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천하제일이란 이름 (1)2022.03.05.
“용접곡이라.”
만우는 취구개가 직접 와 전달했다는 서신을 받아들고는 피식 웃었다.
“용접곡이라 하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은공.”
주변의 지리에 해박한 설미수가 만우에게 그리 말했다. 만우는 어쩌면 좋겠냐는 얼굴로 설미수와 동군영을 빤히 쳐다봤다.
“왜 그리 보는 겐가?”
동군영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만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동군영은 이미 만우가 왜 그리 쳐다보는지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일정이 촉박하다 들었습니다요.”
다그닥, 다그닥. 사행단은 느긋하게 연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연경까지 사흘 내의 거리였기 때문에 조금만 더 가면 가시권에 들 터였다.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
말이 나아가는 속도가 거의 기어가다 싶이 하고 있는 데도 동군영과 설미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둘을 쳐다봤다.
“그러면 조금 더 빨리 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요들?”
“말도 힘들지 않은가. 그러니 천천히 가게 내버려 두어야지. 나나 대인은 만우 자네와는 달라서 이 두 발로 걸었다가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걸세.”
“아니, 아니.”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농은 그쯤에서 그만들 두십쇼. 같이 가시려는 겝니까요?”
연경이 사흘 내의 거리까지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리 늑장을 부리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이놈이 걱정이 되십니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굳이 무림인이 아니어도 알 법했다. 특히나 심양부터 시작해 산해관을 거쳐 오면서 명에서 결코 만우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에 관료로 눈치를 키워 온 설미수나 동군영이 모를 리가 없었다.
“걱정이라니. 만우 자네가 어디서 맞고 올 작자도 아니고.”
동군영이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크게 홰홰 저었다. 설미수 역시 그런 동군영에게 장단을 맞춰 주었다.
“감히 은공을 걱정하다니요. 어불성설이지요. 천하제일로 불리시는 분인데.”
만우의 무(武)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에 특히나 설미수는 일말의 의구심도 가지지 않았다. 조 씨 부인을 호랑말코의 사기에서 구해 주기까지 한 은인이니 말이다.
“다 보입니다.”
문제는 그 둘의 너스레가 만우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였다. 만우는 이번에는 척일과 척사영을 쳐다봤다.
“뭐라 말 좀 하지?”
동군영과 설미수에게는 역졸로서 말을 했지만 척일과 척사영에게는 검주로서 말을 한 만우였다. 척일은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헛헛 하고 웃었다.
“무엇을 말인가?”
“저 둘은 그렇다 치고. 그쪽이랑 우리 척 무사님은 그래도 알 건 알 텐데?”
설미수와 동군영이야 아무리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상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척일과 척사영은 다르다. 이 사행단에서 만우 다음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 이 둘이었고, 이 둘은 벽을 넘은 초인들이다. 그러니 설미수와 동군영에게 이 둘이 장단을 맞추는 것이 더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이다.
“무림맹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던 간에 본주에게는 닿을 수 없다. 그것을 의심치는 않을 텐데.”
만우의 말은 광오했다. 하지만 그냥 광오하다고만 하기에는 만우가 지금까지 보여준 결과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사행단에서 만우의 말을 광오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척일도 마찬가지다.
“의심하지는 않지. 그러고도 의심을 하면 눈구멍이 옹이구멍이란 소리를 들어도 싼 놈일 것이고.”
“그런데 왜.”
만우는 설미수를 힐끗 쳐다봤다.
“왜 굳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려 하냐는 말이다.”
설미수와 동군영이 일부러 말고삐를 자꾸만 당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만우를 혼자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아마 그 이유는 둘이 만우를 걱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우는 그것이 어이가 없었다. 진인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설미수와 동군영, 그 둘의 걱정을 살 정도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홀로 가는 것이 편하지. 뒤탈이 없으니까. 사실상 저 둘이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림맹에서는 필시 무언가 수작을 부려 놨을 것이다. 무림맹은 굳이 서신에서 그것을 숨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을 알면서도 만우가 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무인이니까. 무인이란 때로 가시밭길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하는 법이다. 또한 천하제일을 논하는 자신이 무림맹의 수작 따위가 두려워 피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피할 생각이 들려거든 무림맹의 수작이 두렵거나 걱정이 되어야 하는데 무림맹이 두렵다는 생각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헛헛헛. 그러는 이유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네만.”
“두 가지나?”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동군영과 설미수가 만우가 가려는 곳에 가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 무림맹이 수작을 부렸다면, 그곳에서 살려 보낼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란 것에 손목을 걸 수도 있는 만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두 가지나 있다?
“하나. 조선에서는 조천이라 하여 사행단을 보냈으나 명의 천자는 검주, 그대를 압송해오라 명을 내린 것이니.”
