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2. 심양소동(2) (322/400)

322. 심양소동(2)2022.01.29.

당중약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령과 도겸에게 무시를 당했기 때문이다. 자신 정도 되는 고수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데 회포를 풀다니. 회포라고 하기에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당중약에게는 무시를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16553271652614.jpg“이게 무슨 짓들이오!!!”

그때 내원에서 나온 수중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당중약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당중약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감령과 도겸에 이어 이제는 내공 한 줌 없는 놈이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다니. 쉬익-!! 당중약의 손가락이 튕기자 암기가 일직선으로 수중을 향해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런 당중약의 암기는 목표물을 맞히지 못했다. 팅-!

1655327165262.jpg“이 똥물에 튀겨 죽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

감령이 어느새 도를 빼들고는 수중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으르렁거렸다. 당중약의 눈이 당혹감이 깃들었다.

16553271652614.jpg‘봤다고?’

당가의 암기와 독이 무서운 이유는 둘 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한 후에야 자신이 당한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감령이 수중에게 날린 자신의 암기를 막았다. 그렇다는 것은 당중약이 날린 암기가 감령의 두 눈에 보였다는 뜻이다.

1655327165262.jpg“무공도 못 하는 일반인에게 암기를 날려?”

아무리 무림인들이 막 나간다고 해도 양민에게까지 살수를 쓰지는 않는다. 그게 암묵적으로 지켜야 할 규율이었다. 그런데 사파도 아니고, 마교도 아닌 오대세가라는 놈이 양민에게 살수를 썼다?

16553271652614.jpg“이, 이!!!!! 석가장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움찔! 수중은 뒤늦게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고는 두 눈에서 불꽃을 토해 냈다. 그렇게 무섭게 화를 내는 수중은 감령 앞에서 보이던 얼빠진 모습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그런 수중의 입에서 석가장이 언급되자 당중약이 움찔했다.

16553271652614.jpg‘석가장?’

자세히 보니 상인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당중약은 설마 상인과 녹림의 대두목이 서로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산적이 상인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친교라니, 당중약은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표독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71652614.jpg“잘 됐다. 마교고 옥면산군이고. 여기서 싸그리 몰살시켜 주마.”

1655327165262.jpg“도겸!”

16553271652614.jpg“독이다! 피독주를 입에 물어라!”

당중약이 공력을 끌어올리자 주작단을 견제하고 있던 도겸에게 감령이 소리쳤다. 당가의 무인이 공력을 끌어올린다는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독. 하독을 하기 위한 준비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 당중약의 시선이 어디론가로 향하더니 그 상태 그대로 굳었다.

16553271652614.jpg“미령아.”

16553271652614.jpg“숙부님…….”

객잔의 문으로 당미령과 그녀의 목에 검을 겨눈 이들이 들어오는 것이 당중약의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16553271652614.jpg“독절 당중약 대협.”

16553271652614.jpg“네놈은 누구냐!!!”

당중약의 눈에 불길이 이는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주작단 전체 무인들의 기세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만큼이나 그들에게는 당미령이 소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기세를 받으면서도 당미령의 목에 검을 겨눈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16553271652614.jpg“남의 업장에서 언질도 없이 이리 깽판을 치면 곤란하지 않겠소?”

16553271652614.jpg“남의 업장?”

16553271652614.jpg“수 행수.”

16553271652614.jpg“서, 석중 행수님!!!”

수중이 석중이라 불린 행수를 보면서 안도했다. 석중은 석가장의 방계로 석가상단 내에서도 뛰어난 상재를 인정받은 남자였다. 그 뒤에는 인해표국의 표사들이 석중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었다.

16553271652614.jpg“행수?”

16553271652614.jpg“석가상단의 석중이라고 하오. 독절 대협.”

16553271652614.jpg“……석가장.”

당중약은 이곳이 석가장의 업장이라는 것을 정말 몰랐다. 만약 알았더라면 이렇게 그냥 밀고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다. 부르르르. 당중약이 분노로 턱 근육을 덜덜거리며 떨어 댔다.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 독을 왕창 풀어 모조리 죽이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일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마교 따위야 신경도 쓰지 않지만 문제는 석가장이다.

16553271652614.jpg“미령이를 놔줘라!!”

16553271652614.jpg“숙부님.”

석중은 당중약을 보면서 호선을 그리던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석중은 저 멀리 있는 수중과 그 주변으로 빼곡하게 꽂힌 암기를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71652614.jpg“먼저 살수를 쓰신 것은 독절 대협으로 보입니다만. 정녕 석가장과 척을 지시려는 겁니까?”

