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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혈성(1) (269/400)

269. 혈성(1)2021.07.27.

16553256572545.jpg“고마워요 언니.”

1655325657255.jpg“넌 많이 먹고 쑥쑥 자라야 하니까 언제든지 말해. 알았지?”

16553256572545.jpg“네.”

김향이 생긋하고 웃자 방매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 그런 김향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오는 길에 김향이 잔칫집에 나온 약과를 보고는 눈을 제대로 떼지 못하자 흔쾌히 값을 지불하고 약과를 사 준 방매다. 재물을 지독히도 아끼는 방매지만 어린 김향이 배고파하는 것을 그냥 못 본 척 할 정도는 아니었다.

16553256572545.jpg“사향은 잘 말랐겠지요?”

1655325657255.jpg“그렇겠지.”

방매는 사향만 생각하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듯 뿌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함주에서 우연히 만난 사냥꾼들이 아니었다면 그 사향들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1655325657255.jpg‘사향을 판 돈이면 의주에 객주를 차려도 돈이 남겠어. 돈이 남으면 그걸로 엄마와 아부지를 찾을 사람을 보내고…….’

사향 중 가장 좋은 것들만 조 씨 할아범에게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사향들 중 자잘한 것들은 조 씨 할아범이 잘 말려서 알아서 팔았을 것이다. 안국방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조 씨는 근처에서 신망이 두터웠기 때문에 손해 보고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16553256572545.jpg“할아버지도 약과 좋아하시겠지요?”

1655325657255.jpg“그럼. 좋아하지. 그 할아범 단 건 다 좋아해. 내가 겨울에 귀한 곶감을 얻어 왔더니 그걸 홀랑 먹고 씨를 입 옆에 붙여 놓고는 자기가 안 먹었다고 우기는데…….”

김향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러면서 손을 꼭 붙잡고 걸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친자매처럼 보였다.

1655325657255.jpg“할아범! 할아범! 우리 왔어!!!”

방매가 싸리문 밖에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닫힌 싸리문을 열었다. 그 먼 왜까지 다녀오는 동안에도 약방은 여전했다. 약방과 의원을 함께 운영했기에 달인 약 냄새와 말린 약초 냄새가 가득했다.

1655325657255.jpg“할아범! 자?”

방매는 마당에서 약방 쪽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매가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5657255.jpg“노인네가 외출을 했나?”

16553256572545.jpg“안 계시는 거예요?”

1655325657255.jpg“아니. 이 시간에는 원래 있었어야 하는데?”

방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호들갑을 떨면서 방매를 불렀다.

16553256603275.jpg“아이고, 방매야. 방매야! 큰일이 났다!!!”

방매가 호들갑에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옆집의 개떡 아주머니였다. 방매가 개떡 아주머니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5657255.jpg“아줌마. 할아범 어디 갔어요? 어디 왕진이라도 간 거예요?”

16553256603275.jpg“왕진은 무슨! 아까 전에 왈패 놈들이 몰려와서 할아범을 끌고 갔지 뭐야!!!! 왈패 놈들이 받아야 할 물건을 할아범이 가로챘다고 얼마나 난리를 피웠는데!”

개떡 아줌마는 바로 옆집에 사는 여인으로 가끔 약방에 손이 부족하면 와서 도와주곤 해서 방매랑도 잘 아는 사이였다.

1655325657255.jpg“왈패들이요?”

16553256603275.jpg“약방을 얼마나 뒤졌는데!”

1655325657255.jpg“약방…… 설마!”

방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벌떡 일어난 방매가 약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개떡 아줌마가 말한 것처럼 방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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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껏 말려 놓은 약초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개중에는 짓밟힌 것들도 보이는 것을 보니 이 안을 뒤진 왈패 놈들 때문인 모양이었다.

1655325657255.jpg“아니야. 말도 안 돼. 왈패 놈들이 어떻게 알고 그걸…….”

방매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약방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방 안에서 걸어 나온 방매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16553256572545.jpg“어, 언니. 괜찮아요?”

놀란 김향이 얼른 달려와 방매를 부축했다. 방매는 넋이 나간 눈으로 김향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5657255.jpg“아니, 안 괜찮아. 안 괜찮아…….”

16553256572545.jpg“왜요? 무슨 일인데요?”

1655325657255.jpg“사향이…… 사향이…….”

16553256572545.jpg“사향이요?”

1655325657255.jpg“전부 사라졌어. 그 왈패 놈들, 사향을 가져간 거라고!”

방매의 말에 김향의 눈이 커졌다. 김향은 방매에게 다급히 되물었다.

16553256572545.jpg“그럼 조 씨 할아범을 데려간 놈들을 쫓아가면 사향이 있겠네요?”

김향의 말에 방매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사향이 모두 털렸다는 것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빼앗긴 것이니 다시 되찾아오면 되는 일이다. 그토록 간단한 일이거늘, 방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1655325657255.jpg“그, 그래. 그러면 돼! 어서 찾자! 조 씨 할아범을 찾으면 돼! 그리고 그놈들을 전부 밟아 버리면…….”

