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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연경 입성 (3) (337/400)

337. 연경 입성 (3)2022.03.22.

16553277440601.jpg“정녕 이리 들어가도 되는 것입니까?”

설미수가 질 좋은 철목으로 만들어진 두텁고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문 앞에 선 만우를 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만우는 그런 설미수를 돌아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77440606.jpg“아니 될 일이 있습니까요, 나리.”

16553277440601.jpg“하나 이…… 이건…… 남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가는 것일지언데.”

설미수는 말을 타고 들어가도 될 정도로 거대한 문을 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그도 그럴 법 한 것이 설미수의 눈에 보이는 그 객잔의 크기는 가히 황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황룡객잔. 5층 높이의 이 객잔은 여행객들이 거쳐 가는 객잔이자 높으신 귀족나리들을 위한 호화객잔이었다. 그 때문에 황금으로 도색이 된 기와에 황금 문양이 적힌 기둥, 거기에 지붕에는 화룡정점으로 황금용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러니 황룡객잔이란 이름이 딱 어울렸다.

16553277440601.jpg“게다가 황룡객잔이면…….”

만우는 씩 웃어 보였다. 이 정도 규모의 객잔을 연경에서 운영한다는 것은 한두 푼 드는 일이 아니다. 이 말인즉슨 돈이 많은 연경의 토호나 세가 같은 곳에서 운영한다는 뜻이다.

16553277440606.jpg“황보세가에서 관리하는 곳이지요, 나리.”

그런 만우의 말에 뒤에서 억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보세가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무림인이란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기에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77440624.jpg“그, 그 황보세가입니까 대장?”

감령이 뒤에서 두두두 달려 나오며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는 그런 감령을 보고는 히죽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77440606.jpg“그렇다면?”

황보세가. 무림 오대세가의 일각이지만 무림보다는 관가에 더 많은 세가인들이 진출해 있는 독특한 위치의 세가가 바로 황보세가였다.

16553277440601.jpg“황보세가면…… 설마. 대장군가(大將軍家)…….”

16553277440606.jpg“아. 설마 명의 대장군이 황보 씨입니까요?”

만우는 몰랐다는 듯 순진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만우는 진짜로 몰랐다. 조선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명나라의 대장군이 누구인지는 만우가 알 바가 아니었으니까. 그 사이 황보세가에서 대장군이 나왔다고 해도 사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신력(神力)으로 소문난 세가 중 하북팽가에 유일하게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곳이 바로 황보세가였다. 그들은 그 타고난 신력을 바탕으로 무과(武科) 쪽에서 빛을 발했다. 그 때문에 자연스레 무림에서 황보세가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그것은 상호불가침 조약을 의식한 황보세가에서 조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황보세가의 근거지가 바로 하북팽가와 같은 연경. 대장군가라 불릴 정도가 된 황보세가가 황제를 따라 연경에 자리를 잡은 것이 만우가 조선으로 들어간 이후였다. 그 전부터 연경에 여러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황보세가였다. 대장군가인 황보세가에서 운영하는 최고급 객잔! 무림의 오대세가이자 대장군가인 황보세가에서 운영하는 최고급 객잔이란 것에 연경의 돈 좀 있다 하는 부자들이 매일 같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곳이 바로 황룡객잔이었다.

16553277440601.jpg“그, 그곳에 들어간다는 건 명의 대장군과 척을 지시겠다는 뜻입니다, 은공!”

만우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설미수를 쳐다봤다.

16553277440606.jpg“지금 이 상황에서 대장군 하나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무에 그리 걱정이 되시는 겁니까요?”

16553277440624.jpg“대장! 그 황보세가인데 너무…….”

설미수뿐만 아니라 감령과 필두 역시 설미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녹림과 장강을 다스리는 총채주였던 감령과 필두에게 가장 두려운 세력 중 하나가 바로 관군이다. 산적과 수적이 난립한다는 것은 곧 유통의 비효율성과 치안이 나빠진다는 뜻이기 때문에 관에서는 매년 주기적으로 토벌군을 일으켰다. 그때마다 토벌군의 선봉에 선 것이 바로 황보세가의 무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령과 필두는 황보세가란 이름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16553277440606.jpg“아니, 황제가 우리를 이리 홀대하는 마당에 대장군이 뭐라고.”

