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 맹주 보고 오라고 해(1)2022.02.01.
“너…….”
만우는 고개를 돌려 당중약을 쳐다봤다. 당중약은 만우와 눈이 마주치자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등골이 쭈뼛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만우는 당중약의 손끝을 보면서 말했다.
“당가 놈이구나.”
“거, 검주 대협!!!”
그때 뒤늦게 도착한 모용청이 헐떡이면서 단야검 모용재와 함께 객잔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런 모용청의 뒤로 화가 난 표정의 모용중이 걸어 들어왔다.
“둘째! 이게 무슨 무례…….”
일검단주이자 숙부인 모용재와 언성을 높이면서까지 독자적으로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끌고 나왔던 모용중이다. 그런데 그것을 동생인 모용청이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며 뚫고 들어왔으니 불쾌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용중도 객잔의 천장을 부순 채 선 만우를 보고서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숙부님! 검주예요!!!”
그때 석중의 손에 아직 잡혀 있던 당미령이 날카로운 고성으로 당중약의 정신을 일깨웠다. 당중약은 그런 당미령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검주! 네놈이 검주로구나!”
“그래. 내가 검주다.”
화아악!!! 불편한 심기가 만우의 얼굴에 고스란히 실려 나왔다. 실려 나온 것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
당중약은 자신의 발목을 누군가 땅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초절정 고수인 자신의 몸을 만우가 공력만으로 제약했기 때문이다.
“감령!”
“예, 대장!”
만우가 감령을 불렀다. 평소 같았으면 한 번 까불었을 감령이지만 만우의 목소리와 얼굴에 담긴 불편함을 눈치채고는 까불지 않고 냅다 달려왔다.
“대장?”
“옥면산군이 검주에게?”
갑작스런 만우의 등장에 안 그래도 혼란스러워하던 주작단의 무인들이다. 그들이 무림맹에서 이곳 요녕까지 오게 된 것도 전부 만우를 압송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압송이 되었어야 할 만우가 사지 멀쩡하게 객잔의 천장을 부수면서 나타난 것도 모자라 옥면산군이자 녹림의 대채주인 감령을 수하 부르듯 하는 것에 다들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그것이…….”
만우는 이미 자신의 눈으로 내원 주변에 빼곡하게 박힌 암기들을 두 눈으로 봤다. 그 정도로 암기를 퍼부었다는 것은 명백한 적의와 살의를 가지고 기습을 했다는 것이다. 감령이 만우에게 차분하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했다. 저자에서 만난 자신의 옛 수하에게 강호의 정세를 듣기 위해 이곳으로 왔고, 갑작스레 당중약을 비롯한 주작단이 난입하여 자신들에게 기습을 가하였으나 막역지우인 도겸과 천마대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주었다는 것을 전부.
“감 형. 꼭 일러바치는 것 같소.”
검절귀 도겸이 그런 감령에게 그리 말했다. 도겸이 그렇게 들었다면 다른 사람의 귀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감령이 미주알 고주알 대단히 자세하게 모든 과정들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시끄러!”
감령은 하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겸에게 말했다. 도겸은 검주 만우에 대해서 강호에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소문도 들어 알고 있었지만 믿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도겸과 천마대는 지금 만우를 적대해야 하는 것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었다. 화경의 고수. 비록 그 소문을 믿지는 않았으나 검주 만우가 무림십좌의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고수라는 사실만큼은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아. 그러면.”
짜악! 만우가 그 자리에서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러자 그 순간 도겸은 자신이 무언가를 대단히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우를 앞에 두고 적대해야 할지, 아니면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고민이었다. 비틀.
“어, 어…….”
털썩!!!! 만우의 박수 한 번에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초절정에 오른 도겸이 몸이 움직이지 않고 나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일단 대기들 하고.”
만우가 손바닥을 맞부딪쳐 낸 소리가 단순히 그냥 소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자 도겸은 찬물을 뒤집어 쓴 것처럼 오한이 느껴졌다. 초절정인 자신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찰나의 순간에 마치 뇌와 신체의 신호가 끊어진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은 만우가 소리 하나로 이 객잔에 있는 수십 명의 무인들의 혈을 짚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의형상인(意形傷人)!!!’
