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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7. 검주, 돌아가다(4) (297/400)

297. 검주, 돌아가다(4)2021.11.02.

16553263819348.jpg“중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뜻인가?”

16553263819353.jpg“온 곳이니까. 수로를 이용하는 것은 글렀으니, 육로를 이용하겠지.”

마교의 본산인 십만대산은 그 큰 중원 땅에서도 저 먼 끝자락에 위치했다. 그러자 여포가 만우에게 말했다.

16553263819348.jpg“중원으로 간다고 들었다.”

16553263819362.jpg“어? 어떻게 알았어요?”

방매가 고개를 갸웃했다. 조천사가 꾸려져 명으로 간다는 것은 조정에서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16553263819348.jpg“방금 전에. 네가 하는 말을 들었으니까.”

여포가 방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매의 눈이 커졌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16553263819353.jpg“이놈이 작정하고 있으면 아무도 모르는 게 당연하지. 뭐, 말려도 따라올 거지?”

16553263819348.jpg“그렇다!”

여포는 당당하게 말했다. 만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방 하나를 가리켰다.

16553263819353.jpg“확 팔다리를 분질러 놓으면 편하겠지만…….”

만우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것을 본 여포가 움찔했다. 만우가 한다고 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16553263819353.jpg“가자고. 짐은 안 되겠지.”

16553263819348.jpg“고맙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멀어지는 만우의 뒤통수를 향해 여포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 조천사, 즉 사행이 결정되자마자 사행단이 꾸려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일 년에 네 번 있는 정례사행이 아닌, 명천자의 칙유로 인해 만들어진 임시사행이었기 때문에 지방에서 실어 나를 정도로 대단한 양의 조공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6553263848671.jpg“정확히는 검주, 그자가 한 말이네만.”

16553263848671.jpg“적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사료되옵니다만.”

16553263848671.jpg“이리 답답할지고. 중원에 눈과 귀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니 그런가?”

임금의 푸념에 설미수가 웃었다. 이전부터 명과 조선을 오가며 명과의 외교에 일가견이 있던 설미수는 이번 조천사 사행단의 으뜸인 정사(正使)에 임명됐다. 정례 사행에서도 몇 번이나 정사로 사행단을 이끈 바 있기 때문에 아무도 설미수의 능력을 반문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미수는 만우의 진면목을 본 몇 안 되는 조선의 대신이었다. 지금까지는 동군영을 위주로 움직였지만 명나라에 가는 사행단에 동군영을 정사로 삼기에는 그의 경력과 경륜이 너무 일천했다. 더군다나 이번 사행은 명천자가 보내온 칙유를 살짝 틀어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압송이 아닌 사행단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16553263848671.jpg“집의 동군영.”

16553263848745.jpg“예, 전하!”

임금은 여전히 소심한 성격이 남아 있는 동군영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자신의 앞에서 바짝 엎드려 오체투지를 하던 동군영이다. 그런 그가 가까스로 임금 앞에 서 있었다.

16553263848671.jpg“어깨를 펴고 허리를 펴라. 그대는 사행단의 부사다. 그런 그대가 그리 소심하면 어찌 아랫사람들이 그대를 따르겠는가?”

16553263848745.jpg“예, 전하.”

동군영은 여전히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임금은 그런 동군영을 탓하지 않았다. 불경한 것보다는 저게 훨씬 더 여러모로 나았기 때문이다.

16553263848671.jpg“통사(通事)로는 별감 문형일을 당상통사로 임명하고 감령과 필두를 별감으로 임명하여 상통사로 임명하면 되겠는가?”

16553263848745.jpg“예, 전하.”

통사는 역관을 뜻한다. 명나라에 가면 한어와 조선어에 능한 자들이 중심에 서서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형일과 감령, 필두는 조선말보다는 한어가 더 익숙한 만우의 부하들이다. 그러니 그들만큼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은 없었다.

16553263848671.jpg“서자관과 화원은 배제하도록 한다. 의원은…… 옹주가 어떠한가 싶은데.”

16553263848745.jpg“옹주자가 말씀이십니까?”

16553263848671.jpg“그래.”

임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행단은 대략 서른에서 마흔 사이의 대규모 인원으로 꾸려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명나라에 간다는 것은 단순히 외교만을 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명의 앞선 문물을 받아온다는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동행하게 된다. 임금이 배제한다고 했던 서자관은 글씨를 받아오고 책을 베끼는 응봉사(應奉司)의 말단 벼슬이고, 화원은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화공을 말한다. 이 외에도 의원부터 시작해 명에서 조공품으로 요구하는 조선의 말을 진상하기 위해 말을 모는 전문 압마관 등과 수행원과 노자를 합치면 사행단의 규모가 서른에서 마흔까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은 지금 그 의원을 옹주자가, 즉 방매를 데려가는 것이 어떻냐고 말하고 있었다.

16553263848671.jpg“장사에 열의가 많다 들었다. 함주에 가서도 사향을 사왔다 들었다. 또한 한양제일매분구라 불린다지.”

