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3.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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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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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1)
2022.07.26.
무당일검이라면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명숙이자 거물이다. 하지만 감령도 그에 못지않은 거물이었다.
단지 감령이 놀란 이유는 진해진인의 검격을 막아 낸 손에 남은 저릿한 충격 때문이다. 진해진인은 감령보다 반수쯤 윗줄의 고수란 것이 일격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헛. 내가?’
감령은 그것을 떠올리고는 눈을 큼지막하게 떴다. 사실 같은 경지의 초절정이라고 해도 감령은 정파의 고수들과 비교하면 반쯤 뒤쳐지곤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녹림 출신이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쌓여 온 정파의 무학과는 깊이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당일검이라 불리는 진해와 반수 차이라니.
조선에서 별의별일을 겪으면서 강해졌다는 것이 감령에게 피부로 와닿았다. 원래라면 이 한 번의 충돌에 손해를 입을 수도 있었는데 저릿한 정도로 끝이 났기 때문이다.
“과연. 산군이라 불린다 하더니 대단하시오.”
진해진인은 담백하게 감령의 실력에 감탄했다. 정파니 사파이니를 나누기 전에 같은 무인으로서 그가 쌓아 올린 경지에 감탄한 것이다.
“한일아.”
“사숙님…….”
한일이라 불린 어린 도사는 진해진인의 등장에 바싹 움츠러들었다. 감령에게 달려들어 검을 흩뿌릴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감령을 향한 기습이 백약에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꾸욱.
그 어린 도사는 분함에 자신의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부모의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서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왜 내가 원수라는 거야?”
감령은 어린 도사의 한 서린 눈길을 받으며 억울하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진해진인이 감령에게 말했다.
“한일이는 산적 떼들에게 부모를 잃었소.”
“하. 그런 사연 있는 놈이 무림에 어디 한둘이오?”
감령은 진해진인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진해진인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어린 도사, 한일의 앞을 막아섰다.
“허나 감 채주, 그대가 녹림산적들의 대두령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그대가 있어 산적 떼들이 그리 발호하는 것이니.”
“뭐?”
감령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진해의 말은 얼핏 들으면 타당했으나 그 근본적인 전제조건 자체가 아예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있어 산적들이 발호하는 것이 아니라 살기가 힘든 이들이 산적이 되는 것이다 말코 도사 놈아!!!”
실제로 산적이 된 이들 중에는 녹림72채에 속한 이들보다 그냥 살기가 힘들어 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된 이들이 더 많았다.
그런 산적들까지 전부 다 감령의 책임이라고 하면 말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그렇게 욕을 하려거든 관리들을 욕하고 황제를 욕해라!”
감령이 강한 기백을 발산하며 진해진인을 노려보았다. 그런 진해진인도 마찬가지로 기세를 피워 올렸다.
“잘못된 길로 빠진 그들을 규합하여 강호와 나라에 해가 되는 이들로 만들었으니 어찌 그대의 책임이 없다 할까!”
산적들 중 저 어린 도사보다 훨씬 더 기구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감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산적들만 죽일 놈 취급을 하는 진해진인을 보면서 공력을 끌어올렸다.
비록 감령은 총채주 자리를 내팽개치고 만우의 휘하로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산적이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 산적이 된 자신들과는 달리 더 큰 도적들은 백성들의 재산을 훔치고 나라를 훔쳐 제 배를 불리고 있는 놈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네놈도 도적놈이다 말코 도사 놈아!”
무당파도 그런 도적 무리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들이 정파란 이름으로 철퇴를 때린 이들 중 사연 하나 없는 이들이 있을까.
사파, 마교.
정파에서 배척하는 이 두 단체에 속한 이들 중 과연 몇이나 정녕 무법이 그립고 피와 살인을 즐길까.
그들이 정파에 속한 것처럼 그들도 상황이 그러하고 환경이 그러하여 사파가 되고 마교에 입교한 것뿐이다.
“진해진인! 도와드리겠습니다! 무림의 법도를 해하는 악적들을 이 자리에서 추포하여 무림맹으로 압송해야 합니다! 아미타불.”
