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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검주 대 무림 (3) (400/400)


400. 검주 대 무림 (3)
2022.10.29.


꿈에 그려 온 딸과의 만남이다.

자의로 조선을 떠나지 않았기에 딸과 남편에 대한 그리움은 깊기만 했다.

그나마 한왕의 배려로 남편은 자신을 따라가기 위해 중원에 넘어왔다가 병마에 걸려 죽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딸에 대한 소식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김 씨의 눈앞에 방매가 서있었다.

김 씨의 배 정도밖에 오지 않던 작은 아이였는데, 그런 방매가 김 씨와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로 장성해서는 눈앞에 있었다.


“엄…… 마?”

방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와 동시에 방매를 김 씨가 와락 껴안았다.

만우는 들썩이는 두 모녀의 어깨를 스윽 쳐다보고는 고개를 돌려 이쪽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는 좌중을 향해 기세를 폭사시켰다.

지금 두 모녀의 사이를 방해하는 놈들이 없도록.

그런 만우의 의지를 좌중에게 각인시키는 데는 따로 말을 하거나 목소리를 높일 필요도 없었다. 만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끝을 모르는 무한한 공력을 느낀 무당, 팽가, 황보세가, 당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으니까.

개중에서도 가장 놀란 것은 모인 정파의 세력들 중 최고수라 할 수 있는 당가의 가주인 암존 당천기와 무당파의 장문인인 경천권 자월진인이다.

그들은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 있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볼 수 있었기에, 만우가 하는 무언의 압박을 누구보다도 크게 느낀 것이다.

끼이익, 쿵!

그렇게 그들은 장원의 문이 닫히고 만우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숨조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굳어 있어야만 했다.


 

*****



“형님! 이, 이건!”

“기천검이라는 것이다.”

“벽력신검!!”

간장은 한 눈에 기천검이 벽력신검의 외형을 빼다 박았음을 알아보고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장원까지 오는 동안 긴장하느라 탈진한 설미수와 동군영은 두 다리를 파들거리면서 국연에게 기력을 보할 수 있는 침을 맞기 위해 사라졌고 방매와 김 씨는 말 없는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기에 만우만 슬쩍 빠져나온 것이다.


“세계제일검, 기억하느냐?”

그렇게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온 만우는 곧바로 간장을 찾아가 간장에게 기천검을 풀어서 건네주었다.


“예, 형님! 기억하고말고요!”

“완성된 검이 아니다. 중원제일을 넘어 진정한 천하제일이 되려 하니 이 검도 그에 수준에 맞아야 하지 않겠느냐.”

“이걸…… 제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만우가 간장을 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아는 최고의 검장(劍匠)이 간장 바로 너인데, 누구한테 맡길까.”

“형니이이임!”

간장의 두 눈에 감격이 듬뿍 차올랐다.


“검병은 주작의 정수가 깃들었고 검신에는 나의 내공이 깃든 검이다. 지금껏 네가 다뤄 온 검과는 다르겠지만…….”

간장은 마치 천하제일의 무공을 눈앞에 두고 흥분한 무인처럼 기천검을 하염없이 쳐다보면서 장인으로서의 불꽃을 불태우고 있었다.

만우는 간장을 염려하는 것 자체가 무공을 하나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천하제일인을 걱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적어도 대장간 안에서만큼은 간장은 천하제일인이었다.


“네가 알아서 하겠지.”

“이 검을 제대로 만들려면 천하를 주유해야 합니다, 형님.”

간장이 기천검을 손에 꼭 쥔 채로 두 눈을 반짝였다. 만우는 그런 간장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 정도냐?”

“예. 지금 당장 손 봐드릴 수 있는 건 일부에 불과합니다. 재료를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아 아무래도 많이 돌아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서역은 어떠냐.”

“서, 서역이요?”

간장의 두 눈이 커졌다. 극한의 노안을 가진 간장이지만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나이대의 청년이란 태가 났다.

그런 간장에게 중원을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는 것은 의미가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내 빚을 받으러 갈 생각이다.”

직호모.

다짜고짜 만우를 때려죽이려고 했던 그놈.

