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연경 가는 길(4)2021.11.16.
그렇기에 좌호법은 천마대를 신교 내에서 날린다 하는 고수들로 채웠다. 절대고수의 부재를 정파나 사파로부터 숨기기 위함이다.
“속도가 생명이라 하였거늘.”
연경까지 오는데 인적이 드문 길로, 정확히는 신교의 무림일통 대계에 사용되었던 길을 따라 이동했기 때문에 정파나 사파의 세력권에 걸리지 않았다. 단일 세력에 불과한 천마신교가 중원에 나오기 위해서는 정파나 사파가 모르는 사이에 휘몰아쳐야 하기 때문에 적들의 세력권을 피해 활보할 수 있는 길이 수십 개는 존재한다. 그 덕분에 무려 십만대산에서 연경까지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섣부른 행동은 삼간다.”
하지만 연경에서는 한 번 쉬어갈 수밖에 없었다. 경지에 오른 천마대의 무인들 때문이 아니라 말들이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이다. 나름 신교에서 골라 뽑은 체력 좋은 말들을 타고 왔음에도 말이 퍼져 버렸다. 그들이 탄 말이 적토마 정도가 아닌 다음에야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를 일으킬 행동 역시 삼간다. 연경은 하북팽가의 눈이 산재한 곳이니 객주 안에서 체력을 회복하는 데만 전력을 다한다. 이상. 질문 있는 이 있나?”
천마대의 무인들은 전부 평범한 표국의 표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전 중원을 활보하는 표국의 표사로 변장하는 것이 이동에 있어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없습니다.”
“좋아. 해산.”
표국의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천마대의 무인들이 변장한 표국은 한 번 표행에 백 명의 표사와 쟁자수를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를 가진 곳이었다. 더불어 그 표국은 신교에서 은밀하게 자금을 지원하면서 운영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황실이 자리한 연경은 가장 규모가 방대한 성이었기에 이 정도 규모의 표행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마대는 별로 운이 좋지 않았다. 검절귀 도겸은 외부에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교의 고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원에 출타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딱 한 번,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중원행에 나섰지만 채 여섯 달이 지나기 전에 마인이라는 것이 밝혀져 정파의 추격을 받아 간신히 신교로 복귀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런 도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가 연경의 대로에 떡하니 서 있었다는 것이다.
“저 자는!!!!”
무림맹의 사대 전투단인 주작단(朱雀團)의 단주 독절(毒絶) 당중약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연경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가 당중약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검절귀가 연경에 있다는 말인가!”
무림맹은 무수히 많은 정파의 문파와 세가들이 모여 만든 연합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정파라고 해도 아무래도 대문파와 오대세가 사이에는 각기 다른 미묘한 입장차가 흘렀다. 각 문파와 세가의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무림맹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무림맹의 사대 전투단은 그 이득과 영향력에 관계된 문파와 세가의 입김이 강했다. 황룡단과 봉황단 밑으로 사대 전투단인 주작, 현무, 백호, 청룡단이 있었는데 이 전투단은 모두 한 문파나 세가의 무인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주작단은 그중에서도 사천당가의 무인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주작단의 모든 무인들이 당 씨 성을 쓴다는 뜻이었다. 무림십좌 중 일인인 암존(暗尊)의 존재로 오대세가 중 남궁의 무존(武尊), 소림의 불존(佛尊)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사천당가다. 허나 오대세가 중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독과 암기를 다룬다는 것 때문에 생겨난 편견을 불식시키기 위해 운영하는 것이 바로 주작단이었다.
“천안각에서 연통이 온 것은 없느냐?”
십오 년 전 중원에 출도한 검절귀를 쫓아 보낸 것이 바로 당중약이었다. 하지만 기어코 도망가 버린 검절귀 때문에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당중약의 앞에 난데없이 도겸이 튀어나온 것이다.
“없습니다.”
“간악한 마교의 무리들이 수작을 부린 것이렸다.”
