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 뭐 이리 복잡한 게 많아 (1) 2022.05.07.
“으아----하아아암!”
만우는 열 명이 누워도 넉넉해 보이는 침상 위에서 금보로 둘러진 푹신한 오리털 이불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그런 만우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만우를 비롯한 조선의 사행단 전원이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느라 각자 다른 전각을 하나씩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
“좋네.”
만우는 살짝 열어 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햇살이 들어와 노곤한 것이, 조찬으로 먹은 닭이 한숨 자자며 채근하는 듯했기에 만우의 눈이 끔뻑거리며 느려졌다. 벌컥!!!
“만우!!!”
그런데 그때 딱 잠에 들기 직전인 만우의 꿀잠을 쫓아 버리려고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었던 모양인지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방매가 뛰어 들어왔다. 만우는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아 뭐야! 딱 잠이 올락 말락 했는데.”
“낮잠 자면 저녁에 못 자. 일어나 봐. 응?”
만우는 방매의 채근에 하는 수 없다는 듯 몸을 다시 데구르르 굴려서는 일어났다. 그러자 방매가 품에서 하얀 천에 쌓인 약초 하나를 꺼내들었다.
“이것 좀 봐봐!”
“약재방인가 어디 다녀온다면서.”
“명색이 자미원인데 약재방이 뭐냐! 조 씨 할아범이 있는 안국방도 아니고!”
만우는 관심 없다는 듯 귓구멍을 후비적거렸다. 바로 어제 그런 큰 일이 있었음에도 방매는 마치 기억을 잃기라도 한 것처럼 진귀한 약초를 공짜로 받아왔다는 것에 기뻐하며 좋아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기억을 지웠으니까.’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당연히 방매는 어제의 일을 기억할 수 없었다. 황룡과 기린이 일을 다 망쳐 놨다는 만우의 말에 자신들의 힘을 써서는 사람들의 기억을 덮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의 기억을 전부 다 덮은 것은 아니었다. 제 아무리 신수인 황룡과 기린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기억을 만지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황룡과 기린이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나 ‘기억을 잃은’ 사람에만 한했다. 척사영, 척일, 주순, 황보윤 그리고 황제. 영물인 호선을 제외하면 인간들 중에는 만우를 제외한 이 다섯만이 어제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야! 너 내 말 듣고 있어?”
딴 생각을 하고 있던 만우의 귀가 번쩍하고 뜨였다. 고개를 돌리자 심통 난 표정의 방매가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매의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것은 맞았기 때문에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뭐라고?”
“됐어. 너한테 말 안 해.”
그러자 방매가 삐친 것인지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하지만 안 들어도 훤했다. 저 재물에 미친 돈귀신은 지식의 교류라는 목적 하에 황궁의 약 창고를 쳐들어가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녔을 것이다. 약재에 대해 어의만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안국방에서 자란 몸인 데다가 돈 냄새를 맡는 감각은 만우를 초월하였기에 어련히 알아서 돈 되는 것으로 잘 골라 왔을 것이다.
“그럼 말든가.”
만우가 피식 웃으면서 다시 벌러덩 드러눕자 흘겨보던 방매가 은근슬쩍 만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엉덩이를 붙이고 침상에 걸터앉으면서 만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왜?”
“만년설삼(萬年雪蔘)이란 거, 비싼 거야?”
만우의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 [조선의 사.행.단이 황궁을 돌아다니는데 있어 그 어떠한 곳일지라도 막지 말라. 황명이니라.] 황제의 이름으로 황명이 반포되었기 때문에 자미원에서는 모든 곳을 사행단에게 깔끔하게 개방했다. 대체 무슨 이유에서 황제가 그런 명을 내렸는지 만우는 그 심기를 다 헤아릴 수 없었으나, 그 때문에 편하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남경에 있는 황궁만큼은 아닐 테지만, 연경으로 천도를 준비하기 위해 지은 이 자미원에도 원래라면 들어가지 못할 금지(禁地)까지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십쇼.”
“아, 안 되네. 이건 황상께서 몸이 허하실 때마다 드시는 아주 귀한 약재로…….”
“황명 못 들으셨습니까요?”
만우가 울상인 어의를 향해 손바닥을 쫘악 하고 펼쳐 보였다. 그러자 어의는 울며 겨자 먹기로 품에 꼭 안고 있던 작은 손바닥만 한 청자를 내밀 수밖에 없었다.
