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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천하제일인, 천하제일관을 무릎 꿇리다(2) (326/400)

326. 천하제일인, 천하제일관을 무릎 꿇리다(2)2022.02.12.

기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처럼 하늘의 푸르름이 점점이 퍼지는 것처럼 산해관의 진동문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창두를 만우와 사행단을 향해 들어 올린 병사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 푸른 하늘이 서서히 그들이 있는 곳까지 잠식해 들어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손에서 바람을 쏘아 보낸다는 그 무림인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눈가에 두려움이 서렸다. 미지에서 오는 공포. 검 한 자루로 산봉우리를 날리고 바다를 가른다는 바로 그 무림인이었다.

16553273134696.jpg“연경에 가장 빠른 파발을 보내 알리거라.”

만우는 푸른 하늘을 온 몸에 휘감고는 입가로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다. 그런 만우의 목소리는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쏙쏙 틀어박혔다.

16553273134696.jpg“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천자를 보러 연경에 가겠노라고. 그러니 성대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하늘 아래 제일. 그 말인즉슨 만우는 황제보다도 그 앞에 스스로를 놓겠다는 것이다. 천자(天子)라는 황제도 결국은 하늘의 아들일 뿐이니까. 스르릉-! 이룡검이 섬찟한 소리를 내면서 검집에서 뽑혀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만우가 휘감고 있는 푸른 하늘 사이로, 창공에 걸맞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서걱! 그런데 그 바람은 그냥 바람이 아니었다. 만우의 의지가 담긴, 만우의 손에 들린 이룡검이 만들어 내는 바람이었다. 서거거거거거걱!!! 진동문과 그 주변이 성벽에 무수히 많은 검흔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그 높고 두터운 성벽이 걸레짝처럼 변해 버렸다. 하지만 만우가 일으킨 바람은, 이룡검이 만들어 낸 검풍(劍風)은 성벽을 난도질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서걱, 서걱, 서거걱!!

16553273134706.jpg“으, 으…… 으아아아악!”

16553273134706.jpg“시, 신선이다!!”

16553273134706.jpg“으아아아!!!”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졸들의 뒷덜미가 오싹해지며 소름이 오소소하고 돋았다. 푸른 하늘을 유영하는 무수히 많은 바람들이 몸뚱이에는 생채기 하나 새기지 않고 그들이 걸치고 있는 갑주와 병장기를 싸그리 자르고 끊어 버린 것이다. 그게 어디 인간이 가능한 수준의 무위던가. 자신들이 인간이 아닌 신선, 아니 그보다 더한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었다는 두려움이 뒤늦게 잘 단련된 강병들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명의 최전방, 산해관을 지키는 강병들이었기에 그들이 받은 혹독한 훈련과 단련된 정신력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아니, 그들을 지켜주었던 갑주가 거지도 안 입을 법한 누더기로 변해 버리고 손에 굳건하게 쥐고 있었던 활과 창이 장작 따위로 변해 버린 순간 그들의 정신력은 붕괴됐다. 땡-! 땡-! 땡-! 땡-! 만우가 수백은 되는 군사들을 상대로 믿을 수 없는 신위를 선보인 순간, 산해관의 중심을 떡하니 지키고 있던 종탑이 요란한 종소리를 만들어 냈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그 종탑을 빤히 쳐다보다가는 이룡검을 스윽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쩌억-!!!!!! 그 순간, 산해관 중심에 있던 종탑이 쩍 하고 양 옆으로 갈라졌다. 푸른 창공을 전신에 휘감은 만우가 벌거벗은 몸이 된 수백의 군사들을 보면서 검을 들지 않은 손의 손가락을 까닥였다.

16553273134696.jpg“지금 본 것, 토씨 하나 빼놓지 말고 연경의 황제에게 전하라.”

