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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사고 치다 (4) (356/400)


356. 사고 치다 (4)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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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이 검주를 가만히 놔두었다는 것은, 검주천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

개국공신이란 것도 결국 삼대까지만이다. 지금의 황제가 바로 딱 그 삼대이니 이 무림이 검주를 중심으로 질서가 개편될지도 모른다.

황실의 비호를 받는 정파와 무림맹이 그렇게 무림을 무림맹 천하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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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딴 놈들로 용접곡에서 습격을 해? 차라리 정정당당하게 한 판 붙자고 서신을 보내던가.”

만우는 여전히 용접곡에서의 그 일이 못마땅했다. 결국 그 용접곡에서의 일도 자신을 합공 한다는 소문을 무림에 내지 않기 위해 저놈들이 머리를 굴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겨우 그런 놈들로, 무려 검주인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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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단을 전부 끌고 왔어도 모자를 판에.”

만우는 그런 천혜대사를 보면서 으르렁거렸다. 그래서 거기서 열이 뻗쳐 열심히 머리를 굴린 제갈세가의 놈들을 모조리 족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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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 소승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저 두 시주를 말리기 위함이었소.”

천혜대사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가사의 자락으로 닦아 내면서 만우에게 말했다. 천혜대사는 이미 만우에게 패배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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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불존 그놈도 말리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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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소림에는 없소. 아미타불.”

불존은 결국 또 다시 차가운 바닥에 누운 채 무림맹의 무사들에 의해 무림맹의 의약전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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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속에 자비를 두셔서 감사드리오. 아미타불.”

그런 불존을 쓰러뜨린 것이 바로 눈앞의 만우지만, 천혜대사는 감사하다며 그런 만우에게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불존이 죽지 않았으니까.

불존이 죽었더라면 아마 소림에서는 불존의 복수를 천명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아마 만우와 소림, 더 나아가서 정파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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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을 죽였다면 소림 땡중들의 모가지를 다 날릴 수 있었을 텐데. 그리 할 걸 그랬나.”

만우는 오른 손의 엄지와 검지를 비비면서 살벌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만우의 말에 광오하거나 무례하다 소리칠 배짱이 천혜대사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만우라면 그러고도 충분히 남을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을 이미 용접곡에서 익히 경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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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주가 저리 위축되다니.’

석소군은 그런 천혜대사를 보면서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무림맹은 석가장의 가장 큰 손님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무림맹 안에 정파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 각 지방의 크고 작은 수백, 수천 개의 문파들까지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장에서는 무림맹이 신경 쓰는 큰 고객 중 하나였는데, 협상 자리에 늘 자리하는 천혜대사는 그 속을 내보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불심으로 단단히 무장한 부동심과 소림이라는 부담스런 배경 때문에 석가장의 노련한 상인들도 가장 어려워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천혜대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천혜대사가, 지금 석소군의 눈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저건 위축된 정도가 아니라 마음 자체가 검주 앞에서 완벽하게 굴복한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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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맹주를 굴복시킬 수 있다니. 역시…… 답은 무(武)인가.’

석소군은 탁자 아래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검주의 압도적인 무(武)가 무림맹의 맹주를 완벽하게 굴복시킨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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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무림맹과 관련된 놈들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까지는 검인이랑 소령이 때문에 참았는데…….”

만우는 이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손이 근질근질 거려서 참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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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 때문에 산 줄 알아. 아, 팽가는 팽대수 때문에 산 줄 알고 있고.”

정파에서 계속해서 수작질을 부렸음에도 만우가 제갈세가만을 날려 버리고 참은 이유는 전부 화산파 때문이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 유일하게 만우를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었고, 강호무림에서 유일하게 친우라 부를 수 있는 검인과 소령의 존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정, 사, 마.

그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만우가 정파에는 손속에 여유를 둔 것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드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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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거지.”

그렇게 무림맹의 인사들에게 축객령을 내린 만우는 만타개를 보고는 손을 들어올렸다. 거지이지만 ‘거지’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만타개였지만 만우 앞에서는 감히 그런 불만을 품을 수 없었다.