의형상인이라 함은 뜻만으로도 사람을 상하게 할 수 있는 경지를 뜻한다. 만약 만우가 박수소리에 살기를 담았다면?
‘…….’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이 머릿속에서 상상이 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만우의 박수소리에 그 자리에 주저앉은 이들이 정확히 당중약과 주작단의 무인들을 제외한 이들이라는 것이다. 당중약을 비롯한 주작단의 무인들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대, 대협.”
당황한 모용청이 고개만 들어 만우를 쳐다봤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에 적지 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사고 좀 쳐야겠다.”
“허, 허나…….”
“뒷수습을 잘 해 줄 거라고 생각할게. 응?”
만우는 모용청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모용청이 만우에게 이 객잔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해 주면서 부탁한 것이 일을 크게 만들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만우나 주작단은 이곳에 잠시 들렸다가 떠나가는 입장이지만 모용세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건 약속이 틀립니다, 대협!”
모용청은 우는 소리로 만우에게 말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방매는 만우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뒤에서 놀랐다는 눈으로 주변을 쳐다보고 있었다.
“안 죽일게.”
“…….”
만우는 박수 한 번으로 자신이 능히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을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랬기에 모용청은 뭐라고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만우의 선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결국 저들을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부탁드립니다, 대협.”
“그래, 그래.”
턱 만우는 방매의 수혈을 짚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방매가 지켜봐서 별로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령. 방매.”
“예. 예, 대장님.”
감령은 방매를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만우가 박수 한 번으로 벌인 기적 같은 일을 보고 나자 훨씬 더 공손해진 감령이었다. 새삼스레 자신이 천하제일인의 측근이라는 것이 확 체감됐다고나 할까.
‘천하제일인.’
감령은 스스로가 만우를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천하제일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에 놀랐다. 아니, 사실은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이 만우가 일본국에서 홀로 무림십좌 중 셋을 홀로 격살했을 때부터 확실하게 각인이 되었을 뿐이다.
“이…….”
당중약은 자신들을 앞에 놓고 태연하게 행동하는 만우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건 그들, 더 나아가서는 당가에 대한 모욕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수로 당중약과 주작단만 멀쩡하고 다른 이들을 모두 주저앉혔는지는 모르나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만우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화경의 고수를 아무런 방비도 없이 맞아야 한다니.’
당중약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진다는 생각도 하지는 않았다. 사천당가에게는 모든 무림인들이 지극히도 상대하기 꺼려하는 독이 당중약의 품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림십좌라 하더라도 한 번 들이마시면 치명타를 피할 수 없는 극독부터 시작해 내공을 흩어 버리는 독한 산공독까지. 가장 좋은 것은 완벽한 함정을 파고 그 안으로 적을 들이는 것이었으나 그게 아니라고 해서 진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단지 주작단의 피해가 신경이 쓰일 뿐.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감히 당가를 앞에 놓고도…….”
“말이 많다. 네놈.”
만우는 당중약의 말허리를 잘랐다. 그러자 당중약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대놓고 무시하는 만우의 태도에 당중약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땅바닥에 나뒹굴고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지 보겠다.”
“지랄은.”
피식 하고 당중약의 협박을 귓등으로 들어 넘긴 만우였다. 당중약이 주작단의 무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개진(開陣)!”
파바박!! 바짝 긴장의 고삐를 당기고 있었던 주작단의 무인들이 만우 주변으로 일사불란하게 포진했다. 그와 동시에 당가 무인들의 공력이 서로 공명하면서 그 크기를 키우는 것이 만우의 기감에 또렷하게 느껴졌다.
“만라독성진(萬羅毒性陳)이다. 오만한 검주 놈아.”
당중약이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맷자락 속에 있던 가장 강력한 두 가지의 독을 풀었다. 만라독성진은 사천당가에서 개발해낸 합격진 중 하나로 당가의 장기인 독과 암기를 동원해 적을 말살하기 위한 절진이었다. 특히 특이한 점 중에 하나는 진 안에 갇힌 적을 제외한 진의 구성원에게는 아무리 독한 독이라 하더라도 중독 증상에서 완벽한 면역을 자랑하게 해 주는 진이었다. 취이이이익!!!! 뿌연 독무가 진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불길한 짙은 녹색의 독무와 짙은 묵빛의 독무가 만우를 휘감아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멸공독(滅功毒)과 능살독(能殺毒)이니라.”