선기를 다루던 그놈들에게 만우가 관심이 생겼다. 중원뿐만 아니라 서역의 무공에도 관심이 생겼고 말이다.


“그러면 방매 누님은…….”

간장이 만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만우는 그런 간장을 잠시 째려봤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물어봐야지. 돈이라면 워낙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서역의 물건은 돈이 된다. 그 말인즉슨 반대로 중원의 물건은 서역에서 돈이 된다는 뜻이다.


“데려갈 생각이다.”

“그, 그렇다면 저도 좋습니다.”

간장이 재빨리 대답했다. 혹시라도 만우가 말을 바꿀까 두렵다는 듯 반응 속도가 굉장히 빨랐다.


“내일까지 부탁하마.”

“예, 형님. 아주 조금만 손을 봐도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검이 될 겁니다.”

기천검은 대장장이가 두드려서 만든 검이 아니다. 벽력신검의 뇌기에 반응해 만우의 기천과 주작의 정수가 섞여들어 절로 만들어진 검이다.

기연과 기연이 겹쳐지면서 나온 만우만을 위한 맞춤형 검이었지만,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거쳐야만 되는 그런 세밀한 조정들이 빠져 있었다.

그것을 간장이라면 능히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에 만우는 기천검을 간장에게 건넸다.

간장이 곧바로 대장간 안으로 들어간 후에 후끈한 열기가 피어오르면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때 어느새 다가온 슌스케가 만우를 향해 말했다.


“대장님. 옹주께서 찾으십니다.”

“방매가?”

“예.”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 씨와의 감동적인 재회가 끝나고 어느 정도 이제 이성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만우는 장원의 가장 커다란 전각으로 안내되었고, 그 안에 들어서자 손을 꼭 붙잡고 앉아 있는 방매와 김 씨 모녀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방매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기 때문에 꼴이 퍽이나 웃겼기 때문이다.


“눈 튀어나오겠네.”

“많이 부었어?”

방매가 손등으로 두 눈을 문질렀다. 그게 꼭 새끼 강아지가 제 눈을 문지르는 것 같았기 때문에 만우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래. 재회는 만족스러우셨습니까?”

만우가 김 씨를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김 씨가 멈칫하더니 역시나 새빨개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방매는…….”

만우가 잠시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와 미래를 할 여인이니까요. 그러니 제게는 어머님이 되십니다.”

“뭐…… 뭣!!!!!”

놀란 방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방매는 팅팅 부은 눈으로도 최대한 눈을 크게 뜬 채 놀라서는 만우를 쳐다봤다.

그건 김 씨도 마찬가지여서 김 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만우는 비록 미천한 신분이라고는 하나 무공 하나로 천하에 우뚝 선 자수상거의 신화적인 존재이다.

황제로부터 직접 무림왕으로 봉해지기까지 했으니 또 누가 있어 만우처럼 신분 상승의 기회를 만들겠는가.

그런 대단한 인물이 십수 년만에 만난 자신의 딸을 보며 미래를 함께하겠다고 하고 있었다.

자신이 모시는 한왕과 동급인 무림왕이 말이다.


“방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그러니까…….”

방매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인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음의 준비 하나도 없이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듯 머리가 어질할 정도였다.

그런 방매에게 만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객잔, 내가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가 연경의 황궁보다 더 크게 지어 줄게. 나와 함께 세상을 유람하면서 새로운 것도 보고 돈도 많이 벌고.”

“으…… 으으…….”

“갑작스럽다는 거 이해한다. 하지만 너나 나나.”

만우의 머릿속에 지난 날 방매와 함께 한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러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졌고 서로에게 마음을 주었다.


“마음이 있다는 거, 알잖아. 비록 멋대가리 없긴 하지만.”

만우의 심장 역시 쿵쿵거리면서 뛰고 있었다. 검을 휘두를 때와는 달리 만우도 크게 용기를 냈다. 마음을, 진심을 표현한다는 것은 제 아무리 현경에 오른 고수라고 해도 인간인 이상 쉬운 일이 아니다.


“나와 함께하자. 방매.”

