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4. 대적불가 천하제일역졸 (1) (344/400)


344. 대적불가 천하제일역졸 (1)
2022.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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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미원은 놀랍도록 남경에 있는 황궁과 닮아 있었다.

남경에 황궁이 있음에도 연경으로 황제가 수도를 옮기려고 하는 이유는 하북이 연왕이던 시절 황제의 본거지였기에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려 자신만의 정치를 하겠다는 뜻도 있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연경이 넓혀지고 황궁이 있을 거대한 자리에 인부들이 대거 동원됨으로 인해 막대한 재화가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황제는 강행했다.

어쨌거나, 황제가 연경에 올 때마다 머무를 이 자미원, 자미궁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이곳을 만들기 위해 막대한 재화가 들어갔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랬기에 만우를 제외한 사행단 전원은 자미원의 입구부터 심적으로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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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게 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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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기거하는 곳이니까.”

여러 번 명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설미수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경에 있는 황궁은 여러 번 가 봤어도 연경에 오는 것은 그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사행을 위해 연경을 지나가 보기는 했어도 이렇게 자미원까지 들어와 본 적은 처음이다.

꿀꺽.

설미수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는 흠칫하고 놀랐다. 설미수의 장점이라면 속으로는 긴장해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것이 겉으로 티가 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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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라운 걸 많이 봤나.’

설미수는 속으로 쓰게 웃었다. 그래도 나름 험난한 조정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어 왔다고 생각해 웬만한 것으로는 놀라지 않는다 자부하였지만, 만우를 만난 이후부터 설미수에게는 모든 것이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일들뿐이었다.

나름 험난한 고려 말도 겪고, 역성혁명도 겪었다하여 이골이 났다 자부하였지만 만우 앞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무소용이었다.

쿵쿵쿵쿵.

그게 아니라면 지금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설미수는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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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되십니까요, 나리.”

호흡을 가다듬으며 심장을 가라앉히려던 설미수는 다리 끝에서 차오르는 따스한 느낌에 말고삐를 쥔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분명 한 쪽 손을 말의 목덜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설미수는 이 따스한 기운이 만우로부터 전해져 온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따스한 기운이 몸속을 몇 번 오가자 긴장이 풀리면서 경직되었던 어깨가 스르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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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은공. 아무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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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십쇼. 설마 하니 제가 조 씨 부인을 과부로 만들고 윤도 도련님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만들겠습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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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일어나도 제 몸은 건사할 수 있다는 것으로 듣겠습니다, 은공.”

긴장이 풀리니 설미수의 입에서도 농 섞인 말투가 흘러나왔다. 만우는 고개를 힐끗 돌려 그런 설미수의 얼굴을 보면서 진하게 씨익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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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얼마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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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황제 앞에서 큰 소리도 좀 쳐 보고 그래도 되겠습니까, 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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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이신 게 많았나 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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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소국은 대국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설미수는 피식 웃었다. 황제 앞에서 큰 소리를 쳐 보겠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농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그런 설미수를 보면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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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도 때리게 해드릴깝쇼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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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가 농을 농으로 받지 않고 진짜로 해 줄 것처럼 말하자 이번에는 설미수가 할 말을 잃었다. 만우라면 진짜로 그렇게 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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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습니다, 은공. 그저 몸 건강히, 그것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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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당연한 말씀을. 저, 이래봬도 저 믿고 따라온 사람들은 살뜰하게 챙깁니다요.”

만우에게서 전해져 온 따스한 기운과 그의 말이 담고 있는 신뢰가 하나로 합쳐지자 설미수는 정말로 어깨에 얹고 있는 천근만근 되는 짐을 내려놓은 듯한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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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포기인가?’

어쩌면 포기일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 물러날 곳도 없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면 어떻고 또 저러면 어떠랴.