무왕 천혜대사, 무림맹주를 비롯하여 같은 무림십좌 중 일인인 불존을 가지고 논 천하제일인이 그리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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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문에도 부탁해 놨는데, 얘네들이 느리네. 조선에서 온 공녀를 찾고 있는데.”

만우는 하오문에게 찾아 달라고 한 것을 개방에도 부탁하기로 했다. 갑자기 웬 공녀를 찾아 달라는 말에 만타개의 눈에 의문이 깃들었지만 만우는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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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었지. 그럼 가…… 지 말고.”

만우는 마지막으로 만타개, 아니 그 뒤의 맹주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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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세가 애들한테 말해. 한 번 찾아오라고. 물론 걔들이 잡아 쳐 넣은 무화 그 계집애 털끝 하나 다치지 않게 데려오라고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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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오문주의 여식을 말하는 것입니까? 아미타불.”

천안각에 침입자가 들었다가 기관진식에 당해 잡혔다는 소리는 맹주도 들어 알고 있었다. 무려 천안각을 노린 그 간 큰 도둑이 하오문주의 여식이자 무림오화의 일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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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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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은 무림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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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림맹과 하오문의 일로 만들고 싶다고?”

만우가 비릿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것을 본 맹주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 건드렸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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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가 하오문 명예 호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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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택평의 간절한 부탁으로 나서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만우는 허울이나마 하오문의 명예 호법이다. 물론 그건 하오문에서 만우 보고 제발 봐 달라면서 언제든지 하오문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선물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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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

만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맹주와 만타개를 보면서 선택을 종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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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세가야, 무림맹이야?”

만우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본 맹주와 만타개는 순간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우의 말에 깔린 저의가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갈세가에 한해서 이번 원한을 국한할 것이냐, 아니면 제갈세가를 보호하기 위해 무림맹 전체로 키울 것이냐.

만우가 하오문의 명예 호법이라면 제갈세가에서 임수미를 구금한 것에 대해 얼마든지 따지고 들 수 있는 명분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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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세가냐, 천안각이냐.”

임수미가 잡힌 이유가 천안각을 들어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에 갇혔기 때문인지를 명확하게 밝히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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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알아서 결정들 내려. 응?”

매몰차게 만타개와 맹주에게 축객령을 내린 만우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만타개는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천혜대사의 뒤를 따라 황룡객잔을 나갔다.

이제 황룡객잔에 남게 된 것은 석가장뿐이다.

석소군은 옷매무새를 바로 하면서 자세를 다잡았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이립도 되지 않은 청년이 아니라 강호무림을 주름 잡은 절대자, 천하제일인 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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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

검 공부를 그렇게 지겹도록 한 무림의 고수들도 겉으로 보이는 만우의 외형만을 보고 판단했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된 것이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못했기에, 그들이 겪은 수모는 결국 그들이 스스로 자초한 방심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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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석가장주시라고.”

만우는 눈에 익은 석미도와 야율태를 보고서는 석소군을 쳐다봤다. 석소군은 그런 만우를 향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포권을 취하며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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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사드립니다, 검주. 석가장의 장주인 석소군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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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일어날 필요까지야.”

만우가 강호무림의 정점인 천하제일인이라면 석소군은 중원 상계의 정점인 석가장의 주인이다. 그런 석소군이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로 무안하게 나오는 것에 만우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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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무인들과는 다른, 상인이다?’

만우는 석소군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석소군은 일어난 자리에 다시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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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석가장이라면 본주도 숱하게 이름을 들어온 대상단 여럿을 거느리고 있는 상계의 거물이라 알고 있소만.”

천하제일상단인 석가상단과 삼천 표사를 보유한 인해표국을 거느린 석가장이다. 그 뿐만 아니라 석가장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들은 자체적으로 십만 백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석가상단에서는 일 년 동안 황금 몇 십만 관을 벌어들인다. 석가상단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비단 천하제일상단으로서 명나라 안에서만의 상권이 아니라 세외의 상권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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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석가상단의 영향력은 중원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크기.’

원나라가 멸망한 후에 명나라가 건국되고, 지금의 황제가 황권을 손에 쥐면서 상단들의 세외무역을 금하고 그것을 나라의 이름으로만 허락케 했다.