펑-!

방매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열이 화끈거리며 만우가 앉은 곳까지 그 열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방매의 머리 어딘가에서 무언가 펑 하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약속하마. 널.”

만우는 천하제일인이기 이전에, 무림왕이기 이전에, 동시에 검주라 불리기 이전에 모든 것을 버리고 한 명의 남자로서, 한 명의 여자인 방매를 직시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진심을 방매에게 꺼냈다.


“세계에서 가장 귀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

“…….”

“이번 일이 끝나면 네 대답을 기다릴게.”

만우의 옷자락이 사라락 하고 끌리는 소리를 냈다. 만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김 씨를 향해 허리를 깊숙하게 숙였다.


“어머님께서도 말씀을 편히 하셔도 됩니다. 무림왕이건, 천하제일이건 간에 따님의 곁에 있고자 하는 하나의 남자일 뿐이니.”

김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두 모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인 뒤 몸을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그래.”

방매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만우는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으면서 귓가에 천둥이 치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고개를 돌렸다.

방매가 두 볼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고개를 들어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찌릿.

그 어떠한 고수를 앞에 두고도 먼저 눈을 피해 본 적이 없는 만우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방매가 빤히 쳐다보는 그 시선에 만우는 왠지 부끄러워져 자신도 모르게 먼저 시선을 내렸다.


“그렇게 하자고.”

방매는 얼굴을 사르르 붉히고 있었지만 만우를 쳐다보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다.


“객잔, 만우 너 없으니까 심심하더라.”

방매가 홍조가 오른 볼을 씰룩이며 환하게 웃었다.


“제일 귀하게 만들어 준다는 네 말, 믿을게.”

 

*****



“벽력손가와 남경휘가의 깃발이다!”

“화산파가 도착했어!!”

“활인문이다!!!!”

한적한 곳이던 산동 봉래가 무림인들로 인해 들끓었다. 무림인들은 평생이 걸려도 다 돌아보기 힘든 중원 전역의 유명 문파들이 몰려들자 그들을 구경하는 재미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강동의 유명세가인 벽력손가와 남경휘가.

천마신교.

청수신의 이극이 이끄는 활인문.

한왕 주고후와 산동성의 태수까지.

무림을 구성하는 정, 사, 마 중 사를 제외한 정, 마가 모두 모인 무림의 축소판이 산동 봉래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이 모든 일의 핵심이자 폭풍의 핵인 검주 만우가 있었다.

전날의 해가 지고 다음날의 해가 뜬 바로 그날, 만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동하는 데 있어 편한 검은 무복을 걸친 채 평소처럼 발에 딱 맞는 신을 신은 다음 신세를 지고 있는 장원의 안마당으로 향했다.


“일어나셨습니까, 대장.”

문형일과 마익후, 감령과 필두와 슌스케가 가장 먼저 만우를 맞이했다. 만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간장이 두 손으로 천에 감싼 기천검을 들고 나와서는 만우에게 두 팔을 뻗었다.


“기천검입니다.”

“수고 많았다.”

“이 검, 반드시 세계제일검으로 이 아우가 만들겠수다. 그러니 형님도 몸조심하시오.”

“누가 죽으러 가느냐?”

만우가 씨익 웃으면서 기천검을 감싸고 있는 천을 끌렀다. 붉은 검병과 푸른 검신을 가진 기천검이 만우의 손바닥에 착 하고 감겨들었다.


“은공.”

설미수와 호선이 그 다음으로 만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설미수는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호선은 설미수와는 정반대되게 너무나도 태평하기 짝이 없었다.


“조심하십시오.”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십쇼, 나리.”

만우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설미수는 안심이 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바깥에 운집한 무림인들의 수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중원에서도 이름만 대면 쉽게 알 수 있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런데 만우는 거기에다가 선전포고를 한 셈이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본의 아니게 본노 때문에 일이 커졌구려.”

생사마의 국연이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만우는 코웃음을 치면서 국연에게 말했다.


“늙은이. 본주 걱정하는 시간에 부탁한 것이나 준비해 둬. 애들 몸보신 시켜야 하니까.”

