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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말리려는 자, 막으려는 자 (2) (328/400)

328. 말리려는 자, 막으려는 자 (2)2022.02.19.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석가장뿐만 아니라 조선과 명이 모두 다 그랬다. 무림이 아니고서는 여인이 어딘가의 맨 앞에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서로 간의 생김새를 육안으로 식별할 정도까지 가까워졌다. 그러자 석가장 쪽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말을 몰아서는 앞으로 나왔다. 꾸벅.

16553274428738.jpg“석가의 미도라 합니다. 조선에서 오신 사행단분들이 맞으신지요.”

석미도의 음색은 쟁반 위에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낭랑했다. 거기에 흑단 같은 탐스러운 머릿결에 백옥 같은 피부와 단정한 용모까지,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한 미녀였다.

16553274428743.jpg“맞소만. 석가라면 석가장을 말하는 거요?”

설미수와 동군영이 입을 열었다. 설미수는 중원 전체가 만우의 적일지도 모른다는 방금 전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군영이 말을 했음에도 석미도는 동군영을 바라보지 않고 설미수의 말고삐를 잡고 있는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74428738.jpg“그러합니다. 검주 대협.”

16553274428756.jpg“……흐응.”

만우는 콧소리를 내고는 손에서 말고삐를 탁 하고 놨다. 자신을 모른다면 모를까 무림인인 검주를 찾아온 이라면 그에 맞게 대접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16553274428738.jpg“은공. 제발, 제발 사고 치지 마시고.”

16553274428756.jpg“걱정 마십쇼. 사고 치러 온 이 같지는 않으니.”

만우는 그리 말하며 석미도를 쳐다봤다.

16553274428756.jpg“그렇지 않은가?”

그러가 석미도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설미수에게 말했다.

16553274428738.jpg“그러합니다. 저희가 찾아온 것은 일전에 저희 행수 중 하나가 심양에서 도움을 받았다 하여 온 것뿐입니다.”

16553274428756.jpg“보십쇼.”

만우는 설미수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16553274428756.jpg“나만 청하는 건가?”

16553274428738.jpg“예, 대협. 다른 분들은 쉬실 곳을 마련해 놓았으니 가시지요. 일검진천 대협.”

16553274428738.jpg“예, 행수.”

만우의 눈이 스윽 하고 일검진천이라 불린 이에게로 향했다. 그 역시 만우를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만주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74428756.jpg“일검진천이라. 들어본 적 있다. 검 한 자루로 녹림의 산적들을 초목처럼 베었다지.”

16553274428738.jpg“영광이외다. 검주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말이오.”

만우는 씩 웃었다.

16553274428756.jpg“본래 검을 좋아하는지라 검으로 이름 난 고수들은 웬만해서는 다 알고 있지. 이름은?”

16553274428738.jpg“일검진천, 야율태라 하외다.”

야율태는 40대에 접어든 고수였다. 그는 검 한 자루로 만우처럼 중원을 유랑하다가 석가장의 빈객이 된 경우로 초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이자 만우처럼 북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를 당한 고수 중 하나였다.

16553274428756.jpg“야율태. 그 이름, 기억하도록 하지.”

야율태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만우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뜻은 검주가 정말 소문대로 자신으로는 읽어 낼 수도 없는 경외의 경지인 현경에 들어섰다는 소리였다. 검 한 자루로. 후욱! 야율태에게서 강렬한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야율태는 자신이 상대가 안 될 것을 한 눈에 알았음에도 만우를 보면서 호승심을 느낀 것이다.

16553274428738.jpg“가르침을 청하외다!”

16553274428738.jpg“대표두!”

석미도가 놀라서는 야율태를 쳐다봤다. 야율태는 그런 석미도에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16553274428738.jpg“죄송하오, 행수. 하나 이 몸은 제일표국의 대표두이기 이전에 무인인지라, 끓어오르는 피를 감당할 수가 없소이다. 이 죄는 달게 받겠소!”

