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2. 뭐 이리 복잡한 게 많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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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뭐 이리 복잡한 게 많아 (3)
2022.05.14.
무려 황룡과 기린이다.
전설 속에 존재하는 신수(神獸)인 줄로만 알았던 황룡과 기린이 자미원에 떡하니 등장하여 만우를 인정했다.
거기에 만우가 황룡에게 달려들면서 일어났던 천재지변과도 같은 그 모습을 천자는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그리고 만우를 죽이겠다고 창을 꼬나쥐고 달려들었다가 턱을 한대 얻어맞고 나가떨어지기도 했고.
[명심하라. 너희 군림자(君臨者)의 운명을 관장하는 것은 바로 본룡이란 것을.]
천자의 머릿속에 황룡이 남긴 한 마디가 마치 각인처럼 새겨졌다. 그 말인즉슨 만우를 건든다던가, 사행단을 건든다면 주 씨 황조의 운명을 다른 이에게 주겠다는 뜻이다.
그게 무슨 뜻인가.
결국 황조가 바뀐다는 뜻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천하제일 유아독존인 천자라고 할지라도 깨갱할 수밖에 없었다.
더 미칠 노릇은 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 만우라는 자가.”
“마, 만우?”
벌렁벌렁.
만우의 이름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천자는 심장이 방망이질을 치는 것을 느꼈다. 좋은 걸 달여다 줬다면서 아무래도 심장의 건강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약이었던 모양이다.
“그…… 내의원에서 대환단과 만년설삼, 그리고 공청석유를…….”
“…….”
“그리고 조선사행단과 함께 온 야장은 자미원의 대장간을 차지했고…… 음…….”
이게 다 조선사행단의 발걸음을 함부로 붙잡을 수가 없어서 생긴 일이다. 천자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미친 듯이 쓰리기 시작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서 조선사행단을 하루라도 빨리 자미원에서 내보내는 것뿐.
“되었다. 잘 있다면 된 것이겠지. 어딜 가든 막지 말라 단단히 일러 두거라.”
“예이!”
지금까지 그 어떠한 대신들도 조선사행단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감히 황제가 기거하는 자미원에서 어디든 갈 수 있는 통행의 자유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화는 그게 황명으로 내려왔으니 결국 이 역시도 황상의 변덕이라 생각한 채 총총걸음으로 물러났다.
후다닥!!
“태감. 태감!”
그런데 그때 환관 중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서는 정화의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황제의 규방 문제를 전담하는 경사방(敬事房) 소속의 환관이었는데, 그 환관의 보고에 정화의 얼굴에 허옇게 변했다.
“무, 무엇이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검주를 어떻게 하면 하루라도 빨리 자미원에서 쫓아낼까 고민하고 있던 천자의 고개가 돌아갔다.
조선에서 사행단을 통해 보낸 조공품을 확인하고 이제 명에서는 대국이기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하사품을 내려야 하기에 그 명단을 뽑는 것도 머리가 복잡한 와중이었다.
“무슨 일이냐!”
천자가 보면서 소리치자 정화가 머뭇거리다가 그 자리에서 머리를 땅에 처박고 오체투지를 하면서 말했다.
“현인비께서 그 만우라는 자를 내원으로 들이셨다 하옵니다!!!”
“뭐…… 뭣!!!!”
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전 공녀에요.”
“공녀!!?”
내원의 으리으리한 전각으로 안내가 된 만우와 방매는 조선에서 공녀로 뽑혀 명에 오게 되었다는 존귀한 신분의 여인, 현인비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그중에서도 방매의 놀람이 더 컸다.
“원래 전 평범한 농민의 딸이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공녀로 명에 와서 자가라고까지 불리게 되었네요.”
“음…….”
현인비, 혹은 권 씨 성을 가졌다 하여 권비라 불리는 그녀는 방매가 그녀를 뭐라 부를지 몰라 우물거리는 것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편히 말씀하셔도 좋아요. 여러분들도 조선사행단이시고, 저도 오랜만에 동향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을 보고 있던 만우가 툭 내뱉었다.
“뭘 그리 꺼려. 방매, 너도 옹주면서.”
“아, 아니 그건!”
“그것도 상왕, 그 노…… 아니 상왕 전하께서 직접 사성까지 하셨는데.”
만우가 한 말에 권비의 눈이 커졌다. 그러더니 이내 권비가 방매의 손을 덥석 붙잡고는 기뻐하며 말했다.
