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7. 무림왕이 나가신다 (3) (367/400)


367. 무림왕이 나가신다 (3)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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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전하.”

만우는 하루를 꼬박 걸려 석가장에 도착했지만 석가장 앞에 나와 공손히 절을 올리는 석가장의 장주, 석소군을 보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썹을 푸들거렸다.

그런 석소군의 모습에 오히려 놀란 것은 만우를 제외한 나머지 사행단의 사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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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게.”

특히 설미수와 동군영은 석소군의 공손한 태도와 ‘전하’라는 호칭에 만우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만우는 그 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는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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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자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겁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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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과 전각을 거느린 저 대상(大商)이 말인가?”

양반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이 조선이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하여 금력(金力)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모름지기 나라를 운영하고, 백성들을 다스리고 병사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도 전부 재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미수가 듣기로 석가장이라는 곳은 이 중원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금력을 쥐고 있는 곳이라고 들었다. 한데 그 석가장의 장주가 저리도 공손하게 만우를 맞이하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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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께 무엇을 받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은공. 혹시 그것이…….”

설미수가 말끝을 흐렸다. 설미수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상상이 터무니없다 느꼈지만 석소군의 태도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기에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그런 설미수와 동군영의 상상에 석소군의 목소리가 쐐기를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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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왕 전하를 이리 모시게 된 것은 본 장의 흥복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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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만우는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탁 하고 덮었다. 생각해 보니 중원의 금을 손에 쥐고 좌지우지하는 석가장에서 이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방매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지라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던 데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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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무림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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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옵니까, 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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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헛헛헛!!!! 역시 난 놈이였어. 사영이를 저놈에게…….”

동군영은 놀라 까무러칠 것 같은 반응을 보였고 설미수는 순수하게 경악을 했다. 척일은 그런 만우를 보고 역시 범상치 않은 놈이었다면서 아직도 중매의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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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할.”

석가장의 귀에 소문이 들어갔으면 이 소식이 중원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다. 미리 진작에 만우가 막았다면 모를까 아마 이미 손 쓸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제 아무리 만우가 천하제일인이라고 해도 이미 쏟아진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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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크게 벌여 놓았어.”

만우는 정말로 왕을 영접하는 것처럼 웅장한 초대 인파에 석소군에게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석소군은 고개를 들어 만우를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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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의 명성에 기대고 싶은 것인가? 그 석가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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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옵니다, 전하. 그저 무림은 사해가 동도라하니, 서로 돕고자 하였나이다.”

석소군은 말투조차도 극존칭으로 바뀌었다. 만우는 그런 석소군의 모습이 괜스레 얄미워 욱한 성격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일단은 참았다.

상대는 중원의 황금왕이다.

괜히 사람들이 다 보는 이 자리에서 주먹다짐을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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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가 왜?’

그렇게 스스로를 다스리려던 만우의 머릿속에서 마구니가 고개를 든 듯 반발심이 불쑥 생겨났다.

황금왕.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물론 황금으로는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무림인이 무공으로 천하제일인이 되는 것과 상인이 황금으로 황금왕이 되는 것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스윽.

만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렇게 석가장에서 떠들썩하게 만우를 맞이하였다는 것은 지금 이곳에도 도사리고 있는 수많은 눈들이 열심히 정보를 퍼 나를 것이 분명하다.

아마 오늘이 지나기 전에 만우의 무림왕 소식은 전 중원에 퍼질 것이다.

무림왕.

천하제일인보다 훨씬 더 광오하고 정, 사, 마를 가리지 않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만 같은 그 왕작에 중원은 과연 어떠한 반응을 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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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를 석가장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만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공기가 달라졌음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석소군의 호위무사인 적포쌍검 온소다.

스윽.

온소는 등 뒤로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석가장주의 수신호위답게 적포자락을 펄럭이면서 언제든 출수할 수 있게 검병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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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을까?’

하지만 검병에 손을 올리고, 적이란 것을 상정하고 검주를 보니 틈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는 여기저기 빈틈인 것 같아 보였지만 온소는 느낄 수 있었다.

빈틈인 듯 보이는 저 허술한 모습이 실은 덤벼드는 이를 잡아먹기 위한 함정이란 것을.