주작단은 명천자에게서 온 칙서에 따라 주작단을 조선으로 보내기로 했다. 검주를 제압하고 호송해야 하는 문제에 사천당가의 독이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검주의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천당가의 독은 그야말로 일절이다. 사천당가와 척을 지게 되면 그 누구도 살아날 수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먹는 음식, 잠자는 것, 화장실 시작하는 것에까지 독과 암기가 쓰이는 곳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검주라고 해도 독이라면 통할지도 모른다. 그런 근거 없는 믿음에 사천당가는 당연히 자신감을 내보이며 주작단이 움직이는 것에 동의했다. 제 아무리 혈세천마, 아니 그 윗대의 천마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사천당가의 독에는 당해 낼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자신감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만우가 찾아가지 않은 유일한 무림십좌의 일인이 암존이란 것 때문에 주작단이 움직이는 것이 큰 힘을 받았다.
“숙부. 검주를 호송하는 것이 더 큰 일이에요.”
당중약의 엉덩이가 들썩이는 것을 본 주작단의 무인이 손을 뻗어 그의 팔뚝을 붙잡았다. 당중약을 숙부라 부르는 이는 여인이었는데 미인의 조건을 모두 갖춘 빼어난 미녀였다. 당화(唐花) 당미령. 무림오화 중 일인이자 독과 약을 만들어 내는데 빼어난 실력을 가졌다 알려진 당미령 역시 주작단의 일원이었다.
“허나 마교의 무리는 보이는 대로 죽여 없애는 것이 이 세상에 이득이니라. 너도 알지 않느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어여쁜 조카가 말렸지만 당중약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마교의 무리는 보이는 족족 한 줌의 독수로 만들어 없애는 것이 이 세상에 이득이 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당중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미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중에요. 저 자가 마교의 끄나풀이 맞다면 필히 혼자 나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신교의 동태가 심상치 않다면서요.”
“혈세천마가 죽었다는 소리 말이냐?”
“예. 그것도 검주에게요.”
검주 만우에 의해 중원도 아닌 먼 일본국에서 혈세천마와 마교의 고수들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이 천천히 구파일방과 세가 사이에서 퍼지고 있었다. 비록 그 누구도 진실을 확인할 수 없기에 그 소문이 불길처럼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확실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천하제일인. 무림십좌의 일패인 혈세천마도 가질 수 없었던 그 칭호를 받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명백해지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소식이지만 그 때문에 우리 당가가 나섰다는 걸 잊으시면 안 돼요. 만약 그런 검주를 숙부의 독으로 제압할 수 있다면 그건 어마어마한 이득이잖아요?”
당미령은 차분하게 당죽약을 설득시켰다. 당미령이 왜 주작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성격이 급한 당중약을 자리에 앉혀 놓고 설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바로 당미령이었다. 그리고 당미령의 말은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다. 검주에게 독이 통하느냐 통하지 않느냐는 초유의 관심사였다. 혈세천마가 검주의 손에 의해 먼 타지에서 죽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그런 검주를 당가의 독이 제압하게 된다면? 사천당문의 독은 그야말로 천하일절임을 모든 무림동도들에게 인정을 받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미령이의 말이 맞지. 암, 맞아. 우리 당문의 위대함을 무림 전체에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되면 독과 암기를 쓴다는 이유 때문에 은연중에 정파에서 겉도는 사천당가의 인식이나 위치도 올라갈 것이다. 그것은 대(大)이고, 마교의 끄나풀을 잡아 족치는 것은 소(小)인 것이다.
“허나 우린 무림맹의 주작단이다. 허니 맹의 일원으로 팽가에 알려 이 사실을 전하거라.”
“예, 숙부.”
당미령이 꽃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
“흐읍!!!!”
