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 무림의 태산북두 (2)
(370/400)
370. 무림의 태산북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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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무림의 태산북두 (2)
2022.07.16.
[무존과 비무를 원한다.]
낡아서 꾀죄죄한 검은 장포를 늘어뜨리고 허리춤에는 낡은 철검 하나를 검집도 없이 척 하고 걸친 채 대문을 두드린 만우가 남궁세가의 대문을 지키는 위사에게 했던 첫 마디였다.
그리고 그 첫 마디는 만우가 남궁세가의 무인들을 볏짚 눕히듯 모조리 눕히고 난 다음에 대전 안까지 들어와서도 변하지 않았다.
[무존과 비무를 원한다.]
무림십좌 중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검주 만우의 비무장.
통상의 비무장과는 다르게 약조도 없이 그저 밀고 들어온 것뿐이지만 만우는 그 남궁세가 전체의 적의를 받아내면서도 눈썹 하나 꿈적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그대를 이리 무모하게 만드는가.]
그때 마침 세가에 있었던 무존 남궁무는 더 이상의 의미 없는 희생을 막기 위해 만우의 비무에 응했다.
남궁세가의 연무장에 서로 마주 보고 섰을 때, 남궁무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만우에게 물었다.
무림십좌라고 무림인들에게 불릴 정도라면 이미 그보다 더 큰 명예를 얻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또한 검주가 비무를 하고 싶다고 해도 잃을 것이 많은 자들은 절대로 응하지 않을 것이다.
천마신교의 일패 혈세천마가 그러하였듯이.
남궁세가 내에서도 남궁무에게 검주에게 응대하지 말라고 했던 이들이 꽤 있었다. 어차피 무림십좌의 일인인 만우는 지더라도 잃을 것이 없는 반면, 다른 무림십좌들은 잃을 것이 매우 많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무모?]
휘릭!
만우는 낡은 철검으로 원을 그려 보인 뒤 검을 어깨에 척 걸치면서 남궁무를 쳐다봤다. 남궁무를 쳐다보는 만우가 오히려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본주는 그저 검으로 무(武)를 논하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다. 검이란 본주의 장난감에 불과하거늘, 너희들이야말로 이 검에 너무 많은 것을 걸고자 하는 것은 아니야?]
[뭐?]
[즐기자고. 승패가 뭐가 중요해. 검을 들면 두근거리고 신나지 않아?]
파앗!
만우의 검 끝에서 흙먼지가 훅 하고 피어올랐다. 그 순간 남궁무는 자신이 아주 중요한 것을, 오랜 시간 동안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다.
검.
둘도 없는 친우라 생각했던 그 검을 어느 순간부턴가 남궁무 자신은 무겁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쿨럭!
그와 함께 남궁무의 입에서 붉디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런 남궁무를 보면서 만우는 눈썹을 역팔자로 휘었다.
[뭐야?]
[검주…….]
심마(心魔)가 찾아온 것이다. 검주의 해맑은 모습을 보면서 무존은 자신의 약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남궁무의 심마로 이어졌다.
*****
검주와의 만남은 무존 남궁무에게 심마를 안겨 주었다. 그 심마는 무존을 갉아먹었으나 동시에 깨달음도 함께 주었다.
무(武) 자체를 즐기던 만우의 그 해맑은 모습이 남궁무에게 결과적으로 심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궁무에게 있어 검주는 스승이다.
동시에 검주 앞에 섰던 자신이 얼마나 볼품없었는지도 남궁무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인이 졌습니다. 검도 들어 보지 못하고.”
“허어?”
주고후의 눈에 서린 이채가 더욱 강해졌다. 무존은 그런 주고후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허나 그 자는 전하께서 가까이 하기에는 어려운 자이옵니다.”
“내가 가까이 하기에는 어렵다?”
“예.”
검주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성격이 과연 한왕 주고후의 앞이라고 해서 달라질까?
