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 잡것들의 오만 (3)2022.03.01.
“그럴 때는 아니라고 하고 그냥 가면 되는 거야, 바보야!”
“누가 바보라는 거야 대체.”
“너 말이야 너!”
“이 쪼그만 게!”
만우와 방매가 티격태격했다. 결국 방매는 석미도로 하여금 더 이상 꼬리를 치지 못하게 막고 나섰다. 그런데 만우는 그것이 꼬리를 치는 것이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방매는 만우를 교육시킨다면서 따따 거리면서 옆에서 쫑알댔다.
“아우 귀 아파. 저리 좀 가!”
“내가 다리 아프면 알아서 갈 거거든?”
“얘가 왜 이래 진짜.”
만우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이 무엇을 했다고 이렇게 바가지를 긁는단 말인가.
“야. 아무리 내가 너한테 연심이 요만치 있다고 해도 벌써부터 네 신랑이라도 된 것 마냥 바가지 긁는 것은 좀 아니지 않냐?”
“뭐…… 뭐어??”
화르륵!!! 만우의 군더더기 없는 직선적인 공격에 방매의 얼굴이 화륵 하고 불타올랐다. 설마하니 만우가 이렇게 대놓고 이야기를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방매다. 하지만 만우는 늘 돌리지 않고 검을 원하는 목표에 꽂아 넣는 검사처럼,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너도 아는 줄 알았는데. 아니야?”
“아, 아니…….”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난 잘못한 게 없다니까? 설령 그랬다 쳐도 내가 먼저 꼬신 것도 아니잖아!”
방매는 어버버 하면서 만우의 말에 똑 부러지게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내 방매가 터질 것 같아진 얼굴로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그런 걸 이런 데서 갑자기, 멋없게 말하는 게 어디 있어! 무효야!!!”
휙! 방매는 바람처럼 뒤쪽으로 사라졌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무효라니, 대체 무엇이 무효란 말인가.
“옹주께서 뿔이 단단하게 나신 것 같습니다, 은공.”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요.”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설미수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혀를 쯧쯧 하고 찼다. 무공에 대해서는 하늘에 닿았으면서도 여인의 마음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만우를 보니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그러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설미수는 둘의 관계가 꽤나 험준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연경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던 만우의 눈에 사행단의 앞을 막고 선 또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설미수와 동군영은 이제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일단 먼저 만우에게 물었다.
“저들은 또 무엇이란 말입니까, 은공.”
“남루해 보이는 옷차림인데 말입니다.”
설미수와 동군영이 차례대로 말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만우 일행을 발견한 그쪽에서 무릎을 털썩하고 꿇는 것이 아닌가.
“하오문주?”
“어, 저 양반이 하오문주야?”
문형일이 그 맨 앞에 무릎을 털썩하고 꿇은 남자를 보면서 중얼거리자 감령이 까치발을 들었다. 하오문은 무림의 모든 이들에게서 멸시를 받는 곳이다. 개방과 비슷하나 개방이 멸시 받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무공이 강하기 때문이지만, 하오문은 이렇다 할 고수도, 전해져 내려오는 무공도 없었기 때문이다. 밑바닥 삼류 인생들이 모이는 곳. 바로 그곳이 하오문이었기에 감령은 정말 저들 중 특출 난 기도를 지닌 이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게다가 그중에서도 하오문주에 대한 소문은 거의 천 가지 정도는 떠돌아 다녔다. 하오문의 특성상 완벽하게 숨길 수 없으니 아예 소문을 천 가지 정도를 만들어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게끔 진실을 거짓 속에 숨긴 것이다. 하지만 문형일과 마익후는 하오문주에 대해 아는 몇 안 되는 무림인 중 하나였다. 만우를 명예호법으로 임명하여 그에게 그만 둬 달라 간청했던 것이 바로 하오문주였기 때문이다. 하오문주(下午門主) 임택평. 무화 임수미의 아비인 임택평이 만우가 가는 길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진짜. 귀찮은데 쟤네들.”