하지만 어디 황실에서 시킨다 하여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이권을 쉽게 포기하겠는가?

석가장에서는 그런 황실의 입김을 피하고, 아예 황실로부터 책잡힐 위험도 삭초제근을 위해 일찍이 세외에 진출시켜 놓은 석가상단의 상단들의 이름을 바꾸고 황금을 풀어 그곳의 군소상단들을 사들였다.

그래서 그 세외 상단의 이름을 단 상단이 무역을 위해 명나라의 문을 두드리는 식으로 황실의 법도를 어기지 않으면서도 제 이익은 다 챙길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비해서는 황실에 떼어 줘야 하는 양이 조금 더 많아졌지만, 석가장에서는 그 몇 푼을 아끼기 위해 황실의 눈 밖에 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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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도착은 한 발 늦었으나, 그것은 검주의 무(武)가 하늘에 닿았기 때문이지요. 경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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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하라. 황제로부터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한 경하요?”

만우는 석소군을 공대했다. 정확히 말하면 반공대긴 하지만 축객령을 받고 쫓겨나간 무림맹의 인사들보다는 하늘과 땅 차이의 대접을 받는 석소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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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합니다. 황상의 추상같은 명을 받고도 보중하셨으니 경축해야 할 일이지 않습니까.”

석소군은 철저하게 자신의 속내를 숨겼다. 만우는 그런 석소군을 보면서 손가락을 까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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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입에 발린 말을 하시려니 목이 타시겠소. 한 잔들 더 받으시오.”

쪼르륵!

만우가 허공섭물로 석소군과 석미도, 그리고 야율태와 온소의 술잔을 모두 다 자신의 눈앞에 띄웠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아예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지도 않은 채 허공에서 술병을 기울여 그곳에서 흘러나온 술들이 네 갈래로 나뉘어져 술잔을 채워지게끔 만들었다.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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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력으로 따른 술이라고 하여 영약처럼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나, 천하에 이런 술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소이다. 부디 즐기시오.”

다라락!

술잔이 가볍게 탁자 위를 긁으며 네 명의 앞에 부드럽게 놓였다. 석소군은 그 순간 등줄이게 땀이 한 줄기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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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주가 숨긴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 커서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이었구나.’

꽈악.

꿀꺽.

석소군은 만우가 건네준 술잔을 망설이지 않고 들이켰다. 허공섭물로 술잔을 채우기 위해 만우가 공력을 움직인 순간 자신이 보지 못하던 만우의 일부분을 보게 된 석소군은 갈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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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발렸다 하시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석소군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상인이나 무인이나 기본적인 소양은 비슷했다.

부동심, 혹은 적어도 상대방에게 나의 상태를 알리지 않고 숨기는 척이라도 하는 것.

그랬기에 석소군은 자신이 받은 충격을 드러내지 않고 재빨리 화제를 바꿔 그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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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석가장은 검주 대협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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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주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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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과 무림맹을 말리기 위해 가능한 빨리 연경으로 오고자 하였지만 준비할 것이 많아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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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석가장 없이도 황제와의 일은 잘 마무리가 되었고.”

쪼르륵.

만우는 제 잔을 채워서는 투명한 액체를 단숨에 꿀꺽하고 삼켰다. 그리고서는 호흡을 후 내뱉는 만우의 숨결에 주향이 실려 석소군이 있는 곳까지 밀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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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차려진 밥상 위에 숟가락만 얹은 뒤 앉아 한 술 뜨겠다는 거요?”

만우는 웃는 낯으로 석소군을 보면서 말했다. 석소군은 침착하게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으며 그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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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진 밥상 위에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 한 술 뜨겠냐고 물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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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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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석가장이 대협으로부터 이 일로 인해 직접적으로 얻을 이익이 없을 지언데, 어찌 그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석소군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만우의 말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만우는 그런 석소군을 보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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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본주는 죄인으로 끌려왔던 셈이지, 그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났다하여 밥상이 차려졌다고는 할 수 없지. 장주의 말이 맞소.”

쪼르륵.

