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8. 중과부적 (2) (348/400)


348. 중과부적 (2)
2022.04.30.


일천 년의 구렁이의 생(生).

일만 년의 이룡(螭龍)의 생(生)을 거쳐

일만 일천 년은 수양을 닦아야 오를 수 있는 신수(神獸)의 정점인 용의 좌(座).

그중에서도 사방신(四坊神)의 좌청룡(左靑龍)과 더불어 용의 좌(座)에서도 으뜸인, 황제와 왕의 상징이라는 황룡(黃龍)은 자신을 자극하는 강렬한 천명(天命)에 이끌려 고요 속에 있던 육(肉)을 일으켜 호풍환우와 뇌성벽력 뒤에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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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아무래도 싹수를 보고 싶으신 모양인데.]

강렬한 천명(天命)이라면 상제(上帝)밖에는 없다. 상제는 유일하게 황룡과 청룡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절대자였으니 말이다.

그런 황룡은 육(肉)을 드러내고서야 왜 상제가 자신을 이리 재촉하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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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각자. 제 손으로 천명(天命)을 끊은 개척자인고로. 대단하구나. 대단해.]

황룡은 저 아래 개미보다 더 작아 보이는 인간 하나, 만우를 현기가 번뜩이는 용안(龍眼)에 담고서는 감탄했다.

용안의 또 다른 말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 바로 진안(眞眼)이다. 그 어떠한 것도 용의 눈앞에서는 허물이 통하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거짓도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황룡은 인간, 만우가 제 손으로 천명의 사슬을 끊어 낸 탈각자란 것을 단박에 꿰뚫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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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룡을 내려 보내어 득이 될 것이 하나 없거늘. 저 아이들은 천살을 막으려 한 것일 뿐이고.]

황룡은 거대한 머리를 움직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룡의 육(肉)은 그 일부분만이 고요 속에서 나왔을 뿐이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황룡의 육(肉)도 하늘의 별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황룡의 용안은 하늘에서 빛날 준비를 끝마친 천살성(天殺星)을 금방 찾아내어 직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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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그런데 그때 황룡의 눈이 다시 지상으로 향했다. 그 순간 황룡과 만우의 눈이 마주쳤다. 정확히는 황룡만이 만우와 눈을 마주쳤다.

제 아무리 만우가 인간으로 탈각하여 저만의 길을 오르고 있다고는 하여도, 황룡의 그것에 닿을 정도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황룡은 그런 만우의 눈 안에서 꺼지지 않은 투기(鬪氣)를 읽어 내고는 흥미를 느꼈다. 분명 저 탈각을 한 인간은 자신을 보고, 느끼고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기를 발산한다는 것이 황룡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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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래서 상제께서 한 번 싹수를 보고자 하심인가?]

황룡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약 그렇다면, 황룡도 이제는 흥미가 생겼으니 상제의 노림수가 정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거기에 이런 소리까지 인간, 만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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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묻자. 인간의 피가 아닌 용의 피가 흐르면 어떻게 되는 거냐?]

꽈르르릉!!!!

황룡의 주변에 벽력이 내려치고 대기가 울리면서 난리가 났다. 그것은 황룡이 웃으면서 내는 소리였다.

용혈이라니.

저 인간은 다른 이도 아니고 황룡, 자신에게서 피를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이제 30년도 살지 않은 인간이 일만 천년, 그리고도 얼마를 살아왔는지 이제는 자신조차도 잊은 그 세월을 살아온 황룡을 앞에 놓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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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밌구나. 아주 재밌어.]

황룡은 고개를 돌려 천자를 쳐다봤다. 이 세상의 모든 왕과 황제에게서는 황룡의 기운이 흐른다. 그들의 운명에는 용의 좌(座)에서도 으뜸 자리를 차지한 황룡의 기운이 흐르기 때문이다.

아주 미약하기는 하여도 그것은 한 인간, 더 나아가서는 한 왕조를 만들어 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기운이다.

그러다 그 황룡의 기운이 쇠하는 시기가 오면 또 다른 인간이 황룡의 기운을 이어받고 새로운 왕조가 생겨나고, 그렇게 하여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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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나. 이곳에 운명의 와류를 만든 이가.]

황룡은 저 천자가 자신을 이곳에 강림하게 한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들의 황제인 천자가 만들어 낸 운명의 와류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올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저 인간, 탈각자를 이곳까지 불러들인 것.

그것 자체가 천자가 운명의 와류를 일으켰다는 바로 그 증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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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녕 저 아이가 본룡을 흥미롭게 만든다면.]

황룡의 주변에서 뇌성과 벽력이 하늘을 찢어 버릴 것처럼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듣는 다른 이들은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할 정도의 소음이었으나 황룡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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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용혈, 내어 주마.]