자연체(自然體).

자신으로서는 아직 넘보기도 힘든 자연체를 한 만우에게 검을 출수했을 때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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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것을 원하신다면 기꺼이 그리 맞춰 드리지요. 허나 전하. 이는 일개 장사치가 왕작을 받으신 전하를 맞이하는 데 있어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옵니다.”

석소군은 만우의 심경을 꿰뚫고 있다는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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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는 곧 조선으로 돌아가신다 하나 만약 전하께 대접이 소홀했다 하여 그 뒤의 일은 어찌 저희 보고 감당하라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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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소군의 말에 만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조선으로 돌아가고 난 다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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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게 전부 천자의 잘못이라는 말이렸다?”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황제가 자신에게 무림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왕작을 내리지 않았으면 되는 일이다. 만우의 말이 그렇게 튀자 석소군은 고개를 퍼뜩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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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저 아이들도 많이 불편하고 힘들 것이옵니다.”

석소군은 바로 그 자리에서 대답하는 대신 만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석가장의 식솔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실권이 없는 왕작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무림왕의 행차에 석가장의 모든 식솔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을 보며 얼굴을 찌푸린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팔자에도 없는 왕 행세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것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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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빚은 내 황제에게 톡톡히 받아 내야 되겠어.”

자신이 자미원에서 들고 나온 수많은 진귀한 것들이나 황제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만우였다.

어쨌거나 그렇게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놀라게 한 만우는 석소군의 뒤를 따라 석가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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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단 분들은 저를 따라오시지요.”

동군영과 설미수도 따라 들어가려는데 그들의 앞을 석미도가 가로막았다. 설미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동군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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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은공께서 무림왕 전하이시면…… 앞으로 조선에 가면 어찌 될지 걱정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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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처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동군영 역시 표정이 심각함으로 물들었다.

*****

석가장에서는 왕작을 받은 무림왕 검주를 위해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전에는 강호무림에서, 무림인들 정도가 참여하는 연회였다면 이번에는 인근의 관아의 관리들이나 귀족들까지 석가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무림왕.

그것도 사사로이 강호무림의 무뢰배들끼리 왕이나 뭐니 붙인 것이 아니라 대명의 천자가 직접 봉한 무림왕.

그 무림왕이란 작위 하나가 가지는 힘은 어마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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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에서 나는 질 좋은 철로 만든 검이온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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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축국에서 넘어온 비단으로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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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에 그리 좋다는 수달의 고환으로 만든…….”

석가장에서는 놀랍게도 몰려든 수천 명의 사람들을 거뜬히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의 연회를 벌렸다.

그렇다는 말은 진작부터 일이 이리 될 줄 예상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쳐도 이 정도 규모의 초대형 연회를 불과 며칠 만에 준비했다는 것 자체가 석가장과 그 상단의 위력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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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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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작 그 연회의 주인공인 만우는 뚱한 표정으로 가장 상석에 앉아만 있을 뿐, 앞에 점점 쌓여 가는 선물이란 이름의 뇌물들에도 단 한 번도 웃는 표정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래도 석가장에서 연 연회 자체가 워낙 화려하고 먹을 것도, 볼 것도 즐길 것도 많았기 때문에 흥겹게 분위기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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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전하를 모시는 것이 상책이었어.’

석소군은 그런 연회를 둘러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 인해 석가장이 얻은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무림왕 검주를 직접 초빙하여 이런 연회를 엶으로 인해 검주와의 유대 관계를 전 중원과 강호무림에 보여 준 것이다.

석가장의 뒤에 무림왕이 있다!

이는 석가장이란 이름에도 석가장을 황금 도깨비 정도로 여겼던 조정의 몇몇 대신들이나 무림의 방파들에게 앞으로 석가장을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억제력을 발휘할 것이다.

또한 그 콧대 높은 지방의 토호들이나 귀족들, 관아의 관리들이 제 발로 먼저 석가장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석가장의 황금은 황실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지만 그래도 일개 상인이라고 은근히 무시당하는 일이 허다했다.

