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 조천사(朝天使)(2)2021.08.28.
하지만 만우는 그런 옥령을 차갑게 비웃었다.
“거짓이고 위선이다. 자신은 다치기 싫으니 하는 거짓이다. 그 정도로 자신이 저지르는 살겁이 싫고 저주스러웠다면.”
만우는 옥령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백영에게도 했다.
“제 팔다리를 잘랐어야 한다. 아니 제 스스로 진작에 목숨을 끊었다면 괜한 사람들이 죽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겠지.”
“어찌 그리 쉽게…….”
“옥령, 그 계집의 목숨이 그 계집이 죽인 수십, 수백보다 더 귀하다고 할 셈이냐?”
만우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백영의 어깨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모든 목숨은 동등하다. 누구 목숨은 중하고 누구 목숨은 가볍다고 생각한다면…….”
만우는 가만히 앉아 있었지만 백영은 만우의 주변으로 예리한 검이 날아다니는 것 같은 환상을 봤다.
“내가 그년의 목숨을 끊어 주도록 하지. 내게는 그 계집의 목숨이 길거리 거지보다도 하찮거든.”
수많은 무고한 양민의 피를 손에 묻힌 여자다. 그런 옥령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만우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약간의 손속을 뒀을 뿐.
“아니, 내가 죽이지 않아도 목이 떨어질지도 모르겠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만우는 피식 웃었다. 백영은 떨리는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옥령, 그 계집이 임금의 호위무사를 공격해 중상을 입혔다. 거기에 임금의 군사를 죽였지. 명에서는 그리 하면 어찌 되지?”
“…….”
백영과 위문, 웅풍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만우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금의 호위무사를 공격해 중상을 입히고, 군사까지 죽였다? 잘 봐줘야 반역이다. 옥령이 조선인이 아니라 명나라 사람이란 것을 고려해도 말이다.
“어디 볼까?”
만우는 비릿하게 웃었다.
“과연 임금이 그 계집을 살릴 수 있을지?”
*****
“방매, 방매, 방매!!!!”
그 무렵 방매는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전옥서에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다. 옥령에게서 직접적으로 쫓기던 것이 방매였으니, 피해자라고 해서 그냥 무사히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옥서에 방매와 그리 인연이 좋지 않는 사람들이 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여긴 도망갈 곳도 없어.”
우드득!!
“하아. 진짜 여기서 이래야만 해?”
“네년의 그 콧대를 납작 눌러두지 않으면, 내가 뭘 먹어도 소화를 못 시키거든.”
한양제일매분구로 많은 단골을 가진 방매에게 밀려 싸구려 화장품을 명에서 들여온 화장품으로 속여 팔다가 그게 방매에 의해 들통나 잡혀온 매분구 패거리들과 하필이면 같은 옥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매분구들 사이에 얼마나 많은 단골과 거래처를 확보해 놓느냐 싸움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었다. 문제는 사고는 자신들이 쳐 놓고 방매에게 칼을 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찰나에 방매가 떡하니 나타났으니, 매분구 패거리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것도 당연했다. 개중에 가장 덩치가 커 큰언니로 불리는 여자가 팔을 걷어붙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팔뚝이 방매 허벅지만큼 굵었다.
“잡아!!!!!”
“네, 언니!!!!”
매분구들이 방매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옥사는 열 명이 나란히 눕기도 힘들 정도로 좁았다. 하지만 방매는 그냥 쪽수에 밀려 기가 죽을 성격이 절대 아니었다.
“누구든 먼저 오면, 내가 걔는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릴 거야!”
옥령과의 추격전으로 잔뜩 지친 방매였지만 독기를 드러냈다. 누구든 한 명은 길동무로 삼겠다는 기세였기 때문에 패거리들이 움찔했다. 하지만 뒤에서 다그치는 큰언니의 존재가 문제였다.
“뭐 하는 거야! 방매 고 년 하나잖아! 어서 잡아! 다 달려들어!!!!”
“네, 언니!!!!”
방매가 앞에서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려도 뒤에서 버티고 있는 멧돼지가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움찔거렸던 패거리들이 방매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이익!!!”
방매가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패거리의 가슴을 발로 밀어 찼다. 그 때문에 패거리 중 하나가 벌러덩 뒤로 넘어갔지만 옥사가 너무 좁았다. 방매의 위로 패거리들이 몸을 날려 우르르 깔고 뭉갠 것이다.