16553271652614.jpg“나는 사천당가의 당중약이다!!!”

16553271652614.jpg“그러는 저는 석가상단의 석중, 크게는 석가장의 일원입니다만.”

번뜩. 당중약은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석중이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가장과 척을 진다는 것은 제 아무리 사천당가라고 해도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석가장은 중원제일상단으로 중원의 거의 모든 상단이 석가장의 영향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석가장과 사천당가가 감정이 상해 전쟁이 벌어진다면?

16553271652614.jpg“정녕.”

그렇게 되면 무력으로는 석가장이 사천당가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석가장의 가장 무서운 이유는 무력이 아니라 금력이다. 황실도 움직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력. 사천당가가 아니라 무림맹 전체를 움직일 수 있는 석가장의 금력. 그 금력으로 석가장이 거미줄처럼 맺어 놓은 무림명사들과의 인맥. 석가장과 전쟁을 하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사천당가를 향해 휘두르는 검이 될 것이다. 아무리 사천에서 제일 잘나가는 당가라고는 하나 중원 전체와 싸울 수는 없다. 그것은 마교 같은 무모하고 무식한 놈들이나 도전하는 일이다.

16553271652614.jpg“숙부님!”

당미령이 당중약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러자 당중약의 팔이 서서히 내려갔다. 당중약도 알고는 있으나 자존심이 붙잡고 있었던 팔의 힘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당중약의 모습에 당미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당미령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기에는 너무 일렀다. 콰자자작!!! 객잔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그 아래 서 있던 애먼 당중약이 천장에서 떨어진 파편에 고스란히 깔려 버렸으니까.

16553271652614.jpg“숙부님!”

16553271652614.jpg“단주님!!!!”

당미령과 주작단의 입에서 새된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게 객잔 지붕을 뚫고 화려하게 등장한 남자, 만우가 주변에 득시글거리는 무림인들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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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7174112.jpg“뭐야. 왜 이렇게 많아?”

1655327165262.jpg“대, 대자아아앙!!!”

16553271741131.jpg“만우야!!!”

만우의 등장에 감령이 화색을 띄었다. 하지만 그럼 감령보다도 내원 안에서 몸을 숨긴 채 바깥을 훔쳐보고 있던 방매가 뛰어나오며 반갑게 소리쳤다. *****

16553271652614.jpg“태수님, 태수님!!!”

우당탕탕!!! 설미수와 동군영, 그리고 심양태수가 웃는 낯으로 겉도는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한 지 꽤 되어 이제 그릇이 상당수 비었을 무렵, 심양태수 휘하의 문관 중 하나가 거의 구르듯이 뛰어 들어오며 태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16553271652614.jpg“객이 계시는데. 무슨 일인가!”

손님 앞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심양태수가 인상을 썼다.

16553271652614.jpg“저, 저자에서, 저자에서.”

문관은 숨이 목 끝까지 찼는지 똑같은 단어를 계속 반복하기만 할 뿐 통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척일이 웃으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퍽! 문관의 몸이 한차례 휘청였다. 척일이 날린 지풍이 문관의 몸을 두드린 것이다. 문관은 고개를 돌려 척일에게 뭐라고 하려던 순간 깨달았다.

16553271652614.jpg‘수, 숨이.’

호흡이 빠른 속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척일은 빙긋 웃으며 그런 문관에게 말했다.

16553271652614.jpg“어서 말을 해 보시오.”

문관은 척일에게 감사의 눈길을 보낸 후 자세와 옷매무새를 바로 한 뒤 태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16553271652614.jpg“무, 무림인들이 저자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다 합니다.”

16553271652614.jpg“무림인? 난동?”

심양태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심양의 패자는 모용세가다. 모용세가가 영향력을 떨치는 심양에서는 심지어 파락호나 왈패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난동이라니.

16553271652614.jpg‘모용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조선의 사행단이 심양에 도착하기 직전 모용세가에서 사람이 나와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자신들을 배제해 달라 부탁했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모용세가가 그렇게 발을 빼고 난 뒤 심양 저자에서 난동이 벌어졌다는 것에 무슨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16553271652614.jpg“모용세가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하라.”

