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 대적불가 천하제일역졸 (2)
(345/400)
345. 대적불가 천하제일역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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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 대적불가 천하제일역졸 (2)
2022.04.19.
쿨럭, 쿨럭
으으으으…….
으아아.
비단 놀란 것은 정화뿐만 아니었다. 원형으로 일어난 파문이 멈추자 설미수와 동군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파도처럼 땅이 출렁이면서 산산조각이 난 바닥 안에서 사람의 기침소리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들은 정화는 등줄기에서 차가운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명의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쥐새끼가 많아서야 어디 쓰겠나? 아무래도 터를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만우는 다 알면서도 정화에게 대놓고 이죽거렸다. 땅 속에 숨어 있던 것은 바로 서창의 환관들이다.
서창의 환관들은 황제의 그림자였다. 그들은 암살, 잠입 등 드러내 놓고 하기 어려운 일을 황제의 그림자 속에서 행하는 이들이었는데 그들이 바로 자미원의 바닥에 숨어 있었다.
“이건.”
설미수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무너진 자미원 바닥 사이로는 개미굴처럼 낮고 좁은 통로가 쫙 깔려 있었다. 그 안으로 서창의 환관들이 이리저리 바닥에 나뒹굴면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서창제독이기도 한 정화가 자신의 술수가 모두 드러났다는 것에 큰 소리를 치려는 찰나, 오싹한 살기가 정화의 어깨를 짓눌렀다.
“쉿.”
고오오오!!!
만우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정화는 어차피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자신의 울대를 꾹 누르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재밌어. 용담호혈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만우는 툭툭 발로 돌을 하나 빼내면서 자신이 만들어 낸 참상을 쳐다봤다.
“황제의 귀가 이런 식으로 황궁 안에 돌아다니는 거였어?”
만우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중원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다스리고 있으면서도 황제는 절대로 신하들을 믿지 못한다.
절대적인 권력을 쥐었으며,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자라 불린다 하여도 그 권력을 절대로 남과 나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럴 때 보면 딱 이런 말이 떠올랐다.
“이래서 있는 놈들이 더하다니까.”
정화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동이족 주제에 만우가 칭하는 ‘놈’이란 것이 존귀하기 그지없는 천자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그런 정화에게 입을 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지 않았다.
꽈악
“우읍…….”
의기상인(意氣傷人)의 경지는 진작에 아득하게 초월한 만우다. 하지만 정화는 거의 실체화 된 물리력을 느끼고 있으니, 만우의 경지가 어지쯤 도달했는지 대충 짐작할 수도 없었다.
“뭐가 그리 두려워서.”
만우는 적절히 힘 조절을 했다. 그 때문에 환관들 중 죽은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기린과의 약속 때문이다.
“두더지처럼 숨어 다니시나.”
파앙-!!
털썩.
“쿨럭, 쿨럭.”
정화가 털썩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목울대를 압박하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우는 콜록대면서 기침하는 정화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본주가 이곳까지 왔다. 허니 가 전해라.”
뒤에서 설미수와 동군영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뒤통수가 뜨끈해졌기 때문이다. 만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것도 정도껏이니, 황제보고 예까지 나오라고.”
“그, 그게 무슨 불경한…….”
“그 황제가 본주의 황제더냐?”
드드드.
촹!!!!
만우의 허리춤에 꽂혀 있던 이룡검이 검집에서 제 발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을 본 척일과 척사영이 뒤에서 헛숨을 들이켰다.
이기어검(以氣馭劍).
단순히 검을 던지는 행위가 아닌 기로써 검을 조종하는 궁극의 검예가 만우에게서 펼쳐진 것이다.
그것이 가져다 준 충격은 초절정 오인방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만우가 응당 현경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은 하였으나 저렇듯 대놓고 어검술을 펼친 적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하면 이 명나라가 본주의 나라더냐?”
고오오오-!!
정화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우의 주변을 태평하게 노니는 한 마리의 새 같은 저 백검(白劍)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어검술 정도 되는 궁극의 검예를 펼쳐 보이면서도 만우에게서 그 어떠한 공력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 되겠구나.”
기이이잉-!!
이룡검이 부르르 떨리며 공명음을 토해 냈다. 만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정화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만우의 기세에 짓눌려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굳은 것이지만, 그런 정화의 사정까지 헤아려 줄 필요가 만우에게는 없었다.
“본주의 뜻은 본주가 직접 알리는 수밖에.”
쉬익!!!!