만우가 한 말에 설미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 보니 만우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미 황제는 사행단과 대화를 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사행단이 들어오는 것을 모르게 하겠다고 아예 연경의 일부분을 통째로 비워 버릴 정도이니 말이다. 그런데 대장군가? 명에는 그런 대장군만 다섯 명도 넘는다. 땅이 워낙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16553277440601.jpg“은공의 말을 들으니 또 그렇기도…….”

설미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끝을 흐렸다. 감령과 필두 역시 비슷한 표정이었다. 만우는 그런 설미수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씩 웃으며 말했다.

16553277440606.jpg“이렇게 대놓고 홀대를 하는데, 먹고 자는 것은 확실해야하지 않겠습니까요, 나리?”

16553277440601.jpg“음…….”

황룡객잔의 최고층에서 하룻밤을 묵어간다면 그 가격이 무려 금 한 냥이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금액이지만 매일 같이 방이 없어 사람들을 못 받을 정도였다. 비록 점소이나 숙수는 없어 대우는 형편없겠으나, 묵어갈 환경이 그 정도로 좋다는 것에 설미수도 확 마음이 동했다. 될 대로 되라고 생각한 지 꽤 되었으니 사실 황룡객잔을 깨고 들어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까지 오면서 워낙 험한 일도 많이 겪고, 노숙도 많이 하였기에 따뜻한 목욕물과 푹신한 침구가 그리워지는 것이 없지 않아 있기도 했다.

16553277440601.jpg“들어가시지요!”

설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설미수를 한 발자국 뒤에서 동군영이 불안한 듯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연경까지 들어와서 노숙을 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6553277440606.jpg“문 열겠습니다요, 나리.”

만우가 씩 웃으며 손바닥을 두터운 철목으로 만들어진 문에 가져다 댔다. 철목은 그 강도가 강철에 비견할 정도라 하여 그 가격이 같은 무게의 철보다 더 비싼 목재였다. 대신 불에도 잘 타지 않고, 웬만한 충격에는 흠집도 가지 않아 이런 비싼 건물의 자재로 종종 사용되기도 했다. 쩌저적-!!!! 하지만 그런 철목에 만우가 손바닥을 올려놓고 힘을 한 번 주자 철목이 결대로 쩌적 쪼개지더니 그 뒤의 자물쇠가 허무하게 부서져 나갔다. 후두둑! 탁탁! 만우는 손바닥에 묻은 나무쪼가리들을 털어 내며 뒤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설미수와 동군영이 그것을 보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 둘의 표정은 안중에도 없는 방매가 수레에서 내려서는 달려 나왔다.

16553277469693.jpg“우와. 여기가 객잔이야? 객주랑은 비교도 안 되게 크네??”

나름 매분구이자 보부상으로 조선 이곳저곳을 다녀 본 방매의 감상이었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빤히 쳐다봤다.

16553277440606.jpg“맞다. 너 꿈이 이런 객주 차리는 거라고 했지?”

16553277469693.jpg“꿈이 아니야. 돈 조금만 더 모으면 할 수 있다고.”

방매는 허리에 양손을 올려 놓고는 콧바람을 크게 내뿜었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77440606.jpg“아서라. 이런 객잔 운영하는 데 얼마나 신경 쓸 게 많은데.”

만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만우는 이런 객잔 주인들이 난데없는 횡액을 당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봤었다.

16553277440606.jpg“크기가 어중간하면 외상 치고 나가거나 삼류 왈패 같은 놈들이 몰려들어서 맨날 소란 피우고. 여기처럼 크기가 크면 돈 많은 나리들 등쌀에 치여서 어휴.”

무림에서도 가장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바로 객잔이다. 애시 당초 각지에서 몰려온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거쳐 가는 곳이기에 필연적으로 사건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중에서도 제대로 된 정신이 박힌 이들이라면 자신들이 벌인 소란이나 끼친 피해를 보상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가 버린다. 손에 칼을 들고 바람을 내뿜는 이들에게 가서 보상을 해 달라고 요구할 간 큰 객잔 주인은 웬만해서는 없다.