아는 놈 눈에는 보인다고, 방매의 말을 듣고 솔깃하여 한 번 들른 자미원 안의 내의원(內醫院) 안에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것이 전부 밖에 나가면 혈겁을 일으킬 만한 보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졸졸졸. 그런 만우를 방매는 두 눈을 반짝이며 졸졸 쫓아다녔다. 그래도 눈치라는 것이 있는지 만우에게 그게 뭐냐고 어의가 보는 앞에서 묻고 싶은 것을 꾹 참는 것이 퍽 귀여워 보였다.
“방금 이게 뭔지 알아?”
도리도리. 어의의 눈가에 피눈물이 고이는 듯했지만 만우는 가볍게 무시했다. 어차피 역사적으로도 승자는 모든 것을 독식하는 셈이다. 그런데 만우 자신은 목숨도 살려 주었을 뿐더러, 황제의 신하들 중 단 한 명의 목숨도 앗아가지 않았으니 이런 것을 아까워하면 황제는 사람도 아니었다.
“공청석유(空淸石乳)라는 영약이야. 영약.”
“그 안에 든 게?”
방매는 에게-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우가 대단한 영약이라면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이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의 작은 병이었기 때문이다.
“땅의 기운(地氣)이 흩어지지 않고 쌓이는 특별한 장소가 있거든.”
그곳에서 오랫동안 기운이 농축되고 또 농축이 되면서 그 땅의 기운이 가득 모여든 한 방울의 물이 된다. 그것을 모은 것이 바로 이 공청석유다.
“일반인이 한 방울만 먹어도 평생을 무병장수하면서 살 수 있어. 나처럼 무림인이 먹는다면.”
만우는 그 병 안에 든 공청석유의 양을 흔들어 가늠했다. 찰랑거리는 소리가 만우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 정도 양이면 한 갑자(甲子). 가부좌 틀고 앉아서 60년 내내 운기조식을 해야만 쌓을 수 있는 내공을 한 순간에 가질 수 있는 거지.”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공청석유의 지기를 흘리지 않고 모두 흡수할 수 있는 뛰어난 내공심법과 최소한 초절정 이상의 기공에 능한 무림인이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이 공청석유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데 이걸 황제는 몸이 허할 때 몸을 보신하는 용으로 마신다니.
“어이가 없네.”
적어도 명의 황제들은 병에 걸려 죽을 일은 없다는 뜻이다. 공청석유를 마시고도 병에 걸려 죽는다면 그건 말 그대로 하늘이 수명을 앗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 그럼 그 다른 건?”
내의원에서 챙길 것은 다 챙겼다. 그래도 만우는 양심이 있어서 그 안을 싹 쓸어오지는 않았다. 대신 그 안에서 만우가 가장 끌리는 것 세 개만 딱 집어서 가지고 나왔다. 물론, 가장 끌리는 것이라 쓰고 가장 비싼 것이라 읽었다.
“네가 말한 만년설삼, 그리고 이건…….”
만우는 다른 손에 목함 두 개를 들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방매가 말한 만년설삼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 한 것이 황실의 내의원 약재방에 놓여 있어 덥석 집어 들었다.
‘대환단.’
만우는 낡은 목함을 꼬옥 쥐었다. 소림사의 대환단까지 황실에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만우다. 하지만 지금의 정파가 명이 세워질 때 어떻게 했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초대 황제인 홍무제를 도와 명을 건국하면서 지금의 견고한 위치를 보장 받은 무림맹에서 이런 뇌물을 바치지 않았을 리 없다. 만우가 그것을 손에 넣은 이유는 간단했다.
‘무림맹, 그 실체를 알릴 필요가 있으니까. 권위는 무너져야지. 지금처럼 한 쪽이 너무 득세하면.’
그로 인해 명색만 정파이지 얼마나 더러운 꼴을 많이 봤던 만우인가.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니고 무림맹과 정파의 주축인 소림사의 대환단이 매물로 나온다면? 비전(祕傳) 중의 비전인 대환단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소림사의 현판에 먹칠을 하는 셈이다. 안 그래도 용접곡에서의 일로 불존과 무림맹주인 무왕 천혜대사에 대한 앙금이 남아 있는 만우였기에 이걸로 한 번 판을 크게 벌여 볼 생각이었다.
“간장이나 보러 가 볼까?”
“간장? 걔는 왜.”
“걔라니. 그 말버릇하고는 참.”
