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03. 연경 가는 길(6) (303/400)

303. 연경 가는 길(6)2021.11.23.

국경에서 일어난 분쟁이지만 조선에서 웬만한 것은 눈 감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여진족들을 모두 상대하기에는 조선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65096755.jpg“허나 압송하는 자가 대단한 자가 아니라면 조선에는 명에서 보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하면 되는 것이고, 명에는 면이 서는 것이고 말입니다.”

16553265096755.jpg“건주의 지휘사도 따라오는 것이겠지.”

한 마디로 대추장은 조선과 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도 실리와 명분을 다 챙기려고 하는 것이니, 과연 욕심이 많은 사내였다. 야망 역시 대단한 사내였고.

16553265096755.jpg“한번 보십시다. 명천자가 직접 칙서를 내려 압송해 오라는 그 죄인이 어떤 자인지. 그를 위해 내 식견이 높으신 모용덕 단주님을 뫼시고 왔으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6553265096755.jpg“호오…….”

모용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청의 말이 맞다는 뜻이었다. 동맹가첩목아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자신의 아들인 창(倉)이를 불러들였다.

16553265096755.jpg“전사들을 이끌고 살짝 살짝 신경만 건드리고 오거라.”

16553265096755.jpg“예, 대추장.”

동창이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

16553265096782.jpg“뭐.”

16553265096755.jpg“크, 크흠.”

만우는 거하게 차려진 상 위에서 고기만 젓가락으로 골라 집으며 입에 우겨넣었다. 척도철은 그런 만우를 쳐다보다가 한 소리를 듣고는 어깨를 움찔했다.

16553265096782.jpg“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 봐.”

만우는 잘 익힌 돼지고기 한 점을 입에 밀어 넣고는 우물거리며 척도철에게 흡족하며 말했다. 척도철은 끄응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65096755.jpg“아닐세. 그냥 드시게.”

16553265096782.jpg“에이. 설마 아까 졌다고 아직까지 꽁해 있는 건가?”

16553265096755.jpg“누가 꽁…… 흐음…….”

척도철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만우에게 입은 내상이 심각하진 않았지만 내상이란 것이 본래 그리 금방 낫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속이 불편해지자 만우는 픽 하고 웃었다.

16553265096782.jpg“것 참. 내상 몇 번 안 당해 본 사람처럼 구네.”

16553265096755.jpg“내상을 당해 볼 일이 몇 번이나 있다고!”

만우는 쯧쯧 하면서 젓가락을 입에 물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65096782.jpg“그러니까. 대체 얼마나 편하게 무공을 익혀 온 거야? 그런데도 화경에 다다랐다고? 무슨 하늘이 내린 재능들이 모인 곳인가 여기는?”

내상이 잦다는 뜻은 내공이 적다는 뜻이다. 그런데 내상을 몇 번 입어 보지 못했다는 것은 내공이 잘 모이는 체질이거나 곡산척가가 차기 가주가 될 척도철한테 영약으로 목욕을 시킬 정도로 부유했다는 뜻이다.

16553265096782.jpg“쯧. 내가 한 거니까 풀어주긴 하겠는데.”

16553265096755.jpg“무, 무슨. 뭘?”

만우가 벌떡 일어나서는 척도철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척도철이 엉덩이를 뒤로 끌면서 물러나려 했지만 여긴 난간이 있는 정자였다. 도망갈 공간이 없다는 뜻이다. 타다닥!!

16553265096755.jpg“!!!!!!!”

만우가 아혈과 마혈을 짚자 척도철의 몸이 뻣뻣해졌다. 척일은 척도철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만우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명색이 화경의 고수다. 그런데 그 화경의 고수가 만우가 마혈과 아혈을 짚을 동안 몸 한 번 제대로 비틀지 못했다는 뜻이다.

16553265096755.jpg‘대체 얼마나 실력의 차이가 난다는 소리인 건가.’

가주인 척도철이 실전 경험이 적기는 했다. 가주가 대체 어디서 기회가 나서 직접 몸을 부딪치면서 무공을 써 볼 일이 있냐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은 기본인데, 그 차이가 너무나도 났다.

16553265096782.jpg“자. 가만히 있어? 그러면…….”