“맡겨두시오. 마교에서도 많이 해 본 일이니까.”

국연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안채 쪽으로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그러자 그 뒤로 동군영과 방매가 만우의 눈에 들어왔다.


“뭐 대단하다고 죄다 이렇게 몰려나온 겁니까 나,으리?”

만우가 웃으면서 말하자 동군영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걱정이 되는 걸 어찌하는가. 만우 자네…… 정말 괜찮겠는가?”

“안 괜찮으면, 나으리라도 도와주시려구요?”

만우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다분하게 섞여 있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동군영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별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지금껏 무수히 많은 고난과 역경을 자네와 함께 돌파해 온 내가 아닌가. 그러니까…….”

만우에게는 고난과 역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군영의 시야에서는 충분히 고난과 역경이었으리라. 만우는 피식 웃으면서 동군영의 어깨를 짚었다.


“조선으로 돌아갈 준비나 차질 없이 하십쇼, 나으리.”

“소름 돋게 나으리라 부르지 말라니까 자네도 참…….”

동군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그 뒤에 만우는 방매 앞에 섰다.

그리고 두 남녀는 서로의 눈과 눈을 응시했다. 어제처럼 서로가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서로의 진심을 확인한 두 남녀는 눈만으로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녀올게.”

“응.”

방매는 어울리지 않게 조신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의 입이 헤벌레 하고 벌어졌다. 그러자 멀리 서 있던 주고후가 혀를 쯧 하고 찼다.


“저렇게 좋을까. 안 그래 유모?”

“……저 아이도 행복할 자격이 있으니까요.”

김 씨는 물기 젖은 목소리로 방매를 바라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주고후는 큼큼 하고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딱 한 마디씩을 한 만우와 방매지만 그 이상의 대화가 둘 사이에는 필요 없었다. 방매는 만우를 믿었고 만우는 그런 방매를 실망시킬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만우는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쳐다봤다. 해가 중천에 걸려 있었다. 허나 만우의 눈에는 그 너머가 얼핏 보였다.

천명을 제 손으로 끊어 낸 자.

하늘의 내린 운명의 고삐를 스스로 벗어 던진 만우는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최초의 무인(武人)이다. 그렇기에 만우는 만우가 걸어가는 길 그 자체가 곧 역사가 된다.

그렇기에 만우는 모든 무림인 앞에서 보여 줄 생각이었다.

만우가 세우고자 하는 그 질서, 그 질서를 쓸 자격이 자신에게 충분하다는 것을.

오만한 그 콧대를 꺾고 오랫동안 고여 있던 둑의 물꼬를 터 물이 다시금 흐르게 만들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 어딘가에서는 와류가 생겨 뒤집히기도 하고, 흙탕물이 피어오르겠으나 절대적인 무(武) 앞에서 강호무림은 결국 금세 순응할 것이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지.”

스윽.

타앗!

만우가 허공을 밟고 하늘로 승천하기 시작했다. 그런 만우를 불존과 황보경이 넋을 놓은 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만우가 능히 천하제일을 자처할 정도의 고수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전설 속의 경지에 내딛은 무인을 보는 두 화경의 고수의 눈에는 경외가 가득 담겨 있었다.

바로 그 만우에 의해 자신들이 팔자에도 없는 마차나 끄는 우마 노릇을 했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같은 무(武)의 길을 걸어가는 처지로서 그런 만우를 보고 경외하지 않을 무인은 없었다.


“천하제일인!”

“검주!!!”

“허, 허공답보!!!”

“현경이다!!!”

봉래에 모여든 무림인 수만 명의 이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만우가 들어간 장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가 장원에서 허공을 밟으며 날아오르자 봉래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오, 오오오!”

“시, 신선이시다!!!”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들은 허공을 나는 만우를 보면서 신선이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렇게 허공에 떠오른 만우는 자신의 발 아래로 보이는 수만 명이나 되는 인파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이렇게나 많은 인파들이 모여 있는데 만우가 보란 듯이 허공답보로 막대한 내공의 출력을 감당하면서까지 날아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미쳤다고 이 많은 사람들이랑 다 싸워?”