만우가 광오한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은 벌거벗은 군사들을 응시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검주로 중원을 독보(獨步)하다 떠났던 만우가, 천하제일이 되어 돌아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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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의 눈이 노장군 너머 그 뒤를 쳐다봤다. ***** 부들부들

16553273134728.jpg“분타주. 왜 그러십니까? 점심에 먹은 게 탈이 나셨습니까?”

16553273134728.jpg“너, 넌 보지 못했느냐? 어?”

허리춤에 분타주를 뜻하는 세 개의 매듭을 단 거지, 홍개(紅丐)가 두 눈을 부릅뜨고는 팔에 돋은 소름을 미친 듯이 긁어 댔다. 그런 분타주의 이상 행동에 일결, 이결개들이 이상한 듯 분타주를 쳐다봤다.

16553273134728.jpg“이, 이대로 연경으로 가야겠다.”

16553273134728.jpg“연경이요? 총본타?”

16553273134728.jpg“그래.”

16553273134728.jpg“그러면 심양은…….”

16553273134728.jpg“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방금 전에 듣지 못했어?”

홍개는 까치집을 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자 고약한 냄새가 풍겨져 나왔지만 성벽 뒤에 바짝 붙어 있어 그들의 냄새를 맡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16553273134728.jpg“뭘요? 아무 것도 안 들렸는데요?”

16553273134728.jpg“뭐, 뭣?”

홍개의 뒷덜미로 땀 한 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분명 홍개는 또렷하게 들었다.

16553273134696.jpg[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천자를 보러 연경에 가겠노라고. 그러니 성대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그런데 이걸 옆의 거지들은 못 들었다는 소리다. 오싹

16553273134728.jpg‘그, 그 거리에서?’

홍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말이 성벽이지 홍개와 거지들이 있는 곳은 진동문이 아니었다. 홍개가 익힌 특수한 안법으로 남쪽의 망양문(望洋門)의 망루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가 못해도 족히 오십 장, 아니 그보다 더 멀어 보였는데 그 거리에서 검주가 자신이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는 소리다. 입신(入神)의 경지. 무림십좌의 일인인 검주가 마교의 혈세천마와 그가 대동한 곡왕, 마존을 홀로 격파하고 천하제일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검주가 보인 저런 신위는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꿀꺽. 본래도 화경의 고수로 무림에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다녔던 검주다. 그런 검주가 천하제일인이 되어 강호로 되돌아왔다? 거기에 이번에는 단순히 강호무림만 아니라 관(官)에까지 평지풍파를 일으킬 기세로 산해관을 통과했다!

16553273134728.jpg‘주작단이 연락이 끊긴 것도 검주를 만났을 확률이 높다!’

홍개는 벌떡 일어나 서문인 영은문(迎恩門) 쪽으로 냅다 경신법을 이용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시라도 헛되이 보낼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알려야 한다. 무림맹에!!!”

  ***** 결국 산해관에서 사행단은 별로 쉬지도 못한 채 쫓겨나오듯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우의 신위로 인해 함부로 달려들지는 못하고 길은 텄으나, 사방에서 감시의 눈길을 단 한시도 늦추지 않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마나 다행인 점은 산해관이 요새 도시이기에 무림 문파가 없다는 점이었다.

16553273134728.jpg“빨리 가는 것이니 좋다고 생각하십시다.”

만우는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으며 설미수와 동군영을 쳐다봤다. 사행단 중 가장 체력이 약한 둘이기 때문에 산해관에서 채 하루도 쉬지 못하고 빠져나오느라 지쳐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천하제일인이시니 어쩔 수 없지요.”

설미수가 토라진 듯한 목소리로 만우에게 말했다. 그를 꼬박꼬박 은공이라 하며 은인으로 모시던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하지만 만우도 그런 설미수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사행단은 소국에서 대국을 조천하기 위해 온 사신들이다. 그런데 그 사신을 수행하는 부관도 아니고, 말이나 끄는 역졸이 산해관을 거의 반 무력화시킨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문제가 외교적으로 어떻게 돌아올지,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아 쉽사리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기에 설미수가 저리 나오는 것이었다.

