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 무림의 태산북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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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무림의 태산북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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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 무림의 태산북두 (3)
2022.07.19.
만우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불존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돌려 황보경을 쳐다봤다. 불존은 또 다른 별호로는 무치(武痴)라 불릴 정도로 무공 외에는 아무것도 관심이 없었기에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천자. 니 대가리. 무림 집어삼키려고 하는 거잖아. 응?”
“아미타불!”
설마 만우가 그것을 눈치채고 있을지 몰랐던 황보경의 눈이 커졌다. 불존은 그런 황보경과 만우를 번갈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불호를 읊었다.
황제가 강호무림을 노리고 있다.
원의 강압적인 치세 아래에서 벗어날 기회만을 노리다가 명을 세우는 데 한 손을 보태어 드디어 빠짝 죄였던 숨통이 풀린 강호무림이다.
그런데 불가침조약을 맺은 홍무제 이후로 황제가 두 번 바뀌었을 뿐인데 재차 황실이 무림을 눈여겨보고 있다?
“그 인간 성격에 칼 차고 다니는 무림인들을 그냥 두고 볼 리 만무하지. 그게 아니었으면 굳이 조선에서 잘 살던 나까지 불러서 그 난리를 칠 이유가 없었으니까.”
무림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황제 입장에서는 황권을 대폭 강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무력을 손에 넣는 셈이다.
그것도 보통의 무력이 아니라 특수하기 짝이 없는 무력이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 하나는 웬만한 병사를 적게는 서넛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까지도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는 징발할 수 있는 병사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어 전쟁의 전면전에서는 내세우지 못하겠으나 별동대로 쓰기에는 딱이다.
“설마 아니라고 하진 않겠지? 응??”
패도를 걸어가는 야심찬 천자이나 그렇다고 하여 천자가 욕심 많고 힘만 내세울 줄 아는 바보라는 뜻은 아니다.
그래서 천자는 품고 있는 벌통을 들쑤신 것이 아니라 조선에 따로 떨어진 벌통을 건드려 본 것이다.
“된통 당하기는 했겠지. 하지만 되레 나한테 무림왕까지 준 것 보면 그거 아니야?”
물론 천자가 조선에 있는 벌통을 건드려 본 것은 큰 실수였다. 그 안에 있던 것은 그냥 보통의 벌이 아니라 한 번 나타나면 일반 꿀벌을 몇 만 마리씩 몰살시킨다는 장수말벌이었으니까.
그 장수말벌이 빡쳐서 명으로 들어와서 그 깽판을 피워 놨지만 천자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그 변수까지도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품었다.
무림왕.
“무림에 군림하고자 하는 자를 만든 거잖아. 지금껏 강호무림은 그 누구도 군림한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본주가 들어와서 깽판 치는 것을 보면서 무림맹과 사림곡 수준도 동창에 견줘 봐서 대충 가늠을 했을 것이고.”
무림맹과 사림곡의 모든 전력을 전부 다 들여다본 것은 아니다. 허나 그렇게 따지면 동창 역시 그것을 전력이라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용접곡의 참사에서 무림맹과 사림곡, 동창은 전부 사이좋게 검주에게 처참하게 깨져 나갔다.
그랬다는 것은 동창과 무림맹, 사림곡의 전력이 비슷하다는 의미로 황제는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줄줄 꿰고 있을 거 아니야. 이번 년에는 개봉에서 누가 모인다는데.”
“…….”
황보경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만우가 설마 이 정도까지 꿰뚫고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기 때문이다.
검주는 그냥 성격 더럽고 힘만 센 천둥벌거숭이가 아니었다.
“말 안 해? 그럼 마차 저 쪽으로 끌고 가라고 한다?”
만우의 말에 황보경이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처지가 어찌 이리 되었는지 한탄스럽기는 하나 이 몰골을 같은 정파인에게 보여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말하는 것이 더 나았다.
“……비무대회가 열린다 들었소.”
“아, 그거?”
만우가 ‘과연.’이라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은 어딜 가든 그 실력을 뽐내고 싶어 안달인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만우처럼 문파나 세가 깨기를 하러 다닐 수는 없지만 끓어오르는 혈기를 참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무림인들은 그렇게 만나기만 하면 호승심이니 서로의 실력을 겨뤄 본다느니 해서 대련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다니면서 몇몇을 만나 겨뤄 보는 것에는 의미가 없으니, 이것을 큰 규모로 벌려서 지역 축제로 삼자는 생각에 중원 전역에서 비무대회가 심심치 않게 열리곤 한다.