야율 씨는 수백 년 전 중원에 왕조를 세웠던 성씨 중 하나다. 요나라를 세웠던 그들은 비록 그 기가 쇠해 패권을 빼앗겼으나 야율태에게서는 기품이 느껴졌다.

16553274428756.jpg“가르침이라.”

만우는 야율태를 보고서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야율태는 만우가 보기에 초절정의 극에 달해 있었다. 아주 약간의 깨달음만 더해진다면 화경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보였다. 만우의 수하를 자청하고 있는 다섯 명의 초절정 고수보다도 야율태의 실력이 더 뛰어난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16553274487083.jpg“호오. 저 양반이 바로 야율태야?”

16553274487088.jpg“녹림의 산적들을 베었다는데, 아무렇지도 않냐 네놈은?”

감령과 필두가 뒤에서 속삭였다. 안 그래도 만우도 감령이 신경 쓰였다. 야율태가 일검진천이란 별호를 얻게 된 것은 녹림칠십이채 중 다섯 개의 대채를 홀로 깨부쉈기 때문이다. 산이 수없이 많은 중원에는 그만큼 산적들도 많았다. 그 산적들이 모인 산채들 중 규모로 72채 안에 든다는 것은 최소한 산적들의 수가 사백 명 이상이라는 소리다. 거기에 72채의 채주들은 전부 일류 고수이거나 절정 고수인 경우도 있었다. 죄를 짓고 도망쳐 다니는 명문정파의 제자들이 산으로 숨어들어 그런 산채의 수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산채를 홀로 5채나 전멸시켰다? 거의 녹림의 일할 정도를 개인이 상대했다는 뜻이다.

16553274487083.jpg“응. 아무렇지도 않은데?”

16553274487088.jpg“대채주라면서.”

필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필두의 장강수로십팔채에 저런 고수가 나타났다면 단박에 자신이 나가서는 때려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16553274487083.jpg“어차피 산적 놈들은 징그럽게도 많아. 그리고 그 다섯 채 놈들은 인간으로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서 어차피 내가 정리하려 했었거든.”

감령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기지개를 쭉 하고 켰다. 정말 감령에게는 야율태에게 그 어떠한 감정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16553274487088.jpg“선?”

16553274487083.jpg“죄 없는 양민을 잡아다가 여자는 매음굴에 팔고, 남자는 노예로 팔았지. 사람 살로 만두를 해 먹는 놈도 있었고. 재미로 사람을 죽이는 놈들은 뭐.”

필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인간 말종들이 있었다는 소리다.

16553274487088.jpg“그런 놈들을 내버려 두었다고?”

16553274487083.jpg“아니, 봐봐. 말이 칠십이채지, 그 녹립의 72채가 중원 전체에 퍼져 있다고. 그런데 그걸 어떻게 내가 다 찾아가서 관리해?”

일년에 주기적으로 열리는 총회의에서나 채주들의 얼굴을 한 번씩 보는 게 전부다. 그래서 사실상 녹림은 머릿수만 따지면 가장 많은 세력 중 하나이나 한 곳에 뭉칠 수가 없어 평가절하가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16553274487083.jpg“내 영향력 아래 있는 놈들은 기껏해야 20채나 될까. 나머지는 너무 멀어서 관리가 안 돼. 관리가.”

그렇게 대채주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 딴 짓을 하는 놈들을 관리하는 것이 대채주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그래서 대채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모를까, 대척점에 있거나 켕기는 일이 있어 죽고 싶지 않은 채주들은 끊임없이 대채주를 암살하려 틈을 노렸다. 사실상 녹림에서는 관아나 무림인을 만나 죽는 이들보다 내분으로 인해 죽어 나가는 산적의 수가 월등하게 많았다. 그런 녹림의 모습에 지치고 질린 감령이 만우의 휘하에 머무르기로 한 것이었고 말이다.

16553274487088.jpg“그쪽도 힘드네.”