16553277440606.jpg“여기처럼 어디 가문 하나 등에 업고 해야 돼.”

16553277469693.jpg“뭐야.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왜 기를 꺾어.”

방매가 특유의 기센 얼굴로 만우를 째려봤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대책이 없는 듯하면서도 무대포 같은 방매가 볼 때마다 웃겼다. 이상한 점은 그게 밉지 않다는 것? 뭐든 해낼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이 방매에게서는 항상 느껴졌다.

16553277440601.jpg“기를 꺾긴. 만우, 자네가 옹주마마를 도와드리면 되는 일이 아닌가? 헐헐헐.”

그때 귀신 같이 나타난 척일이 방매와 만우를 스쳐지나 황룡객잔 안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그런데 그게 바람이 되어서는 방매와 만우 사이를 뒤흔들었다.

16553277469693.jpg“하, 할아버지! 그게 무슨!!”

방매가 빼액 하고 소리를 지르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만우는 그런 척일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6553277440606.jpg‘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저 노인네는. 언제는 자기 손녀랑 엮으려고 하더니.’

이제는 숫제 저 노인네가 중매쟁이인지, 곡산척가의 태상가주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하지만 더 골 때리는 것은 바로 척사영이었다.

16553277498148.jpg“할아버님의 생각이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은공.”

16553277440606.jpg“에?”

만우는 그게 또 무슨 소리냐는 듯 척사영을 쳐다봤다. 척사영은 하늘재에서의 일로 만우에 대한 마음을 깨끗하게 접은 듯했기에 척일이 한 말을 듣고도 지극히 고요한 표정이었다.

16553277498148.jpg“천하제일인이 뒷배로 있는 객잔이라면, 황룡객잔 따위가 상대나 되겠습니까?”

16553277440606.jpg“……너마저 왜 그러세요.”

만우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척사영이 미미하게 웃으면서 척일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수레에서 내린 간장이 만우에게 다가와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16553277526638.jpg“형님. 어느 분이 형수님이십니까?”

16553277440606.jpg“너까지!”

16553277526638.jpg“전 옹주마마도 좋고, 척 무사님도 좋습니다.”

간장이 미워할 수 없는 얼굴로 해맑게 웃어 보였다. 저렇게 웃으면 꼭 제 나이대 얼굴이 나오는지라 만우는 한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16553277440606.jpg“들어가, 들어가!”

16553277526638.jpg“알겠습니다, 형님. 근데 그거 아시죠? 전 언제나 형님 편입니다! 후하하하핫!”

간장이 만우의 발에 엉덩이를 얻어맞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껄껄 웃으면서 사라졌다. 그런 간장에 이어 호선이 나른한 목소리로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77526663.jpg“전 방매 동생이요.”

16553277440606.jpg“선주 얻었다고 이제 기어오르지, 너도?”

흠칫. 만우가 눈을 흘겨보자 호선이 흠칫했다. 선주를 얻었다고는 하나 호선은 이 정도로는 만우를 절대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나마 만우에게 조금이라도 비벼 보려면 글쎄, 낙선하기 직전의 수준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앞으로 최소 수백 년은 수행을 하여 선주를 키워야만 그나마 만우에게서 도망이라도 칠 수 있다는 소리다. 호선은 입을 꾹 다물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빠바바박!!!

16553277440624.jpg“커헉!”

16553277555272.jpg“아욱!”

16553277555278.jpg“으악!”

16553277555283.jpg“…….”

호선이 들어간 후 만우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올려서는 정확히 네 번을 튕겼다. 그러자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들 중 넷이 이마를 감싸 쥐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16553277440606.jpg“웃어?”

16553277440624.jpg“아니 저흰 왜……”

16553277555272.jpg“왜 우리한테 화풀이를…….”

16553277555278.jpg“너무하십니다, 대장.”

16553277555283.jpg“…….”

감령과 필두, 문형일과 마익후가 사이좋게 이마를 감싸 쥐고는 만우에게 반항했다. 그나마 마익후는 묵묵히 가만히 뒤편에 서 있었을 뿐이지만 눈에 반항기가 가득한 것이 억울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억울하면 어쩌겠는가. 만우가 때리면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거늘.