애당초 만우는 황보세가와 하북팽가만 손봐 주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물론 무림의 그 구태의연한 질서에 질린 것도 있었다.

과거의 무림십좌이던 시절의 만우는 비록 십좌 중 일패를 놓고 다툴 만한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였으나 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경에서 한 발자국 더 나섰으나 껍데기는 아직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는 육신이다. 그러니 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못 덤비게 힘자랑 한 번 해 줄 수는 있지.”

만우는 수만 쌍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몰린 것을 느끼고는 히죽 웃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러자 만우는 자신의 단전 깊숙한 곳에서 막대한 공력이 호응하는 것을 느꼈다.


‘한바탕 거하게 춤을 춰라.’

파아아앗!!!!!

만우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공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파랗던 하늘에 만우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온 짙푸른 기천의 기운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또 다른 하늘이 덮는 기사에 경지의 고하를 막론하고 만우를 쳐다보고 있던 무림인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경외.

전설 속 달마와 천마, 장삼봉만이 도달했다 알려진 현경의 경지를 두 눈으로 직접 목도한 무림인들은 발끝이 덜덜 떨릴 정도의 경외를 느꼈다.

그들 모두가 위치는 다르다 같은 무의 길을 걷고 있기에 만우가 도달한 저 경지가 얼마나 지난한 가시밭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피를 흘리고 뼈를 깎아야만 도달할 수 있는, 아니 그런다 하더라도 절대 다수가 도달하지 못할 경지가 바로 현경이다.

파스스스슥!!!

만우의 기천이 하늘에 점점이 놓여 있던 구름을 집어삼켰다. 만우의 하늘은 봉래에 모인 수만 명의 무림인들을 굽어보고 있었지만 그들 위에 군림하지 않았다.

그저 존재했다.

구름을 품고 매일을 흘러가는 하늘은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허나 항상 고개를 들면 볼 수 있고 언제나 그곳에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절대적인 것이다.

기천.

스르릉!

만우의 손에 기천검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만우의 기천검 주변으로 하늘이 와류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덩실!

그와 동시에 만우의 팔이 곡선을 그렸고 그 끝에 들린 기천검이 천천히 움직이며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기천무(氣天舞).

만우가 익힌 기천의 다섯 번째 마지막 초식이자 기천의 모든 초식과 변화를 담은 춤이 수만 쌍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졌다.

그리고.

쩌저저적!!!!

만우의 기천은 무림인들의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수만 쌍의 무인들은 만우에게 경외를 느끼면서도 만우의 기천에 압도당하지 않았다.

허나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만우는 그들을 압도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무림인들은 단박에 깨달았다.

후두두둑!!!

만우의 기천검이 곧추세워진 다음, 그것이 그대로 수직으로 떨어졌을 때 만우의 발치 아래 놓여져 있던 작은 산 하나가 절반으로 갈라졌으니까.

원래 송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작은 산에 깊은 협곡이 생겨났다. 이제 그 산은 더 이상 송산이 아니라 반송산이라 불려야 할 것이다.

허나 만우가 일으킨 무적(武迹), 무(武)의 자취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주가 바로 천하제일인.’

만우는 검 끝에 자신의 의지를 담았다. 자신의 기천이 천하제일이라는 자부심, 그리고 자신이 인생을 걸고 걸어온 검의 길이 그 누구의 길보다도 옳다는 자신감이 만우의 검극에 고스란히 실렸다.

눈이 달린 무림인이라면 그런 만우의 마음을 느낄 것이다.

만우의 검은 굳이 언어가 필요하지 않았다. 검의 궤적, 검의 속도, 검의 예기 그 모든 것들이 보는 이들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천하제일.

강자존, 약육강식으로 표현되는 강호무림에 그 네 글자보다 더 효과적인 의사표현은 없었다.

콰과가가가가강!!!

반으로 갈라진 송산이 다시 반이 되고, 또 다시 반이 됐다. 그렇게 눈 한 번 깜박할 사이에 산의 절반 이상이 가루가 되어 자욱하게 먼지를 일으켰다.

휘오오오오!!!