16553274487083.jpg“뭐, 너희들도 우리 못지않다고 들었다만.”

16553274487088.jpg“끙…….”

필두 역시 비슷했다. 다만 필두의 장강은 18채였고 수적이기에 대하(大河) 위주로 모여 있어 관리하기는 쉬웠다. 단지 문제라면 그 물길에 얽힌 이권이 너무나도 많아 늘 극심한 관아의 단속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귀족들의 표적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감령과 필두가 수군거리고 있는 동안 야율태는 만우 앞에 섰다. 만우는 눈을 반개하고는 아율태에게 뜻 모를 웃음을 흘렸다.

16553274428756.jpg“내 가르침은 비싸다. 어찌, 값을 치룰 수 있겠어?”

만우는 검도 뽑지 않고는 팔짱을 겼다. 아율태는 그런 만우의 태연한 모습에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뽑아서는 진심을 다해 공력을 끌어올렸을 뿐이다.

16553274428756.jpg“아니. 값은 너한테 묻는 게 아니지. 석미도라고 했나?”

만우는 야율태의 뒤에서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석미도에게 물었다.

16553274428738.jpg“……어떤 가르침인지, 그것이 어떠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소녀는 무인이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나이다.”

16553274428756.jpg“값을 매길 수 없다라. 허면 본주가 부르는 것이 값이겠구나?”

16553274428738.jpg“그렇나이다.”

석미도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만우는 그런 석미도를 피식 웃으면서 쳐다봤다. 석가장에서 왜 저 소녀를 보낸 것인지,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참이다. 그러니 아주 작은 시험을 한 번 해 볼 생각이었다.

16553274428756.jpg“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 보거라. 내 마음에 든다면 네가 제시한 대로 받아갈 터이니.”

16553274428738.jpg“제가 제시를 하라신다면…….”

16553274428756.jpg“어쩌면 세 자리, 아니 내 자리까지 해서 네 자리나 빈 무림십좌의 일좌가 채워질 수도 있음이다.”

16553274428738.jpg“!!!!!!!!!!!”

석미도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16553274545144.jpg

  ***** 사안이 급했다. 산해관에서 연경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림곡의 곡주와 무림맹의 맹주가 같은 자리에 앉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16553274545148.jpg“크흠.”

무왕(武王) 천혜대사의 정순한 눈빛에 철권이 심기에 거슬린다는 듯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하나 독왕 중백약은 천혜대사의 눈을 빤히 마주했다. 무림맹주인 무왕 천혜대사는 왕(王)이란 별호를 쓰고 있으나 그는 이왕(二王)에 포함되지 않았다. 천혜대사는 화경의 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 소림사에는 불존(佛尊)이라는 걸출한 화경의 고수가 있었기에 천혜대사는 꿇리지 않았다. 천혜대사의 곁에 자리한 이가 바로 불존이었다. 불존 진한대사. 천혜대사보다는 항렬이 하나 낮지만 뛰어난 무재(武才)로 전대 방장의 눈에 들어 소림의 제자가 된 화경의 고수였다. 소림에서도 제대로 익힌 이가 거의 없다는 난해한 백보신권(百步神拳)을 대성하여 앉은 자리에서 백보 밖의 무인을 능히 제압할 수 있다 알려져 있었다.

16553274428738.jpg“그 가벼운 엉덩이가 이쪽으로 움직일 줄은 몰랐군. 불존.”

독왕 중백약이 빙긋거리면서 불존 진한대사를 슬쩍 긁었다. 불존의 민머리에는 선명한 흉터가 십여 개도 더 넘게 있었다. 그 흉터는 머리는 물론이거니와 목에도 있었다. 얼굴만 멀끔했는데 얼굴만 빼면 온몸이 상처의 흔적으로 뒤덮여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정도로 불존은 무도(武道)를 걷는 것을 좌선이 아닌 속세에서 찾는 이였다. 때문에 소림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았다. 불존이 화경에 오른 것 자체가 수행이 아닌 실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불존의 성정 자체가 급하다는 뜻은 아니다.