번쩍!!!!!

황룡의 의지에 그 거체를 가리고 있었던 먹구름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황룡의 거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풀썩, 풀썩.

황룡이 극히 일부라고는 하나 그래도 진신(眞身) 중 일부를 드러내자 격의 차이를 견디지 못한 지상의 수많은 인간들이 그대로 고꾸라지며 혼절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굳건하게 버티는 이들이 소수가 있었다.

황룡이 안배한 천자와 만우를 제외한 기와 린, 영물인 호선, 그리고 인간 중 초인의 경지에 다다른 화경의 고수들.

그래봤자 수천 명 중 열 명도 안 되는 이들만이 간신히 제정신을 유지한 것이다.

쐐애애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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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모습을 드러낸 황룡을 향해 한 자루의 백색검이 땅에서부터 하늘로 거꾸로 솟아오르는 별처럼 거대한 진력을 품은 채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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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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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니야?]

그리고 그런 만우의 만행은 수천 년을 살아온 신수들도 고아함을 잠시 잊고 거친 말을 튀어나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꼬르륵.

무엇보다도 가장 놀란 것은 호선인 듯했다. 특히나 그녀는 먹구름을 헤치고 나온 황룡에게서 느껴지는 격의 차이에 안 그래도 짓눌리고 있었는데 만우가 벌인 행동에 결국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아예 혼절을 해 버렸다.

다행히 방매고 간장이고 모두가 혼절해 있었기 때문에 소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소리를 모두 들은 만우는 뒤를 쳐다보지 않았다.

척!

그 대신 손을 하늘로 뻗어서는 다시 날아온 이룡검을 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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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볼 수가 없어.’

만우는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 히죽 웃었다. 만우는 뒤를 쳐다보고 싶어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황룡이 먹구름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감히 다른 곳에 한눈을팔 수 없었다.

압도(壓倒).

종(種)의 차이, 더 나아가서는 격(格)의 차이로 인해 만우는 자신의 영혼이 순간적으로 거대한 압력에 짓눌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영혼이 짓눌린다는 경험은 만우도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만우는 자신이 간신히 구성한 원영신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소리를 들으면서도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우웅우웅!!!

대신 만우는 공력을 잔뜩 끌어올려서는 이룡검을 진동케 만들었다. 그러자 이룡검의 검신에 찬란한 백색 광채가 서리더니 만우의 공력이 뭉텅이로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광검(光劍).

기신(氣神)의 무학이 만우의 손에서 펼쳐졌다. 하지만 그런 이룡검에서 타오르는 백색 광채도 하늘을 가득 메운 거대한 황룡이 뿜어내는 빛에 비하면 반딧불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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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인간이로고.]

꽈르릉 꽝!

그런 황룡이 지상의 만우를 내려다보면서 우레 소리와 함께 뜻을 전해 왔다. 고도의 의기전성(意氣傳聲)으로 육성 대신 뜻 자체를 기에 실어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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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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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이곳에!]

기와 린이 그런 황룡을 보고서는 당황해했다. 기와 린만 해도 그 크기가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는데, 황룡에 비하니 강아지만 한 수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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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도 지상이 시끄럽거늘, 상제께서도 시끄럽다 하소연하시어 내가 이리 나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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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상제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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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린이 고개를 돌려 황제를 노려봤다. 기보다 훨씬 영리한 것이 린인 듯, 린은 황룡의 말에서 단박에 이 단초를 제공한 인물을 알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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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모인 인간들의 운명 때문에 나오시게 된 것이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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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게다가 그 운명의 틈 사이에 제 손으로 껍질을 벗고 있는 탈각자까지 끼어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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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류!]

기가 기함을 내뱉었다. 그들도 수천 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다. 인간 개개인이 가진 운명의 힘은 보잘 것 없으나, 그런 인간 수천 명이 한 곳에 모이면 무수히 많은 운명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면서 와류를 만들어 낸다.

그 와류란 상제라 할지라도 미리 예상할 수 없는 재해와도 같은 것이기에 무수히 많은 변수를 만들어 낸다.

천살, 백호대살, 신수, 영물, 상계, 하계 등이 나타나거나 사라지기도 하고, 맞닿았다가 떨어지기도 하는 등의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옥황상제는 천계의 신수들을 세상에 내려 보내어 그런 와류를 지켜보고 감시할 것임을 명했다. 그리하여 황룡이 이 자리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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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염라대왕의 명부(命符)에는 오늘자로 된 이곳, 인간들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으나 혹여나 와류로 인해 운명이 바뀌게 된다면 하늘의 질서에도 영향이 갈 지언저.]

