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6. 검주, 돌아가다(3) (296/400)

296. 검주, 돌아가다(3)2021.10.30.

16553263568089.jpg‘공포, 인가.’

16553263568089.jpg“한 자루의 활과 한 자루의 도로 무신께서 쳐 죽이신 여진족 도적들이다.”

16553263568089.jpg“……예?”

16553263568089.jpg“홍건적의 후예라 칭했던 한산동.”

16553263568089.jpg“…….”

원의 압제 아래에서 벗어나고자 종교의 이름 아래 뭉쳐 중원의 하북성부터 시작해 건주에서 고려까지 휩쓸었던 이들의 잔재가 건주에서 도적으로 일어났던 적이 있었다. 그들의 세가 강하여 고생을 했다 들었는데, 그때의 일에 이성계가 관련이 있는 줄은 동창은 처음 듣는 일이었다.

16553263568089.jpg“우리의 청을 받고 출전하신 무신께서 이백 아흔 네 놈의 수급을 취하셨다. 무신의 가별초들이 전장을 휩쓸었고.”

무신, 이성계가 건주에서 끼치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의 발단이 바로 이 때였다. 동창은 할 말을 잃었다. 이백 아흔 넷. 동창 자신이 다섯 명이 있다고 해도 감히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 수였다. 그런데 그것을 무신이 홀로 상대했다는 것이다.

16553263568089.jpg“명에서 우리 오도리가 갑자기 마음에 들어서 그런 제안을 하였다 생각하느냐?”

나이가 들어 과거와 같은 용맹은 사라졌지만 현기가 도는 눈으로 동맹가첩목아가 자신의 아들인 동창에게 물었다.

16553263568089.jpg“……그 말씀은.”

16553263568089.jpg“일개 죄인을 호송하는 것이다. 한데 그 대단한 황실에서는 나서지 않고 조선과 우리를 이용하려는 것 같으냐?”

당금의 명의 위세는 천하제일이었다. 특히 건륜제를 밀어내고 보위에 오른 영락제는 연왕이던 시절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호령하던 장수였다. 그렇기에 특히 막강한 군권을 바탕으로 모든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쥔 황실이 하고자 하는 것은 거의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작 죄인 하나 호송하는 것을 조선과 여진의 오도리에게 맡긴다?

16553263568089.jpg“내 재밌는 걸 들었다.”

건륜제 시절 명나라 황실에서 일어났던 비사(祕史)를 동맹가첩목아는 알고 있었다. 여진족이 수많은 부족들로 갈렸다고는 하나 그들도 제 살을 깎아먹는 싸움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6553263568089.jpg“그렇다면 아버님은 지금 명나라에서 저희에게 시킨 것이 그때 그 사건의 주범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동창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16553263568089.jpg“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좋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허출을 밀어내고 지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니. 하지만 확인할 필요는 있지 않겠느냐.”

부족 내에서 있는 돈 없는 돈을 모아 알아낸 정보다. 한 부족을 이끄는 자로서 정보는 필수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답답하게 보인다고 해도 말이다.

16553263568089.jpg“모용세가. 그들이라면 죄인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을 테니. 만약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것대로 우리에게 좋은 것 아니겠느냐?”

동맹가첩목아가 강 너머로 보이는 조선의 국경을 보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1655326359648.jpg

  ***** 따앙-!!!

16553263596484.jpg“캬아! 죽인다!!!”

딸랑 딸랑! 감령이 자신에게 새로이 생긴 한 자루의 박도를 올려다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박도를 이리저리 돌릴 때마다 검병 끝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16553263596484.jpg“미꾸라지야. 어떠냐. 이 정도면 옥면산군 같으냐?”

감령이 옆에서 대부를 무명천으로 닦고 있는 필두를 보면서 기수식을 취해 보였다. 필두의 대부 역시도 새 것이란 티가 팍팍 나고 있었다.

16553263596492.jpg“산강아지 놈이 중원으로 간다니 잔뜩 신이 난 모양이로구나.”

16553263596484.jpg“크흐흐. 그래그래. 내가 기분이 좋으니 한 번 봐준다.”

16553263596492.jpg“봐주긴 무슨. 새로운 병장기가 생겼다면 손에 감이나 익혀야지.”

후웅!!! 텅! 필두가 대부의 날을 닦던 무명천을 내려놓고는 대부를 허공에 휘저어 보였다. 그러자 큰 바람이 일어나면서 감령의 코끝을 건드렸다. 감령이 투기가 끓어오르는 얼굴로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53263596545.jpg“이그, 저렇게 좋을까.”

