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6. 검주공적 (2) (396/400)


396. 검주공적 (2)
2022.10.15.



“대, 대협!”

“자세하게, 하나도 빼놓지 말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설명하라.”

감령과 필두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이 만우는 임택평의 멱살을 쥐고는 들어올렸다. 그러자 임택평이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황보세가와 하북팽가가 연합하여 발우수리 객잔을 습격했다 하옵니다.”

“습격? 감히?”

만우의 두 눈에서 불꽃이 일어났다. 그것을 코앞에서 보고 있는 임택평은 까무러칠 노릇이었다.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무언가 반항이라도 해 볼지언데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는 것이 검주인 이상 임택평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쿵!

만우는 쥐고 있던 임택평의 멱살을 놓았다. 그러자 임택평이 엉덩방아를 찧었다가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분위기가 그래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왜냐?”

“그…… 무림공적인 생사마의 국연이 발우수리 객잔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에 황보세가와 하북팽가에서 무림맹을 대표하여 무림공적을 인도하라 발우수리 객잔에 요구하였으나.”

“응하지 않았군.”

“맞습니다.”

임택평은 식은땀을 주륵 하고 흘렸다.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듯 보였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이 바로 만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황보세가의 호랑단과 하북팽가의 군상단으로부터 발우수리 객잔은 농성을 벌였습니다. 허나 이내 무림맹에서 지원이 나오자…….”

“지원?”

“무림공적은 무림맹과 사림곡이 함께 의논한 후 선포한 모든 무림의 최우선 척살대상입니다. 그렇기에 무림맹에서도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 사료…….”

“이 검주의 사람들이 있는 곳인데도?”

“…….”

만우의 말에 임택평의 입은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예전의 검주가 이렇게 말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속으로 생각했겠지만 과거의 검주와 지금의 검주의 위상은 아예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졌다.

천하제일인 무림왕 검주 만우!

무림과 황실에 의해 명실공이 천하제일인으로 인정받은 만우의 정인이 살림을 도맡은 것이 바로 발우수리 객잔이다.

한데 무림공적이 숨어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무시하고 공격을 했다?


“영원히 정신을 차리지 않을 셈인가.”

만우의 허리춤에 매달린 기천검이 꺼떡거리기 시작했다. 만우가 자신의 손바닥으로 검병을 지그시 누른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임택평과 감령, 필두는 숨통이 조여 오는 듯한 살기를 느꼈다.


“정녕 본주가 분노로 무림을 겁화로 물들여야만 무림맹의 그 콧대 높은 뒷방 늙은이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란 말이냐.”

무림공적.

무림의 악적들을 일컫는 말로 무림인들의 동의하에 최우선 척살대상으로 분류된 악인들을 말한다.

그들 중 하나가 발우수리 객잔에 숨어들었고, 그에 무림맹에서는 그 악적을 인도해 달라 하였으나 발우수리 객잔에서는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발우수리 객잔을 무림맹에서 공격했다.

그런데 뭐, 어쩌란 말인가.


“본래 강호무림은 강자존이고 약육강식이지. 아니 그런가?”

만우는 누구에게 묻는지도 모르는 질문으로 뇌까렸다. 그 사이 임택평은 두 눈을 까뒤집고 있었고 감령과 필두도 이마에 핏줄이 툭툭 솟아오르면서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 강자에 의해 쓰인 역사가 바로 지금 무림의 법칙이 된 것이다. 허니.”

만우는 임택평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임택평은 목이 졸려 호흡이 달려 가는 와중에도 만우의 그 차가운 눈이 자신의 뇌리 속에 각인이 되는 것을 느끼면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사람들에게 손을 댄 무림맹에 죄를 물을 것이다.”

사아악!!!!


“쿨럭, 쿨럭.”

“후우우…….”