무림의 일에는 관이 관여치 않는다. 무림과 관의 상호불가침조약이 있었기에 심양태수는 문관에게 그리 말했다. 무림의 은원 문제라면 모용세가에서 나서서 중재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명나라의 방식에 설미수와 동군영의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지만 심양태수는 못 본 척 했다. 소국인 조선의 이해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71652614.jpg“허, 허나 태수님. 그 난동의 한 축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모용세가…….”

16553271652614.jpg“뭐라?”

심양태수의 눈썹이 찌푸려져 있다. 대체 이게 뭔 망신이란 말인가. 조선에서 온 사행단을 앞에 놓고 말이다. 심양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흠 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박수를 짝 하고 쳤다. 그 순간 문형일과 필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사사사삭!!!! 문형일과 필두가 처음 들어올 때부터 감지하고 있었던 군사들이 건물 주변을 에워쌓았기 때문이다.

16553271652614.jpg“태수!”

설미수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심양태수에게 말했다. 심양태수는 눈썹을 찌푸린 채 설미수를 쳐다봤다.

16553271652614.jpg“송구하게 되었소. 허나 감히 황명을 어긴 것은 그대요.”

16553271652614.jpg“황명을 어기다니! 천자께서 분부하신 대로 우리는 연경으로 가고 있습니다만!”

설미수는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동군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16553271652614.jpg“군사를 숨겨 놓으시다니. 이 어찌 사행단에 대한 대국의 대접이 이렇단 말이오!!”

전쟁터에서도 사신은 죽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한데 심양태수는 사행단을 맞이하는 자리에 군사를 숨겨 놓았다. 그렇다는 것은 애초에 의도 자체가 불순했다는 뜻이다.

16553271652614.jpg“사행단이 아니라 호송단이어야 했소. 그렇지 아니하오?”

16553271652614.jpg“그것은…….”

16553271652614.jpg“일을 크게 만들지 마시구려. 내 한마디면 요녕 전체가 움직일 터이니.”

설미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설마하니 심양태수가 이렇게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6553271652614.jpg‘뚫고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설미수는 문형일과 필두를 쳐다봤다. 거기에 척일과 척사영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이라면 태수의 군사들을 뚫고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는 조선의 사행단이 명나라에 와 태수를 겁박하고 먼저 선공을 했다는 잘못된 소문이 퍼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16553271652614.jpg“무림맹이란 곳에서 사람을 보내기로 하였소. 그러니 그들이 올 때까지만 옥사에 계셔야 할 것 같소.”

설미수와 동군영의 얼굴이 굳었다. 만우만이 아니라 사행단 전체를 죄인으로 연경까지 압송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16553271652614.jpg“설령 심양, 아니 요녕에서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관군이 그대들을 추격할 것이오. 개인의 힘으로 명의 대군을 상대할 수는 없소. 허니 이곳에서 오라를 받으시오.”

심양태수는 설미수와 동군영을 보면서 눈을 차갑게 빛냈다.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척일의 입에서 파안대소가 터져 나왔다.

16553271652614.jpg“재미있군. 재밌어. 명천자가 일개 무인 하나를 잡기 위해 이 얼마나 기를 쓰는 꼴이란 말인가!”

16553271652614.jpg“서장관!”

설미수가 오히려 심양태수를 도발하는 척일을 보면서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동군영도 이 순간만큼은 설미수의 편이 아니라 척일의 편이었다.

16553271796302.jpg“대국이라 하더니, 어찌 속은 소국만 한 것 같습니다!”

16553271652614.jpg“그렇지!!!”

만우의 곁을 따라다니면서 그간 동군영에게 늘어난 것은 검술과 체력도 있었지만 눈치도 있었다. 그런 동군영에 지금 일어난 이 일련의 사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애초에 명나라의 황제가 칙서를 보내 임금에게 일개 무인, 그리고 무인 하나를 잡아 압송하라고 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거기에 여진족에게도 칙서를 보냈고, 이제는 심양태수도 모자라 만우에게 들어만 봤던 무림의 세력까지 움직였다. 그렇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16553271796302.jpg‘만우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이겠지!’

동군영의 가슴 속에 안 그래도 높았던 만우의 위치가 수직상승했다. 명나라 황제가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이렇게 수많은 이들에게 명령을 내려 움직여야 할 정도로 말이다. 명나라라는 거대한 대국을 경영하는 황제가 견제하고 경계해야 할 정도의 일개 무인이라니.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만우는 그저 평범한 일개 무인이 아니다. 두 개의 태양.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동군영이 보기에 만우는 하늘에 뜬 또 다른 태양이었다. 명나라의 황제가 이렇게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났을 정도로 찬란한 또 다른 하나의 태양(日).