황룡은 기와 린을 내려다보면서 우레 소리를 꽈르릉하고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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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 황룡의 기운을 받은 이가 본룡을 찾은 즉, 이에 기린과 탈각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황룡은 만우를 내려다보면서 또 다시 우레를 터뜨렸다. 우레 소리는 황룡이 웃을 때 나오는 소리였기 때문에 기린은 황룡의 기분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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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탈각자가 다짜고짜 첫 인사를 내게 검으로 한 것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만우는 자신의 손에서 백색광채를 발하고 있는 이룡검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그 이룡검의 이가 나가 있었다. 그 단단한 불가살이로 만들어진 이룡검의 백색 검신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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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어어어엉!!!]

아니, 이룡검의 백색 검신을 구성하고 있던 불가살이는 검신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둔갑이 탁 하고 풀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꾸어어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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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

싸울어미인 소서노 역시 당황스런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필이면 이런 때 속박이 풀리다니, 소서노는 황룡의 존재감에 개구리처럼 전신이 짓눌리는 듯한 압력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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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

꾸어어엉!!!

불가살이 역시 머리를 조아리면서 기린과 황룡의 눈치를 살폈다. 불가살이도 분명 신수 중에 하나라고는 하나 기린이나 황룡에 비하면 그 격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불가살이가 황룡에게 생채기 하나조차도 남기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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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과 불을 좋아하는 아이야.]

황룡이 웅혼한 목소리로 불가살이를 불렀다. 그러자 불가살이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하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졸지에 검자루만 손에 쥐고 있게 된 만우가 황룡을 향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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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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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신수는 개인에게 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천명에 의해 운명이 이어진 자라면 모르나, 너는 탈각(脫却)을 하고 있는 중이니 불가살이와 인연이 닿을 수 없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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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끊어졌다?’

용은 모든 신수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고 으뜸인 존재다. 용 중에서도 으뜸인 황룡은 그저 그 몸에 닿는 것만으로도 비틀린 질서를 바로잡는 권능이 있는 모양이었다.

불가살이와 이어져 있던 만우의 연이 단박에 끊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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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마음대로!”

하지만 만우는 황룡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들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만우는 심검(心劍)으로 자신의 천명을 제 손으로 스스로 잘랐다.

그것은 마치 아이가 태어나면서 제 손으로 제 탯줄을 자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천명을 제 손으로 스스로 자르고 탈각의 길을 걷게 된 만우는 황룡이 한 말에서 구멍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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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길은 내가 정한다! 불가살이와의 연도 내가 붙잡는 것이면 붙잡는 것이고, 놓아주면 놓아주는 것이지!”

휘이익!

만우의 신형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만우가 끌어올린 공력이 황룡의 존재감을 옅게 만들었다. 만우는 허공답보를 이용해 허공으로 솟아오르며 불가살이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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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연이 이어지고 마는 것을 네가 정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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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각의 길을 걷는 자, 좋다. 하나…….]

꽈르릉!!!!!

만우의 손은 불가사리를 향해 뻗어졌다. 하지만 그 순간 황룡의 웅혼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하늘을 걷던 만우의 신형이 딱 하고 멈춰 섰다.

빠직!

그리고 그런 만우를 향해 벽력이 떨어져 내렸다. 그 때문에 불가살이에 다시 닿을 뻔했던 손은 아슬아슬하게 닿지 못했고, 만우의 전신이 새까맣게 그을려지더니 신형이 추락했다.

번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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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헉!!”

신형이 땅바닥에 그대로 처박히기 직전 만우가 정신을 차리고는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꽝!

하지만 다시 허공답보로 솟아오르지는 못하고 만우가 주변의 땅거죽을 뒤집으면서 굉음과 함께 바닥에 착지했다.

비틀.

만우의 전신에서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는데, 땅에 착지한 뒤로도 비틀거리면서 호흡을 다잡기 위해 애를 썼다.

우우웅!!!

가까스로 호흡을 다잡자 만우의 호흡이 편안해지더니 숨결에서 빠직거리는 뇌기가 함께 뿜어져 나와서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만우는 멀어지는 불가살이를 쳐다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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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

호풍환우와 뇌성벽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황룡다웠다. 만우는 사위가 순간적으로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순식간에 황룡이 뿜어낸 벽력이 만우를 직격했기 때문이다.

그 속도는 말 그대로 광속이었기에 만우는 벽력이 날아오는 낌새는 물론이거니와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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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여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천명을 끊은 너의 길은 앞으로 모든 길이 가시밭길일 터이니.]

꾸어어어엉!!!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공중으로 솟아오른 불가살이의 신형이 어느 순간 번쩍하더니 만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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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는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갔느니라. 아직 벌을 받을 것이 남아 있으니까.]

푸스슥!!

