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주작단이라고 (2)2022.01.18.
“뭐라?”
우당탕탕!!!! 석소군이 놀라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작은 나무 걸상이 뒤엎어지면서 그 위에 놓여 있던 찻잔이 찻물을 왈칵하고 쏟아냈다.
“자, 장주님!!!”
양옆의 시비들이 놀라 석소군의 다리에 쏟아진 찻물을 면포로 닦아 냈다. 마시기 좋게 온도를 맞춘 차라고는 하지만 맨 살에 닿아도 괜찮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라졌다고?”
“예, 장주님.”
하지만 석소군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경지에 오른 황금신공 덕분이었지만 인해표국의 대표두인 파풍창(派風槍) 왕제신은 그런 장주를 보면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째서?”
“저도 연유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그럴 리가. 먼터무가 부족 전체를 옮겼다?”
석소군의 입에서 오도리 부족 대추장인 먼터무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석소군의 호위인 적포쌍검(赤布双劍) 온소가 석소군 대신 왕제신에게 물었다.
“그럼 장주께서 말씀하신 청령단(靑靈丹)은 어찌되었지?”
“그 역시…….”
“수상한 것도 없었나?”
왕제신의 아미가 꿈틀거렸다. 적포쌍검 온소가 초절정 고수이기는 하나 자신은 삼천의 표사가 속한 인해표국의 대표두였다. 그런데 마치 수하 대하는 것처럼 하는 온소의 태도에 왕제신은 불편함을 드러냈다.
“지금 장주께 보고 드리고 있소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장주께서 크게 놀라신 것 같으니 내 대신 묻는 것이 아닌가.”
“내가 왜…….”
“온소의 말에 답하라.”
왕제신은 석소군의 말에 불만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온소가 그런 왕제신을 가만히 쳐다봤다.
“외부에서 뒤늦게 돌아온 오도리 부족의 부족민들에게서 듣기로는 대추장에게 영산(靈山)에서 온 백호 선녀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겁화가 닥칠 수 있으니 피하라 했다, 그랬다 합니다.”
“영산? 선녀?”
석소군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왕제신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터무니없는 말이라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영산이라면 조선이다.”
“예?”
석소군의 말에 온소가 고개를 갸웃했다. 영령한 힘이 깃들었다는 영산은 여진족의 여러 부족들에게는 다들 하나씩 있었다. 그네들은 강에도, 들판에도 신이 있다고 믿곤 했는데 오도리 부족이 말한 영산이 어찌하여 조선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도리 부족의 대추장인 먼터무는 조선의 상왕과 의형제를 맺었다.”
“오랑캐들에게 그리 하였단 말씀이십니까?”
“오랑캐가 오랑캐와 의형제를 맺었거늘. 무엇이 문제인가.”
온소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선 역시 그들이 동이족이라 부르면서 오랑캐 취급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조선과 여진을 동일선상에 놓고 볼 수 없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었다. 중화의 문명을 가장 많이 받아들여 성세를 구가한 나라 중에 하나가 바로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상왕이 본래 옛 조선, 고려의 동북면을 수비하던 장군이라 들었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여진족들을 불러 모아 충성맹세를 받은 것이겠지.”
“한데…….”
“먼터무가 조선의 상왕을 만나 충성맹세를 한 곳이 바로 장백산(長白山)이다.”
석소군의 석가장은 명뿐만 아니라 명 인근에까지 그 손길이 뻗쳐 있었다. 그 때문에 석가장의 손에 쥐어지는 정보는 개방이나 하오문, 심지어는 황실보다도 더 뛰어날 때가 있었다.
“그곳을 먼터무는 성산, 영산이라 부르며 신으로 모셨다고 하더군.”
“…….”
“여진족 오랑캐들이 조선의 상왕을 무신(武神)이라 부른다더군. 허니 신이 사는 산, 아니면 신이 사는 곳에서 온 이들이라면 선녀니 영산에서 나왔느니 할 수도 있을 터.”
무신(武神)이라는 광오한 말에 온소와 왕제신, 그리고 호위들이 실소를 지었다. 하지만 무신이라 말한 석소군은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웃긴가??”
“…….”
“웃기냐고 물었네만.”
“죄송합니다, 장주. 생각이 짧았습니다.”