멸공독과 능살독이란 소리에 밖에서 독무에 휘감긴 만우를 보고 있던 감령의 눈이 커졌다.
“미친! 금기를 깨뜨리려는 것인가!!”
감령의 발이 움찔거렸다. 당장이라도 도로 당중약을 쪼갤 것처럼 움찔거리는 감령의 몸이었지만 감령은 나서지 못했다. 여기서 당중약을 치면 만라독성진이 깨지면서 독무가 새어나올 것이다. 멸공독과 능살독은 그 독성이 너무나도 강하고 잔인했기에 당가에서도 사용을 꺼려하는 독이었다. 특히나 멸공독 같은 경우는 일정 시간 동안 공력을 흩어 버리는 산공독(散功毒)과는 달리 말 그대로 공력을 태워 버리는 독이다. 무림인에게 공력을 잃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멸공독의 독성이 과하다고 하여 사용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었는데, 그것을 당중약이 깬 것이다.
“주작단은 황명을 따르는 것 뿐.”
당중약은 나서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는 감령을 보면서 히죽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섬세하게 독공으로 독무를 조절해 만우가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도록 독성을 집중했다. 치이익-!!! 능살독은 산공독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는 독이다. 상대의 공력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상대방의 공력을 자양분 삼아 목을 조이는 독으로 고통스럽게 죽음에 다다르게 했기 때문에 강호에서도 악명이 높은 독이었다. 멸공독과 능살독의 독성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객잔의 바닥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물컹물컹해진 나무 바닥이 푹푹하고 꺼져 들어가면서 타는 연기가 새어나오자 감령이 뒤로 물러서면서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떨어져!!”
직접적인 독무가 아니더라도 독성이 다른 물체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내뱉는 연기만 해도 강력한 독성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자 만우 때문에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이들이 다급히 엉덩이를 끌면서 뒤로 물러났다. 죽을 때 죽더라도 독에 중독되어 고통스럽게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검주라 하여도 독무를 들이마시고서는 멀쩡할 수 없다. 설령 무림십좌 전부가 몰려오더라도! 크하핫!”
당중약은 독절이라 불리는 당가의 고수답게 독공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비록 독왕(毒王)이라는 별호는 사림곡주인 중백약에게 빼앗겼으나 무림 역사 대대로 독가(毒家)하면 많은 이들이 당가를 첫 손에 꼽는다. 감령은 그런 당중약을 보면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무리 만우라 하여도 저리 독진에 갇혀 무방비로 극독을 들이마시면 살아날 방법이 없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다. 아직도 의심을 하는가.’
감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우는 아무런 방비도 없이 독무에 휩싸였다. 하지만 과연 만우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독진에 갇혔을까?
‘그 괴물이?’
감령은 만우의 끝을 본 적이 없다. 그의 진신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령은 가늠도 할 수 없다. 그런데 과연 만우가 저 안에 갇힌다 하여 그리 쉽게 당할까?
‘마음 졸이게 하지 말고 빨리 좀 움직이쇼!!’
감령은 도병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쥐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감령의 바램에 호응이라도 하듯, 독무 안에서 작디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올랐다. 화륵! 짙은 묵빛과 녹빛의 독무 사이에서 피어오른 작은 불꽃이기에 그것은 모두의 눈에 확 들어왔다. 꺼질 것처럼 위태하게 피어오른 그 불꽃은 쉽게 꺼질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꺼지지 않고 굳건하게 타올랐다.
“저건…….”
당중약의 눈이 커졌다. 그것은 그냥 불꽃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불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푸화아아아악!!!!