만약 검주가 그리 유연한 성격이라면 중원을 유람하면서도 그런 문제를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검주는 그러지 못하였고, 숱한 은원 관계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원(怨)은 검주의 단호한 손속 아래 아예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런 검주를 보고 고지식한 몇몇 정파인들은 정사 중간이나 사파라고 하면서 손가락질을 했지만 검주는 그런 세간의 평 따위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러다 훌쩍 조선으로 떠나 버렸다는 풍문이 맴돌았다가 불현듯 다시 무림으로 돌아와 천하제일인에 무림왕이란 소리를 듣고 있었다.
‘바람 같은 자로다.’
검주는 바람 같다는 것 외에는 그의 기질을 딱히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방법이 없었다. 남궁무는 용정차의 그윽한 차향을 음미하면서 주고후를 쳐다봤다.
“저 같은 무뢰배에게 이리 대해 주시는 전하의 배포가 하늘과 땅을 담을 만큼 방대하다는 것은 인정하나.”
그 어떠한 것도 바람을 담지는 못 한다. 그릇에는 물이나 음식이 담기는 것이지 바람이 담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자는 한 곳에 머무를 줄 모르는 바람이옵니다. 폭풍 같은 자이니, 자칫 전하께서 휘말리셔서 고초를 겪지 않으실까 걱정 되옵니다.”
“폭풍 같은 자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자란 말이오?”
“보셔서 아시지 않습니까.”
검주에 대한 온갖 풍문들이 천하를 진동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고후까지 검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고.
“그랬군. 그랬어. 하하핫! 폭풍 같은 자라. 그 폭풍이 명을 다 덮고 있으니, 본왕이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주고후는 남궁무의 말을 듣고서는 오히려 검주를 만나기로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오히려 남궁무의 조언이 그에게 명분이 돼 버린 것이다.
허나 남궁무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남궁무는 두 눈을 반짝이는 주고후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내 갑니다. 근질거려 도저히 있을 수가 없으니. 검주와 무한을 거쳐 간다면 다시 그대를 청하겠소.”
“예. 전하.”
자리에서 일어난 남궁무가 깊게 읍했다. 남궁무는 한왕을 태운 마차가 빠르게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도도한 물결이 흐르는 정자 아래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바람이 오는가.”
*****
스님이, 그것도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게 생긴 스님이 말 대신 마차를 끄는 모습은 저자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도 그럴 것이 개봉은 숭산이 위치한 등평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 소림이 가지는 무게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아니…….”
“저, 저.”
개중에는 그런 불존의 모습을 보면서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불존의 얼굴 위에 떠오른 득도하여 달관한 표정 때문에 다가와 시비를 걸며 왈가왈부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로 불존이 득도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고생하시오.”
“…….”
멀리서 보는 다른 사람들은 못 봤지만 바로 옆에서 마차를 끄는 황보경은 불존의 눈가가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 불존은 필사적으로 연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지금 마차를 끄는 것 역시 수행의 일환이며 자신은 득도를 위해 정진하고 있는 고승이라는 연기를 말이다.
‘아미타불.’
불존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연기를 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가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그 죄는 전부 불존이 뒤집어쓸 것이기 때문이다.
만우의 더러운 성질을 받아 낸다?
그럴 바에는 진짜로 득도를 하여 승천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독한 자!’
내세가 있다면 두 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지독한 놈이 바로 만우다. 불존과 황보경이 둘 다 화경의 고수였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마차를 끌 때 사람들을 피해야 하고, 승차감을 위해 부드럽게 끌어야 하며 빠르기까지 만우가 요구했으니 말이다.
허나 그 모두는 살고자 하는 황보경과 불존의 본능에 의해 놀랍게도 황보세가의 천왕태보(天王太步)와 소림사의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이 각기 성취가 오를 정도의 강행군이었다.
그 덕분에 각자 서로 다른 경신법임에도 불구하고 황보경과 불존은 거의 같은 유파에서 배운 것처럼 경신법을 칼각으로 딱딱 맞춰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덜컹.
“야. 땡중.”
불존이 흠칫했다. 마치 만우에게 욕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마차 안에서 만우가 불존을 불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만우에게 그런 재주는 없었다.