16553271796302.jpg‘뒷감당은 만우에게 하라고 하고.’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는 심양태수고 뭐고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 하지 않았던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 여우라고 해도 심양태수 따위가 자신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당장 동군영의 주변만 해도 눈이 튀어나올 정도의 고수들 천지였으니까. 그것을 모르는 것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딱 두 명뿐이었다. 설미수와 심양태수.

16553271796302.jpg“문 별감, 필 별감.”

역관 역을 겸하기 위해 대동한 문형일과 필두가 고개를 돌려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포권을 어색하게 취해 보이며 그 둘에게 부탁했다.

16553271796302.jpg“명의 천자께서 그리도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劍)을 두려워하시는 모양입니다. 애초에 그럴지언데, 무엇을 참고 있겠습니까.”

문형일과 필두는 눈치가 재빨랐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동군영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순식간에 이해했다. 그리고는 동군영에게 반문했다.

16553271825745.jpg“정녕 괜찮겠습니까?”

16553271796302.jpg“안 괜찮으면, 뭐 달라지기라도 한답니까?”

대국의 황제가 검주, 아니 천하제일검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그런 상황인데 안 괜찮다고 해서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16553271652614.jpg“동 부사! 경거망동하지 마시게! 조선의 미래가 우리 사행단의 손에…….”

16553271796302.jpg“그러면 대감.”

동군영의 눈에 엄정한 기운이 흘렀다. 그토록 소심하기만 하던 동군영이 아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대국의 황제라는 이유만으로 그 거대한 권력을 이용해 일개 무인을 핍박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군영이 알고 배운 정의(正義)가 아니다.

16553271796302.jpg“조선의 백성이 아무린 이유도, 죄도 없이 황제가 죽이려 한다는 것만으로 죽어야 하는 것이옵니까?”

16553271652614.jpg“그…….”

설미수의 입이 턱 하고 막혔다. 만우는 조선인이다. 그렇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조선의 백성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 할 수도 없었다. 설미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자신은 조선의 신하가 아니라 명의 신하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16553271796302.jpg“사행단을 옥사에 가둬 두려는 것은 대체 어느 나라의 법도란 말입니까.”

16553271652614.jpg“…….”

거기에 심양태수는 황명으로 사행단을 옥사에 가두고자 하였다. 그것 역시 용납이 되지 않는 일이다.

16553271652614.jpg“무슨 그리 불경한!!!”

심양태수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자 사행단을 포위한 군사들의 기세가 한층 더 높아졌다. 문형일은 마지막으로 확인한다는 듯 동군영에게 물었다. 어차피 옥사에 갈 생각은 애초부터 추호도 없었던 문형일과 필두다.

16553271825745.jpg“진짜입니까? 후회 안 하시렵니까?”

동군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미수는 탁 하고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그러자 문형일이 씨익 웃으며 심양태수를 쳐다봤다.

16553271825745.jpg“시…….”

턱 그때 필두가 나섰다. 문형일이 필두를 쳐다보다 필두가 씩 웃어 보였다.

16553271854895.jpg“원래 관리들 상대하는 건 우리 전문이거든.”

16553271825745.jpg“음…… 관리만 상대하는 게 아니지 않나?”

16553271854895.jpg“물길은 원래 관리들이 더 많이 사용해. 빠르니까.”

민머리의 필두가 앞으로 나섰다. 심양태수가 손을 내저으며 무어라 하려던 찰나 필두가 벼락같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16553271854895.jpg“나는 장강 수적들의 왕! 필수교어 필두다!!”

찌르르-! 필두가 아낌없이 터뜨린 공력에 주변이 찌르르 울렸다. 상 위에 놓인 그릇들이 두르르 거리며 움직였다.

16553271652614.jpg“장강수로십팔채!!!”

16553271652614.jpg“수, 수적 놈이다!!”

본래 도적이라면 관아 앞에 이렇게 당당하게 나설 수 없다. 하지만 그 도적이 녹림이나 장강 정도 되면 말이 달라진다. 장강에서는 제 아무리 관이라고 해도 수적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다. 그들과 척을 졌다가 노도처럼 흐르는 깊은 장강 어디에서 갑자기 선박에 구멍이 뚫려 가라앉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녹림과 장강의 산적과 수적들은 악명으로 드높았다.