만우는 술잔을 다시 채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띄워 석소군에게 날려 보냈다.

두둥실.

술잔이 이번에는 석소군의 손에 정확하게 안착했다. 만우는 그런 석소군을 보면서 눈으로 호선을 그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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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이리 마주 보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소. 석별의 정을 나눌 사이는 아니니, 그게 마지막이요. 마시고 가시오.”

드르륵!

그렇게 말한 만우는 미련이 없다는 듯 의자를 뒤로 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소군은 자신의 손에 들린 술잔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살짝 내쉰 뒤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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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주님.”

그런 석소군을 옆에 앉은 석미도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렸다. 석소군이 황금신공을 익혔다는 것은 온소와 아주 소수밖에 모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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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위에 차려진 것은 없으나 한 손 거들어 차려 보려고 하였는데, 어찌 맛도 안 보시고 일어나려 하십니까.”

달그락.

석소군은 자신이 마신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소맷자락에서 작지만 화려하게 장식이 된 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퐁!

쫄쫄쫄.

얇디얇은 작은 병의 주둥이에서 졸졸거리면서 향긋한 내음을 풍기는 말간 액체가 잔에 차올랐다. 일어났던 만우가 그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며 뒤를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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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차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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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은 대협께서 펴 놓으셨으나, 그 위에 차려진 것이 없으니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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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차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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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봉을 잡아 용봉탕을 끓이라면 못 끓일 것도 없고, 아홉 마리의 범을 잡아 그 위에 보로 까라 하신다면 못 할 것도 없지요. 커다란 곰을 잡아 웅족으로 진미를 맛보게 해드릴 수도 있으니.”

석소군은 그 장황한 말을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쭈욱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만우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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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그 보수는 무엇으로 받으려 하는지.”

만우가 팔짱을 끼고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자 석소군은 침을 한 번 꿀떡하고 삼켰다.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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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께 직접 고언을 드려 사행단이 돌아가는 길에 석가장을 통해 편히 보내드리고자 하오니 되었다 말하시지 않는 것으로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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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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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의 일들은 이번과는 관련이 없음이니, 어찌 미리 말을 하여 흥을 깨겠습니까.”

석소군은 그렇게 말하면서 재차 일어나 포권을 취해 보이며 만우 앞에 읍했다. 만우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석소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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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무엇을 차리는지부터 먼저 보고 차후에 이야기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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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원하시는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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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을 듯한데, 아니오?”

만우가 나지막한 웃음을 흘리면서 등을 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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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사라지셨어!!!”

우당탕탕!!!!

권비가 머무르는 규화각의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그 안에서 권비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하는 환관이 구르듯이 뛰어나오면서 바깥에 경계를 서고 있던 금의위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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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께서, 권비께서…….”

숨이 넘어갈 듯이 꼴깍거리면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는 환관의 모습에 필히 무슨 일이 터졌다는 것을 직감한 금의위가 품에서 나무로 만들어진 호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삐이이익-!!!!

황제나 그에 준하는 황족, 혹은 그에 필적하는 주요 인물의 신상에 변고가 생겼을 때 금의위가 불도록 되어 있는 호각이었다.

그 호각 소리가 피어오르자 잠잠하던 자미원이 끓어오르는 솥 안의 물처럼 갑자기 파악 하고 붉은 물결이 규화각 주변에 집결했다.

이들 모두 기척을 숨긴 채 규화각 주변을 호위하던 금의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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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다!”

금의위를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남과 북의 두 진무사가 지금 중태에 빠져 있었기에 금의위는 머리를 잃은 셈이었으나 그렇다 하여 그들의 군기가 흐트러지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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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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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파바바박!

자미원은 금의위들이 목숨으로 지켜야 하는 황제와 그의 총애를 받는 후궁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그곳에서도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권비의 실종에 금의위들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감히, 자신들이 지키는 자미원에서 권비를 빼낸 침입자가 있다니.

그것은 그들에게 위기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백만 대명군 중 최고 정예들만이 모여 있는 금의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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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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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금의위의 중간 간부인 교위의 목소리에 백여 명이나 되는 금의위들이 우렁찬 소리를 내뱉으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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