“어머, 정말요? 그런데 그 귀하신 분이 왜 여기에…….”
“그냥, 그렇게 되기는 했는데 별로 갇혀 사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방매가 권비에게 쩔쩔맸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고서는 피식 웃으며 권비에게 말했다.
“한양에서 난리도 났었습니다. 옹주자가께서 화려하게 등장하시는 바람에.”
그때 만우는 옆에서 팔자에도 없는 삼한제일검 노릇을 했었다. 그러자 방매가 얼굴을 붉히고는 고개를 휙 돌려 만우를 째려봤다.
“아이고 옹주 자가. 죄송합니다요. 미천한 역졸이 귀하신 분을 몰라뵙고.”
만우가 짓궂게 웃으면서 넙죽대는 척을 했다. 그러자 방매가 아예 주먹을 치켜들고는 만우의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휙!
날아오는 주먹을 뻔히 보고도 피하지 못할 만우가 아니다. 얄밉게도 만우가 샥 피해 버리자 방매가 아예 일어서려다가 권비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다시 슬쩍 엉덩이를 붙였다.
“좋아 보이시네요, 두 분.”
권비는 뭔가 부럽다는 눈으로, 쓸쓸한 표정을 한 채 만우와 방매를 보고 있었다. 평범한 농민의 딸로 살던 그녀의 삶이 하루아침에 바뀌면서 그녀는 변변한 동무도 없이 지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덥석.
“어쨌거나 옹주라고 하셨으니 있는 동안만이라도 제 말동무라도 되어 주셔요.”
권비는 행동에 거침이 없었다. 공녀로 명에 온 뒤 아마 처음으로 조선에서 온 사람을 만나보는 듯했다.
거기에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거침없이 시원시원하게 구는 것을 보니 원래 성격 자체가 모나지 않고 둥근 사람인 것 같았다.
“어, 음…….”
손이 덥석 하고 잡힌 방매가 오히려 쩔쩔매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우가 그런 방매를 보면서 웃기만 하자 방매가 야속하다는 듯 만우를 째려봤다.
“어이쿠.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요 옹주 자가. 어찌할깝쇼.”
“너…… 진짜…….”
방매는 다시 고개를 돌려 권비를 쳐다봤다. 무려 황제의 후궁인 권비다. 그 존귀한 신분의 여인이 마치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연고 하나 없는 명에 뚝 하고 떨어져 그동안 지내왔을 것을 생각하니 방매의 마음이 약해졌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요 그래. 그럽시다.”
짝.
“정말요!”
권비가 하얀 이가 다 드러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했다. 방매는 ‘웃으니 되었다.’라는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녀라.’
만우는 좋아하는 권비를 보면서 방매의 기색을 슬쩍 살폈다. 방매는 기뻐하는 권비를 보면서 민망해하다가도 어머니가 생각나는 듯 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오문을 한 번 찾아가 봐야 하나.’
개방보다는 못 하지만 그래도 단서라고는 언제 조선에서 온 공녀라는 것밖에 없는 이상 하오문에 그에 관한 조사를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하지만 방매가 권비를 보면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만우는 하오문이 괘씸해졌다.
‘부탁한지가 언젠데 말이야.’
그렇게 물끄러미 방매를 보고 있던 만우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문 밖에서 낭랑한 환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폐하 납시오!!!!!”
“어맛!”
황제의 도착을 알리는 환관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전각 안에 울려 퍼지자 권비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문이 벌컥 하고 열리더니 아까 밖에서도 봤던, 권비를 수행하는 환관이 다급히 뛰어 들어와서는 말했다.
“자가. 폐하께서 드셨사옵니다.”
“나도 들었어요. 어찌 이 시간에 폐하께서?”
“그건 소신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한데…….”
환관이 권비에게 눈짓을 하며 엉덩이를 붙이고 주저앉아 있는 만우와 방매를 가리켰다. 방매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만우는 나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하아.”
권비는 환관의 눈짓을 알아듣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권비는 비록 황제의 후궁이었지만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신분 자체가 조선의 공녀라는 점에서부터 제대로 된 권리가 주어질 리 없다.
그녀는 꽃이다.
언제든 황제가 찾아오면 예쁘게 피어 있어야 하는 그런 꽃.