16553271652614.jpg“장강…… 무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강 수적들이 무림인이라는 점이다. 관과 무림의 상호불가침 조약. 건국황제의 이름으로 맺어진 그 조약이었기에 심양태수가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16553271652614.jpg“조선에서 왔다 하지 않았소!”

심양태수가 설명이 필요하다는 얼굴로 설미수를 쳐다봤다. 하지만 설미수 대신 필두가 나서서는 말했다.

16553271854895.jpg“심양태수께서는 관과 무림의 불가침 조약을 깨실 생각이시오?”

16553271652614.jpg“허어…….”

상황이 애매해졌다. 설미수와 동군영은 조선의 사행단이다. 반면 그 사행단의 수행원이라 생각했던 이 중에 무림인이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을 옥사에 가둬야 하는가?

16553271854895.jpg“이대로 보내던가!”

푸르륵!! 필두가 걸치고 있는 옷자락이 거꾸로 치솟기 시작했다. 동시에 가공할 만한 기세가 사방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을 포위한 군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지는 것이 심양태수의 눈에 들어왔다.

16553271854895.jpg“한 번 해 보시던가.”

심양태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는 모용세가가 터를 잡고 있는 심양의 태수였기에 무림인이란 족속의 무서움에 대해 잘 알았다. 무림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장강의 수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었다. 관군으로도 토벌할 수 없는 수적들이 장강의 물길을 손에 틀어쥐고 있다는 것. 그런 수적들의 우두머리라 스스로를 밝힌 저 민머리의 사내가 만만할 리 없었다.

16553271652614.jpg“설 대인! 명에 반기를 드려는 것이오!”

심양태수가 다그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이 자리에서 무림인이 아니고 고민하고 있는 설미수뿐이었다. 이들을 그냥 이대로 보냈다가는 중앙에서 한 소리를 들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정적들은 이 때다 하고 달려들어 태수직을 박탈하려고 들겠지. 그랬기에 심양태수도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다.

16553271652614.jpg“반기…… 반기라.”

설미수는 심양태수가 한 말을 잠시 곱씹더니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돌렸다.

16553271652614.jpg“반기는 제가 주상전하의 명을 따르지 않았을 때 드는 것이지요.”

16553271652614.jpg“설 대인!!”

16553271652614.jpg“태수님. 저는 명의 신하가 아니라 조선의 신하입니다.”

동군영의 표정이 밝아졌다. 척일도 설미수를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설미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16553271652614.jpg“명을 사대(事大)하는 나라가 조선이오!”

사대(事大)라 함은 강하고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긴다는 뜻이다. 명에 대한 조선의 외교 정책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설미수는 오히려 단단해진 눈으로 심양태수를 쳐다봤다.

16553271652614.jpg“맞습니다. 허나 명에서 제게 녹봉을 주지는 않지 않습니까?”

16553271652614.jpg“설 대인!!!”

심양태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미수를 쳐다봤다.

16553271652614.jpg“또한 저나 제 처자식이 명에게 받은 것이 무에 있길래 그리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게 제가 제 발로, 사행단의 정사로서 태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옥사에 들어갈 만하다고 생각하시는 겝니까?”

16553271652614.jpg“어찌 일을 크게 만드려는 것이오!!”

심양태수는 안타까움에 설미수에게 그리 말했다. 설미수에게 심양태수는 사적으로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미수도 그것을 알기에 쓰게 웃었다.

16553271652614.jpg“일을 크게 만드신 것은 태수십니다. 사행단의 발을 묶어 옥사에 가두려 하시다니요. 정녕 태수께서 조선의 주상전하보다 높이 있으시다 생각하시는 겝니까?”

16553271652614.jpg“그…….”

심양태수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그렇게 따지고 나온다면 할 말이 딱히 없었다. 명을 사대하는 조선은 명으로부터 ‘왕’에 봉해졌다. 만약 명나라의 직급대로라면 조선의 임금은 요녕의 태수보다 더 높은 직급임에는 틀림없었다.

16553271652614.jpg“허나 황명이…….”

16553271825745.jpg“관과 무림의 상호 불가침 조약은 명 태조께서 친히 무림에 반포하신 것.”

문형일이 입을 열어 심양태수에게 말했다. 심양태수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16553271825745.jpg“태조께서 하신 말씀일지언데, 어찌하여 우리를 핍박하려 드는 것이오?”

16553271652614.jpg“그, 그것은…….”