“이익!!!”
여자들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손톱이 사방에 난무했다. 방매의 몸 여기저기가 손톱에 긁혀 피가 나고, 머리가 금세 산발이 됐다. 하지만 여러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공격을 당하면서도 방매의 눈에 실린 독기는 줄어들지 않았다.
“저리 꺼져!!!”
방매가 발등을 주먹으로 내리찍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맨 뒤에서 명령을 내리는 큰언니에게 달려들었다. 방매는 덩치가 훨씬 큰 큰언니를 타고 오르면서 두 눈에서 불꽃을 토해 냈다. 밟으면 밟을수록 생생해지는 잡초처럼, 방매는 절대로 꺾인 눈빛이 아니었다. 큰언니는 자신을 타고 오르는 방매를 보면서 방매를 떼어 내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머리채를 잡고 휘둘러도 방매는 큰언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기를 쓰고 큰언니를 타고 오른 방매가 입을 크게 벌려 큰언니의 귀를 꽈악 하고 깨물었다.
“아아아아악!!!”
그러자 큰언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런 방매를 떼어 내기 위해 매분구 패거리들이 몰려들어 후려패고 잡아끌었지만 방매는 이를 악물고 놓지 않았다.
“이거 놔!!! 아아악!”
큰언니가 손을 뻗어 방매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리고는 있는 힘껏 당겼지만 방매는 독종이었다. 방매는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것을 이 매분구 패거리들이 방매를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잠시 망각한 것이다.
“아아아악!!!!!”
큰언니가 파들거리며 비명을 내질렀다. 방매에게 물린 귀에서 뜨끈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옥서의 옥사 내에서 난리가 나자 관리하는 나장(羅將) 하나가 달려왔다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고는 기함하면서 허리춤에서 열쇠를 빼들었다.
“이, 이 미친 X들!”
나장은 육각봉을 한 손으로 빼들고는 문을 열고 옥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방매를 두들겨 패고 뜯어내려고 애를 쓰던 매분구들이 쫘악 하고 뒤로 물러섰다. 멈추지 않는 것은 방매뿐이었다.
“야! 놔! 그거 안 놔?”
방매의 얼굴이 피로 흥건했다. 매분구들이 할퀴어서 난 피와 큰언니의 귀에서 난 피가 뒤섞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장은 흉신악살처럼 보이는 방매를 보면서 말을 더듬었다. 방매의 흉악한 모습에 기가 질린 것이다.
“아악!!! 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아악!”
큰언니가 비명을 내질렀다. 방매가 나장이 말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장이 이를 악물고는 육각봉을 치켜들었다. 전옥서에 갇힌 이들은 모두 죄인들이다. 거기에 옥사 안에서 난동을 부린다면 나장들은 얼마든지 폭력을 사용해 그 소동을 진압할 의무가 있었다. 방매를 떼어 놓기 위해 나장이 육각봉을 내리쳤다. 퍽, 퍽!!!! 박달나무로 만들어진 육각봉에 맞으면 뼛속까지 아려온다. 박달나무 자체가 굉장히 단단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만들어진 육각봉도 거의 철로 만들어진 것만큼 단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매는 그러면서도 큰언니의 귀를 놓지 않았다. 뼛속까지 고통이 느껴질 텐데도 독기로 눈이 이글거리는 것이다. 그런 방매를 본 다른 매분구 패거리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패거리의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간단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던 것이다.
“놓으라고!!!!”
퍽, 퍽, 퍽!!! 나장이 육각봉을 휘둘러 방매를 후려쳤다. 방매는 이를 악물고 오히려 더 이를 질겅거렸다. 그러자 큰언니의 비명이 더 커졌다. 맞는 사람은 비명을 지르지 않고, 물어뜯기는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판국이었다.
“이, 이 미친X!!!”
나장이 헉헉댔다. 그리고 나장이 육각봉을 다시 치켜들었다. 방매는 곁눈질로 그것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머리에만 육각봉이 안 떨어지면 된다. 나장에게 몇 대 맞는 것보다 여기에서 이 패거리들의 기를 확실하게 꺾어 놓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게 방매가 혼자 움직이는 매분구로 한양제일이란 소리를 들었던 오기와 독기였다. 덥석!!! 그런데 그때 나장의 손목을 누군가가 뒤에서 덥석 붙잡았다.