그 말과 함께 좌중을 짓누르던 만우의 기세가 씻은 듯 사라졌다. 임택평은 막혔던 숨통이 터지자 쿨럭대면서 숨을 빨아들였고 감령과 필두의 이마에 흥건한 땀이 뚝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허니 너.”

만우는 임택평의 두 눈을 들여다보면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강호무림 전체에 이를 알리고 모든 문파, 특히 무림맹과 하북팽가, 황보세가에 배첩을 돌려라.”

“배첩…… 이라 하시면.”

거의 저승 문턱을 밟았다가 돌아온 임택평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두려운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내 사람을 무림공적이라는 구시대적인 명분 하나로 건드린 놈들이나. 허니 응당.”

만우는 기천검을 툭툭 하고 건드렸다. 검집조차도 없는 기천검의 푸른 검신에서 만우의 기천과 똑같은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며 임택평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것이 초절정 고수들의 상징이라 불리는 검사지경(劍絲之境)에서 몇 발짝은 더 앞으로 나간 상승의 경지란 것을 알아본 임택평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에게 죄를 물어야지. 강호무림은 무공으로 말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응당 이 무림의 질서는 천하제일인이자, 황제로부터 무림왕이라 인정받은 본주가 정해야 할 터.”

감령과 필두는 만우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를 깨닫고는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만우가 하려는 짓은 무림사에서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던 미친 짓이다.


“무림맹과 하북팽가, 그리고 황보세가를 천하제일인이자 무림왕인 검주의 이름으로 재판할 것이다. 허니 오늘로부터 달포 뒤.”

만우의 두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 셋을 산동성에서 징벌할 것이다. 그들을 나, 검주가 정한 공적이란 뜻에서 검주공적(劍主公敵)이라 부를 것이니, 이에 이의가 있는 자들이나 재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자, 전부 집결하라 전하라.”

임택평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만일 본주의 말에 불응한다면.”

만우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서렸다.


“제갈세가와 사림곡주를 만나게 될 것이라 전하라.”

멸문지화(滅門之禍).

만우는 정파의 기둥인 무림맹과 중심축인 황보세가, 하북팽가를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선전포고를 하는 셈이다.

허나 그것이 그냥 공수표 같지 않아 보이는 이유는 지금껏 만우가 걸어온 일 중에 단 하나도 상식적인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벽력손가에게 가 본주의 이름을 대고 도움을 청하라. 이후 황실에도 배첩을 넣어라.”

“황실이라 하시면…….”

“황제!”

“허억!”

황제란 말에 임택평이 숨을 들이마셨다. 하지만 만우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만우는 황제에게 어떤 내용을 전달하라는 것인지 아직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이 기회에 무림의 질서를 바로 잡을지어니. 황실에 전하여 쓸데없이 준동하려거든 본주가 직접 찾아갈 것이라 전하라.”

“딸꾹.”

만우는 황실에게까지 선전포고를 하겠다는 말이다. 당연히 황제와 만우 사이에 일어났던 일을 모르는 임택평으로서는 만우가 죽으려고 용을 쓴다고 생각했다.

허나 이미 하오문은, 문주인 그부터가 만우의 그늘 아래서 그의 비호를 받으며 생사를 함께 하겠다 결의를 한 상태다.

이미 그것을 무르고 이제 와서 싫다고 물러나기에는 돌아갈 길이 더 멀었다.

자신의 도박이 제대로 들어맞기만을 바라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숙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으니까.


“하늘 위의 또 다른 하늘, 중원무림을 품는 거대한 하늘이 있음을 오만한 한족 놈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만우의 두 눈에서 귀화가 들끓었다.

*****

만우가 한창 분노하고 있을 무렵.

만우를 분노하게 만든 하북팽가와 황보세가, 그리고 무림맹의 각 단과 당들은 마치 허깨비를 좇는 듯한 느낌에 날이 갈수록 사기가 축축 처지고 있었다.


“또, 또…… 으아악!!!”

