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 누가 앞길을 막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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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누가 앞길을 막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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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 누가 앞길을 막아 (1)
2022.08.23.
호광 비무대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무림인들의 뜨거운 성원에 개최되었고, 과격하게 진행됐다.
크윽!
크악!
곳곳에서 쉴 새 없이 부상자가 발생했고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어느 정도 남은 사람들이 간추려졌다.
첫 날 예선전에 출전했던 128명 중 하루 만에 절반이 탈락하여 64명이 남은 뒤 둘째 날과 셋째 날을 거치자 16명만이 남은 것이다.
그중 아홉은 당연히 처음에 예상했던 대로 남궁과 소림, 무당에서 출전한 이들이었고 셋은 만우가 내보낸 슌스케와 척사영, 그리고 동군영이었다.
나머지 넷 중 하나는 한왕 주고후도 포함되어 있었다.
“후으으…….”
동군영은 첫 날 이후로 둘째 날과 셋째 날에도 당당히 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물론 그 결과가 아주 매끄럽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동군영이 가파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물론 애초에 동군영조차도 이기지 못할 정도의 어중이떠중이들이 많이 출전한 대회라 봐도 무방했다.
천하제일인이라 추앙 받는 검주 만우의 금년도 호광 비무대회 참석 소식으로 인해 유달리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든 터라 실력이 미달되는 이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무림맹의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힘의 균형이 한 쪽으로 많이 쏠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주고후는 자신이 직접 겪어 본 무림인들의 수준을 떠올리면서 그리 생각했다. 주고후가 직접 겪어 본 결과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수준 미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수로 나아갈 수 있는 상승 무학들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거대한 집단들이 독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서생 같은 자가 여기까지 올라올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설마 주고후는 동군영 같은 자가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본기가 탄탄하고 체력이 뒷받침을 해 준다고 하나 천성 자체가 소심한 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저자가 16명 남은 곳까지 올라왔다.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주고후는 그리 말하면서 비무대 너머의 단상 쪽을 힐끗 쳐다봤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은 번왕의 위를 받았다는 무림왕 검주가 오연하게 앉아서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하제일인.’
대명의 황제만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 스스로 부를 수 있었고 불릴 수 있었으나 무공만으로 다른 사람의 입에서 천하제일이란 소리를 듣는 사내의 모습이 주고후의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주고후 역시 같은 사내로서 피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지존(至尊)의 자리.
그 자리를 꿈꾸는 주고후에게 있어 천하제일인 검주 만우는 동경의 대상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주고후 역시도 그를 한 번 만나 보기 위해 이 비무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우승은 힘들겠으나 기회는 올 터.’
주고후는 끝까지 자신이 한왕이라는 것은 숨기기로 했다. 아버지인 천자께서도 감히 저자를 붙잡아 두시지 못하였고 번왕까지 내려서 존중을 해 주었으니 자신이 한왕 위를 내세워 봤자 눈 하나 깜박할 리 없다.
특히나 황상의 냉혈함을 잘 알고 있는 주고후였기에 검주 만우에게 무림왕이란 왕위까지 내리셨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만우의 시선이 주고후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만우와 주고후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수하의 속을 썩이고 도망 다니는 나이는 지나지 않았나, 한왕?]
그리고 만우의 전음이 주고후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주고후의 아미가 움찔거리며 떨렸다.
“유모.”
주고후는 자신을 위해 누가 무림왕을 찾아가는 초강수까지 두었는지 단박에 눈치챘다. 주고후를 위해서라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라면 유모 김 씨밖에 없었다.
[유희라 생각하여 내버려뒀다만 그대가 다치기라도 하면 그대를 구하기 위해 본주에게까지 찾아온 수하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일 터.]
만우가 있는 거리에서 주고후가 있는 비무대 위까지 전음을 날리려면 초절정 고수로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공력이 필요하다.
허나 만우는 그것을 숨 쉬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해냈다.
[기권하고 물러난다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니 물러서라.]
만우는 단호하게 주고후에게 물러서라 말했다. 만약 비무대회에 왕족이 신분을 숨기고 참가하였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비무대회가 결승전까지 가지도 못 하고 중간에 깨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칼을 차고 다니는 이들이 오천 명 넘게 응집한 덕에 개봉시를 다스리는 태수와 그의 병사들이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번왕, 그것도 천자의 차남인 주고후가 부상을 입는다?
