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 니가 아는 검주가 아냐 (3)2021.10.16.
“정의대와 현무대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미타불.”
천혜대사는 현무대로도 부족하다고 느낀 것인지 정의대까지 보내자며 말했다. 또한 천혜대사는 만약을 대비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연경에 주작단을 대기시키지요. 또한, 마교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모르니 백호단과 청룡단을 십만대산 인근에 파견하여 곤륜과 긴밀한 연합을 통해 상황에 대처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미타불.”
천혜대사는 무승인 동시에 학승(學僧)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갈명공도 천혜대사의 조치에 뭐라 조언을 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미리 사전에 준비를 하겠다는 천혜대사의 결정에 틀린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미타불.”
“한데 말입니다.”
그렇게 회의가 대충 마무리 되어 갈 때쯤, 걸걸한 목소리가 간부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팽 가주.”
하북팽가의 가주인 팽우가 포권을 취해 보이며 천혜대사와 제갈명공에게 물었다.
“검주가 천하제일인이라면, 당최 누가 그자를 포박하여 압송한다는 것이옵니까? 조선에서? 황상이 금의위나 동창을 보내는 것도 아닐지언데.”
“!!!!!!!!!”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던 이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것은 천혜대사와 제갈명공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칙서만 받고,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죄인인 검주를 조선에서 압송해 보내올 때, 혹시 모를 분란을 대비해 무림맹의 협조 요청을 한 것인데 대체 누가 검주를 압송한단 말인가? 천하제일인이 된 그를?
“…….”
“…….”
무림맹의 대전에 어색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
“노인네.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백달원은 팔다리가 묶여서는 짐짝처럼 수레에 실려 오고 있었다. 설운 몰래 도망치려 했던 백달원은 결국 설운에게 걸려 그를 보호하려던 보부상들과 칼잡이들이 처절하게 박살이 나고서야 항복을 외쳤다. 설운은 차마 노인인 그를 때릴 수 없었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포박만 해서는 한양으로 데려가기로 한 것이다.
“…….”
백달원은 초췌해진 얼굴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를 쳐다보는 백달원의 눈에는 공포감이 서려 있었다. 지난 며칠 동안 끌려오면서 이 무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설운이 아니라 만우란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툭, 툭.
“후우, 후우, 후우. 무, 무엇이든지 말하겠습니다.”
상왕의 목숨을 구원해 보부상 출신임에도 오도도반수라는 직책도 받고, 산과 옥도장까지 받아 부상청을 세웠다는 것은 이 무지막지한 놈 앞에서는 내세울 거리가 되지 못했다.
“좋아. 저기 임금 앞에 가서도 그리 말하면 되는 거야. 알았지?”
만우가 허헛 하면서 허허롭게 웃고서는 백달원의 머리를 툭툭 하고 쳤다. 그러게 며칠이 더 지나 한양의 도성문인 숭례문에 도착한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리만치 근처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그곳에 선 위사들의 표정이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음…… 저들은.”
만우가 쳐다보자 설운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안력을 돋웠다. 그리고는 익숙한 차림새의 사람을 발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림위인 듯합니다.”
“우림위면 금군(禁軍)?”
한양도성에 순찰을 도는 순라군들은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의 병졸들이다. 금군은 궁궐을 수호하기 위해 가려 뽑은 최정예군이다.
“우림위가 위사를 대신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고급 인력이 한양도성으로 들어가는 대문을 지키고 있다는 소리였다.
“명국의 사신이 온 듯합니다.”
“네.”
설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우림위들이 문을 지키는 위사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동원될 만큼 중요한 인물이 한양을 방문했을 때뿐이었다. 조선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국가는 명나라가 유일했다.
“명이라…….”
“한데 이상하군요. 분명 명국에서 보내온 친서가 불과 얼마 전에 도달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
만우는 턱을 손등으로 슬슬 쓸었다. 그런데 그때 방매가 손을 불쑥 뻗어서는 만우의 팔목을 덥석 붙잡았다.
“마, 만우야…….”
“뭐야. 왜 배배 꼬아?”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방매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식은 땀을 흘리면서 다리를 배배 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매는 허옇게 뜬 얼굴로 발을 동동 구르면서 힘겹게 만우에게 말했다.
“나…… 급해.”
“뭐가?”
우림위가 남문에 서 있다는 뜻은 지금 저 문으로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길을 돌아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발이 묶인 사람들이 가득해 백달원을 태운 수레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거…….”
“어…… 설마, 너?”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면서 다리를 배배 꼬고, 허리를 피지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식은땀을 흘린다? 만우는 방매의 손을 탁 하고 뿌리치고는 좁은 수레 안에서 움직여 가장자리에 올라섰다.
“으. 너, 똥 마렵지!”
“으으…….”
방매는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다. 설운이 그런 방매를 보면서 못 볼 것을 봤다는 얼굴로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명색이 임금의 여동생인 옹주 자가인데 똥 마렵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가 민망했기 때문이다.
“사, 살려 줘.”
방매가 끝내 만우에게 손을 뻗어 보이면서 끙끙거리는 소리를 냈다.
“하필이면 지금!!”
“빠, 빠…… 어허…….”
방매가 힘겹게 무언가를 참아 낸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만우는 혀를 한 번 쯧 하고 찼다. 그래도 여자앤데, 길거리에서 저러다 싸기라도 하면 어떻게 얼굴을 보겠다고 나오겠는가 말이다. 만우는 설운에게 말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요, 나리.”
“들어간다니. 어디를 말입니까?”
백달원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히 한양 안으로 들어간다는 소리지요.”
“우림위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데…….”
