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2. 큰아비 백달원(1)2021.09.11.
백달원은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임방에 나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보부상들을 들들 볶았다.
“이놈아!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 도착해!”
“게으름 피지 말라니까? 네가 너 때는 말이다…….”
“그걸 그렇게 매면 어떻게 해! 그렇게 갔다가는 금방 아작 난다고 발!”
그는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었지만, 그 어떤 보부상도 그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비록 양민이지만 양민의 신분으로 상왕을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쌓은 개국공신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상왕과 인연을 맺었던 것은 바로 구명(救命)의 은(恩)이었다. 상왕이 동북면의 만호로 있을 시절, 여진족에 의해 크게 상처를 입고 몸을 숨기고 있던 그를 자신의 지게에 담아 옮겨 위기에서 구해준 것이다. 이후 행상인, 그러니까 보부상들의 힘을 모아 조선 건국에 이바지를 했고, 그 대가로 상민(商民)을 우대하기 위해 상인 조직을 조직하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백달원이었다. 백달원은 상왕에게 그런 소망을 빌었고, 상왕은 그 소망에 따라 전국 주군(州郡)에 임방(任房)을 설치하고 보부상들의 침식, 질병 치료, 장례 등을 행하게 해 준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백달원은 그 이후로도 상왕이 즉위 후 안변 석왕사를 증축할 때 동료 보부상들 여든 명을 인솔하여 식량과 자재를 운반하고, 삼척에 있는 오백이나 되는 나한을 옮겨 와 그 공로로 개성 발가산에 임방을 설치하고 옥도장까지 하사 받았다. 백달원은 발가산에 보부상의 총본부인 부상청(負商廳)을 설치하고 오도도반수가 되어 보부상들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보부상들은 그를 큰아비라 불렀는데, 그 말처럼 백달원은 보부상들에게 잔소리를 아낌없이 퍼부어 댔다.
“예, 큰아비. 그리 하겠습니다요.”
“어허. 갑니다요, 가요.”
그 때문에 보부상들도 백달원에게는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백달원의 눈에 밉보였다가 두 번 다시 보부상으로 그 어디에도 발을 못 붙이게 되기란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덕분에 보부상들의 처지가 여간 나아진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니, 보부상들은 그를 스스로 큰아비라 부르면서 공경했다. 하지만 그런 백달원에게도 큰 맹점이 있었다. 바로 그가 재물을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보부상도 행상인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백달원의 재물에 대한 집착은 다른 행상인들보다도 더욱 심했다. 그 때문에 백달원이 지금 부상청의 오도도반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그거 버리지 마! 잘 아껴 뒀다가 긁어모아서 개밥으로라도 쓸 테니.”
“어허! 그게 뭐가 다 헤졌다고. 다시 기우면 입을 수 있겠구먼. 이리 주시게!”
백달원은 아주 작은 것부터 극성스럽다고 할 정도로 아끼는 것도 모자라서, 오도도반수가 된 다음에는 아예 돈을 벌 수 있는 것들을 직접 관리하는 쪽으로 눈을 돌렸다. 백달원이 관심을 가진 것 중에 대표적인 하나가 바로 인삼(人蔘)이었다. 특히 경상도의 풍기와 더불어 개성은 인삼의 품질이 좋기로도 조선을 넘어 명과 왜까지 소문이 난 곳이었다. 이곳에서 난 인삼은 사사로이 거래가 금지된 품목 중 하나였다. 조선에서 조공을 보낼 때 명나라에서 개성삼을 선호하였기 때문인데, 백달원은 그 개성삼을 은밀히 거래하면서 큰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보빙사 여의손의 대금은?”
“그 때문에 한성에서 난리가 난 듯합니다.”
백달원은 얼마 전 왜에 보빙사로 파견된 여의손에게 개성삼을 넘겼다. 여의손에게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의 인삼을 내주었다. 왜에서 성공적으로 삼을 판매하면 남겨 오는 이문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판 이문에서 대금을 결제하기로 하고 개성삼을 내어 주었는데, 그게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뭐? 그게 사실이야?”
“예, 큰아비. 그 때문에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백달원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물건을 가져가 놓고 대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 대금은 받아야지. 그걸 우리보고 어쩌라고. 이미 사 가 놓고서는.”
백달원은 수하들을 다그쳤다. 여의손에게 찾아가 무조건 대금을 받아오라며 성화를 부린 것이다. 거래가 실패한 것은 여의손의 사정이지, 부상청의 사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백달원이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었다.
“집문서나 땅문서 다 쓸어 와. 무조건.”