호랑당 당주인 섬풍권 황보영근은 결국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근 사흘 만에 간신히 잡은 줄로만 알고 있었던 흔적들이 전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임을 알아챈 것에 대한 분노였다.


“후욱, 후욱.”

“당주님.”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을…….”

사흘 동안 호랑당이 먹는 것도, 자는 것도 건너뛰면서 추적한 끝에 발견한 것은 한 무더기의 푸짐한 똥이었다.

똥.

흔적을 보고 쫓아온 그들을 농락하겠다며 남겨 놓은 그 빌어먹을 연놈들의 똥이 황보영근의 손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발우수리 객잔의 연놈들이 황보영근을 화나게 만들어 죽이겠다는 것처럼 발목을 잡아채는 올무까지 설치해 놓은 탓에 그가 그에 걸려 땅을 짚은 것이 바로 화근이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손을 내뻗은 황보영근은 똥 위로 짚은 것이다.

비단 그런 일은 황보영근에게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림공적 생사마의 국연을 잡기 위해 나선 근 오백이 넘는 무림맹의 무림인 전부가 크고 작은 그런 더러운 일들을 겪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의 짜증과 분노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는데, 그 분노를 풀 곳이 나타나지 않자 되레 사기가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문제는 그들을 이끄는 황보영근이나 팽중 같은 당주급의 무림인들도 점점 평정심을 잃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됐다.”

호선은 불과 3장 앞에서 손으로 똥을 짚어 놓고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고 있는 황보영근을 보면서 방긋 웃어 보였다.

그 뒤에는 방매가 배를 붙잡고 깔깔거리며 웃고 있었는데, 황보영근의 표정이 마치 호랑이가 아니라 살찐 고양이처럼 우스꽝스러웠기 때문이다.


 


“아, 진짜. 눈물 난다 눈물 나.”

“그렇게 재밌니?”

“그럼 호 언니는 재미없어요?”

“아니. 사실 나도 재밌어.”

호선은 양손의 검지 끝자락에서 피어오르는 선기를 살랑이면서 살풋 웃어 보였다. 그 모습이 천하절색이었으나 그 누구도 호선을 응큼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청령단으로 선주(仙珠)를 만들고 선기를 차곡차곡 쌓아 가고 있는 호선은 비로소 500년 묵은 영물의 진가를 그대로 보여 주었다.

괴검과 괴권이라 불리며 만우의 뒤를 따라 미친 짓을 서슴지 않았을 정도로 대범한 문형일과 마익후도 호선에게는 잘 보여야겠다 싶을 정도로 호선이 부리는 도술(道術) 혹은 선술(仙術)은 어마무시했다.


“황보영근과 팽중이라면 그래도 절정은 넘은 고수들인데 저리 쉬이 현혹되다니. 대단하군. 대단해.”

문형일은 황보영근과 팽중 정도 되는 고수들이 고작 똥 한 번 손으로 짚었다고 평정심을 잃는 것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지금 오백 명이나 되는 추격대는 전부 호선이 부린 도술에 당해 무림인에게 있어 필수인 평정심을 전부 다 잃었기 때문이다.

부적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특별한 진법을 펼친 것도 아니다.

그저 호선은 선기를 이용해 허공에 글씨를 써 내려갔을 뿐이고 그 안에 들어온 오백 명이나 되는 추격대들이 전부 호선이 의도한 대로 끌려간 것이다.


“대단하다. 이 환영진도.”

“그러게. 제갈세가에서도 이렇게는 못 할 걸. 코앞에 있어도 우리 기척과 소리, 모든 걸 완벽하게 숨기는 환영진이라니. 이 정도면 거의 둔갑 아닌가?”

하늘거리는 장삼을 걸친 천하절색의 용모의 미녀가 사실은 오백 년 묵은 백호란 것을 들었을 때도 문형일은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다.