명색이야 현인비니, 권비라 불리는 후궁이지만 권비는 조선의 공녀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환관과 궁녀들이 은근히 무시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 하여 그녀가 할 수 있는 것 역시 거의 없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정도로 황제에게 이르기에는 그녀도 저들의 고달픔과 애환을 알기 때문에 그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분께는 제가 나중에 기별을 다시 드릴께요. 폐하께서 오셨으니 서둘러 나가세요. 저 쪽으로 나가시면 된답니다.”
환관의 손짓에 바깥에 서 있던 환관이 하나 더 안으로 들어왔다. 환관은 눈빛으로 만우와 방매에게 축객령을 내리고 있었다.
“아, 그, 그럼 저희는…….”
방매가 일어나면서 만우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황제의 후궁을 만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황제라니. 말로만 딱 들어도 숨이 턱 하니 막히는 것 같은 그 이름, 황제의 등장에 방매는 만우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가자!”
하지만 만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방매는 자신이 잡아끌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 만우를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그러고 있어.”
다른 사람도 아닌 황제가 온단다. 그런데 만우는 마치 옆집 아저씨가 놀러오는 것처럼 나른하기 짝이 없는 표정만을 짓고 있을 뿐, 엉덩이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자니까!!!”
방매가 힘을 잔뜩 주고서는 만우의 옷자락을 잡아당겼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만우는 오히려 손을 내뻗어 방매의 오금을 슬쩍 당겨서는 다시 주저앉혔다.
“괜찮아, 괜찮아.”
“뭐가 괜찮아! 황제폐하라니까, 황제!!!”
괜찮다는 말에 방매가 얼굴이 허옇게 변해서는 만우의 멱살을 붙잡고는 앞뒤로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권비와 환관도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특히나 권비는 혹여나 황제가 외간 남자를 들였다고 하여 진노할까 두려운지 애처로운 눈으로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쇼, 자가. 거기 환관 나으리들도. 폐하께서 절 보시면 아주 반가워하실 겁니다.”
만우가 빙긋 웃으며 권비와 환관들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지만 만우가 그렇게 말한다 하여 그것을 믿을 사람은 그 자리에 한 명도 없었다.
“어서 일어나셔요. 폐하께서 보셨다가 진노하시면 괜히 당신들만…….”
“황제폐하 납시오!!!”
그때 바로 바깥에서 고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별도로 권비의 허락 없이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 자미원 내에서, 아니 명나라 내에서 황제가 가고자 하는 곳에 허락을 받아야 할 곳은 없기 때문이다.
질끈.
권비는 황제의 황금색 곤룡포 자락이 보임과 동시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환관들은 벌써 자리에서 엎어진 지 오래였다.
“만세, 만세, 만만세!!!!”
환관들이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는 두 팔만 들어 올리며 우렁차게 소리쳤다. 만우는 고막을 때리는 그 소리에 눈가를 찡긋했다가 옆의 방매를 보고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해?”
“너, 너도 빨리 무릎 꿇고 고개라도 숙여! 그게 뭐 하는 거야!!”
방매가 얼굴이 하얗게 된 채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환관들을 보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언제부터 이리도 신뢰가 없어졌는지 하는 한탄이 든 것이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방매처럼 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만우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방매와 권비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합니까?”
참고로 만우는 황제가 들어오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오히려 황제를 향해 되바라진 표정으로 되물은 것이다.
권비는 그런 만우의 목소리를 듣자 다리의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또 다시 누군가의 목이 떨어져 나갈 것이라 생각하니 머리가 다 아찔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권비나 다른 환관들이 예상했던 황제의 진노 섞인 목소리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황제는 만우를 보자마자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 호흡 편하게 해 드리는 혈자리 몇 개 아는데. 해 드릴깝쇼?”
만우가 손가락을 허공에 푹푹 찔러 보이며 황제에게 말했다. 황제는 욱 하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다스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되었다.”
황제의 짤막한 한 마디에 좌중에 소리 없는 경악이 터져 나왔다. 환관들은 물론이거니와 권비, 방매까지 경악을 가득 담은 채 황제와 만우를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황제 앞에서 저렇게 굴 수 있는 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나마 일찍 타개한 서 황후나 그녀의 동생이었던 서묘금 정도라면 모를까, 저 철혈의 황제 앞에서 만우처럼 굴고도 그냥 넘어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봤지?”
만우는 당연하다는 듯 방매의 옷자락을 확 하고 잡아당겼다. 그러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던 방매가 엉덩방아를 쿵 하고 찧었다.
“…….”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방매는 비명도 내지르지 못한 채 황제와 만우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현인비.”
“폐하. 오셨어요.”