16553274428738.jpg“바람처럼 움직이는 둔부이니, 어딜 향하든 이상할 것 없지요. 아미타불.”

불존은 의연하게 불호를 읊었다. 독왕의 도발을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린 것이다. 독왕은 그런 불존을 보면서 짙게 웃었다.

16553274428738.jpg“천독불침(千毒不侵)이라 들어 만나고 싶었지.”

그런 독왕의 얼굴에서는 살기가 물씬 풍겼다. 사림곡과 무림맹, 그리고 마교는 늘 서로가 서로를 치열하게 견제하고 경쟁하는 관계다. 상대의 전력을 깎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절대고수를 꺾는 것이다. 절대고수는 단순히 무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 조직 자체를 떠받치고 있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16553274428738.jpg“이 땡중 또한 곡주를 만나보고 싶었소. 내 속세를 유랑하다 보니 사파의 파락호들이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것을 너무도 자주 본지라,”

불존의 눈이 항마의 기운을 띄고는 독왕을 응시했다. 독왕의 보랏빛으로 물든 손끝이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출수하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리라.

16553274428738.jpg“고혈을 쥐어짜는 것이 어찌 우리의 무리뿐이랴. 위선자들이야 말로 두 가면을 쓰고 그런 짓거리를 벌이니…… 쯧쯧.”

독왕은 그리 말하면서 천혜대사를 쳐다봤다.

16553274428738.jpg“허니 왕(王)을 훔쳐 쓰는 땡중도 있지 않더냐?”

맹주의 눈썹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안 그래도 그것 가지고 말하는 강호의 호사가들 때문에 무왕이라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천혜대사다. 하나 무림맹의 맹주이니 무왕이란 말을 마냥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이렇듯 조롱의 대상으로 쓰일 때 할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림십좌의 이왕(二王)급도 아니면서 왕(王)이라 불리는 이는 무림맹주가 유일했기 때문이다. 화경에 오르지 못하고 수십 년째 초절정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천혜대사의 천추의 한이었다.

16553274428738.jpg“사림곡주는 말을 삼가시오.”

제갈명공이 독왕에게 경고를 했다. 그러자 독왕이 제갈명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16553274428738.jpg“무공 없이 입만 살아 떠드는 제갈의 머저리들은 찌그러져 있거라.”

16553274428738.jpg“곡주.”

돈극이 제갈명공에게 혀에 비수를 달아 말한 독왕을 한 박자 늦게 말렸다. 그건 전부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것을 제갈명공도 알고 있었다.

16553274428738.jpg“제갈세가는 언제든지 손님을 환영합니다, 독왕. 한데 독곡은 아니니 내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제갈세가는 어떤 손님이 오더라도 강하기에 호북성에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하나 독왕의 독곡은 신비문파이기에 위치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것을 제갈명공이 잡아 비꼰 것이다. 그러자 독왕의 손끝에 검푸른 독기가 맺혔다.

16553274428738.jpg“그 입. 중독이 되고 난 다음에도 놀릴 수 있나 보고 싶구나.”

우웅-!! 그에 맞서 불존의 양 손에서 은은한 항마의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불존이 그런 독왕을 보면서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16553274428738.jpg“허면 그 안에 독왕께서 백보 바깥으로 도망갈 수 있을지 봐야겠습니다. 아미타불.”

독왕과 불존의 기운이 첨예하게 부딪쳤다. 그런데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더니 동창제독 부로가 들어와서는 끼어들었다.

16553274428738.jpg“그만. 한가하게 기싸움이나 할 때가 아니다.”

16553274428738.jpg“공공, 오셨습니까.”

16553274428738.jpg“……중백약이라 하외다.”