16553263848745.jpg“…….”

동군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임금이 방매에 대해 은근히 관심이 많았음을 느낀 것이다. 임금은 수염을 매만지면서 웃었다.

16553263848671.jpg“상왕께서 그 아이를 옹주로 삼았다 하여 궁에 들일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도 그 아이가 원하지 않을 일이니. 허나 명색이 오라비일 지언데, 도움은 주어야 하지 않느냐?”

16553263848745.jpg“자가께서 좋아하실 듯합니다.”

사행단의 의원이 하는 일은 단순히 병을 보살피는 일 뿐만이 아니었다. 조선의 약재와 명나라의 약재를 무역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쥐는 자리가 바로 사행단의 의원이었다.

16553263848671.jpg“야장은 무슨 소리인가?”

임금이 설미수에게 물었다. 이번 사행은 어디까지나 모든 초점이 만우에게 맞춰진 사행이다. 어떻게 보면 임금은 만우 하나만 믿고 명천자의 칙유를 한 번 꼰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 되면 사행단은 사실상 사지(死地)로 걸어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사행단은 오롯이 만우가 원하는 자들이거나, 설미수처럼 만우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로만 내정됐다.

16553263848671.jpg“검주 만우의 의동생이라 합니다.”

16553263848671.jpg“음…….”

그러면 그냥 수행원으로 삼으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채워 넣자 임금이 고개를 들어 설미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16553263848671.jpg“서장관(書狀官)은 어찌할 셈인가?”

서장관은 사행단을 구성하는 삼사(三使) 중 하나로 사행을 가는 도중 벌어진 모든 일들을 기록해 돌아와 임금에게 보고를 하는 자였다.

16553263848671.jpg“음…… 소신이 하겠습…….”

16553263848671.jpg“그대는 안 되네. 정사의 일만 해도 업무가 과중할 터. 그대가 사행단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게.”

이번 임시사행은 다른 사행과는 그 성격이 전혀 달랐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은 설미수에게 단호하게 말한 것이다. 살아 돌아오라고. 살아 돌아오기 위해 집중을 해야 하니 서장관의 업무까지 도맡지 말라는 뜻이다.

16553263848671.jpg“전하. 허나…….”

16553263848671.jpg“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일세.”

임금이 단호하게 답하자 설미수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가 하지 않으면 대체 누가 서장관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만우를 모르는 다른 대신을 서장관으로 데려가 봤자 분명히 문제만 일어날 것이다. 거기에 용담호혈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16553263848671.jpg“아. 혹시 그자라면 적합할지도 모르겠군.”

16553263848671.jpg“……그자라고 하시면?”

16553263848671.jpg“일단은 과인이 직접 연락을 해 봐야겠어.”

임금이 누구를 서장관으로 생각한 것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씩 웃기만 했다. 설미수와 동군영은 그런 임금의 얼굴을 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지만 고개를 숙였다. 왕이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는가.

16553263848671.jpg“나쁜 일은 아닐 걸세.”

임금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말을 했지만 하나도 위안이 되지 않는 둘이었다. *****

16553263819362.jpg“의원? 제가요?”

방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자신한테 말한 것이 맞느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설미수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63848671.jpg“맞사옵니다.”

16553263819362.jpg“저, 전 의원이라고 하기에는 아는 것도 별로 없고…….”

16553263848671.jpg“주상전하께서 옹주자가께 드리는 약소한 선물이옵니다.”

16553263819362.jpg“서, 선물이요?”

방매는 더욱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임금까지 거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미수는 빙긋 웃으면서 말하지 않았던 것을 대신 말했다.

16553263848671.jpg“의원이 되면 조선의 약재를 명나라에 가져가 팔 수도 있고, 반대로 가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정식으로요.”

16553263819362.jpg“…….”

방매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의원은 양반이 아니라 중인이기 때문에 여인도 관계없었다.

16553263848671.jpg“전하께서 자가를 위해 특별히 명하셨습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16553263819362.jpg“아…… 네.”

방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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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제일매분구라고는 하지만 국가의 허락을 받고 정식으로 무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본래 조선에서는 타국과의 상행위 자체가 다수에게 허락이 되지 않은 일종의 특권이었기 때문이다.

16553263848671.jpg“그리고 세 사람.”

감령과 필두, 마익후까지 모두 임시직이나마 별감이 되었다. 수행원 자격을 함과 동시에 사행을 역관 역할을 하면서 호위 역할까지 겸하게 된 것이다. 만우는 집의가 되어 사행의 부사가 된 동군영의 역졸에 이름을 올렸다. 즉, 수행원 중 하나인 것이다. 그것에 설미수도 그렇고 임금도 그렇고 고민을 했지만 만우가 다른 번거로운 직함 따위를 원하지 않았다. 거기에 호선은 물론이고 간장과 여포까지 수행원으로 가기로 했다.