“개봉시에서 열리는 비무대회면.”
“소림과 남궁, 무당에 제갈에 개방까지 들어가는 엄청나게 큰 대횝니다, 대장.”
감령이 지붕 위에서 눈을 반짝이면서 흥미로워했다. 필두 역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가 제철이었는데.”
“하긴. 짭짤했지.”
뭐가 제철이고 뭐가 짭짤한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무대회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니 그만큼 산적과 수적들도 한창 바쁠 때라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잘 한다. 어이구, 자랑이야 아주.”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때 황보경이 말했다.
“금년도에 제갈세가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남성 개봉시에서 열리는 비무대회니 인근의 하남과 호북성에 있는 문파와 세가들이 참여한다고 보면 된다. 구파일방 중 소림과 무당, 그리고 오대세가 중 남궁과 제갈세가가 전부 하남과 호북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보경이 제갈세가는 참여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만우는 피식 웃었다.
“그럴 만도하지.”
아마 용접곡에서의 참사 때문일 것이다. 그때 만우의 자비 없는 손속에 가장 많이 쓰러진 것이 제갈세가의 무인들이다.
기관진식을 쳐부수기 위해 만우는 기감에 걸리는 모든 것을 베었기 때문이다.
그런 비극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돼 비무대회에 제갈세가가 참가하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봐봐. 다 알고 있잖아.”
만우는 똥 씹은 표정을 한 황보경의 얼굴을 빙긋 웃으면서 쳐다봤다. 황보경은 끙 하는 소리를 내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불존이 있었다.
“……그리 쳐다보지 마시오.”
“아미타불.”
설마 천자가 노리는 것이 무림 그 자체였을 줄이야. 그 무림의 일원인 불존이 불호를 읊자 황보경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노려보지 마. 어차피 무림맹에서도 알고 있었을 테니까.”
만우는 황보경을 쳐다보는 불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용접곡이나 무림맹이 그릇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그들이 바보인 것은 아니다.
특히나 제갈세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제갈세가에서조차 그런 황실의 움직임을 모르고 있을 확률은 대단히 작았다.
“그러면 무당 애들이 개봉시까지 온 게 말이 되네. 그러면 여기 어딘가에 소림 땡중 애들도 있겠네?”
만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린 것을 들은 불존의 표정이 변했다. 만약 이 근처의 소림의 승려가 불존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대충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불승들이 인자하다?
아, 불도를 닦는 학승(學僧)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승(武勝)들은 아니다. 당장 불존만 해도 본래의 성정이 수행하여 입적을 목적으로 하는 여타의 불승들과는 아주 많이 달랐다.
사실 소림사 안에는 무승보다 학승이 훨씬 더 많지만 세간에 더 널리 알려진 것은 무승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승들은 사실 승려라기보다는 무인에 훨씬 더 가깝다.
“아미타불. 전하. 이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돌아가면 전하께옵서 아주 마음에 들어 하실 객잔이…….”
“응, 아니야, 늦었어.”
불존은 황급히 마차를 돌리려고 했지만 만우는 씩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존은 익숙한 기운을 품은 이들이 몰려오는 것을 느끼고는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자 땡중아.”
만우는 사람들이 승려들에게 좌우로 비켜나면서 길을 터주는 것을 보고는 악동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불존에게 물었다.
“나한당(羅漢堂) 애들 같은데 과연 땡중 너는 어디 편을 들래?”
잠시 뒤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정순한 기운을 담고 안광이 형형한 두 눈에는 소림의 정기를 담은 나한당의 승려들이 마차 앞에 도달했다.
“아미타불. 진한대사를 뵙습니다!”
열 명에 달하는 승려들이 소림의 자랑이자 무승들의 선망과 경외의 대상인 불존을 향해 합장을 했다.
*****
“비무대회라니. 칼을 들고 싸운다는 것 아닙니까?”
“그럼. 설마 목검을 들고 싸울까.”
주고후는 흔들림이 거의 없는 가마 안에 앉아서는 유모 김 씨의 대답에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자 김 씨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이고. 쇤네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합니다. 그러다 다치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그 재미인 거야 유모.”
“전하. 그런 흉측한 것을 가까이 하시면 전하께옵서도…….”
“유모. 내 나이가 내일모레면 서른이 다 돼 간다고. 자식도 있는데 것 참.”