그렇게 일어난 먼지는 만우의 손짓에 따라 용트림을 하듯 하늘에서 빨아들였다. 그리고 만우는 단전이 텅 빈 듯한 기분을 느끼면서 하늘에서 천천히 하강했다.

아주 천천히.

경악한 모두가 만우를, 신위를 오랫동안 머릿속에 각인시켜 놓고 절대로 잊을 수 없도록.

스으으윽.

타악.

만우의 발이 가볍게 땅을 짚었다. 만우가 내려온 곳에는 무림인들이 알아서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반경 십 장의 공간이 생겨났다.

만우는 자신을 쳐다보는 수만 쌍의 시선을 만끽하듯 즐기고는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와 황보세가는 나서라.”

만우의 묵직한 목소리가 좌중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인파가 저절로 갈라지더니 저 멀리 덩그러니 홀로 놓인 하북팽가와 황보세가의 고수들이 만우의 눈에 들어왔다.


“무림공적 같은 하찮은 명분 따위로 내 사람과 내 재산을 손괴하였으니, 너희들의 죄가 작다 할 수 없다.”

만우는 무림맹이 정한 무림공적을 하찮은 명분이라 멸시했지만 그에 반박하고 나서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만우의 신위는 강세를 떨치고 있는 무림맹을 그저 그런 약소세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황보영근과 팽중의 다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이 만우의 눈에 들어왔다.


“이에 본주는 검주의 이름으로 저들에게 죄를 묻고자 한다. 이에 반박하려는 이가 있으면 누구든지 나서라. 그리하여.”

만우가 기천검을 길게 늘어뜨렸다. 만우는 노골적으로 이 자리에 모인 수만 명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하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게 충분히 먹혀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주를 꺾어라. 본주의 검을 꺾는 자, 능히 본주의 말이 틀렸다 할 수 있을 터.”

만우의 입꼬리가 휘었다. 천하제일인을 꺾으면 그것은 곧 새로운 천하제일인이 된다.


“무림의 방식대로 하자는 것이니, 누구든 눈치를 보지 말고 나서라.”

만우의 목소리가 좌중에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 그곳에 군집한 수만 명의 군중들은 그런 만우의 말에 숨소리조차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숨 죽였다.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갈랐다.

엄청나게 대단하다는 것을 수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던 그 신위를 방금 전에 자신의 두 눈으로 목도한 무림인들이다.

처억!

그런데 그때 인파 속에서 팔 세 개가 불쑥하고 솟아올랐다. 그러자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군중들이 길을 터 주자 그 안에서 세 명이 걸어 나왔다.


“검천마!”

“벽련신검이다!”

“낙화영도 있어!”

“과연, 검주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미려는가!!”

젊은 나이에 새로이 화경의 경지에 올라선 검천마, 주창과 강동에서 초절정 고수로 이름을 떨치는 두 명의 고수가 걸어 나오자 군중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군중들의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천마신교에서는 천하제일인 검주의 뜻에 동조하는 바이오!”

“벽력손가 역시 마찬가지.”

“남경휘가도 동의하오.”

마교와 벽력손가, 남경휘가에서 만우의 말에 동의한다면서 나오자 군중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그러나 그런 마교와 벽력손가, 남경휘가를 향해 겁쟁이라 소리치는 이들은 없었다. 무공을 약간이라도 익힌 이상 만우를 보면서 경외하지 않은 자들은 오히려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교와 벽력손가, 남경휘가가 만우에게 동조하자 모인 무림인들 사이에서 침묵의 공백이 벌어졌다. 다들 서로 서로가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그저 검주만 상대하면 되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검주의 저 말이 틀렸음을 지적하고 나선다면, 그것은 검주와 더불어 마교와 벽력손가, 남경휘가까지 적으로 돌리게 된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서는 황실까지도.

여기 모인 무림인들 중 검주가 산동 태수와 함께 황제의 차남인 한왕 주고후와 함께 입성하였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스윽.

누구도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와중에 군중 속에서 누군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존재감을 느낀 무림인들이 놀라서는 웅성거렸다.


“화산신검.”