만우가 혀를 끌끌 하고 찼다. 그러자 방매가 자신의 말버릇이 뭐 어떻냐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대장간에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고 있는 애를 왜 보러 간다고.”
“마익후도 거기 있다면서.”
“그래도 덥단 말이야!”
방매가 도리질을 쳤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간장이 여독도 제대로 풀지 않고 대장간에 처박혀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용혈이란 게 철 덩어리일 줄이야.’
황룡과 기린은 만우가 해 달라는 것들을 고분고분 잘도 처리해 주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황룡이나 기린은 만우에게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린은 자신들이 하겠다고 한 것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는 구경꾼으로 전락해 버렸고, 황룡은 갑자기 튀어나와 괜히 만우의 검만 하나 날려 먹고 일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번거롭게 여섯 명을 제외한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왜곡하고 뭐하고 하는 와중에도 황룡이 만우에게 별도의 선물을 건네준 것이다.
[인혈을 흐르게 하지 않았으니, 탈각자가 말한 대로 용혈을 주겠노라.]
황룡은 귀도 밝은 것인지 황룡을 보고 맨 처음에 만우가 했던 말을 머릿속에 담아 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뻔뻔하게 그 용혈을 덥석 받아들었다.
‘먹을 걸 그랬나.’
황룡은 만우에게 자신의 용혈을 내어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용혈이란 본래 고정된 형태가 없는 법. 그렇기에 흐를 수도, 지금처럼 단단할 수도 있고 눈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법이니. 만일 탈각자 그대가 용혈을 삼킨다면, 용혈은 천하에 둘도 없는 최고의 영약이 될 것이다.]
그런 황룡에게 만우는 물었다. 얼마나 대단한 영약이 되느냐고. 그런 만우를 황룡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말했다.
[탈각자의 무너진 기와 신을 세울 수 있을 정도?]
만우의 무너진 기(氣)와 신(身)은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였다. 가장 중요한 깨달음인 정(精)을 넘었으니 언젠가는 완성이 될 균형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줄여 줄 수 있다는 말에 만우는 순간적으로 혹했다. 하지만 황룡은 그런 만우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기에 뒤에 덧붙였다.
[한데, 정과 기, 그리고 신의 균형을 맞추면 탈각자는 무엇을 하려 하는가?]
목표. 황룡은 만우에게 목표의 부재를 꼬집은 것이다. 그 때문에 만우는 용혈을 복용할 수 없었다. 만약 만우가 제 손으로 천명을 끊어 내지 않았더라면, 정과 기, 그리고 신의 균형을 맞춰 원영신을 이룬 뒤 등선을 하여 선계로 올라갔을 것이다. 하지만 만우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검으로 그 끈을 끊어 버렸다. 그렇게 된다면 정기신의 균형을 이룬 만우는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
[우리들의 세계에 들어오는 것이네, 탈각자.]
황룡은 그런 만우에게 그렇게만 말해 주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신수들이 사는 세계, 그 세계가 무엇인지 그토록 만우가 물어보았음에도 황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걸세. 미리 알아서 어디에 쓴다고.]
황룡은 그렇게 말했다. 만우는 황룡이 절대로 말을 해 주지 않으리란 것을 눈치챘다. 그렇다면 만우는 용혈을 어디에 써야 하냐고 황룡에게 물었다.
[그대의 검. 불가살이를 내 멋대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으니 그 검을 만드는 데 쓰시게.]
용혈은 명확한 형태가 없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아예 형태가 없는 것은 또 아니다. 그 용혈을 쥔 자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그대의 의지가, 주어진 천명을 베어 낼 정도로 굳건하고 날카롭다면 내 용혈로 검을 만들었을 때 어떤 검이 나올지 궁금하군.]
만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우레 소리를 터뜨리는 황룡에게 말했다.
“용혈로 만드는 검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야. 내 아우가 만들 거다. 나한테 이 세상에서 제일 날카롭고 단단한 검을 만들어 준다고 약속한 아이니까.”
[뭐 그대의 손에 들어간 이상 그 용혈은 그대의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마음도록 쓰도록 하라.]
그렇게 말한 뒤 황룡은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확히 말하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원래 본체가 있는 이면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황룡은 그 잠깐의 유희가 퍽 즐거웠다고 하며 만족스럽게 모습을 감췄다. 그런 황룡을 따라 기린도 곧 이어 만우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는 자취를 감췄다. 신수들의 세계.
