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대가리 나와 (3)2022.01.01.
문제는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용청의 가슴팍 쪽 의복이 걸레짝처럼 변해 있었다. 그럴 때마다 팔검단의 무인들이 움찔거리면서 움직이려 했지만, 필두가 팔짱을 낀 채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초조하게 모용청을 걱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또, 또!”
콰앙-!!! 감령의 도가 또 다시 애꿎은 땅을 부숴 놓았다. 감령은 또 다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투로가 비틀어졌다는 것에 짜증을 냈지만 투덜대는 입과는 달리 몸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카가가각!!! 땅에 떨어진 도를 곧바로 거꾸로 날을 위로 하여서는 들어 올린 것이다. 그것은 현묘한 무리가 담긴 초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극히 실전에서 감령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몸에 새겨 넣은 무의식이었다. 초식이란 것이 그런 무의식을 몸에 새겨 넣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때때로 경험에서 튀어나오는 이런 무의식이 모용청에게는 사실 감령의 무공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스윽 모용청이 솟구쳐 오르는 도에 검을 또 다시 가져다 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감령의 눈이 번쩍했다. 펑!!! 도를 아래에서 위로 그어 올리는 도중에 발을 뻗어 모용청의 다리를 후려친 것이다. 급하게 임기응변처럼 한 공격이었기에 감령의 발에 내공이 실리지는 않았지만 모용청을 당황케 하기에는 충분했다. 쩡!!!! 그 때문에 모용청은 검이 흔들리자 이를 악물고 감령의 검을 정면으로 막았다. 감령 나름대로도 아무리 공격을 해도 모용청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흘려내지 않았는데 드디어 제대로 한 번 먹인 것이다. 부웅!!!! 우당탕탕!!! 감령의 도에 실린 무거움에 모용청의 몸이 부웅 하고 날아서는 낙법을 하거나 경신법으로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사정없이 굴렀다.
“도련님!”
그런 모용청의 모습에 팔검단 무인들 중 하나가 나서려고 했지만 나서지 못했다. 척.
“나서지 마십시오!”
뒤로 구르면서 흙먼지를 온몸에 뒤집어쓴 모용청의 두 눈이 아직 이글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모용청이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에 무인은 이를 악물기만 할 뿐 다시 제자리로 들어갔다. 뚝, 뚝. 모용청은 다시 일어나 검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감령의 도를 막아내면서 손바닥이 짖어진 것인지 피가 뚝뚝 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감령은 어깨를 으쓱했다.
“더 할 건가?”
“아직 움직이지 못할 정도도 아니오. 이 정도에 검을 놓을 것이었으면 진작 죽었겠지.”
“정파의 애송이답지 않게 그 기백은 마음에 드는구나.”
감령도 여기서 물러서기는 원하지 않았던 듯 씩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누가 봐도 둘 사이에 실력이 확연했지만 모용청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지금까지 배우고 익혀 온 가문의 검은 이 정도로 꺾일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밀리는 듯했지만 감령도 방금 같은 임기응변이 아니고서는 두전성이의 검초를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공력은 내가 더 높다.’
어려서부터 벌모세수를 받고 영약을 먹고 자라 온 모용청과 달리 감령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끌고 가면 결국 자신의 두전성이를 감령의 도가 뚫지 못하는 이상 승기는 모용청에게로 넘어올 것이다. 초절정의 초입과 완숙한 초절정. 멀리서 보면 결국 같은 초절정이다. 그러니 누가 더 확실하게 우위에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도련님!!!”
그런데 그때 모용덕이 장내에 끼어들며 모용청을 급히 찾았다. 모용덕의 목소리에 그가 벌써 돌아왔나 싶어 잠시 고개를 돌린 모용청의 눈이 커졌다.
“팔검단주!!!!!!”
팔검단주를 비롯한 다른 무인들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격전을 치르고 온 듯한 몰골에 모용청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놀란 것은 팔검단주인 모용덕도 마찬가지였다. 잠깐 나갔다가 검주를 만나 간신히 살아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돌아오니 모용청이 누군가와 도를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어찌…….”
딸랑, 딸랑!
“옥면산군!!!!”
감령의 도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자 모용덕은 곧바로 감령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런 감령의 뒤에 선 이들의 면면을 훑어본 모용덕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역수교어. 그리고…… 괴검과 괴권!!!”
“괴검, 괴권?”
모용청의 고개가 휙 하는 소리를 내면서 돌아갔다. 괴검과 괴권에 대해서는 모용청도 떠도는 소문을 들은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무림십좌 중 유일하게 세력이 없는 검주, 그 검주를 따르는 두 명의 괴짜들. 동이족 출신인 검주처럼 괴검과 괴권 역시 중원인이 아니라 천축국과 서역에서 온 색목인이었기에 사람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력 또한 초절정으로 웬만한 문파의 장문인이나 장로급이었으니 그들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어찌…… 헛!”
모용덕의 눈이 커졌다. 문득 검주를 만난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괴검과 괴권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검주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도, 도련님.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피해? 아니. 단주님. 전 지금 비무 중…….”
“비무는 무슨. 졌는데 인정하기 싫으니까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거지.”
후비적 감령은 어느새 도를 내리고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고 있었다. 자꾸만 비무의 흐름이 끊기니 김이 팍 새 버렸기 때문이다.
“모용세가의 애송이.”
“모용청이라고 합니다, 선배.”
“중원에서 만나면 칼 뽑아들고 으르렁거릴 사이에 선배는 무슨 선배.”