지금의 천자는 태조의 아들이다. 제 아무리 황제의 권위가 하늘에 닿는다 하여도 태조의 유훈이자 태조의 이름으로 반포한 사실을 지금의 황제가 뒤엎을 수는 없었다.

16553271825745.jpg“그게 아니라면, 설마 역모를 꾀하는 것이오!!”

문형일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심양태수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논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이 사실이 연경에 있는 정적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냥 뜬소문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작은 꼬투리만 잡혀도 삼족이 죽어나가는 것은 조정에서 아주 흔한 일 중에 하나다.

16553271652614.jpg“역모라니!!!!”

16553271825745.jpg“그러면, 물러나시겠소? 아니면 역모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자리에서 피를 보시겠소!”

찌르르-! 필두가 문형일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더 기세를 발출했다. 심양태수는 시커멓게 죽은 얼굴로 설미수를 쳐다봤다.

16553271652614.jpg“앞으로의 여정이 녹록치 않을 것이외다, 설 대인.”

심양태수는 설미수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마음을 돌리라는 듯 말했다. 어차피 심양에서 무사히 나간다고 해도 황제가 있는 연경에 들어가게 되면 전부 다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미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쉽사리 돌리지 않는 것 역시 설미수의 장점 중 하나였다.

16553271652614.jpg“단 한 번도 명에 조천을 하러 들어가는 일이 쉬웠던 적은 없습니다, 태수님.”

16553271652614.jpg“…….”

심양태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손을 들었다. 그러자 품이 넓은 소맷자락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16553271652614.jpg“길을 열어라!”

16553271652614.jpg“존명!!”

전각을 포위하고 있던 장수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서렸지만 군대의 기본은 상명하복이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심양 태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처저적! 포위한 군사들 사이로 길이 났다. 문형일과 필두가 설미수와 동군영을 그 사이로 안내하며 앞뒤에 선 채 눈을 부라렸다. 그 뒤로 느긋하게 뒷짐을 진 척일과 척사영이 뒤따랐다.

16553271652614.jpg“…….”

그들의 발걸음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기 전까지 심양태수는 입을 열지 않은 채 착잡한 눈으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을 한참동안 쳐다만 봤다.

16553271796302.jpg“대감. 저희는…….”

16553271652614.jpg“은공에게 가보시게. 되도록…… 말려주시고.”

동군영이 설미수에게 말하려는 순간 설미수가 선수를 쳤다. 동군영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설미수가 피식 웃었다.

16553271652614.jpg“동 부사보다 내가 먼저 은공을 만났었네. 그분의 성미를 내 모를까.”

16553271796302.jpg“허면…….”

16553271652614.jpg“그래도 필요 이상의 소란을 일으켜 심양태수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네. 일어난다면…….”

설미수는 단단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16553271652614.jpg“그건 이후에 내 차차 생각해 볼 터이니 큰 부담은 갖지 말고.”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뒤는 돌아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설미수다. 설미수는 이미 안사람의 목숨을 만우에게 빚졌기 때문에 그를 위해 은혜를 갚을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명나라에서 오라 마라 하면서 만우를 압송하라 칙서를 내린 것이 조선의 신하로서 그리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그러던 찰나에 심양태수가 사행단을 옥사에 가두려고 했으니 불에 기름을 쏟아부은 격이 됐다.

16553271652614.jpg“이 늙은이가 모시고 갈 터이니, 혈기 있는 젊은이들이 가서 말려보시게. 헐헐.”

척일이 히죽 웃으면서 설미수의 옆에 붙었다. 그러자 척사영이 척일을 쳐다봤다.

16553271967483.jpg“할아버님.”

16553271652614.jpg“왜. 내 옆에만 있으려고 따라왔느냐?”

16553271967483.jpg“그건…….”

16553271652614.jpg“가라. 아무도 흉보지 않으니. 그만한 사내면 특히.”

척일이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척사영은 그런 척일을 보면서 인상을 잠시 찌푸렸다가 몸을 홱 하고 돌렸다.

16553271796302.jpg“그,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감.”

16553271652614.jpg“그러시게.”

설미수가 손을 훠이훠이 내저었다. 그러자 동군영을 비롯한 남은 이들이 몸을 돌려 저자 쪽으로 뛰어갔다.

16553271652614.jpg“설 대감. 오늘 술 한 잔 어떻소?”

척일이 그런 설미수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설미수는 그런 척일을 빤히 쳐다보다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풀썩 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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