16553263848671.jpg“그리고 한 자리가 공석이긴 합니다만.”

설미수는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는 만우에게 말했다. 사행의 우두머리는 설미수와 동군영이었으나 진짜 으뜸이 만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사행에 없었다.

16553263819353.jpg“무슨 자리입니까?”

16553263848671.jpg“본래 사행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삼사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16553263819353.jpg“그런 복잡한 것은 됐수다. 간단하게.”

그래도 만우는 설미수에게는 반존대나마 말을 높였다. 자신을 위해 애를 많이 썼고, 태도가 공손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정중했기 때문이다.

16553263848671.jpg“……삼사 중 한 자리가 비어 그 자리를 대신할 분에게 연락을 해 두었습니다. 한데 한양에 계신 분이 아니라 저희가 가는 길에 합류하실 예정입니다.”

16553263819353.jpg“합류?”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행단의 구성이 끝났으니 이제 떠나면 된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뒤늦게 가는 길에 합류하는 형태라니, 선뜻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63848671.jpg“만우 님도 아시는 분입니다.”

16553263819353.jpg“그러겠지요. 그게 아니면 번거로우니…….”

정확히 말하면 번거로운 것은 만우가 아니라 그 사이에 끼게 될 설미수와 동군영이었다.

16553263819353.jpg“그런데 내가 아는 사람이라면…….”

곰곰이 턱을 괴고 생각하던 만우가 고개를 픽 하고 돌려서는 설미수를 쳐다봤다.

16553263819353.jpg“설마…….”

설미수가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우가 눈치챘다는 것을 눈을 통해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63848671.jpg“예. 곡산입니다.”

  *****

16553263848671.jpg“오도리족의 대추장이?”

16553263848671.jpg“예, 가주.”

모용세가의 본가는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요녕성에 위치하고 있었다. 모용 씨가 한족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오대세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세외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황제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후연(後燕)의 후예로 선비족의 후예이기도 한 모용세가는 연경과 하북성에서도 북쪽으로 더 가야 나오는 요녕성의 요하 유역에 모용세가를 세우고 요녕성의 패자로 이름을 떨쳤다. 지리적인 위치상 여진족과 가까웠기 때문에 모용세가는 그들과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16553263848671.jpg“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청이와 팔검단을 보낸다.”

16553263848671.jpg“황제의 의도가 정녕 대추장이 짐작하는 대로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16553263848671.jpg“흠.”

모용세가의 가주인 모용수는 팔짱을 끼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모용세가와 명나라의 현 황제인 영락제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다. 영락제가 연왕(燕王)이던 시절 모용세가가 있는 요녕성 근처에 연왕부가 있었는데, 그가 연(燕)의 이름을 쓴다는 것 때문에 모용세가가 껄끄러워했기 때문이다. 후연의 후예인 그들에게 연왕이란 자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모용세가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어쨌든 그런 사이여기 때문에 모용수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16553263848671.jpg‘과연 황제나, 그 주변의 대신들의 머릿속에 이 모용이 없었을까.’

요녕성은 중원에서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그곳의 정보에 밝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모용수는 명천자가 압송하라고 한 사람이 그 유명한 검주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허나 대추장의 의심이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용수는 확실하게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16553263848671.jpg“어떤 쪽이든,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자들을 도우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명분이 될 수 있음이니.”

대추장의 의도가 훤히 보였다. 황제로부터 칙서를 받은 대추장은 이번 일의 책임을 모용세가와 함께 떠안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용세가에는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본래 황제의 칙서란 그런 힘을 가진 것이다. 이렇게 공이 넘어온 이상 피할 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16553263848671.jpg“그래도 청이라면 믿을 수 있을게야. 똑똑한 아이이니. 제 처신 하나는 잘 할 터이니…….”

16553263848671.jpg“이공자라면 확실히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어리신 분이 아닙니까.”

16553263848671.jpg“그러면. 첫째를 보낼까?”

모용세가의 대표적인 무력단은 십검단(十劍團)이 있었다. 말 그대로 열 개의 단으로 이뤄진 십검단으로 모용세가의 검이었다. 각 단마다 서른 명에서 오십 명 사이의 무인들이 속해 있었고, 일검단에 가까워질수록 능력이 뛰어났다. 모용수가 말한 첫째란 모용수의 큰아들로 삼검단을 이끄는 단주였다. 그는 무재가 남달랐지만 아쉽게도 머리를 쓰는 쪽으로는 아무런 재능도 없었다.

16553263848671.jpg“그건…… 아니지요.”

일검단의 단주이자 모용수의 오른팔인 모용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공자인 모용중을 보냈다가는 더 큰 사고를 치면 쳤지, 세가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이공자인 모용청은 어리기는 하지만 나이에 맞지 않게 성격이 진중한 데다가 머리를 잘 써 모용수가 총애하는 아들이었다.

16553263848671.jpg“좋아. 그러면 청이를 보내는 것으로 하지.”

16553263848671.jpg“예, 가주.”

모용재가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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