불길하기 짝이 없는 독무가 찢어발겨지며 그 안에서 터져 나온 푸른 창공에 독무가 씻은 듯이 희석되어 사라졌다. 기천(氣天). 휘오오오오-!!!! 제 아무리 독이 독하고 독성이 짙다고는 하나 독으로는 하늘을 뒤덮을 수 없다. 제 아무리 많은 독이어도, 끝없는 창공에 다다르면 독은 결국 그 어떠한 것도 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 창공의 일부분이 될 뿐이다. 스윽. 당중약은 푸른 창공 안에 오연하게 서 있는 만우를 쳐다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무방비하게 늘어뜨린 백색 검신에서 푸른 창공의 색과 같은 검강이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검강(劍强).
“혀…… 현경…….”
검강은 고요하고 고고하다.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다다르면 기(氣)는 결국 초인의 앞에 길들여진 망아지가 된 것처럼 순해진다. 하지만 본래 기(氣)란 것은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성질이 있어 형태는 고고한 검기(劍氣)가 되어 흐르더라도 벌떼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검강은 고요하다. 길들여진 순한 망아지가 되었던 기(氣)가 원래의 자연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성질조차도 잃고 완벽하게 초인에게 굴복하기 때문이다.
“이게 고작 당가의 독인가?”
만우는 오연한 표정으로 푸른 창공을 전신에 휘감은 채 당중약을 쳐다봤다. 당가에서 그 어떠한 독한 독을 쓰든 저 푸른 창공을 독으로 오염시킬 수는 없다. 하늘은, 그 무엇에도 오염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굽어 보는 존재였으니까. 하늘을 담은 무공 앞에 당중약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독에 물들어 까매진 당중약의 손끝이 후들거리며 떨리기 시작했다. 휘오오오오-!!! 푸른 창공이 불길하게 독무를 뿜어내던 독성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만우는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는 당중약과 주작단 무인들의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내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돌아간다면 의심 많은 무림맹의 늙은이들에게 똑똑히 전해라.”
푸른 창공의 끝이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높디 높은 푸른 하늘은 정적이나 하늘이 한 번 분노키 시작하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지상을 덮친다. 뇌성벽력(雷聲霹靂), 호풍환우(呼風喚雨). 제 아무리 뿌리를 깊이 박은 거목이라도 한 방에 날려 보내는 것이 하늘의 분노(天怒)다. 파라라락!!!! 만우의 몸을 휘감은 기천이 잘게 떨자 주작단 수십 명이 날려 보내 빼곡하게 내원 주변에 박혀 있던 암기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만우의 시선을 정면에서 받은 당중약은 벼락이 자신의 몸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본주를 그리도 보고 싶다면 맹주보고 직접 오라고 해.”
푸화아아악!!!
“으, 으악!!!!”
당중약이 두 손을 들어올렸다. 수십 년 동안 동반자나 마찬가지였던 암기들이 만우의 손짓에 의해 일제히 당중약과 주작단 무인들을 향해 되돌아왔기 때문이다. 파바바바박!!! 그렇게 날아든 수백 개의 암기들은 당중약과 주작단의 무인들의 몸에 단 한 개도 꽂히지 않았다. 대신 절묘하게 당중약과 주작단 무인들이 옷을 통과하고는 뒤의 벽이나 바닥에 박혀 그들이 옴짝달싹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모용에 감사하게 생각하라. 간절히 청하여 내 특별히 살려주는 것이니.”
당중약은 멍한 눈으로 만우가 몸을 돌리는 것을 지켜봤다. 마치 벽과 땅에 암기로 옷을 바느질해 붙여 놓은 것처럼 되어 있어 몸을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르륵 몇몇 주작단 무인들은 오줌까지 지렸다. 독한 오줌 냄새가 객잔 안에 퍼졌다. 석가장의 석중은 그런 만우를 보고서는 눈을 빛냈다.
“대장!”
“쯧. 어떻게 된 게 늘 사고를 몰고 다니는 거야.”
감령은 만우가 자신을 나무라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사건 사고를 늘 몰고 다니는 것은 감령이 아니라 만우였기 때문이다. 힘이 있으면 늘 그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힘이 없어서 외면한다면 모를까 힘이 있다면 외면할 수 없는 일이 자꾸만 생겨나고, 그런 일에서 파생된 은원들이 거미줄처럼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만우가 가진 거대한 힘은 늘 사건과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뭐. 불만이야?”
하지만 감령은 그런 만우에게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방금 같은 그런 신위(神位)를 보고도 간 크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요 대장.”