강무가 그런 진해진인을 향해 소리쳤다. 진해진인은 자신에게 살기를 피워 올리는 감령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인은 후환을 남기지 않는다.
그럼 점에서 감령은 자신을 습격한 어린 도사, 한일을 살려 보내지 않으려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무림인이기 때문이다.
일은 안 벌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자신은 어린 도사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무당의 어른이다.
“무량수불.”
“사형과 황보 대협께서도 도와주시지요!”
강무가 감령과 그 뒤에 앉은 슌스케, 그리고 지붕 위에 앉은 필두를 힐끗 쳐다보고는 우두커니 서 있는 황보경과 불존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 둘이 눈에 띌 정도로 화들짝 놀라더니 슬쩍 마차 쪽을 쳐다봤다.
“사형!”
진해진인은 강무의 시선을 좇았다가 불존이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불존 진한대사라면 무림에서 명망 높은 화경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어렵지 않겠구나.’
진해진인은 생각보다 감령을 제압하는 싸움이 쉽게 끝날 것이라 예상했다. 아무리 관과 무림이 상호불가침 조약을 맺었다고는 하여도 사람이 많은 저잣거리에서 소란을 벌인다면 관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한데 불존이 있다면 감령 정도는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불존 옆에 황보 대협이라 불린 이가 황보세가라면 더더욱 일은 간단해진다.
‘저 둘이 거슬리기는 하나.’
불존이 나서고 자신과 소림의 강무까지 나선다면 능히 소란을 크게 벌이지 않고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 아미타불.”
“어찌할 것이오…….”
그런데 진해진인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 황보경과 불존이 선뜻 나서지 않고 자꾸만 마차를 힐끗거리며 곁눈질로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둘의 행색을 보아하니 누가 보더라도 저 마차를 끄는 인부처럼 보이지 않는가.
‘마차…… 마차?’
대체 천하에 누가 있어 황보세가와 소림사에게 말 대신 마차를 끌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무량수불. 한데 황보세가는 연경에 있을 터인데 어찌하여…….’
귀한 신분으로 짐작이 되는 황보세가의 황보경을 보던 진해진인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황보세가는 연경에 있어야 하는데 연경을 떠올리자 퍼뜩 생각난 것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전 무림을 강타한 떠들썩한 풍문.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
처음에는 듣고 말도 안 된다며 웃어넘긴 풍문이었으나 그 풍문에 점점 박차가 가해지더니 황실이라는 진실을 입고 태풍처럼 무림 전역을 휩쓸었다.
천하제일인.
무림왕.
황상과 황실의 이름으로 중원 전역의 각 주(州)와 성(省)에 칙서로 내려간 새로운 왕의 등극.
각 주와 성에 내려간 공문이 그곳의 토호 세력인 무림 방파와 세가에 퍼지지 않을 리 없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진해진인이 잊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덜커덩!
진해진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부석의 창문이 덜컹하고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진해진인이 미처 준비하지도 못한 새에 만우의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여! 오랜만이다 도사야?”
“검주……!!!!!”
진해진인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그리고 진해진인의 말소리를 들은 강무의 눈이 커졌다. 왜 사형인 불존이 마차를 신경 쓰고 있었는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불존은 그런 만우를 보고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열심히 불호를 읊었다. 제발 부처님이 자기를 구원해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구원의 손길은 그렇게 쉽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
“고후가?”
“예, 폐하.”
“또 병이 도졌구나.”
“폐하.”
천자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최근에 한왕으로 봉해진 둘째 고후의 상황에 대해서 천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왕으로 봉했다는 것은 연왕이던 시절의 천자처럼 한 지역을 통째로 맡겼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안에 각 주와 성, 군과 현마다 직책을 맡은 관리들을 내려 보냈으나 중원이란 거대한 땅은 남경이나 연경에 천자만 존재한다고 해서 쉬이 운영될 수 없기 때문이다.
허나 차남인 고후는 통 그 왕이란 직위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니, 사람 자체가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좋으리라.
‘짐의 제국에서 패도를 걷는 자는 짐 하나로 족하노니.’
물론 시간이 더 흘러 명이란 거대한 제국에 혼란기가 오면 그때 또 패도의 길을 걷는 자가 황제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피와 죽음과 폭력은 자신에서 끝이다.