감령과 필두가 끓어오르는 피를 참지 못하고 대련을 위해 사라지자 방매가 혀를 쯧쯧 하고 찼다. 하지만 그런 방매 옆에도 발간 얼굴로 들뜬 기색이 역력한 김향이 앉아 있었다. 그런 김향의 수중에도 그녀의 신체에 딱 들어맞는 검이 한 자루 쥐어져 있었다.

16553263596545.jpg“너도 그리 좋니?”

16553263623055.jpg“네, 언니. 좋아요!!!”

김향이 행복한 듯 검을 끌어안고는 환하게 웃었다. 노리개도 아니고 검을 받고 좋아하는 김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방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16553263596545.jpg“다들 신이 났네. 신이 났어.”

다들 새 무기를 손에 들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만우가 거둬들인 동생이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야장 간장이 모두에게 새 무구를 하나씩 선물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간장의 눈썰미가 이곳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눈대중으로 다들 한 번씩 본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딱 맞는 크기와 무게, 균형의 무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16553263623055.jpg“언니는요?”

16553263596545.jpg“나도 받긴 받았지.”

김향이 방매에게 묻자 방매가 씩 웃어 보였다. 방매의 손에 손바닥만 한 길이의 은장도가 들려 있었다.

16553263623055.jpg“은장도요?”

16553263596545.jpg“응. 비쌀 것 같지 않아? 명나라에 가면 부자들한테 팔아먹기 딱 좋게 생겼다고.”

방매는 자신이 사용할 것이 아니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생겼다는 데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16553263623055.jpg“선물을 팔게요?”

16553263596545.jpg“그럼! 누가 중히 써 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파는 건 죄가 아니라구. 그리고 내가 은장도를 쓸 일이나 있겠니?”

은장도는 양반가 여식들에게 노리개로 팔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위급상황에 쓰기 위해서 날붙이가 안에 들어 있다고는 하나 사실은 자결용이었기 때문이다. 방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에 온통 머릿속에는 은장도를 팔 궁리밖에 없었다.

16553263596545.jpg“명나라라니. 한 번 꼭 가보고 싶었다고. 여기서는 명나라에서 온 것이라고만 하면 모든 게 다 비싸게 팔리거든. 진짜 비싼가 한 번 보려고.”

방매는 기대가 된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16553263596545.jpg“가 있는 동안 할아범 부탁해.”

16553263623055.jpg“걱정하지 마세요.”

안국방의 조 씨 할아범은 방매의 사향을 훔쳐간 하오문도들 때문에 크게 놀라서는 앓아누웠다. 나이에 비해서는 건강한 축에 속했지만 그래도 한 번 큰일을 겪고 나니 기력이 쇠해진 것이다.

16553263623055.jpg“언니가 해다 준 탕약도 꼬박꼬박 드리고 할게요.”

이번 조천사로 명나라에 가는 사신단에 김향은 끼지 않았다. 김향이 조 씨 할아범을 돌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신 이번에는 일본의 보빙사단으로 갈 때와는 다르게 간장과 마익후가 합류했다. 본래 조천사로 명나라에 간다는 것은 대국의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배워온다는 의미도 있었기에 야장인 간장도 따라갈 수 있게 된 것이다.

16553263596545.jpg“그래. 향이 너만 믿을게. 부탁한다.”

방매는 향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때 대문이 발칵 하고 열리더니 만우가 휘적거리면서 걸어 들어왔다.

16553263651853.jpg“대장님!”

16553263651857.jpg“대장!”

문형일과 마익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만우를 맞이했다. 만우는 고개를 까닥여 인사해 주고는 향이를 쳐다봤다.

16553263651861.jpg“향아.”

16553263623055.jpg“네, 아저씨.”

참으로 애매한 관계인 둘이었다. 만우가 명으로 가지 않고 조선에서 머슴으로 계속해서 살았더라면 김향을 윗전으로 모셔야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명은 바뀌었다. 그 때문에 향이에게 아저씨라 불린 만우가 자신의 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16553263651861.jpg“무슨 일 생기면 얘네들한테 알려. 아마 알아서 도와줄 거야.”

16553263623055.jpg“어리 언니!!!”

향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우의 뒤를 따라 어리와 광문자가 걸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가 만우의 시선을 받고는 얼굴이 활짝 폈다.

16553263679843.jpg“향아.”

16553263623055.jpg“아저씨도 안녕하세요.”

관비로 살아가던 김향에게 어쨌거나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은 어리와 광문자였다. 물론 향이가 만우의 사람인 것을 알고는 손을 떼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향이는 어리와 광문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16553263651861.jpg“부탁 좀 하자?”