만우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애교를 부리는 듯하던 이룡검이 순식간에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날아가는 이룡검을 유일하게 끝까지 본 것은 만우밖에 없었다.
화경의 고수인 척일과 척사영도 움직임을 놓쳤을 정도의 극쾌가 담긴 것이다. 그와 동시에 번쩍하는 빛이 만우가 쳐다보는 방향에서 일었다.
서걱!!!!
쉬이익!!!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와 함께 만우의 곁으로 이룡검이 다시 날아들었다. 만우는 웅웅 하면서 떨어 대는 이룡검을 보면서 그 검신을 슥 쓰다듬었다.
[우우우우웅!!]
[알고는 있었지만…… 참으로 무식한 자로다!]
이룡검 안의 불가사리와 싸울어미가 한 마디씩을 내뱉었다. 만우는 그 둘을 가뿐하게 무시하고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긴장이 풀린 것인지 두 눈을 빛내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간장을 쳐다봤다.
간장의 꿈은 자신이 만든 검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내에게 주는 것이다.
세계제일검이 그래서 나온 말이다.
만우는 그런 간장에게 말했다.
“이 검술을 담을 수 있는 검을 만들 수 있겠느냐?”
“……예, 형님.”
간장의 열의에 만우의 한 마디가 불을 지핀 듯했다. 그 말을 들은 간장의 두 눈은 이글거리면서 타오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우르르르!!!
그 사이 정화가 말했던 천자가 기다린다는 그곳의 담벼락이 우르릉거리는 소리를 내더니 일제히 허물어졌다.
철컥!
그런 만우의 검집으로 다시 이룡검이 날아와서는 부드럽게 꽂혔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이룡검을 휘둘렀다가 다시 납검을 한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처저저저적!!!!
그렇게 담벼락이 무너진 순간 자미원의 용봉전(龍鳳殿) 너머와 양 옆에서 붉은 홍의를 입은 금의위들과 날카롭게 벼려진 듯한 군기를 지닌 일만의 군대가 몰려나와서는 만우의 시야를 가렸다.
그들은 마치 이전부터 수차례 연습을 한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간격으로 오와 열을 유지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한 몸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군(軍)이라.”
만우는 용과 봉황이 있는 전각이라는 뜻을 가진 용본전 앞을 완전히 가려 버린 군세를 보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남진무사 순이라고 하오.”
그때 홍의를 입은 금의위 중앙이 열리더니 날카로운 창극처럼 도발적인 기세를 뿜어내는 남진무사, 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우는 그런 남진무사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황보세가의 그 천치보다는 한 수 위의 실력이군.”
“천하제일검의 칭찬이라니. 감사하외다.”
순은 손에 기다란 창을 들고 있었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은 기본을 익히기가 쉬워 널리 쓰이는 무기였지만 창 한 자루로 화경에 오른 이는 현재 무림에서도 딱 하나밖에 없었다.
상산 조가의 창주.
조자룡의 후예라는 그곳에서 조가창법으로 창주라는 화경의 무인을 배출했는데, 사정거리에서 우위를 점하는 창술의 고수는 검이나 도의 고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황실고수 중에 창으로 화경에 오른 고수가 있는 것이다.
“하긴. 황제가 바뀌었으니 북진무사와 남진무사도 바뀌었겠군.”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의 진무사들은 황룡객잔에서 만우에게 덤벼들었던 황보경보다도 못한 놈들이었다.
“이놈은 간이 모기만 하기 그지없어서 입도 뻐끔거리지 못하니, 하면 그대가 가서 말하라.”
만우는 뒷짐을 진 채 순과 수백의 금의위, 거기에 수천의 군세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담담하게 목소리를 냈다.
“천하제일인인 본주가 예까지 직접 왔으니, 이만 황제도 예까지 나오라고.”
고오오오오!!!!
만우가 그 말을 한 순간 그에게 쏟아지는 기세가 아예 다른 차원으로 변했다. 엄정하던 군세에 투기와 살기가 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분명 만우가 보인 상승의 무학을 두 눈으로 보았을 것이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기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저들이 혹독한 훈련과 실전을 거친 진정한 정예병이라는 뜻이다.
“그대는 폐하의 신하가 아닐지 몰라 그런 불경한 말을 멋대로 내뱉을 수 있으나.”
다각, 다각.