석소군이 기분이 나쁜 듯하자 온소가 대표로 나서 고개를 숙였다. 석소군은 혀를 쯧 하고 찼다.
“무공을 익힌 무림인들은 전쟁을 무시하지. 자네들도 그러하군.”
“…….”
온소나 왕제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석소군의 말이 맞았다. 온소나 왕제신은 무공을 익혀 경지에 오른 무인으로 내공 한 줌 다루지 못하는 병졸들이 부딪치는 전장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온소나 왕제신은 내공을 한 줌 익히지도 못한 이들은 아무리 날카로운 도검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수백 명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석소군은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았다. 무림인이란 족속들에 대해서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소군도 무공을 익혔지만 그들의 오만함과 거만함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 힘이 있다 하여도.’
석소군의 몸에도 황금신공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물론 무공을 익히기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힘과 활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다.
‘세상을 다 살 수 있는 억만금을 가졌어도, 우리는 최강이 아니었기에.’
권력도, 무력도 살 힘을 황금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석가장은 최강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무공 하나 익힌다 하여 마치 이 세상이 자기 것인 양 구는 무림인들의 편협한 시각에는 냉소만 흘러나올 뿐이다.
“만약 먼터무 대추장이 말한 영산이 조선이라면, 그 청령단이 흘러간 곳은.”
“검주.”
“오도리 부족은 검주에게 청령단을 바친 것이겠군요.”
“그래. 오랑캐란 것들은 자기 먼저 사는 것을 가장 중요시 하니까.”
“…….”
천하제일인. 적포쌍검 온소는 아직도 그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니, 그는 믿지 않았다. 무학(武學)의 세계는 너무나도 넓고 깊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그 끝을 볼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끝이 안 보이는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자가 올해 이립도 되지 않은 검주다?
‘그럴 리 없다. 와전된 소문일 터.’
혈세천마와 천마대, 그리고 진혼대에 맞서 검주가 어찌 살아남았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소문이 들려온 것은 머나먼 일본국이다. 바다를 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그 멀고도 먼 곳.
“여진족이 꼬리를 말았다면 무림맹이 남았군.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라 전하라. 황금은 얼마나 들더라도 상관이 없으니.”
석소군은 무림이 폭풍전야인 것이 느껴졌다. 늘 폭풍처럼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녔던 검주가 다시금 무림에 돌아오고 있다.
“천하제일이라. 참으로 탐나도다.”
석소군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심양태수를 뵙습니다.”
“아니 이거, 설 대인이 아니십니까!! 흐허허허.”
심양태수는 조선 사행단의 방문이라는 소리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가 환하게 웃으면서 설미수를 안으로 안내했다. 설미수는 심양태수와 안면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미수가 불과 몇 년 전 명나라에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그간에 심양태수와 설미수가 죽이 맞아 친교를 다져 두었기 때문에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아니, 뭐 이리 많이 차려 놓으셨습니까.”
“내 사행단이 고생을 한다 들어 이리 차려 놓았습니다.”
설미수는 순수하게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심양태수와 친하다고는 하지만 그는 설미수가 올 것이란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사행단을 맞이하는 식사 자리가 마치 무슨 잔치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화려하게 상이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간 설미수가 명과 조선을 오가면서도 한 번도 받지 못했던 융숭한 대접이다.
‘무언가 있군.’
심양태수는 설미수와 죽이 맞았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명나라의 관료다. 기본적으로 ‘대국’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심양태수가 고작 조선의 사행단을 위해 으리으리한 상을 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슬쩍, 슬쩍 지금도 심양태수가 슬쩍슬쩍 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태수님.”
그래도 예의는 차려야 했기 때문에 설미수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그러자 심양태수가 호쾌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자, 어서들 듭시다.”
자리에는 설미수와 동군영, 척일과 임시 역관으로 문형일과 필두가 동행했다. 감령은 너무 방정맞았고 마익후는 누가 보더라도 색목인이었기 때문에 그 둘을 대동할 수밖에 없었다. 끄덕 문형일과 필두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필두가 고개를 끄덕이자 문형일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느낀 모양이네.]
[뭐 이리 숨어 있는 놈들이 많아?]
