보고 환히 웃고 있었다.

“우리 아기, 일어났네.”

“아이고, 우리 우현이.”

순간 낮은 음성의 남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더욱더 놀라운 모습이 펼쳐졌다.

아버지였다. 정우현이 네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 정기석이 건장한 모습으로 방에 들어와 자신을 살피고 있었다.

“잠 잘 잤니?”

순간 정우현은 어머니가 물려주는 젖병을 쪽쪽 빨며 생각했다.

‘과거로…!’

모유인지 우유인지 그렇게 달콤할 수 없었다.

‘돌아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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