설령 포기를 했기에 마음이 가벼워진 것일지라도, 만우가 건사할 수 있다 하였으니 지금까지 그랬듯 만우만을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넓디넓은 자미원 안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큰 자미원 어디에 사람이 있다는 것인지 자미원은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것처럼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저 앞에, 사람이 개미처럼 보이는 거리에 웬 개미만 한 사람이 서 있지 않았다면 정말로 잘못 들어온 것이 아닌가 한 번 쯤은 생각을 해 보았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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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푸십쇼, 나리.”

만우는 이번에는 동군영의 말에 바짝 붙어서는 내공을 불어넣어 주었다. 본래 다른 사람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는 일은 격체전공이라 하여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기예 중에 하나였다.

본래는 똑같은 성질의 내공심법을 익힌, 사승지간이나 사제지간에만 가능하다고 알려진 것 중에 하나였다.

왜냐하면 이미 한 번 다른 이의 내공심법을 거쳐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은 개성을 띄게 되어 그냥 다른 사람의 몸에 불어넣게 되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그것을 마치 숨 쉬듯이 자유롭게 행했다.

간단하게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한 방법이고, 설미수나 동군영이 별도의 내공심법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칫하면 사람을 반병신으로 만들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기예였다.

만우의 무공이 그만큼 경지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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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 으음.”

동군영도 따스한 기운이 돌자 긴장이 풀리는 듯했다. 만우가 손을 떼는 순간 동군영이 만우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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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 자네는 긴장도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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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이 이럴진대, 어딜 가든 긴장이 되겠습니까요, 나리?”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동군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봤다. 만우가 무림인이기에 그런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에서 걸어오는 초절정 오인방을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온 몸이 굳은 설미수와 동군영만큼은 아니지만, 그 다섯도 누가 보더라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몸짓이 어색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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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이런 길을 걸었던 겐가?”

동군영은 만우가 말한 ‘길’이 궁금해졌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빤히 쳐다보다가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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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제가 무섭지 않나봅니다, 나리.”

만우는 동군영이 용접곡에서의 일로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하고, 칼을 든 자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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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지. 난 자네가 무서워.”

하지만 동군영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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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어찌하여 이놈의 길을 여쭤 보시는 겝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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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무서운 자네가 바로 내 가문의 복수를 해 주었네. 나 역시 여러 번 살려 주었고. 정작 자네의 손에 쥔 그 칼에 몇 번이고 구명의 은혜를 입었으면서 자네가 두렵다니 내 염치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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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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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자네의 길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네. 내가 무서운 것은 칼이지, 자네가 아니니까.”

만우는 동군영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가 진심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군영의 눈은 깊고 맑았다. 거짓을 말하는 자는 저런 눈빛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러니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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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의 길이라. 뭐 별것 없습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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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주마마까지 해서. 조선에 가서 셋이서 한 번 시간을 가져 봐야 하지 않겠나?”

그 말을 하면서 동군영은 만우를 응시했다. 만우는 그 눈빛을 받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동군영의 말인즉슨 조선까지 무사히 데려다 달라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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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께서 사신다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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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말고. 내 녹봉이 작지 않으니 자네와 옹주마마 술상 봐주는 것이야 일도 아니지.”

만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늦췄다. 그러자 자연스레 척일이 탄 말이 만우와 보폭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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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되는 게로군.”

설미수나 동군영과는 달리 척일이 맨 먼저 만우에게 꺼낸 말은 전혀 의외의 말이었다. 만우는 눈을 들어 척일을 슬쩍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이 노인네는 검보다는 혀를 놀리는 것에 더 소질이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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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잘 부탁드립니다요, 서장관 나리. 척 무사님도 그렇고.”

만우는 일부러 척일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는 슥 지나쳤다. 화경의 고수가 둘이나 붙어 있는데 그들을 걱정해 무엇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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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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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척일과 척사영을 보낸 만우가 발걸음을 늦춰 초절정 오인방의 옆에 붙자 그의 접근을 눈치 챈 감령과 문형일이 동시에 만우를 불렀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으나 만우는 이들의 상태가 눈에 훤히 보였다. 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것이 긴장했다는 티가 팍팍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만우 정도는 되는 고수여야 눈에 들어오는 것이지만, 초절정 오인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자미원을 걸으면서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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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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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긴장을 안 합니까. 산적질 하던 놈이나, 수적질 하던 놈이 황제가 사는 곳에 들어왔으니 말이오.”