16553273134696.jpg“허헛.”

만우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거기서 천하제일인이라 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머쓱해졌기 때문이다.

16553273194447.jpg“천하제일관을 서미관으로 만들어 놓고, 산해관을 책임지는 장군은 물론이거니와 대명군을 수백이나 쓰러뜨렸으니 연경에 들어가면 난리가 나겠네, 난리가.”

퍼드득!! 동군영은 머리 위로 날아가는 전서구들을 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저 전서구들의 발에는 분명 만우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다는 것에 자신의 성과 관직을 걸 수 있었다.

16553273134728.jpg“쩝.”

척일은 또 다시 그냥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온 만우를 반짝거리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척사영을 쳐다봤다.

16553273134728.jpg“이 정도면 내 손녀도 괜찮다 생각했건만.”

1655327319446.jpg“할아버님!”

16553273134728.jpg“부족해. 천하제일인의 배필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어. 껄껄껄.”

척일은 짖궂은 눈으로 만우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만우는 그런 척일과 눈이 마주치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장난으로 말하고 있지만 척일의 눈에 담긴 일말의 진심이 읽혔기 때문이다.

16553273134696.jpg“꿈도 꾸지 마쇼, 노인장.”

16553273134728.jpg“어허! 아무리 그렇다 하여도 아이가 이리 듣고 있는데!”

척일은 과장스레 척사영을 힐끔거리면서 말했다. 척사영의 양 볼이 붉어졌다. 괜스레 갑자기 관심을 받으니 척사영이라고 해도 두 볼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1655327319446.jpg“할아버님.”

16553273134728.jpg“사영아. 아무리 그래도 말이다, 마음에 드는 남정네가 나타나면 확 낚아챌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

1655327319446.jpg“할아버님!!”

파앙-! 척사영이 바락 소리를 지르자 바람이 몰아쳤다. 척일의 수염이 푸르륵 하면서 날아올랐다.

16553273134728.jpg“허허헐!!”

척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설미수도 슬쩍 표정이 풀렸다. 척일과 척사영이 티격태격하면서 사행단의 분위기가 절로 좋아졌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다음부터는 말씀 좀 해 주시지요. 너무 놀라서 아직도 심장이 벌름거리지 뭡니까.”

16553273134696.jpg“네, 그럽지요. 그런데…….”

만우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무언가 익숙하다는 듯, 이미 반쯤 포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16553273134696.jpg“동 부사를 보고 배우셔야 할겁니다요.”

16553273134728.jpg“……?”

설미수가 동군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이미 무언가를 포기한 듯한 동군영을 보고는 대충 이해했다는 듯 입을 헤, 하고 벌렸다.

16553273134696.jpg“원체 저희 족속들이 누군가를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들이 아닌지라.”

특히 그중에서도 만우가 으뜸이다. 뒷생각을 안 하고 움직이는 걸로 치자면.

16553273134696.jpg“또 눈이 뒤집히더라도, 부탁드립니다요.”

16553273134728.jpg“…….”

설미수는 왠지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연경보다 산해관이 몇 배는 더 크다. 그런데 산해관에서도 수백에 달하는 명군이 튀어나왔는데, 연경이라고 덜할까? 그곳은 명천자가 기거하는 곳이다. 명나라 전체를 봐도 연경보다 더 군대가 많이 주둔하고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16553273134728.jpg“안 됩니다!!!!!”

설미수가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다.

16553273134696.jpg“그러면 산해관처럼 화살 맞고 죽습니까요?”

만우가 산해관을 언급하자 설미수의 입이 꾹 하고 다물어졌다. 산해관에서 머리를 가득 메운 화살비가 떨어져 내리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아…….”

설미수가 고개를 떨구자 만우는 히죽 웃었다. 장난기 가득한 그 얼굴에 설미수는 괜히 발끈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입을 뾰족 내밀면서 꾹 다물었다. 수염 난 학자풍의 외모를 가진 중년인이 그러고 있는 것도 썩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기에 만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73134696.jpg“혹시 모릅니다요. 연경은 얌전할지, 또 어떻게 압니까?”