감령이 피식 웃었다. 모용청은 겉으로는 예의가 발랐으나 그 안에 타오르는 듯한 승부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엿봤기 때문에 나오는 웃음이었다. 예의 바른 척 살아가는 것이 아마 안 입은 옷을 입고 사는 것처럼 갑갑할 것이다.
“급한 일 같은데, 흥이 깨졌으니 이만 가라. 대신 내가 이긴 거다?”
“…….”
모용청은 침음성을 흘리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재차 검을 치켜들었다.
“단주님. 모용세가의 명예가 걸린 일입니다.”
“허나 도련님! 지금, 지금!!!”
모용덕은 뒤를 힐끔 돌아봤다. 금방이라도 괴물 같았던 검주가 나타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검주는 오도리 부족에게 상당히 쌓인 것이 많은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살려 보냈으면서 오도리 부족의 전사들은 그 거대한 백호에게 먹잇감으로 던져 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동맹가첩목아와 설미수, 동군영 그리고 척일이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걸어 나왔다. 가운데 선 동맹가첩목아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가는 길이 급하시다고 하니 아쉽습니다.”
“별 말씀을. 대신 부탁드린 것은…….”
“그런데 그게 정말입니까? 아니, 서장관님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맹가첩목아는 척일이 나타난 것을 보고는 명 천자의 칙서를 따르는 것을 포기했다. 그게 자신과 오도리 부족이 살 수 있는 길이란 것을 단박에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는 대추장이지만 그 전에 부족의 명운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한 척일이 이 자리에 서장관이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직위를 가지고 나타난 이상 동맹가첩목아는 전의를 잃었다. 그 무신이 한 발 양보를 했던 사람이 바로 척일이다. 또한 다른 부족에게서 사신(死神)이라 불리는 제근각 역시 곡산척가의 한 개 전각이었다. 아마 지금도 척일이 한 마디만 하면 곧바로 제근각의 무인들이 몰려들어 오도리 부족을 초토화시킬 것이다.
“응? 대추장. 많이 준비를 해놓았소이다?”
척일이 모용세가 무인들의 기운을 느끼고는 피식 웃어 보였다. 하지만 동맹가첩목아의 얼굴은 오히려 하얗게 질렸다. 오도리 부족의 전사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누가 보더라도 낭패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용세가의 무인들 앞에는 사행단의 수행원들로 보이는 이들이 서 있었고 말이다.
“명 천자께 대체 어찌하시려고…….”
“작은 오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대추장.”
설미수가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모용덕과 대화를 나누던 모용청이 감령을 향해 기수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도련님! 명예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따질 때입니다 단주님.”
“허나!”
모용덕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괴검과 괴권을 보니 그 인간이 검주라는 것이 확실하게 믿어졌다. 그렇다면 얼른 이곳에서 모용청을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 괜히 오도리 부족과 얽혔다는 이유로 연대책임을 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 저 곳에…… 저 곳에…….”
모용덕은 갈등했다. 검주가 있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무림십좌라고는 하나 그 개인에게 모용세가가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대가리 나와!]
후우우웅!!!! 어디선가부터 미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미풍에 실린 목소리가 그곳에 선 모든 이들의 고막을 두드렸다. 그리고 미풍인가 싶었던 바람이 서서히 거세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광풍이 되어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오도리 부족이 있는 곳은 비가 오고 있지 않았지만 물기를 잔뜩 머금은 광풍이었다.
[대가리 나오라고!!!]
철푸덕!!! 하늘에서 뚝 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개구리처럼 땅바닥에 착 하고 달라붙어 사지를 쭉 뻗고 기절한 이를 본 동맹가첩목아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창아!!!!”
철푸덕!!!
“범찰!!!”
하늘을 날아온 것도 아니고, 아들인 동창과 아우인 동범찰이 떨어져서는 개구리처럼 뻗은 것이다. 땅에 처박힌 두 핏줄을 덜덜 떨리는 눈으로 쳐다본 동맹가첩목아의 고개가 서서히 옆으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는 곳이었다. 동맹가첩목아는 내공 한 줌도 가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감히 오도리 부족의 대추장인 자신의 핏줄을 이리 대한 그 주범이 저곳에서 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너냐?”
동맹가첩목아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는 그의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저 멀리 하늘을 걸어오는 검은 무복을 걸친 멀끔한 얼굴의 청년이 동맹가첩목아의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들리지 않고 이제는 육성으로 목소리가 들렸다. 광풍이 몰아치고 있고 거리가 꽤 떨어져 있음에도 그 육성이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푸화아악! 크르릉! 광풍이 뚝 하고 멈췄다. 광풍을 일으키던 주범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크와아아앙!!!! 광풍을 일으킨 거대한 백호가 입을 쩍 벌리고 울음을 우렁차게 터뜨렸다. 몰아치던 바람이 뚝 멈춘 곳에 한(恨) 서린 포효가 울려 퍼졌다.
“대추장!!!”
“대추장을 보호하라!!!!”
밖의 난리를 감지한 오도리 부족의 전사들이 삽시간에 무기를 챙겨들고는 뛰쳐나왔다. 본래 삭막한 부족의 삶이란 어디서 언제 누가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모든 전사들이 눈 깜작할 새에 전투 준비를 끝마쳤다.
“네놈이 대가리면.”
하지만 허공을 밟고 오연하게 선 만우는 동맹가첩목아만을 쳐다보면서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꿇어.”
쿠웅-!!!!!
“억!”
“크억!!”
동맹가첩목아를 비롯한 무기를 들고 나온 오도리 부족의 전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땅에 처박았다. 그들의 머리 위에서 보이지 않는 거인이 짓누르는 것처럼 감히 항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만우를 보는 모용덕과 모용청의 눈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