부로가 가장 상석에 가서는 옷을 펄럭거리면서 앉았다. 그런 부로를 본 독왕과 불존의 눈이 작게 흔들렸다. 부로가 독왕과 불존이 부딪치고 있는 그 사이로 들어와 너무나도 쉽게 기운의 충돌을 파훼했기 때문이다.

16553274428738.jpg‘강하다.’

16553274428738.jpg‘화경의 고수란 소문이 사실이로구나. 아미타불.’

황실의 창위인 동창과 금의위에 대한 소문만 무성했는데 부로를 보자 과연 황실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 독왕과 불존이었다.

16553274428738.jpg“황상께 방자한 검주의 말이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놈을 죽여야 한다.”

16553274428738.jpg“이 몸의 독이면 검주 할애비가 오더라도 죽일 자신이 있소.”

독왕이 부로에게 말했다. 부로는 그런 독왕을 힐끗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16553274428738.jpg“확실하지 않다.”

16553274428738.jpg“독황신공을 무시하는 것이오?”

독왕의 얼굴에 노기가 서렸다. 독왕은 자신의 독공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소문을 맹신하지 않았다. 현경. 현경이란 것이 대체 어떤 경지인데 함부로 입에 담는다는 말인가. 하나 검주가 자신보다 한 수 위의 실력자일 것이란 것은 인정하고 있었다. 하나 그렇다고 하여 독공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다. 독이란 것은 공력과는 또 다른 것이라 제 아무리 공력이 많다고 하여 독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16553274428738.jpg“주작단이 실패했다지. 독왕, 그대의 독공이 당가의 그것보다 강하다 자부할 수 있으시오?”

이미 주작단, 당가의 무인들이 검주에게 당했다. 그렇다는 것은 웬만한 독공으로는 만우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부로는 독왕의 독황신공이라 하여 그것이 다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16553274428738.jpg“독곡의 독을 당가 그 잡것들의 것과 비교하지 마시오.”

하나 당가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독왕에게는 치욕이었다. 독황신공은 200년 전 절대고수에 올랐던 독황의 무공이었고 독곡 역시 사천당가 못지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74428738.jpg“하지만 독황의 독공은 풍제(風帝)에게는 통하지 않았지. 그런 실수가 일어나서는 안 되니 신중하시오.”

부로는 독왕에게 눈을 또렷하게 뜨고는 말했다. 그러자 독왕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16553274428738.jpg“어찌 그것을…….”

16553274428738.jpg“황실이 어찌 그대들보다 못 할 것이라 보는가. 모든 것을 굽어 살피시는 것이 황상이시거늘.”

부로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독황이 풍제에게 패한 것은 독곡에서도 비밀스럽게 내려오는 사실이었다. 풍제(風帝). 독황과 마찬가지로 200년 전에 활동한 절대고수로 철선(鐵扇)으로 일으킨 바람을 무기로 서, 그 모습이 마치 파초선처럼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파초선무공(芭蕉扇舞功) 썼던 이다. 그런 풍제와 독황이 한 번 겨루었던 적이 있는데 결과는 독황의 일방적인 패배였다. 풍제가 일으키는 바람으로 인해 독황이 하독한 독이 결코 그에게 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괜히 구경하던 애꿎은 무인들 삼백이 풍제가 일으킨 바람에 날린 독황의 독에 의해 죽었다는 기록이 독곡에는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황실에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16553274428738.jpg“…….”

때문에 독왕은 더 이상 혼자 하겠다 나설 수가 없었다. 부로는 그런 독왕을 힐끗 쳐다보고는 무림맹주인 천혜대사에게 말했다.

16553274428738.jpg“대사. 검주가 연경에 들어오기 전에 해치워야 하외다.”

16553274428738.jpg“……한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공공.”

무림맹에는 개방이 있다. 개방의 정보력은 중원제일이다.

16553274428738.jpg“석가장에서 나섰습니다.”

16553274428738.jpg“석가장?”

16553274428738.jpg“예, 공공.”