그때 군세가 열리더니 그 사이에서 대장군 갑주를 걸친 황보윤이 그를 호위하는 친위대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 황제가 기거하는 곳 안에서는 말을 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검주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군세이니만큼 다수의 기마병들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처맞아 피떡이 된 놈과 비슷하게 생겼구나.”
만우는 황보윤을 보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황보윤은 그런 만우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황보윤은 천자가 하사한 장군검을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나는, 이들은 폐하의 충실한 백성들이니. 그 말은 그대의 입으로 직접 하라.”
“…….”
만우는 황보윤과 순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 공간에 긴장의 끈이 바짝 조여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갈 것 같은 긴장감이 팽배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꿀꺽.
고작 한 명과 수천의 군세가 마주하면서 생겨난 긴장감이지만 그 긴장감의 크기는 과히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그 때문에 감령은 침을 삼키고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살벌하네. 진짜로.”
“어제 이야기했던 대로.”
“안 까먹었어.”
필두의 말에 감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밤늦게까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 보았던 초절정 오인방이다.
물론 오밤중에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기가 흐트러지는 바람에 고생을 오질나게 했지만 그래도 의논했던 것은 잊지 않았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글쎄.”
초절정 오인방은 그들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금의위와 일만의 군대.
이 앞에서는 무림의 태산북두라 알려진 소림과 무당도 한나절 이내에 초토화가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개개인은 어려운 상대가 아니나 뭉치면 무서운 것이 바로 군대다. 특히나 지금 용봉전 앞을 가득 채운 저 군세는 관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포졸들 따위가 아니었다.
명의 최전방에서 삭풍과 오랑캐와 싸우며 실전으로 다져진 정예들 중의 정예라는 것이 엄정한 군기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
하지만 만우는 아주 조금의 긴장감도 느끼지 못하는 태평한 얼굴로 씩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만우가 복식으로 배에 호흡을 잔뜩 불어넣으며 공력을 끌어올렸다.
“나와라 황제! 검주가 여기 왔노라!!!!!”
쩌정-!!!!
뱃심을 타고 만우의 목청을 타고 흘러나온 목소리에 공력이 가득 담겨 소리를 증폭시켰다.
무림에서 소위 사자후니, 창룡후니 하는 음공의 묘리가 가미됐다. 그러자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소리가 자미원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히히히힝!!!
“윽!”
히히히힝!!
“워, 워워!!!!!”
그러자 의외로 놀라 날뛰기 시작한 것은 예민한 동물인 말이다. 기마병들이 늘어선 대열에서 말들이 날뛰기 시작하자 삽시간에 용봉전 앞이 소란스러워졌다.
“됐지?”
순과 황보윤은 그런 만우를 천둥벌거숭이 쳐다보듯 쳐다봤다. 설마하니 직접 말하랬다고 저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택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저 파격이야말로 검주의 무기다.’
하지만 남진무사 순은 순식간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지금까지 만우가 걸어온 길은 파격 그 자체다.
홀로 옛 고사(古事)의 관운장이 조조의 품에서 떠나 오관참장(五官斬將)을 하였듯 검주는 단신으로 심양과 산해관, 용접곡과 황룡객잔을 뚫어 내고 이곳에 다다랐다.
그리고 자미원에 들어와서도 만우는 이기어검을 보란 듯이 꺼내들었고, 그것으로 땅거죽을 뒤집고 용봉전의 담벼락을 날려 버렸다.
남들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것들을 보란 듯이 해 놓고 상대방을 당황케 하여 심적으로 일단 우위를 점하고 보는 것이 바로 검주의 파격이다.
“하마(下馬)!!!”
황보윤이 뒤에서 기마병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은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대장군의 결정이 옳다고 생각했다.
굳이 통제가 되지 않는 말을 억지로 통제하려다가 더 대열을 혼돈하게 만드느니 내리는 선택이 더 나았기 때문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었다.
[패하여도 좋다. 승패 모두 얻을 것이 있으니.]
황제가 한 말이 순의 머릿속에서 다시 들리는 듯했다. 하나 그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도 최선과 차선 사이에 있는 일이다.
황제가 생각하는 최선은 과연 어느 쪽일까.
“이래도 나오지 않는다면, 너희들의 황제야말로 천하의 겁쟁이가 아니더냐.”
만우는 낄낄거리면서 금의위와 황보윤의 군대를 도발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가 한층 더 사나워져도 금의위와 정예병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만큼 금의위와 정예병의 훈련도가 높다는 뜻이리라.
“그리도 천하제일을 원하였으니, 천하제일겁쟁이라 부르면 될 터. 아하핫.”
