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 살려야 되는 이유를 말해 봐(3)2021.08.17.
콰자작!!!!
“꺄아아아악!!”
옥령은 인간으로서의 이성은 모두 다 잃어버린 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만을 계속해서 터뜨렸다. 하지만 옥령은 만우에게서 바로 한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만우에게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압력이 옥령의 몸을 그 자리에 묶어 놓은 것이다.
“꿇어.”
콰직!! 쿵!!
“꺄아악!”
만우는 버티는 옥령을 보면서 손가락을 까닥했다. 만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불만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그런 만우의 손가락질에 옥령의 무릎이 굽혀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옥령의 다리뼈가 부러지며 무릎이 땅에 처박힌 것이다.
“건방지게.”
만우는 서늘한 눈을 한 채 옥령을 내려다보았다. 반면 그런 옥령의 위기를 본 주창의 마련검에서 일어난 마기가 한순간 강해지더니 척사영의 검과 도를 찍어 눌렀다.
“크읏!!”
내공의 수발에 있어서 주창이 척사영보다 앞서 있었기 때문에 척사영의 무릎이 꺾였다. 거대한 힘으로 찍어 누르는 주창의 힘에 순간적으로 밀린 것이다.
“미안하오 척 소저!”
“소저가 아니라…….”
파직!!! 척사영의 눈이 커졌다. 한계에 달한 척사영의 검과 도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이다. 반면 마련검은 천마신교의 신물로 불린 명검 중에 명검이다. 그런 마련검에 맞서 만우에 의해 길이도 척사영에게 딱 맞게 잘렸던 도검이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쩌억!!! 마련검이 이글거리며 척사영의 도검을 파고들었다. 척사영도 검기와 도기를 일으켜 도검을 교차시켜 마련검을 막아냈지만, 점차 도검을 밀어냈다. 도검에 균열이 생기면서 마련검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를 원망하시오!!!”
주창은 척사영을 벨 생각으로 손에 힘을 줬다. 그리고 마련검이 척사영의 도검을 잘라 내려는 순간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갈(喝)!!!!!”
후웅!!!! 주창은 노호성과 함께 강렬한 기운이 느껴지자 기겁하면서 마련검을 틀었다. 그런 마련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앙-!!!! 주르르르륵!!!
“커헉!”
주창은 속이 진탕되는 것을 느끼며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주창은 거의 이십 보를 물러나고 나서야 중심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을 다잡은 주창의 눈에 호호백발을 한 노인이 탐스러운 하얀 수염을 부르르 떨며 악귀와도 같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하, 할아버님!!!”
“할아버님?”
주창은 입가를 손등으로 훔쳤다. 갑작스런 노인의 공세에 제대로 기운을 끌어올리지 못해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이다. 속이 아려 왔지만 주창은 내색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옥령을 쳐다봤다.
“꺄아아아악!!”
옥령은 만우 앞에서 거대한 손에 짓눌린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비명만 내지르고 있었다. 주창은 마음에 급해져서는 호호백발의 노인, 척일을 향해 마련검을 들어올렸다.
“고얀 놈!!!!! 감히 이 아이가 누구라고 그 흉한 것을 들이미느냐!!!”
하지만 척일은 호락호락한 실력의 고수가 아니었다. 혈세천마보다 약간 뒤쳐질 정도의 고수인 것이다. 콰광! 쾅!!! 척일은 검사였다. 그런 척일의 검이 조선의 산과 강을 담아내며 휘둘러지자 주창은 금세 수세에 몰려, 막기에 급급해하며 뒤로 물러섰다. 중간중간 천마검이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긴 했지만, 척일의 검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산과 강을 그려 댔기 때문에 천마검으로도 척일의 검을 완전히 떨쳐 낼 수 없었다. 척!!!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창은 마련검을 내렸다. 척일의 검이 어느새 주창의 목에 드리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졌소.”
“에라이, 이것밖에 안 되는 놈이!”
퍼억!!! 척일은 검을 내리면서 졌다고 하는 주창의 얼굴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오른 듯 주먹으로 주창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 무슨!!! 패자에게도 자존…… 억!!!”
“자존심은 개뿔. 감히, 감히 귀한 우리 사영이의 얼굴에!!!!”
퍼버버벅!
“할아버님. 할아버님!!!!”
주창이 반항을 하려 했지만 그의 시도는 소심한 반항에 그치고 말았다. 권법도 수준급이었던 척일이 압도적으로 주창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척사영이 다급히 척일을 말렸지만 이미 주창은 떡이 되고 난 다음이었다.
“언니. 언니 괜찮아요? 어떻게 해. 이 피 좀 봐.”
방매는 김향이 자신을 부축하는 것을 보고는 김향에게 물었다.
“어, 어떻게 된 일이야?”
주창은 기절했고 옥령은 만우의 기운에 눌려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호선은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척사영은 씩씩거리는 척일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향은 방매를 살리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니다가 만우와 척일을 만났다. 그리고는 변고가 생겼음을 알리자마자 만우가 김향을 안고는 김향이 안내하는 방향에 순식간에 도착한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어려울 것이 없었다. 끔찍한 살기를 쫓아오니 그곳에 방매부터 시작해 모두가 있었으니까.