척도철의 검이 물길의 험함이 조선에서 으뜸이라는 울둘목의 수류(水流)를 재현해 내며 만우를 그 안에 가두었다. 곡산의 검은 조선의 강과 바다, 산세를 담았다. 만우는 그런 곡산검법이 그려 내는 자연을 보면서 감탄했다. 자연경(自然境)이 저러할까. 현경 다음의 생사경을 넘어 완연한 신선이 되어 자연의 일부가 된다는 자연경에 오른다면 과연 저리 검에 자연을 담을 수 있을까. 만우는 울돌목의 수류 안에서 어깨를 흔들어 그 흐름에 몸을 맡겼다. 스으윽. 척도철의 검은 그런 만우의 몸을 찢어발기기 위해 무시무시한 검기를 터뜨렸지만 만우의 몸에는 그중 단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만우의 발이 기천무(氣天舞)의 묘리를 품고 검기 사이를 누볐기 때문이다. 동시에 척도철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 기천무가 피워 낸 기천, 기로 이뤄진 하늘이 울돌목을 찢고 펼쳐졌다. 푸확!!!
“!!!!!!!”
척도철이 만우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척일도 알고 있었다. 헌데 만우의 초식이 만들어 낸 조화에 척일은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공간과 영역을 점유하는 초식이라니. 무공은 점에서 시작해 선, 면으로 뻗어 나간다. 모든 무공의 초식들은 그 깨달음을 걷어 내고 본다면 점과 선, 면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에 누가 자신의 깨달음을 더 녹여 내고, 누구의 검이 더 좋으며 누구의 내공이 더 깊은지에 따라 무공의 초식이란 것이 완성된다. 헌데 공간과 영역이라니. 척일의 예리한 기감에는 울돌목을 찢어 내며 내려앉은 기의 하늘이 차지한 영역이 느껴졌다. 저 안에 들어선다면 저 기의 하늘을 찢어 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만우를 상대할 수 없다. 신(神). 저것은 신의 권능을 흉내 낸 무공이고 초식이었다. 주륵.
“허, 허헛.”
척일은 자신의 이마에 흥건한 식은땀을 느끼고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만큼 만우의 초식을 보고 놀란 것이다. 그가 무공을 닦은 시간은 한 갑자(甲子:60년)를 가볍게 넘는다. 그런데 저런 무공이 있을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라.”
척도철도 그런 만우의 기천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인지 검을 멈추고는 견제만 하고 있었다. 그런 척도철에게 만우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까닥였다.
“본주는 아직 출검하지도 않았느니라.”
만우는 자신의 빈손을 들어 보이면서 슬쩍 척도철을 비웃었다. 그런 만우의 도발에 넘어간 척도철이 양 손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우우웅!!!!! 방금 전 척도철의 검이 사나운 울돌목의 수류를 담아냈다면 이번에는 척도철의 양 어깨에 웅혼한 산세가 서리기 시작했다. 만우는 그것을 보면서 핫 하고 웃었다.
“산이로구나. 어디의 산세더냐!!!”
척도철이 이를 까득 하고 갈았다. 자신의 검이 만우에게 조금도 닿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만우가 고수라는 것은 그 덕분에 알았으니, 이제는 사정을 봐주지 않고 진짜 벨 것이다.
“금강(金剛)!”
쩌저적!!!! 금강산은 수려한 산세로 많은 양반들이 나들이를 가는 곳으로 유명했다. 허나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산세가 험한 것으로 유명했기에, 척도철의 검이 강맹함을 품고는 만우의 전신을 쪼갤 것처럼 내리그어졌다.
“좋은 기세다. 허나.”
만우는 척도철의 검극이 자신의 머리를 정확하게 노리고 그어지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뒷짐을 지었다. 척도철의 검은 여전히 만우로 하여금 출검을 하는 데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정직하다. 지금껏 그대는 그대의 검을 오롯이 받아주는 적만 상대해 본 것이로구나.”
“!!!!!!”
만우의 신형이 허깨비처럼 사라지더니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을 자를 것 같은 기세로 떨어져 내린 척도철의 검은 허무하게 만우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리지 못 하고 빗겨 나갔다. 꾸욱!!
“크헉.”
척도철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만우의 발이 척도철의 검에 딱 달라붙어서는 검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자 기혈이 꼬이면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꽈드득!!! 만우는 가볍게 천근추(千斤錘)로 몸을 무겁게 만들어서는 검신 위에 올라섰다. 척도철은 그런 검을 빼기 위해 온 힘을 끌어올렸지만 검은 단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