“그냥 어찌 있는지 궁금하여 왔다.”
황제가 선택한 것은 무시다. 황제는 만우를 무시하고는 권비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권비는 고개를 착 숙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녀는 괜찮습니다. 폐하께선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황좌를 비우셔도 괜찮으신지요.”
“괜찮다. 이 정도 시간을 내는 것은.”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흘깃 시선을 돌려 만우와 방매를 쳐다봤다. 방매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그 방 안에서 유일하게 앉아 있는 것이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만우는 마치 제 안방처럼 편안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황제와 권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환단, 만년설삼, 공청석유.’
그런 만우를 보자 어째서인지 그가 가져갔다는 천금 같은 영약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황제는 가까스로 파르르 떨리는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권비에게 말했다.
“조선에서 온 이들을 만나니 그립더냐?”
권비가 처음 보는 만우와 방매를 이 안까지 끌어들인 연유를 묻는 황제의 말에 멈칫했다. 하지만 설사 그게 진실이라 하여도 권비는 황제 앞에서 진실을 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공녀 출신 후궁의 운명이었다.
“아니옵니다. 소녀가 작은 실수를 하여 그를 만회하고자 저들을 부른 찰나 저들이 조선사행단이란 것을 알았나이다.”
“실수?”
황제가 고개를 갸웃하자 만우가 불쑥 끼어들었다.
“저기, 계시는 자가께서 여기, 우리 자가님께 콩 하고 부딪쳐 엉덩방아를 찧었지 뭡니까.”
“……자가?”
황제가 커진 눈으로 방매를 쳐다봤다. 그러자 방매가 움찔거리며 딴 곳을 쳐다보는 척을 했다.
“사실이냐?”
황제는 설마하니 방매가 자가 소리를 듣는 조선의 존귀한 신분의 여인일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겉으로 보기에 방매는 체구가 작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예, 사실입죠 폐하. 상왕전하께서 친히 사성을 하셔서 수양딸로 들인 옹주 자가십니다.”
만우는 왠지 모르게 얄미운 목소리로 말했다. 황제는 그런 만우의 말을 듣고는 깨달은 것이 있었다.
‘조선의 임금은 알고 있었구나.’
아무리 전대 왕이 수양딸로 들인 자가라고 하지만 어쨌거나 한 번 그렇게 들였으면 방매도 왕족이다.
그런데 그런 방매를 명으로 가는 사행단에 넣어 보냈다?
그것도 조선에서만 사행단이지, 명의 국경을 넘는 순간 죄인을 압송하는 호송단이 되어야 할 그런 사행단에?
만약 조선의 임금이 옹주를 싫어하고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답은 한 가지뿐이다.
조선의 임금은 알고 있었다.
검주 만우의 무위에 대해서, 그것도 아주 깊이 알고 있으니 만우가 동행하는 이상 사행단이 위험에 빠질 위험이 전혀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 이 무림의 잡것들이.’
그리고 그것은 황제로 하여금 분노케 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황제도 검주를 직접 대면하여 그에 대한 편견 없이 검주를 볼 수 있었더라면 아마 조선의 임금과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사람을 보는 눈이란 것은 황제 자신이나 조선의 임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까.
단지 이번 일이 황제의 눈을 가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검주에 대하여 하문한 무림인들이 한결같이 검주에 대해서 깎아내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뭐 그 당시에도 이미 이상한 소문이 천마신교란 종교집단이자 무림세력에 의해 돌고는 있었지만 황제는 천마신교보다는 무림맹을 더 신뢰했다.
아무래도 더 많이 교류하고 있는 무림맹에 더 신뢰가 가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는 일단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권비에게 말했다.
“조선의 옹주라면 권비의 좋은 말동무가 되어 줄 수 있을 터. 권비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줄 수 있다면 짐이 막지 않겠다.”
“저, 정말이어요?”
“그래.”
황제는 그런 권비를 보면서 오늘 처음으로 미미하게나마 웃었다. 권비는 황제로 하여금 참으로 자신이 사모하였던 여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서묘금.
서황후의 동생이자 황제가 여인으로 연모하고 사모하였던 그 서묘금이 조선에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권비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그랬기에 공녀이나 황제의 눈에 들어 후궁까지 오른 것이다.
비록 서묘금은 서황후의 죽음 이후 비로 들이려던 것을 스스로가 거부하고 비구니가 되었기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황제는 이번에 그런 서묘금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권비를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후궁으로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