천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사후 제국을 운영할 수 있는 성군이지, 국외의 영토를 노려 명의 영토를 확장하는 데 어울리는 군주가 아니다.
그래서 천자는 자신을 가장 많이 빼닮은 주고후에게 한왕의 작위를 내렸다.
“무림인들을 만나고 다닌다 들었다.”
“예, 폐하.”
동창제독이 길게 읍했다. 검주와의 일전 이후 천자는 여러 일을 많이 겪은 덕분인지 더 이상 무림인들을 한낱 무뢰배라 부르며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무림인들을 제국의 신민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분란의 씨앗이 될 무림왕을 검주에게 내려 주지 않았던가.
그런 무림인들을 주고후가 만나고 다닌다는 것 역시 천자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전 무림에 금지령을 내리겠나이다.”
동창제독은 천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귀신같이 눈치챘다. 그는 전임 제독인 부로와는 달리 무공이 떨어지는 대신 처세에 능하고 눈치가 빨랐다.
“한왕을 만나지 말라고 황명을 내리겠다?”
“그리하겠나이다.”
차남인 주고후가 무림인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은 천자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다. 천자는 무림을 정복하여 흡수하여야 할 곳이라고 생각했지 그들의 손을 잡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주고후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무림…… 무림이라.”
하지만 천자는 선뜻 동창제독에게 그리하라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가장 빼닮은 아들이 주고후이기게 총애한 천자다. 그렇기에 천자는 자신이 그리 명한다 하여 주고후가 그 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식은 오히려 주고후의 반발만 키울 뿐이다.
“검주에게로 향하였다지?”
“무한을 들려 그곳의 남궁 씨를 만난 뒤 개봉으로 향하였다 하옵니다.”
전 중원에 황제의 눈과 귀가 깔리지 않은 곳은 없다. 거기에 한왕 정도 되는 이의 행차라면 그곳의 관리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이미 동창제독은 주고후가 향하는 곳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럼 되었다.”
하지만 천자는 동창제독의 예상과는 달리 주고후가 개봉으로 향했다는 말을 듣자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의아한가?”
동창제독은 궁금했지만 차마 반문하진 않았다. 감히 대명의 천자 앞에서 동창제독 따위가 반문을 하는 일이란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자는 그런 동창제독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한왕이 자초한 그 궁금증이 한왕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고후가 생각하는 바가 발칙하기는 하나.”
아직 자신이 건재하였고 엄연히 직접 내정한 황태자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고후가 무림인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은 엉큼한 야망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허나 천자는 그런 한왕을 탓하지 않았다.
원래 권력이란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법이다. 또한 황태자인 첫째 주고치가 성군의 재목이라고는 하나 이 거대한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것을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선을 넘지 않는 한 천자는 주고후를 말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살아 있는 한은 형제간의 핏빛 골육상쟁 따위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또한 그마저도 기회가 없다면 한왕은 살아갈 의욕 자체를 잃을 것이다.
전장을 내달리며 책 대신 창과 활을 잡았던 한왕에게 청사에 틀어박혀 종이를 들여다보라고 하는 것만큼 가혹한 일은 없으니 말이다.
또한 설령 그런 야망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고후는 그 야망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검주.
주고후가 개봉으로 향하였다는 것은 중원 전체에 풍문이 자자한 검주를 만나러 갔음이다. 그리고 검주와 주고후가 만난다면 천자는 십 할의 확률로 주고후에게 심경의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장담할 수 있었다.
‘나조차도 말려든 폭풍이니.’
검주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폭풍이다. 검주 주변으로는 늘 폭풍이 불었고 모든 것을 휩쓸었다. 그것에 이 대명의 천자인 자신조차도 휩쓸렸는데 한왕이라고 멀쩡할까.
‘개안하라. 남의 손을 빌려 쟁취할 황위가 아니니까. 검주와의 인연으로 타인의 힘을 빌리려 하지 말고 네 힘을 기를 생각을 하여라.’
천자는 아비된 마음으로써 가장 총애하는 차남인 주고후가 이번 일로 각성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