“다행이다. 다행이…….”
만우에 이어 김향까지 보자 긴장이 탁 하고 풀린 방매가 쓰러지듯 김향의 품에 안겼다. 김향이 놀라 소리를 지르자 만우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그런 만우의 눈에 완전히 탈진해 쓰러진 방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이…….”
만우의 눈에 확 하고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만우의 기세에 눌려서도 발버둥을 치던 옥령의 몸이 딱 하고 굳었다. 고오오오-!!!!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만우가 진심으로 내뿜는 살기였다. 만우를 쳐다보는 옥령, 아니 혈성의 눈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혈성이 이렇게까지 발작할 수 있는 데에는 상대가 옥령을 죽일 리 없다는 데에서 나오는 것도 있었다. 옥령이 죽는 것은 혈성도 원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옥령과 혈성은 일종의 숙주와 기생충 관계이기 때문에 숙주가 죽어 버리고 혈성이 다른 몸을 찾지 못하면 결국 멀고 먼 미래를 기약해야 한다. 그런 옥령을 마교에서는 죽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혈성은 원하는 만큼 흉성을 터뜨린 다음 다시 잠들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혈성인지 뭔지도 모를, 버러지 같은 놈이.”
옥령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하고 떠올랐다. 옥령의 몸은 거미줄에 딱 하고 걸린 벌레처럼 굳어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옥령의 눈이 이리저리 양 옆으로 굴렀다. 눈앞의 상대는 옥령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대란 것을 그제야 눈치챈 것이다.
“감히, 감히 내 사람을!!!!!”
쩌저저적!!!!
만우를 중심으로 땅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만우의 기세가 주변을 광포하게 휩쓸면서 땅을 주저앉히려 한 것이다. 척일은 그런 만우를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저, 저게 인간이냐?”
“은공입니다 할아버님.”
“아니. 그건 나도 안다. 헌데 저런 기운이 어찌 사람의 몸에…….”
척일은 만우의 진면목을 마주하고서는 입을 떡 벌렸다. 평생을 들여 수련한 자신의 무공이 마치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수십 년을 쏟아부은 자신에 비해 저 젊은 청년의 무공은 척일로서도 닿지 않는 저 어디 높은 곳에 닿아 있었다. 그야말로 꿈의 경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거대한 산 너머의 일면이 만우에게서 느껴지고 있었다. 척일은 수십 년 동안 넘지 못한 그 산 너머의 위용이 말이다.
“거, 검주 대협!!!!!”
그때 척일에 의해 떡이 됐던 주창이 땅에 엎어진 채 만우를 간절한 눈으로 보면서 소리쳤다.
“제발, 제발 그 아이의 목숨만은!!!!! 목숨만은!!!!!!”
만우가 고개를 돌려 주창을 쳐다봤다. 척일에 의해 하도 얻어터져 얼굴이 푸르뎅뎅하게 변한 주창이 간절한 눈으로 만우를 쳐다보고 있었다. 만우는 그런 주창의 간절한 눈을 보고는 칫 하고는 혀를 찼다. 만우도 알고 있었다. 이건 옥령의 문제가 아니라 옥령의 몸에 잠들어 있는 저 혈성이란 놈의 문제란 것을. 문제는 저것이 옥령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이었다. 스윽 만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옥령을 쳐다봤다. 정확히는 옥령의 이성을 뿌리치고 수면 위로 떠오른 혈성을 쳐다봤다. 둥실! 쓰러져 있던 주창의 몸이 둥실 하고 떠올랐다. 절정에 달한 허공섭물이었다. 그렇게 주창은 만우의 앞으로 끌려왔다. 철푸덕 만우가 공력을 풀자 주창이 철퍼덕하고 쓰러졌다. 만우는 옥령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주창에게 말했다.
“내가 살려 두어야 하는 이유. 딱 한 가지만 대 보라!!!”
“그…….”
“혈성을 잠재우려면 몇 명의 목숨이 필요했지?”
“……정확히는.”
“그들이 살려 달라고 하면, 살려 주었나?”
주창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십만대산에 살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산적이나 수적 같은 놈들로 대체하려고 하였으나 대중없이 혈성이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교에서는 오히려 옥령의 혈성을 더 좋아했다. 혈성의 공포가 신교의 강력한 고수에게는 더욱 잘 어울린다며, 혈성 하나만을 보고 옥령을 투귀대에 집어넣은 것이다. 옥령의 본성은 절대로 투귀대나 마교의 강자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옥령은 혈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신교의 강력한 전투 집단에 들어가야만 했다.
“령이도, 령이도 가지고 싶어서 그것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대협.”
주창은 옥령을 살리기 위해 애써 그녀를 변호했다. 하지만 옥령이 주창의 수하이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옥령이 저지른 죄가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그러니까.”