“…….”
“한데 자네가 없이 연경에 들어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명 천자의 진노가 사행단에 떨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만우는 침음성을 흘렸다. 무림맹의 수작에 얽히면 사행단이 위험할 것이라는 것만 생각했지, 자신이 없어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란 소리였기 때문이다.
“둘. 혹여라도 그대의 구명줄이 되어주기 위함이지.”
“……내 구명줄?”
“걱정을 하는 걸세. 검 위에 살아간다는 건 저들에게는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설미수와 동군영의 눈에는 제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고 해도 결국 칼을 맞으면 죽는 그들과는 다르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도 조선의 사행단이라 하면 저들에게서 자네를 한 번쯤은 구명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
“무슨. 그놈들이 그렇게 친절할 리가 없는데.”
“그런 것은 자네나 아는 것이겠지. 나리들이 어찌 알겠는가?”
만우는 후-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결국 자신이 없이 연경에 가도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고, 만우가 걱정이 되니 함께 가겠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만우가 설미수와 동군영을 쳐다보자 그 둘이 시선을 피했다. 척일의 말이 맞다는 뜻이리라.
“하우으으.”
만우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동군영이 슬쩍 말을 몰아서는 만우의 곁에 붙었다.
“걱정이 되는가?”
“걱정이 아니라.”
만우의 눈빛이 바뀌었다.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눈빛이었다.
“가차 없이 베어야 할 이들이 늘어난 것 같아 저들의 명복을 잠시 빌어준 것뿐인뎁쇼.”
“……어?”
그리 말한 만우가 성큼성큼 걸어가서는 설미수가 탄 말의 고삐를 그러쥐었다. 동군영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만우가 한숨을 내쉰 것이 어떻게 하면 사행단을 지킬 수 있을까가 아닌,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을 적에게 명복을 비는 중이었다는 것이 뭔가 오싹했기 때문이었다.
“뭐합니까요, 나리. 용접곡으로 어서 안내나 해 주십쇼.”
*****
[용접곡으로 들어가거든.]
흠칫! 문형일이 퍼뜩 놀라서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데 문형일과 같이 고개를 치켜든 이들이 있었다. 감령, 필두, 마익후, 그리고 슌스케. 만우의 전음이 무려 다섯 명에게 동시에 울려 퍼진 것이다.
‘어기전성(御氣傳聲)!’
전음 정도의 수법은 초절정만 되어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하나 전음은 소리가 다른 이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입술을 달싹여 소리를 내보내야 한다. 하지만 어기전성은 그보다 더 윗단계의 전음이다. 입술조차 달싹이지 않는 경지의 전음으로 공력이 제어와 수발이 고도로 경지에 다다르지 않았다면 감히 흉내조차도 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어기전성이다. 동시에 전음은 한 명에게만 보낼 수 있지만 어기전성은 동시에 여러 명에게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만우는 공력에 음(音)을 실어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에게 동시에 보냈다.
[너희 다섯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서지 말고 설 대인, 동 부사, 방매, 간장의 곁을 지켜라.]
[예, 대협.]
문형일이 고개를 까닥 숙이며 만우의 뒤통수에 대고 대답했다. 만우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설미수의 말고삐를 잡고 천천히 걸어 나갔다.
“……보이느냐?”
“…….”
그런 만우의 발걸음은 신선이 걷는 것처럼 유유자적하기만 했다. 하지만 척일은 그런 만우의 뒷모습을 보며 척사영에게 속삭였다.
“보입니다.”
“잘 봐 두거라.”
다른 이들, 심지어는 초절정에 오른 감령 등의 고수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지만 화경의 고수인 척일과 척사영의 두 눈에는 어렴풋하게 보였다. 아무렇게나 발을 내딛는 것처럼 보이는 유유자적한 만우의 발걸음이 사실은 용접곡 내에 터질 것처럼 잔뜩 뭉친 첨예한 기파를 연신 흩어 버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만약 만우가 기파들을 흩어 놓지 않았다면 화경에 다다른 척일과 척사영도 용접곡 안에 무언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만우가 기파를 흩어 놓음으로 인해 저 안에 무언가 있다는 것이 어렴풋하게 느껴진 것이지, 사실 아직도 척일과 척사영의 기감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대협.]
그런 만우의 귓가로 향긋한 선기와 함께 호선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엄밀히 말하면 무공에서의 전음은 아니었고 도술의 일종이었으나 어쨌거나 효과는 비슷했다.
[느껴지는 모양이지?]
척일과 척사영도 자신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꼈을 뿐, 눈치 채지 못했다. 하지만 호선은 눈치챈 듯하였기에 만우가 제법이라는 듯 씩 웃었다.
[어찌하여 그물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시는 건가요.]