설미수와 동군영의 안색이 점점 노랗게 변해 갔다. 아예 대놓고 저들 보고 먼저 달려들라는 듯 만우의 도발이 점점 더 그 강도를 더해 갔기 때문이다.
“그 천하란 것이 바로 짐의 천하이거늘.”
처저저저적!!!!
그런데 그때 만우 앞에 도열한 금의위가 옆으로 쫙 벌어지더니 그 뒤에 선 황보윤의 군대까지 옆으로 벌어졌다. 만우는 위엄이 담긴 목소리에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무대 위로 배우가 올라오고 있었다.
처저저저적!!!
황제가 걸어오는 길로 금의위와 황보윤의 군대가 절도 있게 부복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군례를 올렸다.
그렇게 황제가 열린 길을 따라 가까워질 때마다 마치 파도가 치는 것처럼 금의위와 군사들이 황제를 향해 부복했다.
하지만 황제는 그런 예가 당연하다는 듯 눈 하나 깜박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만우를 쳐다보며 그에게 걸어갔다.
“그 천하의 제일이라고 하여도 결국 짐의 천하이지 않더냐.”
황제.
드넓은 중원을 한 손에 틀어쥔 권력의 정점에 선 그 절대자가 결국 그 무거운 엉덩이를 옥좌에서 떼고 일어난 것이다.
저벅, 저벅.
만우는 황제가 등장하자마자 들끓듯 하던 금의위와 황보윤의 군대가 삽시간에 고요해지는 것을 보면서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황제의 주변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철통처럼 둘러싼 호위병력을 보면서도 속으로 감탄했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눈이구나.’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는 이들답게 실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그 수백에 달하는 이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은 물론, 만우에게서 단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방심이란 것이 없다는 듯 만우를 경계하는 그들에게서는 죽음도 불사한 절대적인 충성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게다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림자.’
이곳은 명의 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다. 그러니 용담호혈이라 해도 오히려 부족함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병력이 이 근방에 몰려 있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금의위와 황보윤의 군대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황제가 움직이는 길을 따라 은밀하게 기척을 죽이고 따라붙는 수백의 살객들이 팔방을 점하고 있었고 자미원 바깥으로는 수천에 달하는 동창과 서창의 환관들이 포위망을 짠 상태였다.
그 누구도 감히 살아 나간다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경비가 두터웠고 삼엄했다.
‘확실히 저번 황제와는 다르다.’
확실히 이번의 황제는 지난번의 황제, 그러니까 현 황제의 조카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그때의 황제는 면류관의 그 무거운 무게에 짓눌린 듯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지금 모습을 드러낸 황제는 아니었다.
말 그대로 천하를 오시하는 듯한 자신감과 오만함.
황족으로 태어나 제 손으로 북방을 평정하고 거대한 군벌로 자신만의 세력을 키워 냈던 이의 자신감 넘치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만우를 보면서도 떨리지 않는 눈빛은 물론이거니와 내공을 한 줌도 지니고 있지 않음에도 그에 필적하는 그 존재감과 위압감까지.
“난놈은 난놈이로다.”
만우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귀 밝은 주순과 황보윤이 고개를 휙 하고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특히 그중에서도 주순의 눈빛이 특히나 따가웠다.
황제를 감히 놈이라 했다고 분노를 토해 낸 것이다. 만우는 그런 주순을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힐끗.
만우는 그렇게 주순을 향해 웃어 보이고는 뒤쪽을 살폈다. 그러자 창백하게 질린 설미수와 동군영의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사행단의 우두머리인 정사와 그를 보좌하는 부사라고 뒤로 물러나지 않고 사행단의 가장 앞에 선 둘이다.
그 둘이 황제가 이곳까지 행차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에 긴장할 대로 긴장한 것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백 보도 넘게 떨어진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감히 얼굴도 한 번 보지 못 하고 돌아왔을 황제일지언데, 그 황제를 어전이 아닌 지붕이 없는 곳에서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뒤의 화경 둘과 초절정 오인방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를 받고 있는 간장과 방매도 마찬가지였다.
긴장하지 않는다 말하였던 방매도 기실은 매분구나 하던 어린 여아일 뿐이다. 그런 방매가 조선의 임금도 아니고 명의 황제를 봤는데 긴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나 낯설지는 않은데.’
하지만 만우는 그런 황제를 보면서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와 비슷한 이를 일전에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임금.
‘임금과 똑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