새카맣게 그을린 만우의 옷자락이 푸스슥 하고 부서졌다. 만우는 신경질적으로 소맷자락을 털어 내고는 검 자루만 남은 이룡검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불가살이는 원래 땅 속에 갇혀 벌을 받던 신수였다. 지상에서 불가살이가 벌인 혼란 때문이다. 그러던 불가살이가 지상 위로 나오게 된 것은 만우를 만나서였는데, 그게 탈옥인 모양이었다.

그런 사정을 안다고는 하나 그렇다 하여 제 맘대로 불가살이를 보내 버린 황룡의 태도가 기꺼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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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무(氣天舞).”

만우의 신형이 푸른 운무에 뒤덮였다. 만우는 진인의 경지에 도달한 이후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기천무를 시전했다.

그러자 자미원 전체가 만우의 푸른 운무, 기천으로 뒤덮였다. 푸른 운무가 자신들도 뒤덮자 기가 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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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가서 인간을 말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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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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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는 린의 반문에 할 말이 없어졌다. 린의 말처럼 자미원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기 시작한 푸른 운무는 이제 자미원도 모자라 아지랑이처럼 나풀거리며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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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각자가 느껴지지 않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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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간이라 하여도 탈각자야. 너무 쉽게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낭패한 기의 음성에 린이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기는 고작 30년 남짓을 살아온 인간이 자신의 감각을 속일 정도의 무학을 펼쳐 낼 수 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물론 살아온 세월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신수인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은 백 년 남짓하게 사는 인간 사이에서였지 인간과 신수를 비교하면 그 세월의 간극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수천 년.

그 정도 간극은 간극이라며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탈각자, 만우는 그 간극을 우습게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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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인간이로고.]

우르릉!!!

황룡은 스멀거리며 자신이 있는 곳까지 그 손을 뻗쳐오는 푸른 운무를 보면서 우레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미 회까닥 눈이 돌아간 만우에게는 더 이상 종의 차이건, 격의 차이이건 안중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저 건방진 황룡에게 한 방 먹이겠다는 것.

그것 하나만을 보고 만우가 전심전력을 다해 기천무를 피워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주륵!

푸른 운무, 기천 속에서 만우의 입가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자미원을 뒤덮고 하늘까지 뒤덮을 정도의 기천무를 펼친다는 것은 만우에게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나타난 황룡의 존재와 불가살이를 잃었다는 분노에 만우는 분명히 무리를 하고 있었다.

특히나 만우의 단전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그는 일념 하나로 집중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버텼다.

둥-!!!

뭉클!

정(精)을 따라오지 못하는 기(氣)와 신(身)이 당연히 비명을 질러 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우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한 채 흐릿하게 형태만 잡힌 원영신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뽑아 먹으면서 기천무를 펼쳤다.

그렇게 만우가 뿜어낸 푸른 운무가 스멀스멀 차오르더니 황룡의 거체를 절반 정도 뒤덮었다. 그리고 그 순간, 푸른 운무를 온몸에 휘감고 있던 만우의 두 눈이 번쩍하고 뜨였다.

심기단법(心氣丹法).

기천 무학의 근간이자 몸과 마음의 기를 내통시킨다는 것은 진인 그 위의 최고 단계인 상인의 궁극적인 목표를 말한다.

그 단계는 아니지만 만우는 천명(天命)을 끊어 내고 크게 성장한 정(精)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그를 흉내 내는 식으로 기천무를 펼쳤다.

물론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여 상인 진체의 백만분지 일도 되지 못하는 말 그대로의 흉내만을 냈을 뿐이지만, 만우는 전율했다.

기가 곧 나이고, 내가 곧 기다(氣卽我 我卽氣).

기천의 제 오초식, 기천무가 바라보는 궁극의 이상(理想)이란 기(氣)가 춤을 추듯(舞) 기가 존재하는 모든 곳이 바로 나의 영역이 되는 것이었다.

꿈틀.

만우는 푸른 운무, 기천이 펼쳐진 그 영역 안의 모든 것이 자신의 지배하에 놓였다는 것에 희열하며 황룡을 향한 일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그 순간 만우는 기시감을 느꼈다.

푸른 운무에 뒤덮이기 시작한 황룡이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만우가 고개를 들어 황룡을 쳐다봤다. 그런 만우를 황룡은 금안을 번뜩이며 쳐다보고 있었는데, 금안을 만우가 정통으로 마주한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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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만우는 손발에서 힘이 쭉 하고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황룡의 금안과 마주한 순간 만우는 숨겨져 있던, 세상의 이면을 살짝이나마 발견하였다.

황룡의 진신(眞身).

세상의 이면 속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는 황룡의 진신을 본 만우는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만우의 눈에 보이는 황룡은 진신이 아니었다. 세상의 이면에 잠들어 있는 황룡의 진신은 눈앞에 보이는 황룡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존재감을 뿌려 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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