태수직이면 곧 이 심양이란 곳의 왕이나 마찬가지다. 군권까지 황제로부터 위임을 받은 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연회 비슷한 것이 벌어지고 있는 이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인기척들이 느껴졌다. 설미수나 동군영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하지만 필두와 문형일에게는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어 견제를 하는 것보다 더 신경 쓰일 정도로 형편없는 매복이었다. 무인이나 암살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군사들이 매복하고 있는 듯했다. 살기가 안 느껴지니 망정이지, 살기가 느껴졌다면 문형일과 필두는 진작에 무기를 뽑아들었을 것이다. 위협적이어서가 아니라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일단 수저부터 드시지요. 긴 여로였을 텐데.”
“감사합니다.”
설미수는 심양태수를 힐끗거리며 쳐다봤고 심양태수도 사행단을 힐끔거리면서 쳐다봤다.
‘뭐가 궁금한 거지?’
‘모용세가가 물러설 정도의 무언가라…….’
동상이몽(同床異夢)이 치열하게 오가는 속에서 입 속에서 느껴지는 간만의 진미에 눈을 가늘게 뜨고 음미하던 문형일의 눈이 가늘게 벌어졌다. 그리고는 문형일이 코를 몇 번 킁킁하더니 입가를 말아 올렸다.
“요상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
“뭐?”
필두가 그런 문형일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문형일은 맡았지만 필두는 맡지 못한 냄새다. 문형일은 빙글거리면서 필두에게 말했다.
“요상한 냄새가 난다고.”
“그 무슨…….”
“거지새끼 냄새가 난다, 이 말이지.”
필두의 두 눈이 주변을 슥 훑었다. *****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라 부르지 말라니까.”
방매가 아저씨라 부르자 감령이 와락 신경질을 냈다. 아저씨라 불리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왠지 나이도 더 든 것 같았기 때문에 감령은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잡았다.
“아니, 그러면 제대로 통역이라도 하든가.”
“에이.”
감령은 투덜대면서 방매가 이리 끌고 저리 끄는 대로 끌려 다녔다. 방매는 조선 밖으로 나오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사방팔방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신기한 듯했다.
“이건?”
“그건…….”
“이거는?”
“아 그건 조선에도 있는 거잖아!”
“그래도! 큰 나라면 뭐 더 다르지 않아? 아저씨?”
방매는 쉴 새 없이 감령을 몰아붙였다. 오죽하면 초절정 고수인 감령이 끌려다니다가 지쳤을 정도다. 하지만 방매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만우에게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감령은 눈물을 머금고 끌려 다녔다.
“허억, 허억. 너 솔직히 말해. 화경이지.”
“됐고, 이건? 이 말린 약재는?”
그래도 명색이 의원이라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방매는 약재도 살펴봤다. 약재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안국방 조 씨 할아범이 있으니 가져다주면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지 말고 이…….”
방매가 조선에 있는 것들도 명나라라는 이유만으로 눈에 불을 켜고 꼼꼼하게 훑어봤기 때문에 감령은 진땀을 흘렸다. 수적질을 하면서 이런 곳에서는 보호비나 수금해 봤지 이렇게 돌아다닌 적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대, 대채주!!!”
그런데 그때 누군가 감령을 알아보고는 감격에 차서는 큰 소리로 소리쳤다.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본 감령의 표정이 환해졌다.
“어? 너, 너!!!”
“그렇습니다. 저, 물쟁이입니다. 수중이라고요!”
“그래, 수중이!”
산적이었다가 장강을 타고 오가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이 되었던 옛 수하인 수중이었다. 산적답지 않게 셈이 밝고 머리가 약아 산적을 그만 두겠다고 했을 때 기꺼이 놔줬던 감령이었다.
“저, 전 대채주께서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수중이라 불린 상인은 산적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호리호리했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팔다리가 두꺼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강가에서 자라 먹고 살 것이 없어 산적이 된 경우였기 때문에 산적 노릇을 했던 것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어부가 되어 물고기나 잡고 살았을 관상이다.
“죽긴 내가 왜 죽어! 멀쩡히 살아 있는데! 그러는 너야말로 잘 사는 모양이다. 얼굴이 좋아졌어!”
감령은 반갑게 오랜만에 만난 옛 수하에게 말했다. 수중은 감령의 위아래를 훑어보고는 그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오십쇼. 어떻게 지내셨는지 들어야겠습니다.”
“듣긴 뭘 들어.”
“장강이 개판입니다! 개판!!!”