“화산파 장문인이다.”

화산파.

만우의 눈이 화산파의 장문인인 화산신검에게로 돌아갔다. 그런 화산신검 옆에는 만우의 유일한 친우라 할 수 있는 검인이 서서는 만우에게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화산파.

무림맹의 주축이자 오대세가 중 남궁세가와 함께 구파일방 중 검공(劍功)으로는 내로라하는 화산파가 나섰다.

군중들은 화산파라면, 마(魔)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는 화산파라면 상황이 앞선 상황과는 달라질 것이라 예상했다.


“화산파도 검주의 의견에 동의하오.”

하지만 화산신검의 입에서 나온 웅혼한 내공이 담긴 목소리는 좌중을 경악 속에 빠뜨렸다. 만우는 화산신검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감사하오, 장문인.”

“천하제일인께서는 부디 손속에 사정을 두어 주시길 부탁드리오.”

화산파와 만우의 사이는 돈독했다. 정파에서 동이족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인정받지 못하는 만우에게 유일하게 자리를 내어 준 곳이 바로 화산이다.

검인과 소령이라는 인연도 화산파에서 맺은 것이었고, 화산은 나서서 만우를 감싸 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차별적으로 배척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만우는 화산파에 아무런 억하심정이 없었다.


“소림도 동의하오!!!”

“부, 불존!!”

“소림마저!!!”

그런 화산파에 이어 장원 안에서 불존이 다급하게 건곤대나이로 담장을 넘으며 창룡후를 터뜨렸다. 화산파에 이어 소림사까지 검주의 손을 들었다는 것에 군중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검주를 멍하니 쳐다봤다.

새로운 질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림맹이라는 조직을 통해 오랫동안 이어져 왔던 무림의 옛 질서가 무너지고 검주에 의해 새로운 질서가 성립되고 있음이 슬슬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의를 제기할 다른 이들이 또 있는가?”

만우는 불존을 슥 한 번 쳐다보고는 두 눈을 부라리며 당천기와 자월진인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그러나 군중들의 시선도 만우처럼 그쪽을 향했다.

암존과 무당파의 장문인.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최고수라 할 수 있는 그 둘이 사실상 정파 전체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황보세가와 하북팽가는 제외다. 만우가 결단을 내고자 하는 곳이 그 두 세가였기에 황보세가와 하북팽가는 만우가 자신을 쳐다볼 때마다 겁에 질린 채 어깨를 파르르 떠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북진무사께서는…….’

황보영근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황보경이 들어간 장원 쪽을 쳐다봤지만 장원 안에서는 별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황보세가의 최고수인 황보경이 침묵한다면 상황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황보영근도 알고는 있었다.

황보경이 나서더라도 산 하나를 통째로 날려 버린 만우에게 대적할 수 없음을 말이다.


“저희 석가장도 검주를 지지합니다.”

만우의 재촉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석가장의 가주, 석소군이 나섰다. 미리 그가 와 있음을 눈치챈 마주는 눈치 빠른 석소군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군중들에게는 또 다른 경악을 선사했다.

지금껏 석가장은 상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그 어떠한 곳도 지지하고 나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녹림과 장강의 형제들도 대장님을 지지하오!!!”

장원의 담벼락에서 감령과 필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둘이 녹림72채와 장강수로18채의 총채주와 대채주란 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무림인들은 없었다.


“개방도 지지하오.”

“하오문도 본문의 명예호법이신 검주 대협을 지지하오!”

개방과 하오문까지 나섰다. 무림의 대표적인 정보 조직인 두 곳이 만우를 지지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서 무림인들은 깨달았다.

무림의 질서는 이미 바뀌었다.

무림맹이라는 허황된 과거에 눈이 멀어 새로운 질서를 자신들이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검주 만우는, 무림의 새로운 역사였다.


“당가와 무당, 아미와 공동은 답하라!!!”

만우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만우는 당천기와 자월진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둘은 만우의 시선을 받고서는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

특히나 무림십좌의 일인으로 수십 년 동안 무림의 최정상에 군림해 온 당천기는 누군가를 보면서 이런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한 것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일패라 불렸던 혈세천마를 봤을 때도 이렇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본주의 길을 그대들이 막아설 것인가!!!”