아마 태수가 그것을 빌미로 병사들을 몰아 이곳을 공격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황제가 바라는 것이 그것일지도 모르지. 아, 한왕은 아비인 황제를 위해 그리 하는 것이었나?]
주고후의 표정이 변했다. 만일 주고후를 말리려 했다면 진작에 누군가 와서 주고후를 말렸을 것이다.
주고후의 가마를 끄는 가마꾼들만 해도 무림 기준으로 절정 고수들이다. 거기에 주고후는 유모인 김 씨 역시 상당한 고수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고작 그들만이 주고후를 따르고 있을까?
‘아바마마라면 감시의 눈을 붙이셨을 것이다.’
보호를 겸한 감시의 눈이 자신의 곁에 붙어 있을 것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래 황제란 그런 법이니까.
권력은 나누는 법이 없듯 제 아무리 아비와 자식의 관계라고 할지라도 군신의 관계인 이상 권력을 쥔 황제는 자식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어쨌든 감시라고는 하나 그들은 최우선적으로 왕족의 보호를 우선시 한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주고후가 비무대회에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다?
[아니면 황제는 자신이 키워 낸 이들이 무림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는지 알고 싶은가 보군. 아니 그런가 한왕?]
주고후는 퍼뜩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주고후는 탄식했다.
‘아.’
천하제일인을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연히 예선장에서 만난 척사영을 보고 너무나도 놀란 것일까.
주고후는 본선에 진출한 16명 중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전부 황실의 고수들이란 것을 눈치챘다.
황실에서 주고후의 경호와 감시를 위해 붙인 고수라면 금의위와 동창의 고수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최소한 절정의 끝자락에 있는 고수들일 것이다.
‘방심했구나.’
[너무 자책하지는 말아. 어차피 황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기권해.]
검주의 목소리가 주고후의 귓가에서 다시금 울려 퍼졌다. 하지만 주고후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러서지 않는다.
주고후 자신도 무인(武人)이니까.
[눈빛을 보아하니 뭐 네놈도 스스로가 무인이니 뭐니라면서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모양인데.]
만우의 전음이 마치 메아리처럼 주고후를 가운데 두고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전설 속의 육함전성(六合轉聲)이었다.
[기권하지 않아 벌어지는 일은 모두 한왕, 너의 잘못이다.]
그 말을 끝으로 만우에게서는 더 이상 전음이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오히려 주고후로 하여금 오기를 끌어올리게 만들었다.
무림왕 만우.
설령 자신으로 인해 황실이 무림에 개입할 여지를 주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주고후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도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만 이 비무대회에 나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고후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모른 척 하고 있는 세 명의 황실 고수들에게 말했다.
“방금.”
움찔
주고후가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자신들을 쳐다보면서 말하자 황실 고수들의 눈가가 순간적으로 움찔하고 떨렸다.
“무림왕으로부터 전음이 오길, 기권하지 않으면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어찌 될지 모른다 하였다.”
황실 고수들의 시선이 주고후에게로 향했다. 주고후는 그런 황실 고수들의 곁으로 이동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을 듣고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아니 그런가.”
“전하.”
“무림왕이라고는 하나 무림보다 황실이 위에 있음을, 황실의 기상을 보여 줄 것이다. 허니 방심치 말라.”
주고후의 모습에서는 황실 고수들이 가장 경외해 마지않는 천자의 모습이 언뜻 비치는 듯했다. 그에 황실 고수들이 주고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명을 받드옵니다.”
*****
주고후와 황실 고수들은 의지를 불태웠지만 척사영이나 슌스케, 동군영과 주고후가 일찍 부딪치는 일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지는 알 수 없었다.
척사영과 슌스케가 그들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이었다.
“크억!”
황실 고수 중 하나가 재수 없게도 척사영과 맞부딪쳐서는 검도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 하고는 장외로 밀려 떨어졌다.