[산해경(山海經)이라 부르더군. 우연찮게 그 일면을 보았던 이가.]
하(夏)나라 우왕(禹王). 태평성대라 불렸던 요순시대의 바로 그 다음을 물려받았던 하나라의 우왕.
‘심심하지는 않겠군.’
만우는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만일 만우가 세월이 흘러 정말 정과 기, 신의 균형을 맞춘 뒤 광신(光神)을 뛰어넘어 원영신을 완성시키고 진신(眞神), 생사경(生死境)의 경지에 도달하면 황룡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그곳에 가서도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황룡은 지금의 만우로도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기도를 품고 있었으니 생사경에 도달하면 자웅을 겨룰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 황룡 같은 신수들이 모여 사는 세상, 산해경이 있다고 하였으니 그곳에 가면 아마 질리도록 실력을 겨룰 존재들은 차고 넘칠 것이다. 깡, 깡, 깡! 자미원은 말 그대로 하나의 성을 작게 축소하여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황제의 편의를 위해 모든 것이 자급자족이 가능케 만들어 놓은 곳이기 때문에 대장간까지 있었다. 비록 넓디넓은 자미원의 가장 구석에 처박혀 있는 곳이었기에 많이 걸어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쉴 새 없이 풀무질을 하면서 쇠를 두드리는 소리에 시끄러워야 할 대장간이 조용하기만 했다. 고개를 갸웃하며 대장간 안에 들어선 만우의 눈에 대장간 한 켠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간장이 들어왔다.
“간장.”
만우가 부르자 간장이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자신을 부른 것이 만우란 것을 안 간장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 오셨수?”
“왜 그러고 있는 거냐?”
평소 같았으면 땀범벅이 되어서도 좋다면서 웃고 있었을 간장이다. 하지만 간장은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맥아리가 하나도 없었다.
“……형님이 주신 용혈이란 것 때문이오.”
“그게 왜?”
만우는 간장이라면 용혈을 받고 펄쩍 뛰면서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만들어 준 이룡검이 깨지고 불가살이로 된 이룡검을 들고 다닌다는 것에 간장이 크게 상심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룡 때문에 그 불가살이를 잃게 되면서 만우는 간장에게 자신에게 어울리는 검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였고, 간장은 그러겠다고 했다.
“어떻게 제련해야 되는지 모르겠수.”
“무슨 소리인지 자세하게 말해 봐라.”
간장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시작된 간장의 말에 만우는 황룡의 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간장이 의기소침해져 있었던 이유는 용혈이 여느 금속과는 그 성질 자체가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금속이라니. 액체도, 고체도, 기체도 아닌 용혈을 받아든 간장이 그것을 놓고 어떻게 제련해야 될지 미궁에 빠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혈은 평범한 방식으로 달구고 때려서 제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용혈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황룡이 말했듯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다. 의지(意志). 용혈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때려서 제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먹으면 영약이 되고 휘두르면 무기가 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이다. 그것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그 형태를 고정할 수 있는 의지, 아주 견고한 의지가 필요했다.
“이름만 용혈이 아닌 거요, 형님?”
그것을 들은 간장의 두 눈이 커졌다. 간장은 이게 그냥 이름만 용혈인 특이한 금속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명나라가 좋소. 용의 피가 있다니.”
간장은 감탄했다. 간장 역시 황룡에 의해 기억이 왜곡되었기 때문에 이 용혈을 내어 준 것이 명 천자라고만 알고 있었다.
“근데 형님은 나도 모르는 걸 어찌 아시오?”
“나?”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간장이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이런 상황에 변명을 대는 것쯤 만우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갖 권모술수가 횡행하는 강호무림에서 무려 5년을 홀로 독보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무림십좌에까지 오른 만우이니 말이다.
“호선이. 500년이나 살았잖아. 모르는 게 없던데.”
“그러오? 호오. 진작에 이럴 줄 알았으면 물어볼 걸 그리하였소.”
만우는 가볍게 호선을 팔아 버렸다. 호선을 팔자 간장은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다. 하긴, 500년을 살아온 영물이 말해 준 것이라는데 단순한 간장이 더 깊게 파고 들 리가 없었다.
“무슨 소리야. 호선 언니한테 언제 뭘 물어…….”
툭!
“꺄악!”
방매가 허리를 뒤틀면서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간장이 뒤를 쳐다보자 만우가 손을 홰홰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