“웨, 웬 놈이야?”
나장은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덥석 붙잡자 뒤를 쳐다봤다. 그런데 다른 나장이나 서리도 아니고, 웬 갓을 쓴 양반이 떡하니 서 있었다.
“뉘시오? 여기는 전옥서요! 어서 썩 나가시오!!!”
나장은 손목을 비틀어 빼내면서 그 사람에게 말했다. 하지만 손목이 빠지지 않았다. 꽈악!!!
“아, 아아아아!!!”
오히려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자 나장은 손목이 부러져 나가는 통증을 느끼고는 비명을 내질렀다. 갓을 쓴 남자가 서늘한 목소리로 나장에게 말했다.
“네놈이 미친 모양이로구나. 감히 이분이 뉘신 줄 알고.”
“아…… 아아아아…….”
나장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조금만 더 남자가 힘을 줬다가는 손목이 부러져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장이 손에 든 육각봉을 떨어뜨리자 따가당 하는 소리가 났다. 근데 그게 하필이면 방매의 눈앞이었다. 이미 눈이 뒤집힌 방매는 손을 뻗어 그 육각봉을 쥐었다. 그리고는 그 육각봉으로 큰언니의 머리통을 후려치기 위해 손을 치켜들었다.
“내가 방매야!!!!!”
이 구역의 미친년은 방매였다. 그런데 방매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휘익!!! 휘두르는 방매의 손에 들려 있던 육각봉이 어디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방매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육각봉을 채 간 남자를 쳐다봤다.
“귀하신 분께서 손을 직접 더럽히실 필요는 없사옵니다.”
갓을 쓴 남자가 방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장은 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방매는 큰언니의 피로 흥건한 얼굴을 손등으로 닦아 내고 무릎을 꿇은 남자를 보면서 눈이 커졌다.
“설마…….”
“오랜만입니다. 옹주마마.”
갓을 쓴 남자, 계방의 설운이 방매를 보면서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런 설운의 뒤로 허겁지겁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전옥서의 최고 관리인 종6품 주부(主簿)가 뛰어나왔다.
“어, 어서 오십시오 좌익찬 나리.”
계방의 좌익찬이면 세자익위사의 바로 아래다. 무관이기는 해도 다음 대 권력을 가장 가까이서 모시는 실세인 것이다.
“주상전하의 명으로 모시러 나왔나이다.”
“주상전하?”
매분구 패거리들이 눈을 크게 떴다. 방매 앞에 양반으로 보이는 이가 무릎을 꿇은 것도 모자라 임금이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그녀들은 방매가 ‘옹주’라고 불렸다는 것에 기함을 토해 냈다.
“그, 그 옹주마마? 그, 왜 얼마 전에 도성에서…….”
매분구들이 숨을 죽이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자신들이 누구를 잘못 건드린 것인지 그제야 눈치챈 것이다.
“요, 용서해 주시와요! 모, 목숨만은…….”
“잘못했습니다, 옹주마마.”
“죽을죄를 지었습니다요!!!”
매분구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는 방매에게 빌었다. 방매는 땅을 짚고 일어나 자신 앞에 무릎을 꿇은 매분구 패거리들을 보면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죄인들이옵니다. 옹주마마께서 원하신다면…….”
설운은 뒷말을 흐렸다. 숨은 의미를 눈치챈 매분구 패거리들이 몸을 파르르 떨었다. 무려 왕족이다. 왕족의 몸에 양민 주제에 손을 댔다. 손을 댄 것도 모자라 때리기까지 했으니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는 중죄 중의 중죄다.
“언제부터 내가 방매였다고. 됐어요. 몇 대 맞았다고 그런 복수를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방매는 기절한 큰언니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녀의 이빨이 붉게 번들거렸다.
“오…… 옹주 마마아…….”
주부는 피투성이가 된 방매를 보고는 무릎으로 옥사 밖에서 기어 들어왔다. 방매는 그런 주부는 무시하고는 설운에게 말했다.
“복수는 했어요. 이 정도면.”
몇 대 맞은 대신 매분구 패거리들의 기를 완전히 꺾어 놓았다. 이 정도면 성공이다. 자신이 옹주라는 것을 매분구 패거리들이 알게 되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저들의 말을 누가 믿어 줄 것도 아니고, 앞으로는 방매를 저잣거리에서 본다면 알아서 설설 길 것이다. 그 정도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