청령단으로 작게나마 선주를 만들어 낸 호선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또한 공력과는 다른 선기를 다루었는데, 그 선기는 공력보다 몇 십 배는 더 순수한 자연기였다. 그 자체만으로도 순수한 자연의 기를 압축하고 다시 걸러내어 그 안에서 또 다시 정순한 자연기가 모여 도력이 되고 선기가 된다. 그 때문에 호선은 공력과 같은 크기의 기운이라고 해도 무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효율과 위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 호선이었기에 지금 이것이 느껴졌다. 만우가 걸어 들어가고 있는 길이 마치 그물의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감과 비슷한 양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럼. 그물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
만우가 히죽 웃었다. 만우는 이제 손부채질을 하듯 고삐를 잡지 않은 한 손을 들어 살랑살랑 부채질을 했다. 그러자 만우와 사행단을 옥죄일 것처럼 몰려들던 기파가 만우의 손짓에 의해 수백, 수천 갈래로 찢겨져서는 나풀거리며 흩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몰려드는 기파의 기세가 강맹했지만 만우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개가 끼는군.”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설미수와 동군영이 한마디씩을 했다. 특히 용접곡에 와 본 적이 있는 설미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체 안개가 끼는 곳이었던가? 그런 말은 내 들어본 적이 없네만.”
내공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설미수와 동군영이 서늘함을 느끼며 두 팔을 문지를 정도였다. 만우는 호선에게 말했다.
[분명 무림맹만 움직이지 않았을 터. 무림맹 놈들은 원체 겁이 많고 비열한 놈들이라 항상 한 수를 더 생각해 놓거든.]
정파의 기둥으로 유명한 무림맹이나 만우가 겪어 본 무림맹은 항상 상대방이 예상치 못 한 한 수를 더 숨겨 놓곤 했다. 일전에 심양에서 독에 능한 주작단을 보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천당가가 정파에 속해 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독과 암기는 대부분의 문파와 세가에서 배척을 받는 비겁한 짓에 속했다. 그런데 무림맹에서는 그런 사천당가의 무인들로만 구성이 된 주작단을 꾸려 놓았다는 것 자체가 무림맹이란 이름으로 독과 암기를 숨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만우는 애초에 무림맹주가 보냈다는 서신에 적힌 내용을 믿지 않았다. 차라리 정정당당한 것은 무림맹이 아니라 마교였다. 비록 만우에 의해 처참하게 깨지기는 하였으나, 마교는 적어도 만우를 맞이하면서 거짓을 꾸미지는 않았다. 살랑, 살랑 만우는 호선이 말한 그물의 한 가운데란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만우는 호선이 말한 대로 용접곡에서 가장 강맹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걸어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접곡에는 호선의 말처럼 거대한 그물이 뿌려져 있었다. 천라지망(天羅地網). 하늘과 땅의 그물이란 뜻으로 한 번 잡히면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물이 뿌려져 있었다. 하나 제 아무리 하늘과 땅의 그물이라고 해도 그 그물 안에 물고기나 사냥감이 잡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살랑, 살랑 만우가 유유자적하게 걷고, 손부채질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천라지망이 발동되기 위해서는 일단 목표물을 그물 안에 가둬야 한다. 그런데 그 그물 안에 가둔다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천라지망의 기세에 목표물을 가둬야 한다는 뜻인 것이다.
‘먹물 냄새가 나는구나.’
용접곡 전체에서 진법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만우가 그 진법에 갇히는 순간 천라지망이 발동이 되면서 사행단은 오도가도 못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천라지망이 발동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만우의 발과 손이었다.
‘백날을 해 보라. 과연 누가 손해 보는 것일지.’
만우는 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기로 독심을 품었다. 그러기에는 만우가 지킬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들을 넘어 봐야 될 얼굴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니 이쪽에 작은 생채기라도 생겨서는 안 된다. 그래야 그 수고를 들여가며 자신을 연경까지 불러낸 이에게 강력하게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중원을 좌우하는 황권을 손에 쥐었다고는 하나 사람 하나 어찌할 수 없음을 그 잘난 면류관을 이룡검으로 잘라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허니 넌 나서지 말고 지켜라.]
[말대로 하겠어요.]
촤라라락!!! 호선을 향해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파르르 떨더니 나뭇잎들이 호선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을 본 방매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언니! 그건 어떻게 한 거예요?”
“후훗. 신기하지?”
“네.”
방매의 두 눈이 초롱거렸다. 나뭇잎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호선의 주변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호선은 생긋 웃으며 움켜쥐었던 손을 활짝 폈다.
“동생. 그 수레에서 벗어나면 안 돼. 알았지?”
“에? 왜요?”
“방매야. 이, 일단 앉자.”
