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3. 살려야 되는 이유를 말해 봐(1) (273/400)

273. 살려야 되는 이유를 말해 봐(1)2021.08.10.

16553257635937.jpg“정지.”

권희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한양에 입성했다는 곡산척가의 태상가주 척일을 맞이하기 위해 별시위를 이끌고 나오던 그였다. 하지만 그 괴팍하기로 소문난 척일이 미리 알리지 않고 한양에 왔다는 것은 자신의 움직임을 알리지 않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허탕을 치고 환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16553257635937.jpg“전원 산개.”

권희달은 저쪽에서부터 빠르게 가까워져 오는 끔찍한 살기를 느끼고는 별시위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16553257635937.jpg“거리를 유지하고 활로 엄호한다.”

주변에 양민들이 즐비했지만 그들까지 신경 써 줄 겨를이 없었다. 권희달이 검을 잡은 이래 이 정도로 끔찍한 살기는 마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5763595.jpg“운검님. 주변에 양민들이…….”

별시위들 중 하나가 나서서 권희달에게 말했다. 하지만 권희달은 그런 별시위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끔찍한 살기가 그를 덮쳐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권희달은 내공을 끌어올려 그 살기에 대항하고서는 말했다.

16553257635937.jpg“물러서! 철저히 거리를 유지해라! 전원 산개!!!!”

촹!!!!! 권희달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말이 높게 앞발을 치켜들었다. 권희달은 그런 말의 허리춤을 허벅지로 꽉 조였다.

16553257635937.jpg‘너도 느꼈구나.’

짐승은 사람보다 훨씬 더 예민한 감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아직 별시위들도 느끼지 못하는 살기를 말이 느낀 것이다.

16553257635937.jpg‘버텨 주거라.’

또한 짐승은 웬만한 사람보다 강건하다. 거기에 운검이 탄 말은 전마(戰馬)이기에 살기에도 돌발행동을 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음에도 살기에 놀라 앞발을 치켜든 것이다. 권희달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16553257635937.jpg‘강자.’

한양에 이 정도의 강자가 있던가?

16553257635937.jpg‘검주, 그리고 그 자의 수하들을 제외하고는.’

권희달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와 동시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골목길에서 작은 인형이 툭 하고 구르듯이 굴러 나왔다. 그 인형이 움직이는 길을 따라 핏방울이 점점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니 닥쳐오는 끔찍한 살기로부터 죽자 살자 도망치는 이처럼 보였다.

16553257635937.jpg“주변의 양민들은 즉시 이곳에서 벗어나라! 어서!!!”

권희달은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크게 외쳤다. 안 그래도 권희달이 검을 뽑아 들고 활과 검을 든 별시위들이 지붕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본 순간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끼던 이들이 개미떼처럼 흩어졌다.

16553257635937.jpg“이럇!”

동시에 권희달은 말의 배를 박찼다. 마상(馬上)에 올라탄 자와 맞서 싸우는 것은 제 아무리 무예에 능통한 고수라고 해도 일단 한 수 접어 두고 수세로 부딪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 때문에 권희달은 마상이라는 이점을 이용하기 위해 말을 몰아 필사적으로 달려오는 이를 향해 달려 나갔다.

16553257635937.jpg‘저 여인은?’

권희달의 말은 겁에 질렸지만 잘 훈련을 받았기 때문인지 기수의 의지에 따라 달려 나갔다. 권희달은 스쳐 지나가는 방매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16553257635937.jpg“옹주마마! 이랴!!!!”

방매는 상왕이 새로 들인 의붓딸이다. 옹주인 것이다. 권희달은 쫓기는 사람이 옹주란 것을 확인하고는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

16553257635937.jpg‘온다!’

가까워져 오는 살기를 느끼며 권희달이 검에 공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검사(劍絲)가 피어오르며 권희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16553257635937.jpg‘벤다!!!’

신라검의 세법(洗法)에 따라 권희달의 검이 곡선을 그렸다. 세법이란 신라검에 수록된 네 가지의 베기다. 서걱-! 끔찍한 살기를 품은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시점에 맞춰 휘두른 검에 피륙이 잘려 나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16553257635937.jpg‘베었다!’

무언가를 베었다는 것에 권희달이 속으로 쾌재를 외친 순간, 권희달의 목을 향해 손가락을 독수리의 발톱처럼 세운 손이 휘둘러져 왔다. 분명히 피륙을 베었기 때문에 반격을 예상하지 못한 권희달의 얼굴에 낭패가 서렸다. 스윽! 파아악!