부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창제독인 부로의 한 마디면 권세 높은 대신들도 벌벌 떨었다. 게다가 무림을 주름 잡는다는 무림맹과 사림곡의 맹주와 곡주도 부로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석가장만큼은 부로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황금은 황제로 하여금 부로를 기꺼이 내치게 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16553274428738.jpg“석가장에서 어찌하여!”

16553274428738.jpg“그들의 염원이 바로 강한 무력을 손에 쥐는 것이니…… 아미타불.”

천혜대사는 두 눈을 감고는 불호를 읊조렸다. 석가장의 무공과 강함에 대한 집착은 무림의 그 어떠한 문파보다도 심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빈객들을 초빙하여 제일표국도 만들었고, 삼천 명의 낭인에게 돈을 쥐여 주고 인해표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석가장의 황금을 보고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지 석가장 본연의 힘은 아니었다. 게다가 정말로 강한 절대고수들은 그런 황금에 쉬이 움직이지 않았으니, 석가장은 다른 모든 것은 황금으로 살 수 있었어도 절대고수만큼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석가장은 계속해서 절대고수를 자신의 힘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곤 했다.

16553274428738.jpg“석소군. 그 자가…….”

부로는 얼굴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때 제갈명공이 부로에게 말했다.

16553274428738.jpg“공공. 석소군이 직접 간 것은 아니오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석소군의 조카인 석미도가 갔다 하니 방법이 있을 듯 싶습니다.”

16553274428738.jpg“방법이 있다?”

16553274428738.jpg“예, 공공.”

제갈명공은 고개를 돌려 돈극을 빤히 쳐다봤다. 설중사 돈극에 대한 이야기는 귀가 따갑게 들어온 제갈명공이다. 물론 그것은 돈극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때문에 제갈명공은 그런 돈극에게 물었다.

16553274428738.jpg“사림곡의 군사는 어찌 생각하시오?”

16553274428738.jpg“곡주.”

16553274428738.jpg“허한다.”

독왕은 돈극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독왕에게 허락을 받아 발언의 기회를 얻은 돈극이 부로에게 포권을 취해 보인 후 제갈명공에게 말했다.

16553274428738.jpg“공께서도 묘책이 있으신 것으로 보입니다만.”

16553274428738.jpg“돈 공도 마찬가지인 듯 싶소만.”

제갈명공이 돈극을 보고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지필묵을 꺼내서는 붓에 먹을 묻혀서는 돈극에게 내밀었다.

16553274428738.jpg“무후(武侯)와 주공근의 고사를 따라하시려는 겝니까?”

16553274428738.jpg“나쁘지 않지 않소이까? 공공.”

제갈명공이 쳐다보자 부로가 제갈명공과 돈극을 빤히 쳐다보다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74428738.jpg“먹물 깨나 한다는 자들이 다 그대들 같더군. 허한다.”

16553274428738.jpg“감읍할 따름입니다 공공.”

제갈명공은 부로의 허락까지 맡자 돈극에게 손에 들린 붓을 내밀었다. 독왕와 철권 그리고 불존과 천혜대사도 둘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쳐다봤다. 슥, 슥, 슥 제갈명공과 돈극은 동시에 글자를 손에 써내려갔다. 그리고는 주먹을 말아 쥐고는 부로를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74428738.jpg“보여도 좋다.”

16553274428738.jpg“그럼…….”

슥 제갈명공과 돈극의 손이 펴졌다. 그리고 그곳에는 똑같은 글자가 써 있었다. [공(攻)] 때릴 공. 공격을 그냥 감행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부로의 눈이 크게 뜨였다.

16553274428738.jpg“이게 무슨 뜻이냐?”

때릴 공을 부로가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한데 무림맹과 사림곡의 군사라는 이들이 그냥 공격하자고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뿐이다. 그곳에는 석가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74428738.jpg“상인들은 눈치가 빠르지요 공공. 아니 그렇습니까?”