정작 돈이 필요할 때는 찾아와 손을 벌리면서도 콧대 높았던 그 귀족들이나 관리들이 이렇게 먼저 찾아와 만우 앞에 고개를 숙였으니 앞으로는 저들도 석가장이나 무림을 더 이상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천자가 직접 내린 무림왕이라는 것은 비록 이름뿐이기는 해도 듣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오해를 자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을 다스리는 왕.

그렇다는 것은 이제 강호무림 역시 천자가 인정한 엄연한 대명의 일부분이라는 뜻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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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께서도 그것을 노리셨으니.’

석소군은 황제의 의중까지 읽어 냈다. 황제가 명나라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인 강호무림을 별로 탐탁지 않아 했다는 것을 석소군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천자는 중원의 모든 것을 손에 쥐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강호무림이란 곳이 감히 불가침 조약을 들먹이며 중원 안에 있음에도 자신들은 별개라 주장하니 그것이 천자의 눈에 곱게 보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무림왕을 황명으로 봉했다.

그렇다는 것은 강호무림 역시 황명이 닿는 대명의 일부분이고 무림인들 역시 전부 황제의 신민들이니 천자는 강호무림에 대한 자신의 야욕을 슬쩍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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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무림이 받아들인다면 그것 자체로도 좋은 일이고, 반발하면 무림을 토벌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니 그 나름대로 좋은 것이고.’

석소군은 그 순간 짙은 황금의 냄새를 맡았다.

어떠한 쪽이건 간에 대상단을 운영하는 석소군에게는 다 이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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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석소군이 계속해서 뚱한 표정으로 앉아 있기만 하는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석소군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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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면, 본주가 기뻐해야 한다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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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저들 모두 전하를 뵈러 온 자들이옵니다. 전하께서 이제 일개 무부가 아니라 저들이 먼저 와서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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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장주.”

만우는 그런 석소군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 만우의 두 눈에서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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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의 검 앞에 왕이나 천자니 하는 것 따위가 걸림돌이 되리라 보는가?”

석소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석소군이 곧바로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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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허나 저들은 무림인이 아닌 관리들과 귀족들이니, 전하께서 쌓으신 무(武)보다는 불리는 이름을 더 귀하게 여기는 이들이 아니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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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관 안 해. 어차피 본주는 제갈세가를 들렸다 남경에 들린 뒤 조선으로 갈 생각이니.”

만우는 별 관심이 없었다. 무림에서 떵떵거리며 살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에 어딘가에 적을 두고 머물렀을 것이다.

허나 만우는 그러지 않았다. 만우는 언제나 이곳에서는 이방인이었고 떠날 준비를 한 채로 유람을 한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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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본부를 보고 오해한 것은 너희 중원인들이지 본주가 아니다. 가만히 있는 본주를 늘 소용돌이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은 너희 중원인들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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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소군은 만우의 말에 백 번 공감했다. 하지만 그것은 힘을 가진 자가 벗어날 수 없는 일종의 역설이다.

힘을 가졌으니 그 주변으로 혼란이 모여들고, 그 혼란을 힘으로 없애고 나면 또 다른 혼란이 찾아오는 그런 모순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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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볼 필요 없다. 본주도 알고 있으니까. 단지 이런 번잡함이 싫을 뿐.”

그냥 가만히 있어도 만우에게는 힘이 있기에 문제가 알아서 찾아온다. 한데 굳이 손수 번잡함을 만들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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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은 처음이니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하니 석가장주는.”

그래도 만우가 지금 자리에서 깽판을 치지 않은 것은 설미수를 비롯한 사행단들이 이 연회 자리를 제법 즐기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간 만우 자신 때문에 조선부터 연경까지 한시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강행군을 해 왔던 그들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다음부터는 아니다.

주변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든 이 자리는 그 방구 냄새로 악취가 진동을 해서 금방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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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가 가는 앞길에 널리 알려. 괜히 번거롭게 했다가.”

만우가 눈을 가늘게 좁혀 뜬 채로 히죽 웃었다. 석소군은 그런 만우의 미소를 보고는 차가운 물방울이 어깨에 떨어진 것만 같은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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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 몸이 자미원에서 멀쩡히 걸어 나왔는지를 친히 보여 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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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전하.”

석소군은 왠지 만우가 나아가는 길에서 폭풍이 일 것 같은 예감을 받으며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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