만우는 강자에게 강했다. 물론 약자에게도 강했지만 그 정도가 강자에게만큼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만우는 임택평이 껄끄러웠다. 만우가 생각하는 선만 넘지 않는다면, 약자들을 대하는 데 있어 대단히 너그럽다는 것을 알고 바짝 엎드려 횡액을 피해갔던 자가 바로 임택평이었기 때문이다. 임택평은 무공보다는 사람을 홀리는 화술과 연기력이 일품인 자였다. 만우라 할지라도 대체 어느 것이 임택평의 진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연기라 하여도 만우에게는 진심처럼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그러니 만우 앞에서 임택평이 그런 연기를 하면 진심으로 느껴지기에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이 임택평을 상대하는 데 학을 떼게 하는 이유였다.
“천하제일인이시여어어어!!!!!!”
만우가 자신을 봤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임택평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그런 임택평은 누가 듣더라도 만우를 찾고 있었다. 만우는 한숨을 훅 하고 내쉬었다.
“아…… 그냥 죽이고 싶다.”
만우는 손이 근질거린다는 듯 이룡검의 검병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 손가락을 축 늘어뜨렸다.
***** 만우에게서 기천을 전수받은 임수미는 빠른 속도로 몸을 회복하면서 무섭게 강해졌다. 조선에서 온 지 불과 이주가 지나지 않아 이류를 뛰어넘어 일류에 도달했고, 바로 며칠 전에 절정에까지 이르렀다. 비록 제부투혼은 아니었고 하오문주가 막대한 자금을 들여 임수미를 위해 비밀리에 입수한 일류 무공으로 임수미는 절정에 도달했다. 만우의 기천을 온전히 담을 만큼 타고난 체질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뛰어난 오성과 기천을 익히기 위해 닦은 기초로 인해 순식간에 절정에 도달한 것이다. 그래서 임수미는 천안각을 노렸다. 하오문이 그냥 밑바닥 인생, 삼류 문파보다도 못 한 취급을 받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다른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떠올린 장소가 천안각이었다.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무공 수위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으니까. 그들이 유명한 이유는 뛰어난 머리에 있었지, 뛰어난 무공 실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무림의 삼척동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임수미는 너무 제갈세가를 얕보았다. 팔문금쇄진(八門金鎖陣). 그 유명한 촉의 승상이었던 제갈공명이 만들어 냈다는 전설이 있는 팔문금쇄진에 임수미는 오갈 곳을 찾지 못하고 딱 갇혀 버린 것이다. 물론 임수미라 하여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에 대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제갈세가가 천안각의 정보를 지키기 위해 설치한 팔문금쇄진이 세간이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달랐을 뿐이다. 개량에 개량을 거친 팔문금쇄진은 제갈공명의 그것보다도 훨씬 더 지독했다. 그 안에 갇힌 자들은 무공 수위와 상관없이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려야 했고 생문(生門)을 찾지 못하는 이상 갇혀 빠져나올 수 없었다. 천안각에 잠입하여 원하는 정보를 탈취한 뒤 제갈세가의 일류 고수들을 쓰러뜨린 것 까지는 좋았다. 아니, 그것만 해도 임수미는 벅차올랐다. 자신이 겪었던 그 고통이 헛된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일류 고수를 다섯이나 쓰러트렸다는 것에 기쁨에 취했던 것이 화근이었을까. 임수미는 결국 팔문금쇄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갈세가에 사로잡힌 것이다.
“으흐흐흑. 대협…… 대협…….”
임택평은 그런 사연을 이야기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만우의 바지 자락을 손에 꼭 움켜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제 딸아이를 구해 주십시오. 크흑…… 패앵-!”
임택평은 눈물을 흘리는 것도 모자라 콧물까지 풀었다. 그러자 바닥에 정체 모를 걸쭉한 액체가 흙먼지와 뒤엉켰다.
“윽…….”
방매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안 그래도 먼 거리를 멀찍이 떨어뜨려서는 호선의 옷자락을 꼭 쥐고는 놓지 않았다.
“그러니까.”
만우는 자신 앞에 거리낌 없이 오체투지를 한 임택평과 문주의 그런 행동에 똑같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수십의 하오문도들을 보면서 인상을 썼다.
“본주보고 네놈의 딸인 무화를 구해 달라?”