만우는 차가운 눈으로 옥령을 쳐다봤다. 혈성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움찔거렸다. 만우의 눈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거악(巨嶽)을 본 것이다. 혈성으로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항거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 압도적인 벽. 혈성의 혈기가 발작하는 것도 상대를 보고 발작한다. 옥령이, 숙주가 죽어서는 안 되니까. 혈성은 피를 갈구하는 운명일 뿐이지, 혈성을 가지고 태어난 이를 요절로 내모는 운명은 아니다.
“살려 둬야 하는 한 가지의 이유조차도 없다는 것이군. 네 수하고 네 지인이지, 내 수하는 아니니까.”
“꺄아아앗!!”
옥령의 입에서 비명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 하지만 옥령은 금세 입만 뻐끔거릴 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만우가 지풍을 날려 옥령의 아혈을 누른 것이다.
“만일 혈성이란 것이 타고난 운명이라, 이를 떼어 내어 옥령이란 아이와 분리시킬 방법이 없다면.”
만우의 몸에서 일어나는 살기가 짙어졌다. 주창이 다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로 만우가 옥령을 죽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본주가 죽일 것이다. 그리고.”
푸화아악! 전신에서 강기가 휘몰아치며 만우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거꾸로 나부끼기 시작했다. 방매만 다친 것이 아니다. 호선까지도 다쳤다. 거기에 주창이란 놈은 옥령을 지키겠다고 척사영에게 무기를 들이밀었다. 이 마교 종자들을 당장 때려죽이고, 중원으로 넘어가 십만대산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내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모를까, 내 것을 건드렸다면 마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 테니까. 그것이 인생의 대부분을 중원에서 유람하면서 만우가 깨달은 인생의 진리이며 법칙이다.
“그대에게도 본주가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라 생각지 마라. 마교의 소교주여.”
만우의 손끝에서 강기가 쭉 하고 솟아올랐다. 동시에 만우가 그 강기를 들어 옥령을 겨누었다.
“혈성? 운명? 개소리하지 마라. 인간이 넘지 못할 운명 따위는 없다.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 따위는.”
그렇다면 자신은 머슴으로 살다가 머슴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천을 익히고, 그것으로 무림십좌에 오른 이 모든 것이 운명이고, 이미 정해져 있던 것이다? 개소리다. 만우의 인생은,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인생은 모두 스스로가 개척한 것이다. 감령과 필두가 녹림과 장강을 포기하고 만우에게 왔듯, 김향이 끈덕지게 몸종으로라도 살아남았듯, 방매가 매분구가 되어 돈을 모아 꿈을 위해 달려가듯. 전부 자신 스스로가 결정을 내리고 선택을 한 것이다. 원하지도 않은 혈성을 가지고 태어나 저렇게밖에 될 수 없는 운명이다?
“원하지 않았다면 손과 발을 자르든지, 싸울 방법을 찾아내든지.”
그래서 다른 사람을 죽이고 목숨을 빼앗았다? 아니. 모두 변명이다.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다면 옥령은 스스로 팔다리의 힘줄을 자르든가, 무공이 아니라 그 혈성과 싸울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무슨 수를 찾아서라도 익혔어야 했다.
“어쩌겠느냐. 본주에게 이대로 죽겠느냐?”
옥령의 몸을 끌어당겨 멱살을 손에 틀어쥔 만우가 강기가 일렁이는 손을 옥령의 턱에 가져다 대고는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만우의 그 으르렁거림이 옥령에게까지 닿았다. 부르르르!!!! 옥령이 눈을 까뒤집었다. 눈에서 일렁이던 붉은 혈기가 깜박거리더니 옥령의 입을 빌린 혈성이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찌…… 어찌…… 어찌 날 거부하려는 것이냐!!!! 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는 옥령의 몸에서 붉은 혈기가 스멀거리며 빠져나왔다. 그렇게 옥령의 몸에서 피어오른 혈기가 만우를 덮쳤지만, 만우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자신에게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는, 그냥 연기 같은 혈기일 뿐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르르르-!!! 그리고 혈기가 모두 빠져나온 뒤, 옥령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떠는 옥령의 수혈을 만우가 지풍을 튕겨 짚었다. 추욱 축 늘어지는 옥령의 몸을 한 손으로 받아낸 만우가 고개를 돌려 주창을 쳐다봤다. 주창은 그런 만우에게 이마를 쿵 하고 땅바닥에 찧어 고마움을 표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
만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갑옷을 입은 갑사들이 우르르 뛰쳐나와 만우와 모든 고수들의 주변을 둘러쌓았다. 끼이이익-!!! 그리고 지붕 위로 모습을 드러낸 궁수들 수십이 만우와 다른 이들을 포위한 채로 활시위를 당겼다. 그대로 시위를 놓는다면 수십 발의 화살이 떨어져 포위망 안에 있는 이들을 벌집으로 만들 것이다.
“죄인들은 오라를 받으라!!!!!”
도성을 순찰하고 지키는 의금부(義禁府)의 등장에 만우가 쯧 하고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