척사영은 상대가 설령 삼류 고수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방심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척사영의 모든 행동에 있어 동기가 되었고 의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
주고후는 그런 척사영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실제로 척사영이 비무대 위에 선 것은 처음 본 셈이지만 주고후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애초에 저 정도의 압도적인 실력 차를 가진 고수란 것을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황실 고수들은 아니었다.
“무슨…….”
이들은 전부가 절정 고수들이다. 절정이라 함은 당장 무림에 출도해도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의 고수들을 만나지 않고서야 언제나 한 지역에서 최강을 논할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는 뜻이다.
허나 그들의 그런 자부심은 척사영의 앞에 자신과 같은 실력을 가진 황실 고수가 처참하게 깨지는 것을 보면서 역시 산산조각이 났다.
허나 그들의 좌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철컥!!
촤자자자작!!
“하…… 항복.”
처음에는 자신이 당연히 이긴다는 듯 보무도 당당하게 걸어 나왔던 남궁세가의 고수는 그가 걸친 의복이 갈기갈기 찢어져 간신히 국부만 가릴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는 항복을 외쳤다.
그가 그렇게 외치기까지 고집스럽게 오래 버틴 것도 아니다.
단 한 번의 발검.
외팔이 검객인 슌스케의 단 한 번의 발검은 극쾌(極快)였기에 눈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만우의 지도편달로 인해 왜도를 다루는 기예 자체가 한 단계 발전한 슌스케의 검격은 정확히 남궁세가 무인의 의복만을 잘라 냈다.
그 신기에 가까운 검격에 남궁세가의 무인은 항복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스르륵 철컥!
“좋은 승부였소.”
거기에 슌스케는 끝까지 정중했기에 남궁세가의 무인은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백미는 동군영과 진해진인이 데려온 무당파의 삼대제자 사이에서 벌어졌다.
“하악, 하악.”
근 한 시진의 혈투를 벌인 끝에 만우의 고된 훈련으로 체력이 탄탄해진 동군영이 무려 무당파의 제자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론 동군영도 몸에 성한 데는 없었다.
얼굴은 태극권에 하도 얻어맞아서 울긋불긋해졌고 검을 든 손은 달달 떨리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기기는 이겼다.
비무 내내 형편없이 간신히 방어를 하면서 도망 다니듯 버티다가 무당파 제자가 지치자 그 틈을 노리고 일격을 성공시킨 것이다.
한 시진 이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며 지쳐 가던 무당파의 삼대제자는 결국 그 마지막 일격을 피해 내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에 동군영이 갑자기 공격을 해 오자 이미 공격을 하는 것에만 한 시진 내내 익숙해져 있던 무당파의 삼대제자가 결국 손이 꼬이면서 정확히 검집에 머리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쯔업.”
감령과 필두는 단상 아래에서 그런 동군영의 비무를 지켜보고 있다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동군영의 혈투를 보자 이상하게 손발이 근질거려 왔기 때문이다.
동군영에게는 눈을 사로잡을 만큼의 훌륭한 실력이나 재능은 없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동군영의 집념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실력이 보잘 것 없을 때의 그 시절, 청운을 꿈꾸며 무공에 대한 열망으로 타오르던 올챙이 시절 말이다.
“확실히.”
필두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감령과 필두만이 아닌 듯 보였기 때문이다.
만우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던 그 수많은 관중들의 표정이 비슷했다.
그들 중 무공에 대한 경험이 동군영보다 떨어지는 이들은 별로 없다. 동군영은 실력보다는 끈기와 집념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실력이 뛰어난 이들도 기천 명이 넘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동군영의 혈투를 보면서 몸이 달아오른 듯한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잊었던 무공에 대한, 그 순수한 열정이 동군영을 보면 다시 살아난다고나 할까.
“나리.”
설미수는 멍한 눈으로 비무대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설미수가 자신도 가서 보겠다고 고집을 피웠기에 데리고 나온 것이다.
필시 평생을 글을 가까이했던 선비이기에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비무를 본다는 것을 힘겨워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말렸지만 설미수는 듣지 않았다.
동군영을 자신의 조카처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런 설미수는 동군영의 처절한 혈투를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얼굴이 새하얘지면서도 그 모습에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그 모습이 곧 있으면 쓰러질 것 같아 보였기에 필두는 그런 설미수에게 말했다. 하지만 설미수는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