“예. 예, 그렇습니다, 대협.”
패앵-! 임택평은 그리 대답하면서 다시 한번 더 코를 풀었다. 만우의 이마에 패인 골이 더욱 깊어졌다.
“제갈세가에 침입했다가 부딪친 그 아이를?”
“예, 대협. 하나밖에 없는 금지옥엽입니다. 허니…….”
“본주가 연경에 가는 연유를 네놈이 모르지는 않을 텐데?”
“예?”
임택평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부정이 대단히 깊은 아비일 것이라 생각할 만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 한가득 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까지 섞여 있어 임택평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본다면 정말 순진무구하다고 착각할 법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잘 알고 있었다. 저것이 다 저놈의 가증스러운 연기라는 것을 말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그 거추장스러운 귀를 떼어 주랴?”
“대혀어어어업!”
만우가 으르렁거리자 임택평이 바짝 바닥에 엎드렸다. 만우에게 괜한 수작을 부리려다가 신체 한 군데가 날아간 이가 여럿이었다. 만우를 앞에 놓고 그런 연기나 수작은 통하지 않았기에 임택평은 바짝 엎드렸다.
“간만에 대협을 뵈어 이놈이 미쳤었나 봅니다. 허니…….”
“후우.”
바로 이것이었다. 이놈의 눈치는 이 세상의 눈치가 아니었다. 만약 눈치란 것에도 경지가 있다면 이놈은 현경, 아니 생사경에 도달한 놈일지도 모른다. 귀신 같이 눈치를 채고는 선을 딱 넘기 전에 알아서 죽여 달라면서 머리를 조아리니, 만우가 그렇게 나오는 놈들은 용서해 주고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바로 그 직전에 멈추는 눈치가 임택평에게는 있었다. 모든 무림 동도들에게 멸시를 받는 하오문의 문주이기 때문에 그런 비상한 눈치가 발달한 것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만우에게는 정말 성가시기 짝이 없는 능력이었다. 그냥 베어 버리면 그만이나, 만우를 성가시게 할 뿐이지, 해를 끼치지 않는 하오문주를 그냥 벤다면 만우도 결국 그가 징벌하고 다닌 이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지는 셈이다. 임택평은 그 아슬아슬한 줄을 잘 탈 줄 알았다.
“본주가 연경에 가는 그 이유를 알면서도 그것을 부탁한다고?”
“허, 허나 저희는 검주께서 아니 계시면…….”
임택평은 고개를 조아렸다. 만우는 흥 하고 콧바람을 내쉬었다.
“본주는 맨 입으로 부탁하는 걸 제일 싫어하지. 보수는?”
임택평의 표정이 밝아졌다. 만우의 입에서 보수가 나왔다는 것은 합당한 보수가 주어진다면 일을 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임택평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에 기뻐했다. 딸인 임수미가 제갈세가에 생포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녀가 천하제일인으로 전 무림을 강타하고 있는 검주 만우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으니까. 어쨌거나 그렇게 한 줄기 인연이 닿았으니, 결국 임수미의 생사는 만우의 손아귀에 달린 셈이다.
“하, 하오문을 전부 달라 하셔도…….”
“본주가 그런 것을 원한 적이 있나?”
임택평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오문이 만우에게 무언가 혹하게 할 만한 보수가 딱히 없다는 것이 또 문제가 된다. 만우는 고개를 힐끗 돌려서는 방매를 쳐다보고는 임택평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뒤에 저 여인의 용모파기를 머릿속에 그려 놓아라.]
“예. 예?”
[티 나게 쳐다보지 말고!]
임택평이 자신을 쳐다보자 방매가 팍 하고 인상을 썼다. 그에 만우가 얼른 전음으로 으르렁거리자 임택평이 찔끔해서는 고개를 돌렸다.
[저 여인의 어미가 명에 공녀로 끌려왔다. 그 후에 아비는 어미를 찾겠다고 명나라 행 배를 탔고.]
“허면.”
[찾아라.]
임택평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런 것은 하오문에서 가장 자신이 있는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오문은 개방보다 더 큰 정보망을 가지고 있다 자부했다.
