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 소문 나르는 보부상(4)2021.07.24.
“아니, 장돌뱅이놈들이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그 사향 납품해야 하는데 그게 없으면 어쩌자는 거야?”
“저, 저도…….”
한양의 큰 기방들을 운영하는 것은 백이면 백 전부 양반가의 서자들인 경우가 많았다. 양반가의 서자라고 해도 집안에서나 무시를 당하지, 평민들에게는 양반이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기방을 운영하는 양반가의 서자라면 그 위세가 양반 못지않았다.
“난리 났네 이거.”
그런 기방에 들어가는 사향이나 장신구 등을 중간에서 중개하는 것도 하오문의 업무 중 하나였다. 장돌뱅이들, 보부상들과 계약을 맺어 전국적인 유통망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방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한양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하오문은 그 중간에서 꽤나 짭짤하게 수수료를 받아먹었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 두 번씩 구멍이 나면 가장 먼저 곤란해지는 것은 하오문이다. 신뢰가 깎이는 것이다.
“누가 샀다는데?”
“그곳의 사냥꾼들이 웬 여자애한테 팔았답니다.”
“여자애? 미친놈들. 그걸 여자애한테 팔았다고?”
“돈을 잔뜩 얹어 줬다고…….”
“이런…….”
삼복은 이를 뿌득 하고 갈았다. 머릿속으로 몇몇 상단이 떠올랐지만 어린 여자애가 행수로 있는 상단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짐을 정리하고 있던 하오문도 중 하나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사향을 본 적이 있는데.”
“사향? 어디서?”
삼복은 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당장 사향을 납품해야 할 곳이 한양의 기방 중에서도 가장 큰 기방 중 하나였다. 가장 큰 고객이자 가장 큰 수수료를 뜯어먹을 수 있는 기방이었기에 삼복은 그 큰손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기. 안국방에 약재를 다루는 의원(醫院) 하나가 있는뎁쇼. 거기서 사향을 대량으로 내놓고 말리더라고요.”
“의원?”
삼복이 고개를 갸웃했다. 사향이 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가격 때문에 대량으로 구비해 놓는 의원은 없었다. 거기에 안국방이면 북촌 근처이기는 해도 바로 육의전 근처라 평민들이 사는 곳이었다. 평민들은 사향으로 쓰이는 약재를 살 능력이 되지 못했다.
“가서 가져와 그거.”
“가져오라고 하시면…….”
“후려쳐. 1/10 가격에. 못 하겠다고 하면 알잖아? 우리 잘 하는 거.”
“그, 그래도 의원인데…….”
의원을 함부로 막 대하는 것은 하오문도들도 꺼려하는 행동이었다. 결국 그들이 다쳤을 때 최후로 찾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런 의원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네놈이 다쳐서 의원에 가야 하면, 내가 가서 그놈을 협박해 주마. 제대로 고쳐 놓지 않으면 사지를 잘라 버리겠다고.”
“……끄응 ……자기가 가지, 그러면…….”
문도가 투덜거렸다. 삼복이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자 그 문도가 밖으로 도망쳤다. 삼복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놈 쫓아가서 도와! 그리고 그건 어디 있어? 동래에서 올라온다고 했던 뇌물. 이조 전서(吏曹典書) 김한로 대감댁에 갈 호피!”
“보냈다고 하였는데…….”
“이놈의 장돌뱅이 놈들. 항상 늦는단 말이야? 쯧....”
삼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한 번 쯧 하고 찼다. 그 뒤로도 하오문의 비밀 창고 안에서는 삼복의 고함 소리가 몇 번이나 더 울려 퍼졌다.
***** 꿀꺽꿀꺽
“푸하아아아아!!!”
턱!! 감령이 입가를 소매로 스윽 닦으며 작은 술독을 턱 하고 내려놓았다. 그러자 주변에 몰려든 술꾼들이 오오오 하는 소리를 냈다.
“흥!”
그런 감령을 보고 코웃음을 친 위문이 술을 독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위문도 끄떡없는 얼굴로 술독을 깨끗하게 비운 채 내려놓았다.
“어디서 온 주당들이래? 벌써 몇 독째야 저게?”
“각자 열 독씩 먹었어.”
“와. 근데 무슨 원수 졌대? 왜 저렇게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먹는데?”
주변의 구경꾼들이 수군거리면서 기인열전을 보듯 감령과 위문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 둘만이 아니었다. 감령과 필두, 문형일과 위문, 백영, 웅풍이 서로 선을 그어 놓은 듯 양쪽으로 앉아 번갈아 가면서 술을 독째 해치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공으로 주독을 배출하는 것은 금지다!”