푸욱!!! 만우의 손끝이 거의 두 치는 척도철의 몸으로 파고들었다. 그게 상당히 고통스러운지 척도철의 두 눈에 핏발이 서면서 목에 굵은 핏줄이 섰다. 푸부부북!!! 그렇게 만우의 손가락이 삽시간에 척도철의 상반신 이곳저곳을 찔렀다. 그러자 잠시 후 척도철이 울컥하면서 몸에 고혀 있던 울혈을 토해 냈다.

16553265154363.jpg

  터엉-!!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우가 손바닥으로 척도철의 등짝을 후려쳤다. 그러자 척도철이 몸이 크게 들썩이더니 척도철의 칠공으로 검은 피가 주륵 흘러나왔다.

16553265154367.jpg“만우!!!!”

만우가 하는 행동이 꼭 척도철을 죽이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에 놀란 방매가 불렀다. 하지만 그때 동군영이 방매의 소맷자락을 붙잡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65154371.jpg“태상가주와 척 무사님이 가만히 계시는 것을 보면 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자가.”

16553265154367.jpg“하, 하지만 검은 피가…….”

멀쩡한 사람이 칠공에서 검은 피를 흘린다는 괴사는 들어 본 적도 없는 방매였다. 하지만 척일과 척사영뿐만 아니라 자리에 동석한 여포나 다른 고수들도 놀란 기색이 아니었기에 방매는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16553265154367.jpg“윽, 냄새.”

그런데 그때 악취가 방매의 콧속을 푹 하고 찔렀다. 화들짝 놀란 방매는 이 악취가 척도철이 뱉어 낸 피에서 난다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16553265096755.jpg“몸에 고인 나쁜 피를 뺀 것 같습니다 옹주자가.”

설미수가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방매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설미수도 악취가 신경이 쓰이기는 한 듯 약간 찡그린 얼굴이었다.

16553265096782.jpg“자. 끝.”

만우는 태연하게 지풍을 날려 짚어 두었던 척도철의 마혈과 아혈을 풀어 주었다. 그러자 척도철은 몸이 움직이자 펄떡 일어나 만우에게서 멀어졌다.

16553265096755.jpg“이, 이 간악한. 기습…… 어?”

만우가 치료한다며 했던 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었기에 기습을 했다 착각한 척도철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치 체기가 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여기저기가 결렸던 몸이 깨끗하게 나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나은 정도가 아니었다. 내공의 흐름이 더욱 원활해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척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척도철 대신 만우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16553265096755.jpg“고맙네. 추궁과혈이라니. 내상만 치료해 주어도 감지덕지거늘.”

16553265096755.jpg“추궁과혈…….”

척도철이 놀라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뭘 쳐다보느냐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척도철을 쳐다봤다. 추궁과혈을 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준비와 내공이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만우는 땀방울 하나 보이지 않았다.

16553265096782.jpg“별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리고 진짜 무인이 맞기는 해? 화경이라면서 무슨 탁기가…… 으휴.”

만우는 손부채를 부쳤다. 척도철의 몸에서 나는 악취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게 전부 척도철의 혈에 쌓였던 탁기가 검은 피와 함께 나온 것이다. 척일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65096755.jpg“이 아이는 무인이라기보다는 가주일세. 뭐하느냐. 어서 고맙다고 하지 않고.”

16553265096755.jpg“…….”

척도철은 멍한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이건 숫제 상대가 되지 않는 괴물이었다. 이미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해 만우의 실력을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이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윗줄의 실력을 가진 고수였다. 꿀꺽 척도철은 그 고수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참았다는 것이 대단한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정도 경지의 고수라면 오히려 척가에서 비위를 맞춰 줘야 할 것이다. 경지를 넘은 고수이니까.

16553265096755.jpg‘그 경지가…… 현경.’

척도철은 입을 꾹 다물었다. 척도철은 자존심이 강하고 곡산척가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보는 아니다. 두 번이나 비슷한 일을 겪고서도 자신의 목을 뻣뻣하게 할 만한 어리석은 위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16553265096755.jpg“감사합니다, 대협.”

16553265096782.jpg“대협은 무슨. 협(俠)을 쌓고자 한 적도 없으니 그냥 편히 불러라. 소름이 돋을 것 같구나.”

만우가 팔을 벅벅 긁었다. 그런 품위 없는 만우의 모습에 척도철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그때 척일이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16553265096755.jpg“희운이가 오는구나.”

16553265096755.jpg“희운이요?”