“예!!!!”
그것으로 딸을 구할 수 있다면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가라.”
임택평은 언제 울었냐는 듯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만우가 공언을 하였으니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럼 천하제일인만 믿겠습니다.”
“본주는 검주다.”
천하제일인은 결국 만우를 수식하는 수식어일 뿐이다. 만우의 별호가 천하제일인이 될 수는 없었다. 사실 그것보다는 만우는 검의 주인이라는 검주가 더 좋았다.
“천하제일인, 검주. 대협의 명성을 온 대륙에 퍼뜨리겠나이다.”
*****
“맹주와 곡주, 그리고 공공을 뵙소이다.”
사림곡주 독왕과 무림맹주 무왕, 그리고 동창제독 부로가 앉은 자리에 한 명이 더 배석했다. 하나 그를 보고 그 자리에 앉은 세 명의 놀라움이 더했다.
“석가장주…… 맞으시오?”
“일전에 한 번 맹주 탄신일 때 뵈었지요.”
석가장주 석소군을 본 이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했다. 그의 호위이자 초절정의 고수로 유명한 적포쌍검 온소와 함께 자리한 석소군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세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고수가 그 자리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이리 바뀌어 내 못 알아 봤소이다. 하면 그동안 공석에 자리하지 않으신 것이…….”
천혜대사가 자신보다 떨어져 보이지 않는 석소군의 기세를 느끼고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며 말하자 석소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 닿아 이 석 모의 오랜 꿈을 이뤄 줄 귀한 보물을 만나 그에 심취하여 그리하였습니다.”
“한데 이제 나왔다는 것은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오?”
독왕이 불쑥 끼어들었다. 맹주와 말하던 중이었지만 석소군은 장사꾼답게 그런 독왕의 무례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흐허허헛!!!”
독왕이 대소를 터뜨렸다. 장사치에 불과한 석가장의 장주가 예상외의 기도를 품고 나타난 것에 분명 놀라기는 했다. 하나 그 정도로 자신감을 논하기에는 이 자리에서 입에 담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곡주.”
“안다. 이 자리는 싸우기 위한 자리가 아니니.”
당연히 독왕이 손을 쓰면 천혜대사와 동수를 이룰 정도인 석소군을 손쉽게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이 자리는 싸우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돈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대체 석가장에 무슨 인연이 닿아 내공이라고는 한 줌도 없었던 석가장주가 고수가 되어 나타난단 말인가.’
하지만 동시에 돈극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나이도 찰 대로 찬 석가장주를 불과 몇 년 만에 절정 이상의 고수로 만들 수 있는 무공이 석가장에게 생긴 것이 눈앞에서 증명이 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무림의 세력구도는 새롭게 쓰여야 할지도 모른다. 석가장은 무력만 갖춰진다면, 능히 석가장만의 힘으로 무림의 한 축을 자처할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이 있는 곳이었으니까.
“그래서, 장주가 우리를 보자고 한 이유는 무엇이오?”
부로가 말을 질질 끌지 말라는 듯 끼어들어서는 석소군에게 말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동창제독이지만 석소군 앞에서 부로는 예의를 차렸다. 석소군은 말마따나 황제조차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황금을 손에 쥔 자였으니, 황제의 신하인 부로 따위가 함부로 대할 만한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검주를 반기지 않는 것은 석가장도 마찬가지일터. 그 때문이오?”
이미 동창과 무림맹, 사림곡의 선발대는 연경 밖으로 향했다. 검주를 맞이하는 데 허투루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세 분께서 재미있는 일을 하신다 하여 한 번 들으러 온 것뿐이외다.”
석소군은 옳타꾸나 하고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아직 석미도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로의 말대로 석가장과 만우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다. 하나 그 악연 하나 때문에 일을 그르칠 이유는 딱히 없었다.
“흐음. 그러시다면야.”
부로는 석소군을 다그치지 않았다.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반쯤은 동참하겠다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능구렁이 같은 작자.’
언제든 발을 뺄 준비를 하겠다는 석소군을 보니 저절로 능구렁이란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것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대신 부로는 연경에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우리는 검주를 맞이할 것이오.”