16553277440606.jpg“웃는 거 다 봤다.”

16553277555278.jpg“잘 어울려서 그런…… 꾸엑!”

우당탕-! 문형일이 저 멀리 뒤로 나가떨어졌다. 만우는 검지를 들어 올린 채 섬뜩한 눈으로 그 넷을 쳐다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16553277440606.jpg“뭐. 할 말 있어?”

16553277584162.jpg“…….”

방매와 관련된 일이라면 음절 하나라도 용납지 않겠다는 만우의 으름장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바짝 언 그들을 보고 흡족한 미소를 지은 만우가 턱짓을 했다.

16553277440606.jpg“들어가.”

후다닥-!! 나가떨어진 문형일을 제외한 셋이 안으로 후딱 뛰어 들어갔다. 여기서 더 개겼다가는 오늘 만우와 하루 종일 진한 몸의 대화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직감이 왔기 때문이다. 명 천자가 호시탐탐 노리면서 대놓고 들어오라며 수작을 부려 놓은 곳에 들어온 그들이다. 굳이 오늘 험한 일을 자초하지 않더라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미래에 보낼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재빨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16553277584172.jpg“주군.”

16553277440606.jpg“쯧. 그놈 아무데나 던져 버리고 쉬어.”

16553277584172.jpg“예.”

그나마 다섯 명 중 제일 침착하고 과묵한 것이 바로 슌스케였다. 상왕과 만우 앞에서 날뛰던 것이 언제인가 싶을 정도로 가장 많이 변한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슌스케는 기절한 문형일을 어깨에 들쳐 메고는 안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만우는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을 쳐다봤다.

16553277440606.jpg“나리들.”

설미수와 동군영. 그 둘은 아직까지도 말 위에서 내리지 않은 채였던 것이다.

16553277440601.jpg“허어…….”

16553277584192.jpg“무림인들은 간이 무슨 돌로 되어 있는 겐가? 만우 자네는 긴장이 되지도 않아?”

동군영이 설미수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 주었다. 만우는 여전히 소심한 두 문사(文士)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77440606.jpg“긴장을 하면 뭐 달라집니까요?”

16553277584162.jpg“…….”

16553277440606.jpg“아까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대화는 황제가 먼저 거절하였으니, 이제 제가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고. 걱정 마십시오. 원래 사내들은 싸우면서 오해도 풀리고 친해지는 법이지 않습니까요.”

만우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설미수와 동군영은 그런 만우의 반응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말 등에서 내렸다. 만우의 사고방식은 아무래도 그 둘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어디 어린 남아들끼리 투닥거리면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명 최고의 권력자를 놓고 하는 말이란 것에 어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16553277584192.jpg“어르신. 어르신도 저랑 같이 검을 익히시지 않겠습니까?”

그런 만우를 지나쳐 황룡객잔으로 들어가며 동군영이 설미수에게 말했다. 설미수는 그렇게 물어보는 동군영의 말을 단박에 거절하지 못하고는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살고 싶으니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16553277440601.jpg“나는 활 빼고 다뤄 본 적이 없어서. 되나 모르겠네만…….”

16553277584192.jpg“환복하고 나오시지요, 나리. 저도 처음에는 안 됐는데…….”

만우는 황룡객잔 안으로 사라지는 두 문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그 둘이 탔던 말고삐를 황룡객잔 앞에 놓인 말뚝에 가져다 매었다. 그렇게 푸륵거리는 말을 말뚝에 매어 놓고는 물까지 크게 한 바가지를 떠 와 물통을 채워 넣은 만우는 젖은 손을 탈탈 털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대로변을 쳐다보고는 허리춤에 손을 얹고 배에 힘을 준 다음 입을 열었다.

16553277440606.jpg[선착순 한 명.]

공력이 실린 만우의 목소리가 황룡객잔을 제외한 텅 빈 연경 시내에 널리널리 울려 퍼졌다.

16553277440606.jpg[딱 한 명이랑만 대화해 준다. 그 한 명이 누구일지는 너희들끼리 알아서 정해. 아.]