16553273134728.jpg“…….”

사행단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여러 번 다녀 본 설미수는 만우의 말에 도저히 그럴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대국(大國). 대국이라 불리기에는 너무나도 속이 좁은 그들의 성정을 가장 많이 겪어본 사람이 바로 설미수다. 그들이 얼마나 자기들만의 권위주의에 찌들어 있는지 설미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이들이 산해관의 그 노장군보다 덜할까? 거기에 노장군은 분명 만우가 명천자를 모욕한 것까지 전서구에 전부 담았을 것이다. 그러니 만우가 오기만을 명천자는 벼르고 있을 것이다.

16553273134728.jpg“하아.”

설미수는 상황이 점점 자신의 손을 벗어나는 것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겪었던 무수히 많은 외교적인 경험들이 도움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껏 조선은 명에 머리를 숙여만 왔지, 만우처럼 고개를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행단의 정사라 함은 겉보기에만 그럴듯하지 명 조정에 나아가 임금 대신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 수치와 모욕이 당연시되어야 하는 자리였다.

16553273134728.jpg“후우.”

설미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 경험이 만우와 만나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여진족을 만나질 않나 심양에서는 무림맹과 싸우질 않나, 산해관에서는 대명군과 싸웠고 연경으로는 계속해서 전서구가 날아가고 있었다.

16553273134696.jpg“거지들도 보고 갔으니 아마 연경에서 저희를 환영해 주는 인파가 꽤 볼만할 겁니다요, 나리.”

설미수가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만우가 해맑게 웃으며 설미수에게 말했다. 설미수는 그런 해맑은 만우의 얼굴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사실, 머리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만우가 걷는 길을 뒤에서 보는 것만 해도 통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명나라로 넘어가며 얼마나 많은 수모를 겪어야만 했던가. 티를 내지는 않지만 소국이라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을 비웃거나 조롱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꾹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만우는 참지 않았다. 무(武). 만우에게는 관직도, 배경도, 지식도, 금력도 없다. 오로지 단 하나. 절대적인 무(武). 그것 하나로 머리를 조아려야만 했던 이들에게 통쾌하게 한 방을 먹여주었으니 기분이 은근히 좋을 수밖에 없다. 말린다고 해서 말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16553273134696.jpg“피할 수 없다면.”

만우가 빙긋 웃으며 설미수에게 말했다. 설미수가 멍한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73134696.jpg“즐기십쇼, 나리.”

연경이 차근차근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 쾅-! 무림맹의 맹주전. 그 맹주전을 누군가 발로 쾅 하며 차고 들어오자 부리부리한 시선들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그곳으로 향했던 부리부리한 시선들은 그곳으로 들어오는 이를 보고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16553273134728.jpg“맹주!!!”

16553273134728.jpg“아미타불. 만타개가 아니시오. 어쩐 일로…….”

무림맹주 무왕(武王) 천혜대사가 꾀죄죄한 몰골에 악취를 풍기고 다니는 거지들의 대왕, 개방방주 만타개를 보고는 말끝을 흐렸다. 만타개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것이 급한 일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산해관에서 온 특보요.”

16553273134728.jpg“산해관?”

천혜대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산해관에서 올 특보가 무엇이 있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산해관은 별 다른 무림문파도 없었고, 연경으로 들어오는 길목이기에 명군이 철통처럼 지키고 있어 무림의 이해관계가 생기지 않는 곳이었다.

16553273134728.jpg“검주. 검주가 산해관을 깨부쉈소!”

쾅-!

16553273134728.jpg“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만타개의 말에 놀란 천혜대사가 일어나자 의자가 쾅 하고 뒤로 넘어갔다. 늘 부처를 생각하며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는 쳔혜대사였지만 검주의 소식에 그 평정심이 깨진 것이다.