척도철이 척일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만우는 그냥 상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정신 건강에 더 편하겠다고 깨달은 것이다.

16553265096755.jpg“제근각의 일로 국경에 나갔을 희운이가 왜 벌써…….”

척희운은 척도철의 동생으로 곡산척가의 호법이었다. 호법은 척가의 각 전각을 돌아다니며 그들이 필요할 때 손을 보태는 일을 도맡아 했다. 여진족이 국경을 어지러이 한다는 소리에 제근각을 돕겠다며 나섰던 척희운이 벌써 돌아온 것이다.

16553265096755.jpg“가주. 태상가주. 그리고…….”

척희운이 움찔했다. 처음 보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 하나하나의 수준이 척가의 무인들을 뛰어넘는 자들이 몇이나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중에는 척희운과 비슷하거나 아예 읽히지 않는 이도 있어 놀랄 수밖에 없었다.

16553265096782.jpg“호법의 보는 눈이 가주보다 더 낫구나.”

만우가 피식 웃었다. 척희운이 만우와 여포를 보면서 눈가를 움찔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상대를 보는 안목은 가주보다 호법이 더 낫다는 뜻이었다.

16553265096755.jpg“가주. 저들은…….”

16553265096755.jpg“손님이시다. 한양에서 오신 사행단분들이시다.”

16553265096755.jpg“흠…….”

척희운은 남루한 옷을 입은 채 마치 상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하게 앉아 있는 만우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만우의 신분이 양민에 불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16553265096755.jpg“여진의 오랑캐 놈들이 고을 하나를 습격하여 아녀자들과 장정들을 잡아갔다 합니다, 가주. 한데 제근각으로는 부족하여 가문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16553265096755.jpg“국경을 넘어서 들어왔다는 말이냐?”

16553265096755.jpg“그렇습니다. 오랑캐 놈들이 무슨 주워 먹을 것이 있다고 매일 같이 간을 보다가 선을 넘었소.”

16553265096755.jpg“관아에서는 뭐라 하더냐?”

16553265096755.jpg“관아가 아니라 여진족들이 요즘 성화라 난립니다. 정신이 없다 하더이다.”

16553265096755.jpg“소사각주와 소사각을 보내겠다. 그 정도면 되겠지?”

16553265096755.jpg“곧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척희운은 그리 말하고는 곧바로 몸을 돌렸다. 만우와 여포에 대해 궁금한 듯 보였지만 그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더 중했기 때문이다.

16553265154367.jpg“호선 언니?”

16553265239046.jpg“으, 응?”

만우가 고개를 돌려 호선을 쳐다봤다. 호선이 눈에 띄게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척희운이 여진족이 요새 국경을 넘어 변방을 괴롭히고 있다는 소리를 들은 직후부터였다.

16553265154367.jpg“어디 아파?”

16553265239046.jpg“아니, 괜찮아.”

방매의 말에 호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호선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만우가 눈을 가늘게 좁혀 뜨자 그런 시선을 느낀 것인지 호선이 어깨를 흠칫했다.

16553265096782.jpg[말해.]

만우의 전음이 호선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자 호선이 한숨을 작게 내쉬더니 만우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16553265239046.jpg[으, 은혜라고 할까. 어릴 적 목숨을 구해 줬던 은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그쪽에 있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만우는 은인의 후손이라는 소리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으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선은 인간이 아니라 영물이다. 인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영물이기에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삶이 있었다.

16553265096782.jpg[먼저 가서 기다렸다가 합류해. 동선은 알고 있지?]

16553265239046.jpg“네!”

호선이 기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성으로 대답했기 때문에 다들 놀라 호선을 쳐다봤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16553265096782.jpg“가라.”

16553265239046.jpg“다녀올게요.”

호선이 만우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문을 박차고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는 호랑이의 포효소리와 함께 호선의 기척이 삽시간에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16553265096782.jpg“귀찮게 얽힐 것 같긴 한데 말이지.”

현경에 오르니 화경일 때와는 다르게 보이고 느껴지는 것이 더 많아졌다.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 호선을 그리 보냈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게 다가 아닐 것이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16553265096755.jpg“뭐, 뭔가?”

16553265096755.jpg“호랑이?”

16553265096755.jpg“대체…….”

물론, 갑작스런 백호의 등장에 난리가 난 곡산척가와 그 집성촌도 덤이었고 말이다.

1655326526914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