16553274428738.jpg“그렇겠지. 이문을 보고 움직이는 자들이니까.”

부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돈극이 제갈명공의 말을 이어받았다.

16553274428738.jpg“허니 공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대한 빠르게. 지금부터는 시간이 문제이옵니다.”

16553274428738.jpg“그럼 석가장은 어찌해야 한다는 말이냐!”

수수께끼처럼 제갈명공과 돈극이 시원하게 말을 하지 않자 부로가 신경질을 냈다. 독왕과 불존, 철권과 천혜대사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16553274428738.jpg“검주와 석가장 사이에 이야기가 오가 서로 약속을 맺기 전에, 석가장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16553274428738.jpg“검주의 손을 잡는 순간, 용서란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제갈명공과 돈극이 그렇게 말하고는 각기 독왕과 천혜대사에게 몸을 돌려서는 읍했다.

16553274428738.jpg“명을 내리시어 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불존, 부탁드립니다.”

16553274428738.jpg“아미타불.”

16553274428738.jpg“곡주. 움직이셔야 합니다. 철권, 기린대와 함께 움직이시게.”

16553274545148.jpg“알았소이다.”

철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갈명공은 곧바로 품속에서 쪽지를 꺼내서는 그것을 밖에 있던 무림맹의 무인에게 넘겼다.

16553274428738.jpg“청룡단과 백호단에게 가 보여주면 알걸세.”

16553274428738.jpg“예, 군사.”

16553274428738.jpg“그리고…… 부 공공.”

제갈명공이 고개를 돌려 부로를 쳐다봤다. 돈극도 때마침 그때 부로를 쳐다보았다. 두 천재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부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16553274428738.jpg“동창 고수들을 움직일 것이다. 허니 사람을 보내어 길을 안내하라.”

16553274428738.jpg“그리하겠습니다, 공공.”

연경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 탁탁탁. 야율태는 심호흡을 고르며 공터 바닥을 발로 두드리는 만우를 빤히 쳐다봤다.

16553274428738.jpg‘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만우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게 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런 공력이 없는 일반인이라도 무언가는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나보다 약하다.’, 혹은 ‘몇 수 안에 어떻게 상대하겠다.’라는 것들. 대다수의 무림인들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약하다는 것으로 혼동하지만 야율태는 아니었다. 일검진천이라 불리는 그의 별호는 괜히 얻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6553274428756.jpg“자. 여기 정도면 괜찮네. 땅도 고르고. 응?”

만우는 그런 야율태를 보면서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긴장감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야율태는 분노하지 않았다. 무(無)가 느껴지는 만우는 분명히 그보다 윗줄에 있는 고수였으니까. 야율태는 그런 고수를 상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이 순간을 한시라도 헛되어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16553274428756.jpg“재미없는 친구네. 응?”

만우는 피식 웃으면서 석미도를 쳐다봤다. 석미도는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만우는 그런 석미도에게 턱짓을 했다.

16553274428756.jpg“약속, 지켜라?”

16553274428738.jpg“예, 대협. 석가장의 이름을 걸고 지키겠습니다.”

석미도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방매를 힐끗 쳐다봤다. 석미도와 만우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방매는 몰랐다. 그렇기 때문에 방매가 도끼눈을 뜨고는 석미도를 쳐다봤다.

16553274793018.jpg‘저 불여시 같은 건 또 뭐람.’

방매는 만우에게 정말로 많은 여자들이 꼬인다고 생각하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듣자하니 석가장이 중원 제일의 부호가 세운 가문이라고 하던데, 그곳의 여자마저 만우에게 호감을 품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16553274793018.jpg‘다른 계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이름이라도 새기던가 해야지.’

방매가 투덜거릴 동안 만우는 손을 척하고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1655327479303.jpg“형님! 이기십쇼!!!”

간장이 그런 만우를 우렁찬 목소리로 응원했다. 만우에게 형님이라 하는 것에 몇몇 이들이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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