16553273134728.jpg“산해관이라니. 분명 심양으로 향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주작단에서 별 다른 기별이 들어온 것이 없었다. 한데 산해관이라면 주작단이 향한 심양을 검주가 그냥 통과했다는 소리였다.

16553273134728.jpg“아마 당한 듯 싶소.”

16553273134728.jpg“주작단이? 그게 말이 되오?”

16553273134728.jpg“산해관에서 전해 온 지재가 사실이라면 말이 됩니다!”

만타개는 한숨을 훅 하고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진행이 되고 나니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나 명령을 내린 것이 황실이니, 황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무림맹의 입장에서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촤락! 천혜대사는 황급히 손에 든 죽간을 펼쳐들었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뜨고는 턱을 푸들거리며 떨었다.

16553273134728.jpg“혀, 현경? 정녕 검주 그 자가 현경에 들었단 말입니까?”

16553273134728.jpg“맹주. 더 이상 부정한다고 하여 달라질 사실이 아닌 듯합니다.”

당가의 고수들로만 구성된 무림맹의 정예, 주작단이 만우에 의해 박살이 났다. 그것도 모자라 심양태수는 대명군을 동원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검주를 그냥 보냈다. 그리고 천하제일관이라 불리며 대명군 중에서도 강병들만이 포진하고 있다는 산해관이 검주 일인에 의해 뚫렸다. 이 정도 경지라면 현경이 아니고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하다. 산해관. 그곳은 제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홀로서는 뚫어 낼 수가 없는 곳이다. 허나 검주는 그것을 가능케 했다.

16553273134728.jpg“또한 이것도.”

만타개는 또 다른 것을 꺼내놓았다. 이번 것은 죽간이 아니라 방이었다. 그런데 그 방에 찍힌 문양을 본 천혜대사의 눈이 커졌다.

16553273134728.jpg“이것은 마교의!”

16553273134728.jpg“십만대산 인근의 마을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방입니다.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에 대한 내용이 마교의 목소리를 통해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16553273134728.jpg“마교라니. 대체 마교가 왜…….”

분명 혈세천마를 비롯한 마교의 정예들이 검주의 손에 의해서 죽어 나갔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는 마교와 검주는 철전치 원수가 되는 것이 옳다. 한데 마교는 마치 검주를 경외하는 것처럼, 그를 천하제일검이라 부르며 그의 강함을 칭송하는 방을 십만대산 인근에 돌리고 있었다.

16553273134728.jpg“아마 검주가 현경이란 것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16553273134728.jpg“…….”

16553273134728.jpg“마교는 자존심이 강하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가장 강대한 율법은 바로 강자존(强者存)이지요. 그들은 검주가 현경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을 두 눈으로 봤을 것입니다.”

16553273134728.jpg“마교에서 나섰으니 이제 부정하려 해도 부정할 수가 없겠구려. 아미타불.”

천혜대사는 조용히 불호를 읊었다. 강호무림 출신의 천하제일인이 아닌 동이족 천하제일인이라. 무림의 역사가 시작한 이래 그런 천하제일인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무림 역사 중에는 세외의 고수들이 크게 명성을 떨친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그들을 천하제일이라 칭한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다. 인정하지 않았으니까. 무림, 더 나아가서는 무공의 원류라 자부하는 강호무림의 무림인들은 중원 출신이 아닌 세외의 무인들을 제대로 된 무림인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니, 그들의 이름이 역사 속에 남기는 하여도 늘 부정해 왔던 것이 무림의 역사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검주 만우가 동이족 출신인 것은 맞으나 마교, 무림을 삼분하는 그 거대한 마교에서 검주 만우를 천하제일로 공표한 것이다.

16553273134728.jpg“주작단이 검주에 의해 당한 것이라면 맹에서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6553273134728.jpg“준비…… 준비라…….”