분명 아무도 없는 듯 보였던 연경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곳에 대고 계속해서 말했다.

16553277440606.jpg[허락 없이 황룡객잔 문 넘어오는 놈은 허락하고. 먼저 넘어오는 딱 한 놈 역시.]

만우의 목소리가 스산해졌다.

16553277440606.jpg[무조건 죽일 테니까. 응?]

덜컹-!!! 내가중수법에 의해 걸레짝이 된 문을 닫으며 만우가 아무도 없는 허공을 보며 싱긋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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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연 황제가 기거하는 연경다웠다.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고 감각에는 느껴지지도 않았지만 만우는 분명히 느꼈으니까. 연경 곳곳에 무수히 퍼져 있는 보이지 않는 눈들이, 그것도 각기 다른 의도를 품은 전부 다른 눈들이 빽빽했다. 어쨌거나 만우의 으름장 때문에 그 조용한 듯 보이던 연경의 그림자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

16553277440601.jpg“황룡객잔?”

16553277440601.jpg“감히!”

우직!! 황룡객잔에 만우와 조선의 사행단이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에 목재로 만들어진 탁자 하나가 그 수명을 잃고는 옆으로 삐걱 하고는 쓰러졌다. 작은 탁자 위를 그냥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을 뿐인데 목재로 만들어진 탁자의 다리가 우직 하면서 단박에 부러진 것이다. 와장창창!

16553277440601.jpg“힘 좀 아껴 쓰거라. 벌써 몇 번째냐?”

하지만 그 자리에 모여 앉은 이들 중 그런 것을 보면서 타박하기는 해도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없었다. 일단 특이한 것이 찻상 주변으로 모여 앉은 이들의 어깨넓이가 일반인의 2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듯했다. 거기에 워낙 두터워 칼도 박히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목과 아녀자의 허리둘레 정도 되어 보이는 우람한 팔뚝, 거기에 그들이 앉은 의자가 불쌍할 정도로 일반인의 1.5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까지. 그 덩치에 군살이 하나도 없이 딱 봐도 의복 위로 드러나는 갑옷 같은 근육들로 무장한 그들은 딱 봐도 비슷하게 생긴 삼형제였다.

16553277440601.jpg“북진무사나 되는 놈이 말이야.”

16553277440601.jpg“형님. 사람이 변하면 죽는다더이다.”

형의 타박에 탁자를 부순 북진무사, 황보경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황보경을 타박했던 대장군 황보윤이 빙글거리며 웃었다.

16553277440601.jpg“하긴. 네가 안채 대들보를 무너뜨렸을 때보다는 많이 얌전해졌구나.”

16553277440601.jpg“또 그 얘기요? 그거 형님이랑 장난치다 그렇게 된 거 아니요!”

신력(神力)의 황보세가라는 말답게 북진무사 황보경과 대장군 황보윤은 외형 자체가 누가 보더라도 황보세가의 사람이었다. 키는 기본이 7척 이상에 어릴 때부터 또래에 비해 두 세배는 더 강한 근력을 가지고 태어나 천부적인 무(武)의 기본 조건 중 하나를 타고 태어났기에 황보세가는 당당히 오대세가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16553277440601.jpg“그만.”

그때 황보세가의 가주인 유해권(流海拳) 황보천이 입을 열었다. 장자인 황보천과 둘째인 황보윤은 초절정 고수이고, 북진무사인 셋째, 황보경이 화경으로 세가 전체가 짱짱했다. 그 정도이니 황보세가가 무림맹과 황궁 양 쪽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가능했다.

16553277440601.jpg“아니, 검주고 뭐고 그 개자식이 감히 황룡객잔을 따고 들어갔다는 건 우리 황보세가를 무시하는 일 아닙니까, 형님?”

셋 중에서 가장 철이 없고 성격이 급한 사람이 바로 셋째인 황보경이다. 이런 다혈질적인 황보경의 성격이 신력을 바탕으로 하는 황보세가의 무공과 잘 맞아 형제 중 가장 먼저 화경의 경지에 올라선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금의위의 북진무사로 황제의 총애를 받는 무관이기에 무림의 일에는 끼어들 수 없다는 정도? 무림십좌에는 이름을 알리지 못했지만 화경의 고수를 보유하고 있기에 황보세가의 위상은 불존을 보유한 소림이나 암존을 보유한 당가, 무존을 보유한 남궁세가와 창주를 보유한 상산조가와 비슷했다.