“그런데…… 천마대가 아니냐?”
만우는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는 듯 천마대를 쳐다봤다. 그러자 도겸이 바짝 긴장해서는 파다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그들의 몸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돌아온 것이다.
‘귀신같은 기예다.’
그 말인즉슨 초절정 고수인 도겸이 눈치 채지도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점혈과 해혈이 끝났다는 뜻이다. 애초에 물리적으로 점혈을 하지 않은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제 아우요, 대장.”
“아우? 마교에?”
“어릴 적에 친분이 있었 수다.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천마대의 대주가 되어 나타날 줄은 몰랐다. 만우는 그런 도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마존만은 못 하구나.”
“……화경의 고수를 그리 쉽게 구할 수 있겠소?”
누구 때문에 자신이 초절정인데 떠밀리듯 천마대주가 되었겠는가. 그게 전부 만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믿지 못했지만 방금 그 무시무시한 신위를 봤으니 이제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천마신교. 악의 대명사로 무림 전체에 공포를 심어 놓던 천마신교의 신인 교주와 두 명의 화경의 고수, 그리고 천마대와 진혼대의 수백 명의 고수들은 검주에 의해 전멸을 당한 것이다.
‘현경.’
현경이라면 말이 된다. 유구한 무림의 전 역사를 뒤져봐도 현경에 오른 무인은 열 손가락이 넉넉하게 남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근데 네놈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복수라도 하러 온 건가?”
만우가 씩 웃으면서 말하자 도겸은 물론 오마장과 천마대의 고수들이 흠칫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만우가 손을 쓰면 단언컨대 단 한 명도 두 발로 걸어 나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감령만이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눈으로 만우와 도겸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아니오. 복수라니. 이미 그대가 신교의 전력을 크게 꺾어 놓지 않았소. 우리는 그저…….”
“아. 주창과 그 똘마니들 데리러 온 거구나?”
도겸의 눈이 커졌다. 아직 천마대는 차기 교주가 될 주창과 투귀대의 고수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혀 의외의 인물의 입에서 주창의 이름이 흘러나온 것이다.
“호, 혹시 아시오? 알고 있다면 내 크게 사례할 터이니 알려 주시오!”
작금의 천마신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숨겨진 화경의 고수이자 소교주인 주창의 안위이다. 교주에 이어 소교주까지 횡액을 당한다면 천마신교는 극심한 혼란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나마 소교주인 주창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신교 내의 권력다툼이 심화되지 않은 것뿐이지, 지금 이 와중에도 슬슬 딴 마음을 먹으려는 이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사례?”
“그렇소. 검주 그대가 고수라고는 하나 우리는 거대한 조직이오. 분명히 그대를 도울 것이 있을 것이오.”
일개 재물을 주고 사례라고 말할 생각도 염치도 없었다. 하지만 이쪽은 무려 천마신교였다. 아무리 검주라고 해도 개인이 할 수 있는 것과 조직이 해 줄 수 있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만우의 눈에 장난기가 반짝이며 떠올랐다.
“천마신교에서 할 사례랑, 무림맹에서 해 줄 사례랑 어느게 더 클까?”
“검주!”
“왜. 솔직히 내 손에 들어온 떡인데. 그 떡을 누구에게 줄지는 내 마음 아닌가?”
“크으…….”
도겸의 손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천마신교의 일원인 그에게 있어 만우의 말은 천마신교의 자존심을 짓밟은 말이었다. 무려 차기 교주를 손아귀에 쥐고 계산을 하겠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천마신교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싶으신 것이오?”
“그러면. 네 말을 들어주면 나는 무림맹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건데?”
만우는 손가락으로 당중약과 주작단의 무인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이 나간 얼굴과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자 도겸은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이내 도겸이 살기를 피워 올렸다.
“다 죽이면 되는 것 아니오?”
무림에서 죽음은 흔하디 흔하다. 그것은 제 아무리 사천당가의 당중약이나 무림맹 최고의 정예들로 꾸려진 주작단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당신과 얽혀 있다는 모든 증거를 지우고 늘 그렇듯 마교가 무림맹을 공격한 것으로 하면 되지 않소.”