“예, 전하.”
“개봉시는 자주 와 봤지?”
“그렇사옵니다, 전하.”
불존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소림사의 승려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개봉이다. 그러니 불존이 이곳에 여러 번 와 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잘 됐네. 근사한 객잔으로 가자고.”
“객…… 잔 말씀이십니까?”
“왜.”
“저…….”
불존이 만우의 눈치를 살피면서 우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소림사의 승려들은 객잔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술과 여자, 그리고 고기를 파는 객잔에 굳이 승려가 가서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소림사의 승려들은 개봉에 오면 개봉에 있는 사원에 가서 그곳에 짐을 풀곤 했다.
“에잉. 쓸모없는 놈.”
“대장. 석가장으로는 안 가십니까?”
“됐어. 그 장사꾼한테 계속해서 뭐 받아먹다가는 탈나.”
이미 석가장이 만우에게 베푼 호의는 뼛속까지 장사치인 그들 기준을 한참이나 넘었다. 그런 호의를 계속해서 받아먹는 것은 결국 나중에 찜찜함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그런데 그때 만우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듯 좁은 마차의 창문 틈으로 팔을 쑥 내밀어서는 앞을 가리켰다.
“무당 애들이다.”
“무…… 무당.”
“끄응.”
청송 무늬가 새겨진 검갑을 가지고 다니는 문파는 전 무림을 뒤져 봐도 딱 한 곳뿐이다.
무당파.
그들은 소림사와 함께 정파를 이끌어 나가는 정파의 중심축으로 시조인 장삼봉은 소림의 달마대사와 비교가 되기도 한다.
무당파는 호북성에 있는 무당산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웬일로 무당파의 도인들이 하남성 개봉에까지 나온 것이다.
특히나 무당파라는 소리에 안색이 허여멀겋게 변한 것은 바로 황보경과 불존이다. 황보경은 누가 보더라도 근골과 체격 자체가 황보세가의 핏줄이란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고 불존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무당파의 도인들이 무림십좌 중 일인인 불존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 것이다.
“무당파. 검이 제법 매서웠지.”
만우의 눈이 과거를 짚었다. 만우는 기천을 익히고 무림 유람 이년 차에 검공으로 유명한 무당파를 찾아가 그곳의 일대제자인 무당일검(武當一劍) 진해진인을 꺾었다.
그 후로 고작해야 오 년 정도 흘렀지만 만우는 그게 마치 10년 전에 일어난 일인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황보경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입 밖으로는 내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욕을 했다. 입 밖으로 욕을 하지 못하니 속으로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휙!
하지만 그런 황보경의 불온한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만우가 고개를 휙 하고 돌려서는 황보경을 쳐다봤다.
움찔.
만우의 시선에 황보경이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뭐야. 욕했냐?”
“아니오.”
“에이. 한 것 같은데?”
“안 했소.”
황보경은 식은땀이 등골을 흘러내리는 것 같았지만 애써 부정했다. 그는 불존의 도움을 이제는 바라지 않았다.
소림승 중에서도 과격하다 알려졌던 불존이지만 압도적 강자인 만우 앞에서는 득도한 승려처럼 연기를 할 때부터 알아본 것이다.
불존은 대놓고 약은 구석이 있었다.
“됐고. 너, 북진무사라고 했지?”
“그렇소.”
황보경이 어깨를 쭉 폈다. 무림세가 출신으로 명망 있는 무가의 자제들을 따돌리고 금의위의 실질적인 지휘자인 남북진 무사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황보경은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어려서부터 삼형제 중 가장 천재 소리를 듣고 자라 유일하게 화경에 오른 고수이기도 했으니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어깨 힘 안 풀어?”
하지만 그것도 천하제일인이자 무림왕으로 봉해진 만우 앞에서는 번데기 앞에 주름 잡기다. 황보경이 한 대 맞을 새라 얼른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면 무림에 대해서 달달 꿰고 있겠네.”
“……무슨 말씀이시오? 난 그저 일개 무사…….”
“개소리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