무림에는 워낙 기이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니 그럴 법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목도한 선술은 무공만을 익혀 온 문형일과 마익후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만약 호선이 지금 하는 것처럼 자신들에게 똑같이 한다고 하면, 솔직히 말해 이 환영진이나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도술을 깰 수 없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가는 길이 힘들지 않아 좋기는 한데.”

문형일은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의 오백 추격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인데 이렇게 편해도 되나 싶어 볼을 긁적였다.


“좋은 게 좋은 것이지. 아니 그렇겠는가?”

잠자코 있던 국연이 불쑥 끼어들었다. 문형일은 이 모든 사달이 눈앞의 마교 의원으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에 인상을 찡그렸다.


“어찌 그리 태평하시오.”

“아니, 자네도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힘들지 않아 좋다고. 본좌도 마찬가지일 뿐이네만. 헐헐.”

국연은 소탈하게 웃으면서 허연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런 국연에게 뭐라 더 쏘아붙여 주고 싶었지만 문형일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연경에서 도망쳐 나오는 길에 맞닥뜨린 황보세가의 호랑당을 상대로 시간을 벌다가 크게 다쳤던 문형일을 뚝딱 치료해 준 것이 바로 눈앞의 국연이었기 때문이다.

국연의 발 빠른 치료와 호선의 도술로 인해 빠르게 회복한 터라 문형일은 심호흡을 크게 했다.


“의원 할아버지. 할아버지.”

그때 방매가 쪼르르 달려와서는 국연을 불렀다. 국연이 푸근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방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옹주자가.”

“그거 한번만 더 보여 주세요.”

“얼마든지요.”

국연은 방매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하며 품에서 목함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보면서 문형일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목함 안에 무림에서 두말 할 것도 없는 무가지보가 든 것을 문형일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문의 그 생사단(生死團)이라니!’

“화아아…… 진짜로 이게 그렇게 귀한 약이라는 거지요?”

“그렇고 말구요. 이 늙은이가 허튼 소리를 하겠습니까? 이게 진귀한 것으로 치면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不老草)에 버금갈 것이라 자부하는 이 늙은이의 인생 최후의 역작입니다.”

이미 숨이 끊어지고 심장이 멈춘 이도 한 시진 내에 먹이기만 한다면 다시 소생시킨다는 생사단.

활인문에서 그리도 기를 쓰면서 국연을 무림공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한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그 생사단에 있었다.

청수신의 이극은 국연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신의이나 생사단 같은 약을 만든 능력은 없어 국연보다 한 수 뒤쳐진다는 소리를 듣는 것을 활인문에서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써 본 적은요?”

“예전에 한 번 있습니다.”

“예전에요?”

“예. 그것도 지금의 마교 교주님에게 써 봤습니다.”

국연은 손녀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주는 할아버지처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하지만 문형일은 국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눈이 커졌다.


‘현 교주? 주창?’

마얼(魔孼)이라 불렸던 소교주 주창은 혈세천마의 사후 마교로 돌아가 새로운 교주로 등극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마얼이 아닌 검천마(劍天魔) 주창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가 만우와 깊은 인연이 있고, 조선에 이어 일본국까지 함께 동행한 문형일은 국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교주님의 휘하에 아끼시는 여고수가 하나 있사온데, 아름답기로는 무림에서 으뜸이라 불리는 아이이나 선천적인 천형(天刑)을 지니고 있어…….”

국연의 말을 대충 요약해 보면 대충 이랬다.

주창은 어릴 적부터 천부적인 제왕으로서의 자질을 지니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투귀대가 그 때부터 이미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당연히 나찰사화 옥령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 옥령이 어느 날 혈성으로 인해 발작을 일으키게 되었고 당시 무공이 보잘것없던 어린 주창은 옥령을 말리려다가 큰 상처를 입고 숨이 끊어지는 지경까지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 생사마의 국연이 15년간의 연단을 통해 만들어 낸 생사단을 주창에게 먹였고, 다시 소생하였다는 것.