“흐음…….”
만우는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건 내 성에 차지 않고…….”
만우는 씩 웃으며 도겸을 쳐다봤다. 그리고, 정마대전의 씨앗이 그날 그곳, 바로 그 시간에 발아하기 시작했다. *****
“대협.”
만우는 멍한 표정을 지은 도겸의 어깨를 툭툭 쳐 주고는 객잔에서 빠져나가려다가 멈칫 했다. 석가상단의 행수인 석중이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가장에서 본주에게는 왜?”
“아직 한 명이 더 남아서 이리 말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명…… 쟤네?”
만우는 여전히 넋을 놓고 있는 당중약과 주작단 무인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석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가 당중약의 조카인 당화, 당미령입니다.”
“오화(五花)?”
만우가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사람을 만났다는 표정으로 눈을 크게 떴다. 오화는 여인들이 그리 많다는 무림에서도 뛰어난 미모로 이름을 날린 다섯 명의 여자들을 뜻한다. 무화(無花) 임수미 당화(唐花) 당미령 나찰사화(羅刹死花) 옥령 혜화(慧花) 제갈연 화화(花花) 초옥 무림의 뭇 고수들이 만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는 오화 중 일인이 팔다리가 포박되어 끌려나온 것이다.
“저희 객잔을 차지한 당중약과 협상을 하기 위해 잡아왔습니다만…….”
석중은 만우의 눈치를 살피며 포권을 취해 보였다.
“공명정대한 검주 대협 덕분에 일이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흐음…….”
만우는 당미령의 아래 위를 눈으로 훑었다. 당미령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그녀도 지금 일어난 일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사천당가! 무림의 구파일방 오대세가 중 당당히 일좌를 차지한 저력 있는 무림의 명가가 바로 사천당가였다. 그런데 그 사천당가에서도 가주 다음으로 뛰어나다는 독절 당중약과 당가의 무인들이 단 일인(一人)에 의해 완벽하게 신체와 정신이 제압당했다. 이 소식이 무림에 퍼진다면 사천당가의 무인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을 것이다.
‘검주 만우. 현경이었다니. 정녕 저 자가…….’
소속된 문파나 세가도 없이, 중원을 독보하는 낭인이나 다름없는 검주 만우가 천하제일인이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서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가 유구한 자신들의 문파나 세가도 아니고, 기껏해야 홀로 중원을 독보한 일개 낭인이 천하제일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무림의 법도는 강자존.’
당미령은 만우의 검에서 고고하게 피어오르는 검강을 분명하게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당가의 독을 집어삼키는 무공이라니. 창공의 형상을 본 따 만들었다는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도 일으킬 수 없는 현상이었으나 만우의 무공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하늘!’
그렇다는 것은 정녕 검주의 무공이 하늘에 닿았다는 것이다. 현경. 그 두 글자가 주는 묵직한 무게가 당미령의 가슴팍을 짓눌렀다.
“너.”
당미령을 빤히 쳐다보던 만우가 툭하고 말했다. 당미령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만우를 올려다봤다. 과연 무림오화의 당화라는 별호가 아깝지 않았다. 만우의 뒤에 방매를 들쳐 업고 서 있던 감령이 순간적으로 입이 헤-하고 풀렸을 정도의 미모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저놈들 풀어주겠답시고 나서면 너도 저 꼴 당한다?”
“아씨께 감히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당미령과 같이 묶여있던 시비 겸 유모가 만우를 향해 두 눈을 부라렸다. 만우는 또 뭐냐는 눈으로 고개를 돌려 시비를 쳐다봤다. 흠칫. 자신이 딸처럼, 동생처럼 모시는 당미령이었기에 일단 소리부터 냅다 내지르고 보았으나 상대는 단 일수(一手)만에 당중약과 당가 무인들을 무력화시킨 절대고수였다. 당연히 말을 해 놓고도 그 후환이 걱정 될 수밖에 없었다.
“아씨는 무슨. 저런 미친 망아지 같은 놈을 타고 다니니까 똥물을 뒤집어쓰는 거다.”
만우는 멍 때리고 있는 당중약을 신랄하게 비웃으면서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