16553256572545.jpg“다른 아저씨들한테 말이라도 하는 게…….”

1655325657255.jpg“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러다가 다 팔아 버리면 어떻게 해! 가자! 왈패들 따위 아무 것도 아니야! 향이 너도 있잖아!!!!”

16553256572545.jpg“어, 언니이이!”

왈패 대여섯쯤은 방매도 거뜬했다. 김향은 왈패 스무 명이 몰려와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방매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안국방의 조 씨 할아범. 바로 그 조 씨 할아범이 방매에게 수박희를 가르친 장본인이라는 것을 말이다.

1655325657255.jpg“가자!”

방매가 콧바람을 씩씩 내뿜으며 싸리문을 박차며 튀어나왔다. *****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등청하기 위해 나온 동군영이 흠칫하고 놀랐다.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누군가 집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5666072.jpg“뉘시오?”

16553256660725.jpg“동 장령, 맞군.”

평범한 무복을 입은 권희달이 팔짱을 낀 채 동군영을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군영은 권희달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1655325666072.jpg“우, 운검 아니시오?”

16553256660725.jpg“맞소. 어서 가십시다. 주상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시오.”

1655325666072.jpg“아, 안 그래도 입궐하여 주상전하께…….”

16553256660725.jpg“그럴 상황이 아니오.”

권희달은 동군영의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그에게 말했다.

16553256660725.jpg“그대의 처벌을 제창하는 이들의 상소가 근정전으로 매일 같이 쏟아지고 있소이다. 그 때문에 주상전하께서 염려가 크시니, 은밀히 들어와야 하오. 그대가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매일 같이 상소문을 올리는 자들에게 그대가 입궐하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거늘.”

1655325666072.jpg“…….”

동군영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

16553256603275.jpg“…….”

옥령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새로운 옷을 해 입기 위해 한양의 저자로 나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한양의 저자에는 옥령이 마음에 드는 옷감도 있었다. 그런데 옥령은 옷을 해 입을 수가 없었다.

16553256603275.jpg“조선말을 못하네. 내가.”

옥령은 조선말을 할 수 없었다. 아니, 그래도 간단한 몇 마디는 가능했다. 하지만 옷을 만들어 달라거나, 그런 복잡한 대화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옥령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16553256603275.jpg“어쩌지?”

옥령은 고수다. 그렇기 때문에 생리 현상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고 내공을 잘 사용하면 이 옷을 조금 더 입어도 되기는 했다. 하지만 고수이기 이전에 여인인 옥령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냄새 나는 옷을 계속해서 입고 다녀야 된다는 것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16553256603275.jpg“돌아가서 도움을…….”

만우의 집으로 돌아가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아야 한다. 척사영은 한어를 할 줄 알았기 때문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무공에 미친 척사영과 자신의 주군 사이에 별로 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16553256603275.jpg“그럼…….”

문형일과 감령, 필두가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들끼리 유치하게 술내기를 한다고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다면 결국 남은 사람은 하나다.

16553256603275.jpg“호랑이.”

매번 자신을 먹잇감 보듯 쳐다보던 그 영물이 떠올랐다. 아니, 반선이라고 했던가? 힘의 원천을 잃어 약해진 수준이 초절정 수준인 호선이 떠올랐다.

16553256603275.jpg“그래야겠다. 아무래도…….”

이 찝찝함을 참느니 차라리 목숨이 노려지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거기에 영물이라고 해도 초절정 수준이면 자신과 동수를 이루는 셈이니 차라리 그게 나았다. 무공광(狂)인 주창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은 옥령도 지극히 무림인스러운 사고방식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16553256603275.jpg“이크!”

16553256603275.jpg“왈패 놈들이다!”

16553256603275.jpg“숨어! 숨어!”

16553256603275.jpg“눈에 띄어봤자 좋을 게 없다고.”

그런데 그때 저자가 소란스러워졌다. 사방에서 조선말이 어지러이 쏟아졌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옥령은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부산스럽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양민들이 누군가를 피해 도망가는 것만큼은 표정과 분위기를 보면 확실했기 때문이다.

16553256603275.jpg“파락호도 못 되는 놈들이군.”

옥령은 사람들을 도망가게 만든 왈패들, 하오문도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것을 느끼면서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이 거리의 왕인 것처럼 거들먹거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옥령의 예리한 눈썰미는 찰나의 순간에 놈들에게 특이점이 있음을 관찰해 냈다.

16553256603275.jpg“싸웠다?”

거들먹거리면서 걸어오는 놈들 중에는 얼굴이 엉망인 놈들도 있었다. 시퍼렇게 멍이 들거나 코피가 난 놈들도 있었다. 게다가 개중에는 쩔뚝거리는 놈도 있는 것이 어디서 대판 싸우고 듯했다.