그리고 나서도 주창은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옥령을 감싸면서 투귀대의 절대적인 충성을 이끌어내어 마교의 동량으로서 마교의 고수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렇구나아.”

문형일은 방매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는 것을 보면서 치를 떨었다. 방매는 국연 앞에서 가증스런 연기를 하고 있었다. 당장 국연에게 자신이 주창을 비롯한 투귀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생사단이 그렇게 탐이 났냐!’

국연은 자신을 봉래(蓬萊)까지 데려다 주는 것을 조건으로 생사단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당연히 생사단이 엄청난 돈이 될 것임을 직감한 전귀(錢鬼) 방매는 냉큼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기왕에 생사마의를 내어주지 않겠다고 뻐기다가 발우수리 객잔을 버리고 도망 나왔는데, 그거라도 챙겨야 한다며 강력하게 주장한 탓에 결국 국연도 동행하게 된 것이다.


“한데 겨우 활인문이란 사람들이 하는 말만 믿고 저렇게 할아버지를 잡으러 오는 거예요? 나쁜 사람들이네요.”

방매는 국연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손녀 역할을 하며 국연의 혼을 빼놓았다. 평생 가족 없이 떠돌아다닌 국연에게 방매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녀 같았기에 국연은 방매 앞에서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아마 활인문에서 이 늙은이에게 생사단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 모양입니다.”

“엑? 그 귀한 걸요?”

“생사단이 있다면 누구든 여벌의 목숨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그럴 법 하지요.”

문형일은 오백 명이나 되는 각기 다른 문파의 무림인들이 무림공적이라고는 하나 끈질기게 쫓아오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풀렸다.


“근데 할아버지.”

하지만 호선의 활약 덕분에 오백 명이나 되는 무림인들의 추격을 받으면서도 방매를 비롯한 일행들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면서 이곳까지 도달했다.

하북성과 산동성의 경계를 막 넘은 어느 한 이름 없는 야산에서 마익후가 잡아온 사슴을 간장이 굽고 있었다. 바로 코앞에서는 국연을 잡겠다고 몰려와 눈이 벌게진 무림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하나도 없었다.


“봉래라는 곳에 가서 뭐하시게요?”

“꼭 가 보고 싶은 산이 있습니다. 옹주자가.”

국연의 두 눈에 기광이 스쳐지나갔다. 문형일은 국연의 말을 듣자 짚이는 곳이 있었기에 끄응 하는 신음을 흘렸다.


“설마, 한무제(漢武帝)가 발해(渤海) 바다에서 보았다는 봉래산(蓬萊山)의 전설을 좇으시는 것이오?”

문형일의 말에 국연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

검주배첩(劍主褙貼).

하오문의 거의 모든 인력이 총동원되어 무림 전역에 검주의 배첩이 모든 문파와 세가의 이름 앞으로 도착했다.

하오문의 지부가 없는 오지산간에는 표국들이 동원되었고 그에 크고 작은 모든 문파와 세가가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고 검주의 배첩을 받아들었다.

그것은 십만대산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고 알려진 천마신교, 마교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교주님.”

“이게 바로 그 검주배첩인가.”

“황보세가와 하북팽가, 그리고 자신의 사람을 건드린 데 동원된 무림맹의 추격대 전부를 검주의 이름으로 공적으로 선언하였다 합니다.”

파천서생 마일이 빠르게 배첩의 내용을 축약해서는 주창에게 고했다. 천마검법으로 화경의 경지에 올라 새로운 교주가 되어 검천마(劍天魔)란 별호를 얻게 된 주창은 마련검을 늘어뜨린 채 배첩을 받아들었다.


“얼마나 지났지?”

주창이 물은 것은 배첩이 돌기 시작한 지 얼마가 지났냐는 뜻이었다. 그에 마일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칠주야가 지났사옵니다.”

“십만대산에서 산동까지는 족히 달포는 걸리는 거리가 아닌가.”

“설마, 가실 생각이십니까?”

마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창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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