천혜대사는 황망한 얼굴로 불호를 연신 읊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염주를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것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16553273134728.jpg“맹주! 맹주령을 내리십시오! 검주가 연경으로 들어오기 전에, 대비책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16553273134728.jpg“……군사. 군사를 불러야 하오. 밖에 아무도 없느냐! 어서, 어서 제갈명공, 명공을 부르거라!!”

천혜대사가 군사인 제갈명공을 불렀다. 늘 신묘한 지략과 책략으로 맹이 맞닥뜨린 어려움을 돌파하는 데 도움을 줬던 그다. 그러니 군사라면, 제갈명공이라면 또 다시 좋은 계책을 내줄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16553273134728.jpg‘현경. 현경의 고수를 막아야 하는가 아니면 손을 잡아야 하는가!’

동이족 출신의 천하제일인의 손을 잡느냐, 아니면 희생을 각오하고 황실의 손을 계속해서 잡고 있느냐.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천혜대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군사인 제갈명공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 콰직!

16553273134728.jpg“뭐, 뭐라?”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천자를 보러 연경에 가겠노라고. 그러니 성대하게 맞이할 준비를 하라.] 동창제독인 부로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 종이를 구기고서는 이를 딱딱거리며 부딪쳤다. 분노 때문이 아니다. 공포 때문이다. 현경. 그 지고한 경지에 오른 그를 보고 제 풀에 놀라 오줌을 지렸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 일로 인해 조선에서 도망치는 것처럼 급히 한양을 떠야만 했던 것을 어찌 잊을까. 한데 그 작자가 산해관을 강제로 뚫고 대명(大明) 전체에 선전포고 비슷하게 선포를 해 버렸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도 아니고, 스스로를 천하에서 으뜸가는 이라고 한 것은 천자조차도 자신의 발아래 있다는 뜻과 마찬가지다. 그런 부로가 빈손으로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와 검주가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알렸음에도 황상은 멈추지 않았다. 중원이라는 거대한 땅을 다스리고 무수히 많은 주변국을 제후국과 속국으로 만든 그 거대한나라의 주인인 황제가 황실에 일어났던 불명예를 씻고자 하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예. 황실의 명예가 대체 무엇이라고, 동창제독인 부로는 황상께서 굳이 집 안으로 범을 불러들이셨다는 것에 이를 딱딱거리며 떨었다.

16553273134728.jpg‘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황상께서는 이해하시지 못한다!’

무림과 무공에서 멀리 떨어져 계셨던 황상이시다. 그런 황상에게는 무림인이라 함은 그냥 일반 백성과 다를 바가 없는 자신이 군림하여 다스려야 할 백성에 불과했다. 허니 그 무림인이란 족속들이 제 아무리 강해 봤자 황상의 휘하에는 백만이 넘는 대명군이 있었고 출중한 창위가 있었다. 또한 황상이 즉위한 후 유례없는 강력한 군사력과 권력을 손에 쥐었으니 대명 황실의 과거에 남은 아주 작은 티끌조차도 완벽하게 지우고 싶은 욕망을 쉬이 버리지 못한 것이다. 완벽주의자. 부로의 눈에 황상은 권력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하길 바라는, 그리하여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우상이자 천자를 넘어 천(天)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작은 티끌도 눈에 거슬려 완벽을 기하고자 한 것이었고.

16553273134728.jpg“어찌해야겠습니까.”

16553273134728.jpg“황상께서는?”

16553273134728.jpg“아직 모르십니다.”

동창은 무공을 익힌 환관들이 모여 만들어진 곳이다. 거기에 고지식한 금의위와는 달리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무림맹을 가장 잘 사용하는 것 역시 동창이었다. 때문에 개방을 통해 들어온 정보가 가장 먼저 동창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16553273134728.jpg“황상께 이 소식이 알려진다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날 터.”

자존심 강한 영락제가 검주 만우의 이 오만하기 짝이 없는 선포를 듣는다면 단박에 군대를 일으킬 것이다. 아마 그 전에 검주를 그냥 통과케 한 심양태수와 산해관에 철퇴가 떨어질 것이고 말이다.