감령이 긴장하지 않았다는 티를 내기 위함인지 필두까지 들먹였지만 만우의 눈에는 감령의 손끝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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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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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에 힘 풀고. 도를 쓴다는 놈이 손이 굳냐, 손이.”

감령의 눈에 눈물이 찔끔하고 났다. 만우가 날린 지풍이 손끝의 제일 아픈 부분을 딱 하고 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것이 만우가 지풍을 날리는 솜씨가 점점 더 귀신처럼 변해가 이제는 날리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얻어맞은 감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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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굳이 지풍을 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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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뚫어 줘?”

휘오오오!!

만우가 손가락을 들어 올리자 그 끝에 나선으로 뭉친 공력이 이글거렸다. 지금처럼 때리기 위함이 아니라 정말 사람의 몸을 뚫기 위한 지풍이 일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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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호오.”

그것을 본 감령은 찍 소리도 하지 못하고는 자신의 손가락 끝을 불어 보이며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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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그것을 본 슌스케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그러자 곧이어 문형일과 필두, 마익후까지 웃음을 터뜨리자 초절정 오인방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풀렸다.

감령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단순무식하기 그지없어도 이런 식으로 긴장을 풀어 주기에는 녀석만 한 역할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초절정 오인방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험이 있다는 것도 한 몫을 했다.

이런 이들은 과도하게 긴장할지라도 그 긴장 때문에 몸이 굳거나 하여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는 일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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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방매.”

마주는 마지막으로 수레에서 내려 오인방 가운데서 걷고 있는 간장과 방매를 불렀다. 그러자 바짝 긴장한 표정의 간장이 고개를 휙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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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덩치는 산만 한 데다가 노안인 녀석이 형님이라 부르는 것은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만우는 간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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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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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긴장이라니요. 저, 전 세계제일검이 된다고 하셨던 형님을 믿습니다.”

말을 더듬으면서도 긴장을 안 했다고 우기는 간장의 모습에 만우가 피식하고 웃었다. 세계제일검, 간장이 만우만을 위해 검을 만들겠다고 하면서 꺼낸 말을 아직도 간장은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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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검이라 불리신다 했습니다. 그럼 이제 세계제일검이라 불리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간장은 긴장과 함께 바짝 기합도 든 듯했다. 뭐 이 정도면 긴장으로 인해 주변에서 하는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기를 살짝 불어넣어 주는 것을 끝으로 만우는 방매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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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대답도 안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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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방매는 만우가 불렀지만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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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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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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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봐!”

방매는 무려 옹주였지만 만우는 동군영이나 설미수와는 달리 대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방매 스스로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도 했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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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 있는 궁이랑 뭐가 다른지 좀 보려고 한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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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도 안 되냐 넌?”

만우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방매를 쳐다봤다. 그러자 방매가 콧방귀를 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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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하라고? 여기 온 게 너 믿으라고 말하려고 온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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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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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해서 뭐해. 내가 긴장한다고 뭐 달라질 것도 없고. 난 늘 하던 대로 하려고.”

방매가 씩 웃으면서 만우의 팔을 찰싹하고 때렸다. 졸지에 한 대 맞은 만우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방매를 쳐다봤다.

정말 어떻게 생겨먹은 머릿속인지 열어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았다. 내공도, 무공도 쥐뿔도 없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긴장을 하나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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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만우가 슬쩍 방매의 뒤에 선 호선에게 눈짓을 했지만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방매를 위해 호선이 도술이라도 부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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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 아저씨들처럼 긴장 바짝 해서 벌벌 떨고 그럴까?”