“예, 큰아비.”
아직 상왕이 살아 있었기 때문에 상왕의 생명의 은인인 백달원과 부상청의 위세는 드높았다. 보부상들이 모두 양민들이라고는 하나 여의손이 개성삼을 빌린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양반인 여의손에게 염왕채를 받듯 그리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개성에서는 부상청이라고 하면 관아에서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했기 때문에 백달원은 콧바람을 흥 하고 내뱉었다.
“감히 이 백달원이의 물건을 가져가 놓고 모르쇠로 구시겠다?”
백달원은 수십 년을 고단한 보부상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노구에서는 독기와 오기가 철철 흘러넘쳤다.
“그렇게는 안 돼지. 내 섭해서.”
백달원이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그렇게 백달원이 이를 갈고 있는데 아래서 갑자기 수하 중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서는 백달원 앞에 허리를 꾸벅 숙이고서는 숨을 헐떡였다.
“크, 큰아비. 허억, 허억.”
“또 무슨 일인데 난리랴?”
여의손의 일만으로도 이미 짜증이 난 상태인지라 백달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곱지 않았다. 한참을 헉헉대던 수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백달원에게 말했다.
“큰일이 났시오. 왜 그 동래 임방에서 난리가 났는디…….”
“동래? 저기 경상도에 있는 그 동래 말이냐?”
“예, 큰아비.”
백달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동래의 임방이라면 왜와의 무역이 있어 보부상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기는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어날 문제라니.
“거기서 한성으로 뇌물을 나르다가 감찰방에 딱 걸렸다 안하요.”
“감, 감찰방?”
백달원의 눈이 커졌다. 감찰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개성의 관아라고는 하나 감찰방은 사헌부 산하의 기관이었다. 지방의 관아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관아인 셈이다. 거기에 뇌물까지 연루되었다면 곤란해진다. 보부상들은 백달원이 상왕에게 입힌 은혜 때문에 많은 특혜를 받고 있었는데 자칫하면 그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임금이 그토록 피도 눈물도 없다는 소문이 자자했기 때문에 백달원은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 그래서 어쨌는데?”
“그것이 다요 큰아비. 그 이후로 그 감찰이 어찌 되었는지는 들은 적이 없소.”
“이런! 그걸 알아 와야지!!!!!”
하지만 감찰방이라면 관리를 감시하는 일이 주 업무인 이들이다. 그렇기에 감찰방의 업무는 주로 한성 내에서 이뤄졌다. 아니면 사신단에 포함이 되거나.
“잠깐. 여의손이와 문제를 일으킨 것도 감찰이라고 하지 않았어?”
여의손이 일으킨 문제 때문에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던 백달원이다. 그러면서 백달원은 여의손과 문제를 일으킨 것이 감찰이라고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맞습니다, 큰아비!”
“그런데, 동래 임방에서 감찰에게 걸렸다고?”
“그렇…… 아!”
수하가 눈을 크게 떴다. 백달원은 염소수염처럼 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어여 한양에 사람을 보내 혹여 개성으로 양반나리들이 오는 게 있는지 확인해 봐들. 이거 자칫하면 우리가 옴팡 뒤집어 쓰겄는데?”
백달원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
“그래서 금덕봉이라고?”
“응. 어때?”
반짝이는 눈을 한 방매가 만우의 옆에 붙어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눈이었지만 만우는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냥 그런데?”
“아니 왜!”
방매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체 뭐라고 설명을 한단 말인가. 그냥 그래서 그냥 그렇다고 대답한 것뿐인데 말이다.
“얼마나 가슴 시린 이야기인데!”
“원래 개성에 살던 대신의 아들이 평민 처녀와 금단의 사랑을 꿈꿨는데, 그걸 떨어뜨려 놓아서 서로 보려고 왔다갔다 했다는 거?”
“맞아!!!!”
“결국 도망가서 잘 살았다면서.”
만우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방매는 자신이 기껏 입 아프게 설명했는데 만우의 반응이 고작 그게 전부이자 볼을 부풀렸다.
“개성에서 너무 멀어서 밤중에 출발해서 보러 와도, 도착하면 날이 밝아 와서 얼굴만 보고 가야 했다잖아! 그래서 발가산이라니까?”
“아니! 결국 도망쳐서 잘 살아서 금덕봉이라 불린다면서!”
금덕(琴德)이란 말은 예로부터 부부간의 정이 두텁다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발가산을 금덕봉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 이야기 속의 남녀가 결국 사랑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마나 불쌍해. 얼굴을 보고 싶어서 왔는데 날이 밝아서 바로 돌아가야 한다니…….”