방매는 선천적으로 겁이 없었다. 그랬기에 심상치 않은 주변의 분위기를 분명히 느꼈음에도 별로 위축되지 않았다. 반면 간장은 아니었다. 간장은 불과 쇠를 맞아 한 치도 물러섬 없이 싸우는 야장이었으나 대장간을 벗어나면 자신이 만들어낸 날붙이가 무서운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니 말이다.
“흠…….”
“약속해.”
“……알았어요.”
방매는 만우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봤다. 만우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까 사람의 가슴을 그리 철렁하게 해놓고 쳐다보지도 않으니 괜히 만우에게 고운 눈길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호선이 당부하는 것이 만우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짐작한 방매는 팔짱을 딱 끼고는 수레 바닥에 앉았다. 그 순간 호선의 나삼 자락이 나풀거리며 향긋한 선기가 호선 주변으로 떠돌고 있던 나뭇잎을 때렸다. 파사삭! 그러자 선기가 나뭇잎들의 표면을 불태우더니 문양을 그리며 빛을 뿜어냈다. 호선은 만우의 부탁대로 수레 주변으로 방호(防護)에 관련된 도술을 펼친 것이다.
“우와.”
방매가 신기한 듯 빛을 반짝반짝 머금은 나뭇잎들을 향해 손가락을 내뻗었지만 그 나뭇잎들은 수레 주변으로 회전하며 자연스레 방매의 손길을 피했다.
“나와서는 안 돼. 알았지?”
“네에-.”
방매는 호선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고개를 돌려 만우를 쳐다봤다. 그리고는 입가에 손을 모으고는 크게 외쳤다.
“이겨야 돼! 나 연경 구경하고 싶어-!!!”
방매가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만우가 뒤를 힐끗하고 쳐다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만우가 히죽 웃어 보였다.
“글쎄. 연경 가서도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
콰앙-!!!!!
그 말소리를 끝으로 만우가 거센 폭발에 휘말리면서 방매의 시야에서 만우의 모습이 가려졌다. 방매가 놀란 표정을 짓다가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만우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자꾸만 걱정이 되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방매의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거센 폭발음이 대기를 찌르르 후려치기 시작했다. ***** 제갈운은 이를 앙 다물었다. 도저히 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세가의 천라지망이다. 무림십좌라 하여도 능히 가둬 놓을 수 있다 자부하였거늘.’
제갈운은 만우가 손부채로 손을 흔들고 발로 방위를 밟을 때마다 천라지망의 마지막 한 줄기 기운이 계속해서 만우를 빗겨 나가는 것을 보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찌 일개 개인이 자연의 흐름을 제 의지대로 틀어 버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천라지망도 제갈세가에서 심혈을 기울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펼친 거대한 진법이기에 제 아무리 검주라 하여도 진법만큼은 문외한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만우는 적절한 방위를 밟고 손부채를 부치는 것만으로도 천라지망의 기파를 흩어 버렸다. 그러자 전음이 제갈운의 귓가로 날아와 꽂혔다.
[실패다. 즉시 팔문금쇄진으로 전환한다.]
[예!]
제갈명공의 명쾌한 판단에 제갈운은 분함을 느꼈다. 하지만 분함을 느꼈다 하여 그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제갈세가의 고수들이 만우 앞에 검을 들고 나선다는 것은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밖에 없을 테니까. 죽음을 각오한 마지막의 순간이 아니고서야 제갈세가는 부지런히 만우의 눈을 피해야만 한다. 섬뜩! 그런데 그 순간 제갈운의 신형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굳었다. 제갈운의 눈이 저 멀리 있는 만우의 눈과 정확하게 마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고 제갈운은 생각했다. 거리도 거리일 뿐더러, 이 용접곡은 이미 제갈세가에서 몇 겹으로 깔아 놓은 중첩 진법에 의해 자신의 몸이 완전히 숨겨져 있을 터였기 때문이다. 뜨끔! 그런데 그런 제갈운이 손을 들어 자신의 목 부분을 손으로 짚었다. 그 목에서 순간적으로 뜨끔 하는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민했다. 고작 하루 밤을 샜…….’
툭! 목에 손을 얹은 제갈운은 끝까지 생각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이미 그의 머리통이 목에서 분리가 되어 굴러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앙-!!!!! 그 순간 거대한 폭음이 만우를 덮쳤다. 혈천대의 사극창(死極槍) 우음은 마뜩찮은 표정을 지었지만 하늘같은 독왕의 명령에 충실히 손과 팔을 움직였다. 그가 손에 쥔 것은 다름 아닌 무림의 금기인 폭천뢰(爆天雷)였다. 혈천대는 사림곡에서도 악명이 가장 높은 곳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당연히 그런 혈천대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림에서 엄격하게 금지된 폭천뢰를 제조하여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꽈과과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