16553257635937.jpg“크악!”

간신히 고개를 꺾어 먹이를 노리는 손톱을 피해 낸 권희달이다. 하지만 그 손은 목표물을 놓쳤다는 것에 실망하지 않고 투로를 꺾어 권희달의 가슴팍을 헤집어 놓았다. 푸확!!! 권희달의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쳤다. 맹수가 할퀸 것처럼 흉하게 속살이 벌어져 있는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강제로 손톱으로 파낸 것 같은 위중한 상처가 가슴팍에 아로새겨진 것이다.

16553257635937.jpg“크윽!!”

권희달이 말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한순간의 방심이 권희달을 전투불능의 상태로 만든 것이다. 하필이면 당한 곳이 인간의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위 중 하나인 흉부였기 때문에 권희달은 이를 악물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정신은 또렷하지만 그냥 가슴팍을 헤집은 것이 아니라 공력이 실린 손이었기 때문에 그 여파가 내부까지 순간적으로 진탕시킨 것이다. 뚝, 뚝.

16553257635937.jpg“넌 무엇이냐!”

권희달은 다가오는 옥령을 보면서 소리쳤다. 분명 무언가를 벤 권희달의 검이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옥령의 가슴을 가로지르는 검흔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하지만 옥령은 마치 상처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시뻘건 혈기가 가득한 눈을 한 채 권희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16553257666297.jpg

16553257635937.jpg“크으으…….”

덜덜덜 다가오는 옥령에게 그냥 목을 내어 줄 생각이 없는 권희달이었기에 몸에 힘을 주어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권희달의 의지에 따르지 않았다.

16553257635937.jpg“지지 않는다!”

한 번 부딪혀 본 결과 상대는 권희달과 동수를 이룰 만한 강자였다. 혈성이 골수에까지 뻗친 옥령의 실력은 초절정을 뛰어넘은 것이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알았다면 권희달도 방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1655325763595.jpg“흐으…….”

옥령의 입에서 막혔던 숨이 빠져나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옥령은 자신의 가슴팍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 내서는 멍하니 쳐다봤다.

1655325763595.jpg“꺄하하하하핫!!!”

자신이 상처 입었다는 것을 자각한 옥령의 살기가 한층 더 강해졌다. 그리고는 상처를 입힌 권희달을 노려봤다. 검은자가 사라지고 흰자가 모두 붉은 색으로 물든 사람의 눈은 훨씬 더 소름끼치는 모습이었다. 권희달은 그 살기를 느끼면서 이를 악물었다.

16553257635937.jpg“크으으…….”

설상가상으로 헤집어 놓은 가슴팍에서 피가 솟구치면서 손끝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어디까지 상처가 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위중한 모양이었다. 스윽 옥령이 손가락 끝을 다시 세웠다. 옥령의 장기는 손가락을 세운 저 조법(爪法)이었다. 조법으로 초절정까지 오른 옥령은 철판도 손으로 잡아 찢을 수 있었다.

16553257635937.jpg“이, 이익!”

옥령의 살기가 극에 달했다. 반드시 권희달을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옥령을 향해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파바바박!!! 타다닥! 옥령이 손을 휘두르자 날아들던 화살들이 꺾인 채 땅에 툭툭 하고 떨어졌다. 권희달이 위기에 처하자 별시위들이 화살을 쏘아 보낸 것이다. 하지만 화살들 중 옥령에게 닿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별시위들이 아연실색하는 것을 본 옥령은 다시 고개를 돌려 권희달을 쳐다봤다. 권희달을 먼저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권희달은 이를 악물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적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16553257635937.jpg“지지 않는다. 지지…… 쿨럭!”

권희달의 입에서 역류한 피가 울컥하고 쏟아져 나왔다. 옥령은 그런 권희달을 보면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죽음의 꽃(死花)이 웃었다. 휘익!!! 권희달의 머리를 노리고 옥령의 손이 구부러져서는 휘둘러졌다. 권희달은 날아오는 손을 보면서 눈을 감지 않고 오히려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 손이 권희달의 머리통을 부숴 놓으려는 순간.

16553257696374.jpg[크허어어어엉!!!!]