“에이. 옛날이야기잖아.”
만우는 손을 훼훼 내저었다. 그러자 방매가 만우를 보고는 심통이 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경공이면 그 정도 거리는 반 시진이면 갈 수 있는…….”
“그래! 너 잘났다! 에라이!!!”
뻐억!
방매가 팔꿈치로 만우의 옆구리를 내리찍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펄쩍 뛴 것은 방매였다. 만우의 몸은 그 정도로는 이제 오히려 충격을 튕겨 낼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방매가 그리 나올 줄을 알고 미리 대비한 만우이기도 했고.
“기습은 통하지 않아.”
만우는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방매는 팔꿈치를 붙잡고는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데구르르 하고 옆으로 굴렀다.
“감정도 없는 놈. 메마른 놈! 어떻게 이 연가(戀歌)를 듣고도 그렇게…….”
“에흠. 인생이 팍팍해서 그런단다, 아해야.”
“네 이놈, 역졸아! 이 옹주 앞에서 어찌 그리 무례하게 구느냐!”
“아이고, 예 알겠습니다, 옹주마마.”
설운은 말고삐를 잡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뒤에서 신나게 떠들어 대며 만담을 하고 있는 방매와 만우 때문이었다. 무려 주상전하의 어명을 받은 몸이 되어 처음에는 사명감으로 가득 찼던 설운이지만, 닷새째 이어진 지루한 여정으로 인해 느슨해진 상태였다. 그 동안 수레에 탄 만우와 방매가 쉴 새 없이 티격태격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피로하기도 했다.
‘어명을 받은 건 난데.’
그런데 한 사람은 옹주고 한 사람은 임금과 맞먹는 위치에 있는 무인이다. 같은 무인으로서 만우에 대한 경외감으로 가득 찬 설운이지만, 그래도 무언가 억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방매야 상왕전하께서 수양딸로 삼았다니 설운이 감히 억울해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말이다.
“설운 나리.”
“대협. 나리라니…… 그런 부담스런 호칭은…….”
그때 만우가 뒤에서 설운을 불렀다. 그런데 어울리지 않게 나리라 불렀기 때문에 설운이 부담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만우는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럴 수는 없지요. 제가 이래봬도 무식하지만 위아래는 잘 지키는 성격이라. 선후(先後)를 지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 선후…….”
그런 사람이 임금 앞에서 국왕이라 부르면서 군단 말인가? 설운은 아까 먹었던 주먹밥이 가슴팍에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어명까지 받으신 분인데, 당연히 제가 나리라 불러야지요, 나리.”
어명을 내린 사람에게는 맞먹으면서, 그 어명을 받은 사람은 나리라 부른다? 앞뒤가 맞지 않았지만 어디 만우에게 그런 것이 한두 가지겠는가. 설운이 난처해하자 방매가 말했다.
“만우가 이런 게 한두 번인가요.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그러면서 난처해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변태니까.”
“벼, 변태?”
“그래! 변태! 그래도 좌익찬 나리가 우리 향이랑 호선 언니도 신경 써 줬는데!!!!”
옥령을 상대하느라 큰 상처를 입은 호선이다. 거기에 김향도 함께 대동할 수가 없어 걱정을 했던 방매인데, 설운이 김향과 호선을 챙긴 것이다. 설미수. 만우가 판한성부사인 설미수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김향과 호선을 설미수에게 부탁해 놓은 것이다. 거기에 설운은 방매와 김향이 그 사건에 휘말렸던 근본적인 이유였던 조 씨 할아범을 찾아주었다. 한양 뒷골목 왈패들에게서 사향을 지키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기절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왈패들이 다른 곳에서 감령, 필두와 시비에 휘말리면서 버려졌고. 거기에 설운은 방매의 사향이 어디로 사라졌는지에 대한 수사도 계방 좌익찬의 이름으로 포도청에 부탁을 해 놓았다. 그러니 방매에게 설운은 감사할 사람이었지, 만우가 막 대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그런데…… 아니. 난 머슴이잖아. 그러니까 말 높여야지. 설운 나리한테.”
만우가 볼을 긁적였다. 솔직히 설운이 해 준 것이 많기는 했기 때문이다. 김향과 호선을 챙겨 준 것은 만우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긴 했다.
“아니! 나니까 설미수 대감이 맡아 준 거지! 나 아니었으면…….”
“에라…….”
방매가 혀를 쯧 하고 차고는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자 만우가 움찔했다. 그리고는 이내 몸을 휙 하고 돌렸다. 삐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