16553263679858.jpg“예, 대협.”

16553263679843.jpg“…….”

특히 광문자의 안색이 창백했다. 만우와 한바탕 한양을 배경으로 추격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 그들만의 추격전이었다. 만우가 자신과 은월루를 찾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광문자는 부리나케 도망을 갔다. 괜히 만우를 다시 만나서 복잡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만우를 은근슬쩍 이용해 먹은 적도 있었기 때문에 켕기는 게 많아서 얼굴을 봐서 좋을 것이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만우는 만우였다. 동방에서 온 살객 중 최고라 불렸던 광문자임에도 불구하고 만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16553263679843.jpg‘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이 이러했을까.’

만우에게는 광문자가 살수로서 익힌 모든 것이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광문자가 어디 있건 간에 만우는 무조건 단 한 번도 광문자를 놓치지 않았다. 칠종칠금. 그 옛날 제갈공명이 남만의 맹획을 비롯한 이민족을 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곱 번을 포획했다가 일곱 번을 놓아 주었다 했던가. 만우는 십종십금을 광문자에게 베풀었다.

16553263679843.jpg‘괴물. 괴물.’

그런데 그때,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동시에 광문자가 어리를 감싸 안으면서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이탈했다.

16553263679858.jpg“아저씨?”

16553263679843.jpg“아가씨. 움직이지 마십시오.”

어리의 눈이 커졌다. 광문자의 목소리에 깃든 긴장감을 알아챈 것이다. 광문자가 이 정도로 긴장한 것을 본 적이 별로 없었기에 어리는 만우를 쳐다봤다. 그런데 만우도 광문자가 쳐다보는 곳을 똑같이 쳐다보고 있었다. 단지, 광문자는 바짝 긴장한 반면 만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16553263651861.jpg“도적놈이 겁대가리도 없네?”

16553263679858.jpg‘도적?’

도적이라는 소리에 어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대문이 끼익 하고 열리더니 떡 벌어진 곰 같은 어깨에 표범 같은 허리를 가진 미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16553263708209.jpg

16553263596545.jpg“어!!!”

방매가 그 남자를 알아보고는 외쳤다.

16553263596545.jpg“배 주인이다!!!”

16553263679858.jpg‘배 주인?’

어리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저 남자는 어리도 처음 보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광문자가 그런 어리의 앞을 가렸다. 광문자에게서는 여지없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16553263679843.jpg“고수입니다.”

16553263679858.jpg“고수? 우리 은월루가 모르는 고수가 있었어?”

광문자의 말에 어리가 놀라서는 말했다. 하지만 광문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16553263708232.jpg“만우!!”

16553263651861.jpg“도둑놈이 여기까지 오면 어떻게 해?”

16553263708232.jpg“옥 낭자. 낭자는 어디로 간 거지?”

미남자는 바로 여포였다. 여포는 다짜고짜 만우 앞에 나타나서는 옥령이 어디로 간 것이냐며 물었다. 그런 여포의 감정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의 몸에서 기세가 일어났다.

16553263651861.jpg“어리.”

16553263679858.jpg“예, 대협.”

여포의 시선이 어리에게로 향했다. 어리 역시도 미모라면 중원에서 ‘화(花)’를 별호로 가진 그녀들에 비해 뒤지지 않지만 여포의 시선은 어리의 얼굴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한눈에 반해 버린 옥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63651861.jpg“말해 줘. 그놈들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어리는 만우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여포에게 그간 한양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여포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떡 벌렸다.

16553263708232.jpg“옥 낭자가 정말…….”

16553263651861.jpg“그래.”

만우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16553263651861.jpg“본주가 봐 온 옥령의 평소 성격이 아니었다면, 본주는 그녀를 죽였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옥령이 그리 폭주한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가 타고난 혈성이라는 저주 받은 운명과 그녀가 익힌 무공 때문이었다. 옥령이 익힌 무공은 그런 그녀의 운명을 거름으로 삼는 것이었으니까.

16553263651861.jpg“그러니 운 좋은 줄 알아라.”

여포는 만우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옥령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발끈하기는 했지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만우에게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16553263708232.jpg“그녀는 어디로 갔지?”

16553263651861.jpg“몰라. 군사 놈이 하나 있었는데, 전옥서에 불을 지르고 도주했다. 아마 각 고을에서 그들을 찾고 있을 테니 어딘가에서 붙잡혔을지도 모르지.”

만우는 관심 없다는 듯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