16553277440601.jpg“그래서. 너는 할 일이 있지 않으냐. 폐하께서 내리신 황명도 있고.”

황보경은 당장이라도 금의위를 몰고 황룡객잔으로 향할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지만 그런 황보경을 진정시킨 사람이 바로 황보윤이다. 대장군 황보윤. 가진 바 무력뿐만 아니라 문과 무를 겸비하여 북방의 오랑캐들을 단단히 틀어막은 공으로 대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무장이다. 그는 다혈질적인 황보경과는 다르게 차분했기에 그의 한 마디에 황보경이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면서도 결국 엉덩이를 다시 붙이고 앉았다.

16553277440601.jpg“그러면 그냥 보고만 있자는 말씀이십니까? 큰형님.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황보천은 셋 중에서 성격이 제일 인자했다. 등치는 산만하지만 마냥 어리게만 느껴지는 황보경을 보며 황보천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16553277440601.jpg“허면, 황명을 거역하자는 말이냐?”

16553277440601.jpg“거역이 아닙니다, 큰형님. 폐하께서 연경 백성들에게 소개령(疏開令)을 내리신 것은 결국 검주, 그 광오한 자를 오직 폐하께서만 보실 수 있는 곳에서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16553277440601.jpg“안다. 그래서 너와 남진무사까지 하여 창위의 모든 이들이 검주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으냐.”

16553277440601.jpg“폐하께서는 검주를 제거하기 위해 대명군까지 동원하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형님?”

황보경이 황보윤에게 말했다. 황보윤은 그런 황보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대답할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가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시기에 황보윤이 연경에 와 있을 이유가 없다. 대장군 황보윤이 이끄는 1만의 군대가 이미 황제의 임시거처인 자미원(紫微垣)과 연경 곳곳에 분산하여 대기 중이었다. 특히나 황보윤의 1만 군세는 북방에서 오랑캐들을 맞아 각종 전투에 단련된 정예병 중 정예병인 데다가 대장군 황보윤의 휘하에 황보세가의 무인들이 많이 군에 투신하였기에 황제가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황제가 제대로 마음을 먹었다는 뜻이다.

16553277440601.jpg“북진무사인 네가 황명 없이 먼저 움직인다? 반역이다.”

하지만 황보윤은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나 북진무사인 동생의 명령권은 분명히 천자께 있다. 한데 그것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곧 반역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황보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77440601.jpg“아니지요, 형님. 큰형님께서 움직이시면 되는 일이 아닙니까?”

16553277440601.jpg“……세가에서 말이냐?”

16553277440601.jpg“현무단에 세가의 아이가 있다 들었습니다. 벽암각이란 소리도 듣고 있다던데.”

16553277440601.jpg“군이를 말하는 거구나.”

황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군이면 황보세가의 차세대 고수로 이립이 갓 넘은 나이에 절정의 극에 달한 귀한 인재다. 무림맹의 사대 전투조직 중 현무단이 바로 황보세가의 무인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물론 관과의 까다로운 관계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현무단이 실전에 나선 적은 없지만 말이다.

16553277440601.jpg“예. 이미 맹주와 군사가 검주에게 대차게 깨졌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무능한 맹주와 군사는 이번 패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 순리 아니겠습니까?”

16553277440601.jpg“……경이 넌.”

16553277440601.jpg“관과 무림, 이 두 개를 다 손에 넣는 겁니다. 큰형님!”

황보경이 콧바람을 흥 하고 내뿜었다. 황보경의 야망은 매우 컸다. 이미 상당수의 세가의 무인들이 관에 투신한 상태이지만 황보세가가 천하제일세가로 발돋움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왔다고 황보경은 믿었다. 천혜대사와 제갈명공의 패배를 잘 수습하는 이가 곧 다음 대 맹주가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16553277440601.jpg“칩시다. 검주.”

황보경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황보경의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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