16553256603275.jpg“파락호가 싸우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고는 하나.”

옥령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16553256603275.jpg“사람이 들어 있구나.”

놈들 중 두 명이 함께 들쳐 맨 커다란 자루가 꿈틀거렸다. 사냥꾼이 아니니 그 안에 사냥감이 들어 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다.

16553256603275.jpg“이런 백주대낮에 사람을 자루에 넣어 납치한다?”

옥령은 기가 차는 것을 느꼈다. 조선은 무림이 없었지만 어떤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치안에 있어 취약한 면이 있었다. 중원에는 무림방파가 있는 곳이면 그곳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문파들과 관아가 나눠서 책임진다. 물론 그 문파라는 것이 꼭 정파만이 아니어서 사파나 흑도방파의 구역 안에 있게 되면 양민들이 더 고통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에는 오히려 더 안전했다. 그 지역을 담당하는 문파들은 일종의 보호세를 받게 되는데 그 구역이 안전할수록 상인이나 유랑객들의 소비가 촉진되기 때문에 나중에 걷을 돈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관에서 모든 것을 책임지기 때문에 관의 힘이 막강했지만 이렇게 백주대낮에 납치 사건이 버젓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음에도 포졸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치안의 공백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양이 이러할지언대 지방의 경우에는 더할 것이다.

16553256603275.jpg“파락호가 아니라 하오문이구나.”

옥령은 그들이 파락호가 아니라 하오문도라는 것에 놀란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중원에서 하오문은 뒷골목을 전전하는 쥐새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집합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대로 대로를 활보하지 않았다. 잘못해서 무림인을 만났다가 그냥 죽을 위험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 하오문도들이 마치 왕처럼 거리를 활보했다.

16553256603275.jpg‘무림이 없어서 그런 것이야. 무림이…… 쯧쯧.’

대부분의 마교 고수들은 하오문도들을 파리 잡듯 보이는 족족 쳐 잡는다. 하지만 옥령은 아니었다. 그녀는 혈성을 타고 났으나 본래 그녀의 성격 자체는 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천생 조신한 규수들에게나 어울릴법한 것이 그녀의 천성이다.

16553256603275.jpg“……사향?”

거기에 하오문도 몇이 어깨에 둘러맨 작은 주머니에서는 사향 냄새가 났다. 옥령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에서는 마교라고 손가락질 받는 그녀이나, 십만대산 인근의 백성들에게는 선녀라 불리는 것이 바로 옥령이다. 무도하게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마인들을 잡아들이고 백성들을 늘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고운 심성을 가진 옥령이었기 때문이다.

16553256603275.jpg“무슨 연유로 사람을 납치하였는지를 알아보고.”

하지만 이곳은 조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함부로 나서지 않았다. 중원사람인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이곳만의 규율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납치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연유를 알아본 다음에 움직여도 늦지 않다. 상대는 기껏해야 하오문이니까. 스르륵 그녀의 기척이 사람들 틈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

16553256745431.jpg“할애비?”

16553256603275.jpg“그렇네. 홀홀홀.”

겉으로 보기에는 나뭇가지 하나 꺾을 힘이 없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노인의 몸속에 꿈틀거리는 막대한 기운을 느끼고는 재밌다는 듯 눈을 반짝거렸다.

16553256745431.jpg‘혈세천마보다 한 수 뒤쳐지는 정도.’

단순 공력으로만 보자면 노인 역시 화경의 극에 달한 고수였다. 만우가 느끼기에는 혈세천마보다 한 수 뒤쳐지는 정도. 즉, 무림에 나가면 무림십좌의 이왕쯤은 되는 실력의 노인이었다.

16553256745431.jpg“손녀도 화경이더니, 할애비도 화경이라. 무슨 세가가 그래?”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 만우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마익후의 눈이 크게 뜨였다.

16553256603275.jpg“색목인에 믿을 수 없는 노안을 가진 어린놈이라. 신기하구나, 신기해. 그래서 그 아이가 따라다녔던 것인가?”

16553256745431.jpg“그런데 이름이 뭐야?”

16553256603275.jpg“아. 척일이라고 하네. 척일.”

16553256745431.jpg“척일?”

16553256603275.jpg“그렇네. 모자라나마 태상가주 역할을 하고 있지. 못난 아들 놈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척일은 끌끌거리며 웃었다. 만우는 웃는 표정인 척일의 얼굴 너머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호승심에 피식 웃었다.

16553256745431.jpg“왜. 손발이 근질거려? 쉬지도 못한다고 했잖아?”

16553256603275.jpg“함주에 있는 상왕전하를 제외하고는 겨룰 수 있는 무인을 찾지 못한 지 오래지. 그대가 만우인가?”

16553256745431.jpg“아는 모양이네?”

16553256603275.jpg“함주에 들렸었네.”

함주면 상왕의 함주본궁이 있는 곳이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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