그런 만우의 기색을 귀신 같이 눈치챈 방매가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는 자신의 가슴팍까지밖에 오지 않는 방매를 내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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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봤자 안쓰럽기만 하겠지.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 차라리 이렇게라도 하면.”

방매는 등 뒤에 들쳐 맨 봇짐을 들썩거리며 다시 고쳐 멨다. 그런데 그 봇짐의 끈을 잡은 손바닥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긴장하지 않은 척을 한 것뿐이지, 긴장하지 않은 것이 아닌 것이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손이 보였다. 하지만 만우는 그 손을 봤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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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장하다.”

슥슥.

만우는 방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두어 번 쓰다듬은 만우가 손을 내리자 방매가 파라락 하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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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다 큰 아녀자의 머리를 외간 남자가 쓰다듬어. 죽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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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녀자셨어?

만우의 놀리는 소리에 방매가 발끈하자 만우가 놀라는 척을 하면서 도망갔다. 어쨌든 진짜 제대로 한 번 판을 벌이기 전에 한 번씩 점검을 한 것인데, 생각보다 다들 상태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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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한다.]

만우가 끝에는 전음으로 호선에게 부탁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데 있어 호선보다 든든한 우군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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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님께 너무 심하게 하지만 말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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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거 보고.]

만우가 씨익 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때 문득 만우의 눈에 어둑어둑해지며 구름이 잔뜩 몰려오고 있는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바로 저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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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놈의 앞길에 먹구름을 팍팍 뿌려 주지.’

만우가 다시 사행단의 맨 앞으로 나가 설미수의 앞에 서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까마득히 멀리 보이던 인형(人形)이 이제는 손에 잡힐 것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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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정화라 하옵니다.”

그 인형, 가까이서 보니 수염 없이 매끈한 얼굴의 환관이었다. 정화라 불린 환관이 허리를 숙이면서 길게 읍을 했고 설미수가 정화에게 대표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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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설미수라 하오.”

사행단의 대표는 설미수다. 그렇기에 설미수가 나섰지만 정화는 그의 말에는 반응하지 않고 되레 숙였던 몸을 일으키며 만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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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께서 기다리고 계시옵니다.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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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는 노골적으로 설미수를 무시한 채 자신에게만 말을 하는 정화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 정화의 눈빛 깊은 곳에서는 자신을 향한 적개심이 뚜렷하게 느껴졌기에 만우는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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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읍.”

만우는 한 번 심호흡을 했다. 그러자 뒤에서 만우를 향해 쏟아지는 걱정스런 시선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항상 뒤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이런 시선을 받는 느낌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

만우는 말을 하기 전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모두에게 이제부터 내가 사고를 칠 것이니, 놀라지 말라는 눈빛을 보낸 다음 고개를 돌렸다.

이들이 만우의 눈빛을 이해했건, 안 했건 별로 상관없었다.

어차피 저지를 생각이었으니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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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으로 드…….”

정화가 만우를 향해 안으로 들라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정화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재촉하려는 순간 만우가 한 발을 들어 강하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쩌저저저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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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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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와아앗!!!”

그러자 만우가 진각을 밟은 곳부터 시작해 반경 10장 내의 바닥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나더니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땅이 흔들리자 놀란 사행단 너머에서는 만우로부터 시작된 진동이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파문이 일더니 단단한 돌을 깐 바닥이 부서져 나가며 말 그대로 땅이 파도치듯이 출렁였다.

쿠과가가각!!!

그렇게 퍼져 나간 원형의 파문은 담벼락에 균열을 내고 심지어 어느 곳은 벽이 무너질 정도였다.

특히 만우의 바로 앞에 서 있던 정화는 거의 혼이 나간 얼굴로 만우를 쳐다봤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은 핏기가 하나도 없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만우가 일으킨 파동으로 인해 온몸이 위아래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던 정화는 귀신을 보듯이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가 벌인 일이 당최 사람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의 신위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것을 자미원 한복판에서 대놓고 보란 듯 선보였으니, 정화가 혼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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