장강이란 소리가 나오자 감령의 표정이 슬쩍 변했다. 오랜만에 듣는 장강 소식에 감령은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감령이 슬쩍 고개를 돌려 방매에게 물었다.
“너도 같이 가자.”
“아는 사람이야 아저씨?”
“아, 아저…… 대채주. 저 계집은 누굽니까?”
수중은 웬 계집이 그가 존경하는 대채주를 감히 아저씨라 부르자 분기탱천해서는 말했다. 계집이란 소리에 방매의 눈초리가 날카로워지자 감령이 뜨끔했다.
“계, 계집이라니. 방매라고 내가 아는 아이다.”
“아, 아는 사이셨습니까?”
수중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방매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감령을 쳐다봤다. 설명이 부족하다는 얼굴이었다.
“미안하게 됐소. 대채주님의 안사람일 줄은…….”
“야 이씨!”
“뭐야?”
빠악! 감령이 수중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생각해 보면 셈에 빠르고 영악하기는 했지만 사람 관계에 대해서 눈치가 없었다. 그건 여전했다. 하지만 그런 방매를 감령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알아들어?”
“당연하지!!!”
방매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매분구를 하면서 조선팔도를 이곳저곳 돌아다닌 방매다. 그런 방매는 능숙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어(漢語)를 약간이나마 구사했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방매가 거래한 사람 중에는 당연히 명나라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어!”
방매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그것도 아니란 것을 다행히 눈치챈 수중이 뒤통수를 문지르면서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그럼 뭡니까?”
“도, 동료!!!”
감령이 버럭 소리치자 수중의 눈이 커졌다. 녹림 산적들의 왕인 감령의 동료라니. 하지만 아무리 봐도 수중의 눈에 방매는 그냥 평범한 계집일 뿐이었다. 얼굴이 반반한 어린 계집.
“그, 그렇습니까. 이거 미안하게 됐소.”
어린 계집이 보부상이 할 법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단 수중은 사과했다. 대채주의 동료라면 자신이 함부로 계집이라 부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 가!”
“그러지 말고 가지? 어차피 말도 제대로 못 하잖아.”
“손짓 발짓으로 다 되는데!”
감령은 방매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러자 방매가 다리를 버둥거렸다. 방매가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감령이 말했다.
“얘, 상인이야. 그것도 이 나라 바닥에 빠삭한 상인. 맞지?”
“예?”
“너 상인 맞냐고.”
“아, 아. 그럼요! 이래 뵈도 제가 말단이긴 하지만 석가상단의 상인입니다!!”
“들었지?”
감령은 조선말과 한어를 오가면서 방매와 수중 사이에서 말했다. 방매는 석가상단이란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수중을 아래위로 쳐다봤다.
“그, 그런데 그게 왜?”
“잠깐만 같이 가서 시간 좀 쓰자. 그러면 도와줄게.”
“도와준다는 게…….”
“필요한 거. 얘한테 부탁하면 웬만한 건 다 앉아서 구할 수 있을걸. 그것도 아주 좋은 것들로 말이야.”
감령의 말에 방매의 눈이 커졌다. 방매가 감령 앞에 나와서는 앞장섰다.
“뭐해? 안 가고?”
감령은 그런 방매를 보고는 씩 웃으며 수중을 쳐다봤다.
“안내해라. 장강 소식부터 들을 수 있는 곳으로.”
*****
“단주님. 단주님!”
“뭐야. 내가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당중약은 자신을 찾는 주작단 무인의 부름에 신경질을 내면서 대답했다. 당중약의 눈초리가 사나웠던지라 무인은 순간적으로 멈칫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고개를 먼저 숙였다.
“죄송합니다. 허나 반드시 보고해야 할 사안인지라…….”
“반드시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하고. 만약에 아니면 각오하고.”
당중약은 심양에 들어온 이후로 모든 일에 예민하기 그지없이 굴었다. 제 아무리 독절이라 불리는 당중약이라고 해도 심양에 들어오자 긴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대는 무려 검주 만우다. 뜬소문이라고 믿고는 있으나 그래도 홀로 일패 혈세천마와 천마대, 진혼대의 마교의 최정예들을 홀로 박살 낸 무림십좌의 일인. 반드시 만우를 잡아내어 당가의 이름을 전 중원에 떨쳐야만 했다. 그래야 무림맹의 최정예인 주작단의 명성도, 당가의 명성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지극히 예민해져 있던 당중약이다. 그런 당중약의 상태를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작단의 무인은 하려던 것을 해아만 했다.