주고후는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유모의 눈에는 자신이 언제나 젖먹이 아이 정도로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아직도 유모를 가까이하는 이유는 그런 유모의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어미의 사랑은 어릴 적부터 형인 주고치에게 집중되어 있었지, 주고후에게는 그 순번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타계한 서황후가 아니라 유모가 주고후는 자신의 어미처럼 느껴졌다.
“내가 왜 유모를 개봉까지 데려가는 줄 알아?”
“쇤네는 모르겠습니다, 전하.”
김 씨는 주름이 살짝 지기 시작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흔 줄에 접어든 유모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주고후는 날마다 느껴지는 듯했다.
“그곳에 가면 조선에서 온 천하제일인이 있대.”
“예?”
조선.
멀고 먼 고향이 주고후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김 씨의 눈이 커졌다. 주고후는 그런 김 씨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딸을 놓고 왔다고 했지?”
“……예, 전하.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이었습니다.”
재수 없게 딸을 낳은 김 씨가 공녀로 끌려온 것이나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원래라면 죽었어야 할 운명이지만 마침 어린 주고후에게 유모가 필요해 김 씨는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 김 씨지만 이를 악물고 살아남았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 돌아갈 기회가 올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다.
그러면서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자신을 어미처럼 따르는 주고후에게 모성애를 느꼈고 그 후에는 주고후 때문에라도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궁금하지 않아 유모? 조선은 명에 비하면 작은 나라래. 그런데 그 땅에서 천하제일인이 나왔다는 거야.”
책을 펴 놓고 공부하는 것보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창술을 연마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주고후다. 그런 주고후의 기질은 그간 억눌려 있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자신의 아버지인 천자도 어찌하지 못한 천하제일인이 나타났다. 거기에 친분을 쌓은 무존 남궁무도 검주라는 조선에서 온 천하제일인인을 인정했다.
“천하는 여기 중원이야. 그런데 소국에서 온 그자가 천하에서 제일인이 되었어. 그래서 난 궁금해.”
주고후는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받은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거렸다. 김 씨는 조선에 놓고 온 딸에 대한 상념을 떨쳐 냈다.
“감히 천하를 논하고도 황상께서 살려 보낸 자가. 그자를 품을 수 있다면.”
주고후의 두 눈에서 위험한 욕망이 일렁였다.
“본왕은 천하를 품은 자를 품었으니, 천하가 곧 본왕의 것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무리하지 마시옵소서, 전하. 그러다 옥체가 상하십니다.”
유모 김 씨는 주고후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대단히 위험하고 험난한 길인 것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알았어, 유모. 걱정 마.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도 만나면 유모한테도 좋을 거 아냐. 안 그래?”
“……예, 전하.”
그래 봤자 김 씨에게는 지울 수 없는 그리움만 괜히 커지는 셈이었지만 그녀는 주고후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다.
타다다닷!!
그 사이 경공의 고수들이 짊어 맨 거대한 가마가 개봉시에 도달했다.
*****
“음?”
나한당의 승려들은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기에 그들을 구경하기 위해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몰렸다.
그에 객잔을 찾고 있던 무당일검(武當一劍) 진해진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소란이지?”
“나한당의 승려들입니다 사숙.”
“흐음…….”
슬쩍 승려들이 몰린 곳을 쳐다보니 나한당 승려들과 그 앞에 선 거대한 마차가 진해진인의 눈에 들어왔다.
“대사형! 저쪽에 괜찮은 객잔을 찾았습니다!”
진해진인은 비록 검주 만우에게 패배하였으나 여전히 무당파에서 자랑하는 고수 중 하나였다.
그는 검주에게 패배한 이후 절치부심하여 초절정의 끝자락이라는 고절한 경지에 올라 이번 비무대회에 무당파의 제자들을 이끌고 개봉에 오게 되었다.
“사숙. 가서 인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진해진인이 인솔하여 개봉에 데려온 무당파의 제자들은 약 열 명 정도 됐다. 전부 삼대제자들로 금년 비무대회를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생을 해 온 제자들이다.
진해진인이 현 장문인과 사형제 지간이었으나 일대제자와 이대제자가 아닌 삼대제자가 이번 비무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무당파 유검(乳劍) 청문.
무당파 태극검(太極劍) 인문.
무림맹 정의대 소속으로 조선에 파견을 나갔다가 살풍대에 의해 주검이 되어 돌아온 그 아이들 때문이었다.
그 둘은 아직 실력은 영글지 않았어도 재능은 미래의 동량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였지만 살풍대에 의해 아깝게 요절했다.
‘문내가 어수선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