그러나 만우는 지금 당천기를 보면서 답을 내놓으라 재촉하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든, 아니면 얌전히 비켜서든 양자택일을 하라면서 압박을 하고 있었다.

꾸욱.

당천기는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냥 물러서기에는 주변에서 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만우 앞에 나서기에는.


‘두렵다.’

당천기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산을 송두리째 박살을 내는 만우는 말 그대로 무신(武神) 그 자체였다.

어찌 일개 인간이 신에게 덤빈단 말인가.


“동의…… 하오.”

당천기의 입이 힘들게 떨어졌다. 그러자 군중들 사이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경악이 스쳐지나갔다.

당천기.

무림십좌의 일인이자 수십 년 동안 무림십좌로 불렸던 절대고수.

그런 당천기가 검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동의하오. 무량수불.”

자월진인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대세가 이미 저쪽으로 넘어갔음을 직감한 것이다. 제자들의 억울한 죽음을, 그 원한을 풀어주지 못하였지만 그 원한을 풀자고 애먼 목숨들을 사지로 내몰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주는 제갈세가와 독왕을 단신으로 멸문시켰다.

그런 검주의 칼끝이 무당으로 향한다면 무당도 봉문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위험을 자초하기에는 장문인이라는 자리가 너무나도 무거웠다.


“동의합니다. 아미타불.”

“동의…… 하오.”

아미파와 공동파도 눈물을 머금고는 검주 앞에 고개를 숙였다.

마교.

무당파, 화산파, 소림사, 아미파와 공동파.

사천당가.

개방과 하오문.

녹림과 장강.

벽력손가와 남경휘가까지.

사실상 무림의 절반 이상이 모인 이곳, 봉래에서 강호무림이 만우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만우가 히죽 웃었다.


 


“어서 와서 머리 박아. 이 새끼들아.”

만우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온 귀화가 한쪽 구석에 얌전히 틀어박혀 눈치만 열심히 보고 있던 황보영근과 팽중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중원의 강호무림이 그들이 동이족이라 무시하고 천대하던 검주, 만우에 의해 무릎을 꿇었다.

*****

그 뒤에 강호무림의 대소사를 집성하여 무림사를 집필 및 편찬한 만박자(萬博子)와 천이개(千耳丐)는 이후의 일을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천하제일인을 따르는 검주련(劍主聯)이 세워졌으나 천하제일인은 검주련의 련주 자리를 거부하고 군자국(君子國)으로 돌아갔다. 이후 강호무림은 새로이 등장한 검주련과 크게 쇠한 무림맹, 그리고 새로이 교주를 세운 천마신교에 의해 삼분되었다.

검주를 따르던 옥면산군과 필수교어를 필두로 녹림과 장강이 검주련의 한 축이 되었고, 검주를 따르는 벽력손가와 남경휘가가 한 축이 되어 균형을 이루었다. 또한 검주련의 성세는 곡주를 잃고 쇠락한 사림곡이 검주련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극에 달했다.

비로소 대무림시대(大武林時代)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 군자국으로 돌아간 천하제일인이 어찌 되었는지는 전해진 바가 없다.>

그렇게 끝나는 듯한 무림사(武林史)의 끝자락에는 주석이 더 달려 있었다.

사용한 먹의 색이 다른 것을 보니 후대에 다시 더한 흔적이 보였는데, 내용을 읽어 보면 왜 그런 흔적이 남은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역에서 건너온 상인이 가져온 풍문에 따르면, 일검(一劍)에 바다를 가르고 산을 가른 흑발의 무인이 아리따운 여인 둘과 외팔이 검객 일인, 산적 같은 사내 일인을 데리고 이태리국(伊太利國)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그로 인해 전쟁 아닌 전쟁이 일어났다 말한 바, 필자는 그것이 혹여 천하제일인과 천하제일인의 정인, 그리고 그 동생과 수신호위가 아닌지 의심하였으나 진위를 확인할 바가 없어 추측으로만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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