“시, 심양 시내에서 옥면산군을 봤습니다.”
“옥면산군?”
모용세가의 배려로 한 개 전각을 통째로 쓰게 된 주작단이다. 당미령은 모용세가에 짐을 풀자마자 가장 먼저 주작단의 무인을 심양 시내에 풀어 만우의 행방을 쫓았다. 그러다가 의외의 거물이 걸려든 것이다.
“녹림의 대채주?”
“예. 단주님.”
주작단의 무인은 모두 당 씨 성을 쓴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모두가 같은 혈족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당중약이나 당미령 같은 내원의 핏줄은 정통성이 있는 핏줄이고, 외원의 당 씨들은 방계의 핏줄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작단 무인은 깍듯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옥면산군…… 옥면산군…….”
어느 순간 녹림에서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고 알려진 녹림의 대채주다. 그런데 옥면산군이 실종된 비슷한 시기에 장강 수적들의 대채주도 함께 실종이 되었기에 여러 가지 추측이 떠돌았다. 둘이서 양패구상을 하였다부터 시작해 은거기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까지. 하지만 그런 옥면산군이 예상치도 못한 심양에서 불쑥 튀어나온 셈이다.
“검주와 함께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의대의 매화극검이 그런 말을 하기는 했는데…….”
당중약이 말끝을 흐렸다. 조선에 다녀온 정의대는 각 문파의 미래를 책임질 후기지수 중 상당수를 잃었다. 간악한 마교 놈들 때문이었다. 무림맹은 그 일로 마교의 분타 몇 개를 보복하기 위해 공격하여 전멸을 시켰고, 그 때문에 마교와 무림맹 사이에 험한 분위기가 맴돌았었다. 그러다 터진 것이 바로 지금의 일이었다. 마교는 교주를 잃었다는 비보가, 무림맹에는 황제의 칙사가 도착한 것이다. 그 때문에 분쟁은 유야무야 똥 싸고 안 닦고 나온 것처럼 찝찝하게 마무리 되었는데 어쨌거나 그 정의대의 책임자였던 화산파의 제자인 매화극검 검인이 옥면산군에 대해서 보고를 하기는 했다. 한양에서 옥면산군과 비슷하게 생긴 이를 봤다고. 허나 그때는 모두가 말도 안 된다며 검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무림에서 실종된 옥면산군이 생뚱맞게 조선에 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당중약은 씨익 하고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무림십좌의 일인인 만우라면 모를까, 옥면산군 감령이라면 당중약은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존재를 모르지만 당중약은 감령의 존재를 눈치챘다. 당가의 무인에게 먼저 선공을 양보한다는 것은 지고 들어가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도적놈들의 두목까지 잡는다면 이 당중약이의 이름이 천하에 진동할 것이다. 그렇지 않느냐?”
공명심으로 번들거리는 당중약의 눈을 본 무인은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당중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독주머니와 암기주머니를 허리춤에 맸다.
“주작단을 불러 모으거라. 넌 모용세가에 가 이 사실을 알리고.”
“허면 당화에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미령이.”
당중약은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당중약이 안하무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조카인 당미령 앞에서는 껌뻑 죽었다. 당중약뿐만이 아니라 당가의 모든 이들이 그랬다.
“경거망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너라면 미령이가 어떻게 했을 것 같으냐?”
주작단의 무인은 갑자기 불똥이 자신에게로 튀자 눈을 크게 떠 보였다. 당중약은 자신을 통해 옥면산군을 잡으러 나가는 것을 합리화하려 하고 있었다.
“그, 그것이…….”
“놈은 사파의 거두다. 게다가 백성들의 등골을 빼먹는 산적 놈이지. 당연히 정파의 협객으로서 옥면산군을 잡아 당당히 전 무림에 당가의 기상을 선보여야 하지 않겠느냐?”
당중약은 온갖 좋은 말을 늘어놓았다. 주작단의 무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습니다.”
“좋아. 그러면 가서 잡는 게 역시 맞는 거겠지? 응?”
당중약은 주작단의 무인에게 대답을 하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