16553273134728.jpg‘현경. 그 끝이 어디인지를 모르니……’

부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을 느껴 본 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검주 만우에 대해서, 그가 이룩한 무(武)의 성취라도 대략 알아야 그를 상대할 준비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추측하건데, 만우는 현경이었다. 화경에 이른 열 명의 고수를 묶어 무림십좌라 부르며 경외하던 그런 강호무림의 수준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현경의 고수다.

16553273134728.jpg‘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선에서 마주친 만우에게서 부로는 끝이 느껴지지 않는 푸르른 창공을 느꼈다. 얼마나 높은지 감히 짐작할 수 없고, 얼마나 너른지 감히 잴 수 없는 푸르른 창공(蒼空). 부로의 경지로는, 아니 강호무림의 그 어떤 이라 하더라도 만우의 정확한 무위를 짐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상대의 무위를 가늠한다는 것도 어느 정도 실력이 비슷해야 가능한 법이다. 화경과 현경? 그냥 문자로만 적는다면 불과 한 단계에 불과하지만, 화경의 고수인 부로는 알고 있었다. 그 사이에는 이제 막 검을 잡은 초심자와 초절정 고수만큼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화경의 고수라면 어딜 가든 떠받듦을 받으면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것이 무림이라고는 하나 현경의 경지는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 경지다.

16553273134728.jpg‘어느 정도의 군사를 준비시켜야 할지도 모르고.’

황상께 이 소식을 숨길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치도곤을 당하는 것은 비단 검주뿐만이 아닐 것이다. 하나 황상께서는 아무런 대비책도 없이 그냥 비보만 전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다. 대비책. 어떻게 적을 상대하겠다는 대략적인 그림이라도 그려가야 황상께서는 만족해하실 것이다. 한데 부로는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한 한 획마저도 그을 수가 없었다. 현경과 검주. 그 둘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화경의 고수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된 강병 일천 정도가 필요하다.’

화경의 고수라고 해서 모두 같은 수준은 아니다. 개중 가장 빼어난 자들인 무림십좌를 상정했을 때 그 정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을 부로는 한 적이 있었다. 일천. 불과 한 명의 화경의 고수가 잘 무장하고 잘 단련된 강병 일천을 상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떤 날, 어떤 식으로 적을 상대하느냐를 가정한다면 그에 감하거나 더해질 수는 있으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면 일천이라는 병력이 필요하다. 당장 부로만 하더라도 많은 수의 적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수 없는 지형지물을 먼저 차지한다면 그 정도의 병력은 얼마든지 상대가 가능하다. 화경부터는 인간의 탈을 벗어난 진정한 초인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니 말이다. 한 성(省)을 주름 잡을 수 있다는 초절정 고수라고 해 봤자 국경 인근에서 잘 단련된 대명군 삼백이면 거뜬하게 잡아 죽이고도 남는다. 그런데 화경의 고수는 그 세 배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현경은?

16553273134728.jpg“일만.”

부로는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를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73134728.jpg“십만?”

일만은 왠지 적은 듯 느껴졌다. 허나 십만을 중얼거리고 나니 십만이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부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73134728.jpg“제 아무리 현경이라고 해도 대명군 십만이라니. 말도 안 되지.”

대명군 십만이면 나라 하나를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군사다. 부로는 답답하다는 듯 훅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16553273134728.jpg“공공.”

16553273134728.jpg“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부로는 자신의 앞에 넙죽하고 허리를 숙이는 환관에게 물었다. 허나 그 환관이라고 해서 딱히 뾰족한 답이 있을 리 없었다. 부로도 그것을 알았다. 그저 답답했기에 누구에라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16553273134728.jpg“십만…….”

일만은 적은 듯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백 년의 강호무림의 역사에 단 세 명만 도달했던 지고의 경지가 바로 현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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