말을 하려던 설운은 멈칫했다. 상대가 그런 상식적인 수준으로 가늠할 수 없는 고수 중의 고수라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고작 그 실력을 방매의 볼일 급한 데 쓴다는 것이 모순적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설운의 걱정은 만우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군요.”
백달원이 눈을 찢어질 것처럼 최대한 크게 뜨고는 만우와 설운을 번갈아 쳐다봤다. 백달원은 어슴푸레하게 느끼는 정도였기 때문에, 정말 이 미쳐 보이는 짓을 하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고려 말 조선 건국 초기 시기의 격랑을 겪은 백달원이다. 그러면서 무수히 많은 칼잡이들과 무인들을 만나 봤고 강하다는 이들을 만나 보았지만 상상도 해 보지 못한 일이다. 능히 한 명이 백 인을 상대할 만한 실력을 가진 무사도 과연 우림위가 지키는 도성의 성벽을 넘을 수 있을까?
“야. 참아. 싸면 큰일 난다?”
“빠, 빨리…….”
방매가 손을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만우는 방매의 몸에 손가락 하나라도 댈 생각이 없었다. 그러다 참사라도 벌어지면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둥실!!! 막대한 내공과 초절정의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허공섭물을 손 대신 사용하는 데 쓴 만우가 스슥 하고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백달원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만우가 눈앞에서 사라졌는데도 어디로 갔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는 것에 기겁했다. 반면 설운은 가까스로 만우의 움직임을 놓치지는 않았다. 탁, 타닥!!!
수레 위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진 만우의 신형이 땅에 한 번도 착지하지 않고는 허공을 날아서 성벽에 튀어나온 부분을 장난처럼 툭툭 하고 몇 번 찼다. 하지만 만우의 몸은 마치 위에서 누군가 끈을 묶어 끌어당기는 것처럼 쑥쑥 하고 올라가더니, 두둥실 하고 허공에 떠 있는 방매와 함께 순식간에 성벽을 넘어 버렸다. 우림위는 만우와 방매가 자신의 머리 위를 뛰어넘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는 멀뚱하게 앞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허!”
설운의 입에서 기가 차다는 소리가 절로 새어나왔다. 하지만 애써 어깨를 폈다. 만우 앞에서 이런 자괴감을 느껴 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검주 만우는 아예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다. 천외천(天外天)인 것이다. 그러니 자신은 하늘 밖의 하늘이 아니라 일단 눈앞의 하늘부터 기어오르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닿겠지,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난 기재를 보면서 어깨가 작아질 필요가 없다.
“괴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다. 설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면서 고개를 돌려 백달원을 힐끗 쳐다봤다.
“백달원. 한 눈 팔지 말고 바닥만 보고 있어.”
“…….”
괜히 설운에게 한 소리를 들은 백달원이 눈을 슥 하고 돌려서는 수레 바닥을 쳐다봤다. 이럴 때 나섰다가는 반드시 피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노인의 현명한 대처였다. *****
“에이, 드러워.”
한달음에 우림위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성벽을 넘어 들어온 만우는 재빨리 근처 변소에 방매를 내려놓고는 후다닥 그자리를 피했다. 얼굴이 노랗게 된 방매가 정말 한계라는 듯 말할 새도 없이 바람을 일으키며 뛰어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찝찝하다고 사람을 허공섭물로 나른 만우는 얼어 있는 저자 분위기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거 살벌하기도 해라.”
만우의 기감에 도성 곳곳을 삼엄하게 돌아다니는 순라군들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엉? 저건 또 왜 저래.”
만우는 새카맣게 탄 전옥서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이상 없이 전옥서가 멀쩡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됐으면…….”
만우는 말끝을 흐렸다. 전옥서가 저렇게 화재로 인해 불타 버렸다는 것은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질렀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감히 한양에 있는 전옥서를 불태울 간 큰 놈은 누가 있을까?
“마교겠네.”
만우는 아예 단정을 지었다. 보지 않아도 뻔했다. 애초에 조선인들도 아니고, 무림의 자기 영역에서 황제처럼 살아온 마교 놈들에게 인내심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사치였다.
“에라. 잘 됐다. 이제 눈에 안 띄겠지.”
만우는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히 그놈들이 고집을 부려 한양까지 따라왔다가 이 사달이 일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놈들은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조선을 떠 주는 것이 조선의 평화를 위해 더 나은 일이었다.
“햐…… 그런데 진짜 뒷일 생각 안 하고 일 저지르는 놈들인데.”
만우는 전옥서가 새카맣게 탄 것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때, 저자의 한쪽이 시끌벅적해지더니 주변에 조심스럽게 바깥과 큰 길을 살피던 사람들이 꼬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집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무리들이 새카맣게 탄 전옥서 앞에 도착했다. 그것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자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명나라 냄새가 나는데.”
만우는 청력을 돋웠다. 귀찮은 일은 피하기 위해 거리를 조금 떨어뜨린 상태였다. 포도청의 대장이나 높은 직위로 보이는 무관과 함께 동행한 이들의 거만한 표정이 만우의 눈에 들어왔다.
“명나라 놈들이네.”
저 거만한 표정을 어찌 알아보지 못할까.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상국(上國)이라는 것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놈들이고, 그 때문에 자만하는 놈들이다.
“……이에 단순 방화가 아니라 이곳에 갇힌 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공조자가 있을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그 말은 누가 못 하오?”
만우는 거만하게 뒷짐을 진 명나라 사람을 보면서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느껴지는 내공이 꽤나 절륜했기 때문이다.
“화경의 고수를 딸려 보냈다고?”
한 명은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신단의 일원 같았고, 그런 그를 수행하는 무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무장의 화후가 무려 화경이었다.
“대인! 피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