“용접곡(龍蝶谷)이라.”
석소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용접곡이면 산해관에서 연경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다. 하나 약간 벗어난 곳인 데다 그곳이라면 매복과 진법의 설치가 용이했다. 그곳은 용이 죽어 나비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골짜기였다. 석소군은 부로를 쳐다봤다.
“용이 죽어 나비가 된 곳이라. 제독께서는 검주를 그리 만드실 참이오?”
“못 할 것 같소?”
“…….”
이미 금의위가 연경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석소군은 알고 있었다. 황상은 부로가 검주를 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석소군은 그것을 부로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말해 준다 하여 그것이 딱히 석가장에 이득으로 돌아오지도 않으니 말이다.
‘될까?’
석소군은 자신만만한 부로와 독왕의 얼굴을 보면서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독왕의 얼굴에 깔린 것은 방심과 자만이었기 때문이다.
‘독(毒). 과연 다른 이들은 독왕만큼의 독(毒)이 없어 검주를 어찌하지 못하였을까?’
독왕은 대단한 절대고수다. 일패였던 혈세천마가 죽은 지금 무림십좌에서 독왕은 첫 번째에 꼽히는 강자일 것이다. 하나 그것이 과연 독왕이 검주를 이길 수 있다는 데 있어 확신이 될 수 있을까?
‘현경이라면 택도 없다.’
황금신공으로 삽시간에 고수 반열에 든 석소군은 머리로만 알던 것을 이제 몸으로도 알게 되었다.
“석가장의 자리가 얼마 남지 않았소이다.”
부로의 목소리가 은근하게 변했다. 그들이 벌이고자 하는 일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하나 더 보태진다면 크나큰 힘이 된다. 그런데 석가장 정도면 고양이 손이 아니라 부처님 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하제일 소리를 듣는 검주를 꺾었다는 영예, 새로이 거듭날 석가장에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겠소이까?”
황금에 이어 무(武)까지 손에 쥐고자 한다는 것을 장주인 석소군이 무림맹주와 사림곡주 앞에서 당당하게 드러냈다. 그런 상황에서 부로의 말은 석소군의 마음을 크게 뒤흔들었다.
‘명예!’
명예란 것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돈과 관계없는 것으로 시운(時運)이 모두 맞아떨어져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기회가, 어쩌면 지금 석소군의 눈앞에 놓인 것일지도 모른다. 천하제일인 검주를 꺾었다는 그 명예가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전서구가 온소의 팔로 날아들었다. 온소는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작은 나무통 속 종이를 꺼내 석소군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석소군의 눈이 커졌다. [불가대적(不可對敵), 검주시은야율(劍主施恩耶律).] 열 자에 불과한 짤막한 서신이었지만 석소군은 석미도가 한 말을 전부 알아들었다. 그리고는 전율했다.
‘야율태가 화경에 올랐다. 검주의 가르침으로!’
석소군은 그것을 보고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부로의 표정이 굳었다. 이 자리에서 떨쳐 일어난다는 것은 마음이 바뀌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 석 모는 아무래도 이런 자리에 끼어들 깜냥이 되지 않는 것 같소이다. 그러면 세 분의 무운을 빌겠소. 필히 원하는 것을 다들 이루시기를 바라오.”
석소군은 그리 말하고는 붙잡을 새도 없이 온소와 함께 빠져나갔다. 독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주와 석가장이 만났다 쓰여 있더군.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난 이후에 석가장에도 한 번 경고를 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소이다.”
독왕은 감히 자신들을 두고 먼저 일어난 석소군에게 앙심을 품은 듯했다. 허나 부로는 그리 나간 석소군의 빈자리를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사림곡과 무림맹, 그리고 동창이 손을 잡았음에도 그 계산에 능하다는 석가장이 자리를 떴다. 그렇다는 것은 명백히 우세가 검주 쪽에 있다고 그가 판단했음이다.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석가장의 결정이었지만 부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도 결국 사람이다. 석가장이라고 해서 실패한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니, 석소군의 행동에 그리 신경을 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마 부로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로 스스로가 이미 그에 대해서 불안감을 느끼고 그것만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