파마(破魔)의 힘을 담은 창룡후가 터져 나왔다. 선기를 담은 정순한 포효에 옥령이 움찔했다. 휘익! 크르르르. 옥령이 고개를 돌려 옆의 지붕 위를 쳐다봤다. 권희달의 눈이 커졌다. 그 지붕 위에 그 집보다도 더 큰 백호가 떡하니 앉은 채 노란 눈으로 옥령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57696374.jpg[악업을 더 쌓겠다면 말리진 않겠으나.]

혈성에 물든 인간이 악업을 더 쌓는다면, 저 혈성을 취하고 호선의 선주로 만들 때 더욱더 효과가 좋기는 했다. 오염이 심하게 된 것일수록 정화를 했을 때 더욱 깨끗해지는 법이기 때문이었다.

16553257696374.jpg[영물 앞에서 무고한 인간을 죽이겠다는 것 역시 봐 줄 수는 없는 노릇일터.]

크허헝!!!! 호선은 고개를 치켜들고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호선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에 미처 구하지 못하고 헛되이 죽임을 당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16553257696374.jpg[망종을 그만 두거라. 악인(惡人)아.]

거의 한 달이 넘도록 매일 같이 봐 왔던 아리따운 옥령의 얼굴이지만 호선은 거침없이 그녀를 악인이라 칭했다. 혈성을 타고난 것이 그녀가 원해서 타고난 운명이 아니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악인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자신이 원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면서 괴로워하면서도 살아왔을 옥령이다. 그녀의 손에 의해 죽은 원통한 혼령들이 있음에도. 그러니 그녀는 악인이다. 크허어어엉!! 쉬익!!!! 호선의 신형이 번쩍하고 사라졌다. 하얀 털을 가진 호선은 움직일 때마다 마치 백뢰(白雷)가 치는 듯했다. 쿠과가가각!!!!! 옥령이 간발의 차이로 호선을 피했다. 하지만 호선의 빗나간 공격이 만든 흔적은 대단했다. 밭고랑으로 땅을 갈아도 저렇게는 갈리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단단한 바닥이 완전히 파헤쳐진 것이다.

16553257696374.jpg[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호선은 그렇게 옥령을 물러나게 한 다음 번쩍하고 사라져서는 권희달의 옆에 나타났다. 갑작스레 백호가 나타나자 권희달이 놀라 움찔했지만, 호선은 그런 권희달에게 선기를 쏟아부었다.

16553257635937.jpg“크으으으…….”

16553257696374.jpg[참아요. 죽는 것 보단 나으니까.]

호선은 그렇게 선기를 쏟아부어 권희달의 상처가 더 이상 덧나지 않게 해 놓은 다음, 옥령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진을 쳤다. 혹시라도 호선과 옥령이 충돌하면서 생겨나는 여파에 권희달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655325763595.jpg“크르르!!!”

옥령은 그런 호선을 보면서 이를 드러냈다. 만만치 않은, 상극의 기운을 가진 것이 호선이란 것을 이성이 없는 상태에서도 어렴풋이 느낀 것이다. 호선은 마치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옥령을 보면서 묵직하게 걸음을 옮겼다.

16553257696374.jpg[이렇게 긁어야지 목을.]

크르르르!!! 울림통이 아예 다른 소리가 뻗어 나갔다. 거기에 이번에는 옥령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맹수의 살기까지 실려 있었다. 쉭!!! 호선과 옥령의 신형이 동시에 사라졌다. 쿠과가가가가!!!! 카강! 캉! 카가가가각!!!! 파앗!!! 주르르륵!!! 커다란 폭음과 요란스럽게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호선과 옥령의 신형이 다시 나타났다. 옥령은 뒤로 발을 끌며 밀려나는 자세였다.

16553257696374.jpg[조(爪)를 쓰는 방법이 제법이구나. 휘두를 발톱을 가지고 태어나지도 않은 인간이.]

호선은 자신과 대등하게 발톱(爪)을 휘둘러 부딪쳐 온 옥령을 보면서 감탄하듯 말했다. 연약하고 부드럽기 짝이 없는 인간의 손이 자신의 발톱과 부딪쳐도 멀쩡하다니. 스으으윽

1655325763595.jpg“흐우. 흐우.”

옥령이 밀린 것도 체중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밀린 것이다. 그런데 호선은 인상을 찌푸렸다. 옥령의 몸에서 붉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더니 주변을 질식시킬 것만 같은 끔찍한 살기가 한층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16553257696374.jpg[더? 폭주를 한다고?]

16553257724579.jpg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