“알고 있다! 건방진 놈. 감히 이 폭혈도 님을 술로 이겨 보겠다고! 크하핫!”
무공으로는 누구 한 쪽이 죽어 나가야만 실력의 고하를 나눌 수 있으니 택한 방법이 바로 술내기였다. 문제는 양쪽 다 술에 대해서만큼은 만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중원 최고의 주당들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온 것이 바로 이 무식한 방법이었다. 어느 한 쪽이 나가떨어지기 전까지 마시는 것. 그래서 최종적으로 남은 승자가 이기는 쪽이라는 것이다. 아직 그들이 주막에 자리를 잡고 앉은 지 반 시진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비운 술독이 각 열 독씩 해서 여섯 명이니 육십 독이나 되었다. 그 때문에 주변의 주막들과 기방에서 술을 구해 온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주모만 한창 바빴다.
“흥. 신교에서 나와 술내기를 하자면 다들 도망을 갔건만.”
웅풍이 거대한 덩치를 뽐내면서 다시 한 독을 해치웠다. 하지만 덩치와 인상으로만 보면 웅풍에게 밀리지 않는 사람이 감령 쪽에도 있었다.
“크하핫! 장강을 술로 채워도 내게는 간의 기별도 가지 않는다!”
필두가 질세라 술을 들이켰다. 문형일과 백영 역시도 뒤지지 않았다.
“우리 대장이 술을 안 먹어서 그렇지, 나도 술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라고!”
“영웅에게 술이란 많을수록 좋은 법!”
그렇게 점점 빈 술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주변에서 구경하던 구경꾼들이 와악 하고 갑자기 흩어졌다. 그리고는 저자 한복판에 의기양양한 기세로 이 저자를 지배하는 것처럼 걸어가는 일단의 하오문의 무리들이 주막을 스쳐 지나갔다.
“씁?”
하오문도들의 보잘것없는 기운에 입맛이 상한다는 듯 위문이 얼굴을 팍 하고 찡그렸다. 위문이 가장 혐오하는 족속들이 하오문 같은 무림의 뒷골목에 사는 쥐새끼들이었다. 강자를 숭상하는 마교의 무인들이 대부분 다 그러했다. 그들의 눈에 하오문은 무림의 말석에 낄 자격도 없는 쥐새끼들의 집합소였기 때문에 마교인들은 하오문도가 보이면 보이는 족족 잡아 죽였다.
“어허! 어딜 일어나려고!”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려던 위문이 움찔했다. 감령이 씩 웃으면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줌 싸러 가도 지는 거야.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지는 거라니까?”
초절정 고수의 신체는 내공을 운용하지 않더라도 일반인에 비해 수십 배는 더 강건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공을 억누른 채로 술을 마셔도 다들 아직까지는 멀쩡했다. 그 때문에 요의를 느껴서 일어나더라도 진다는 조건을 단 것이다. 위문은 능글거리는 감령의 얼굴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흥! 네깟 놈쯤이야 자면서 마셔도 내가 이긴다.”
“아, 그러셔? 그거 못 들어 보셨나? 아, 저 멀리 십만대산에 처박혀 있어서 못 들으셨구나. 내가 바로 녹림의 대채주란 것을!!!!”
술과 산적은 떼어 놓으려야 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감령은 술에 있어서만큼은 만우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산적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 중에는 이런 술쯤은 몇 말을 먹어도 멀쩡해야 한다는 그런 것도 있었으니까.
“마셔!”
“좋다! 누가 죽나 보자고!!!!”
감령과 위문 앞에 놓인 술독이 빠르게 비어 가기 시작했다. ***** 땅-! 땅-! 땅-! 만우는 한참 먼 곳부터 들려오는 청명한 망치질 소리에 히죽 웃었다. 그리고 더 가까워지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만우는 대장간 특유의 열기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망치질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대장간을 지탱하고 있는 나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똑똑
“누구쇼…… 엉? 형님!!!”
익숙해지지 않는 노안의 소유자인 간장이 똑똑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앞섶을 풀어헤쳐 벌겋고 시커멓게 달아오른 근육이 꿈틀거렸다.
“대장!”
간장과 함께 대장일을 하겠다고 남은 마익후도 반가운 표정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안 그래도 조선인보다 하얀 마익후의 피부가 그새 많이 그을려져 있었다. 노란색 머리카락은 땀에 젖었고 푸른 눈은 여전히 맑게 반짝였다.
“그동안 잘 지냈어?”
“형님이야말로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구어어어엉-!!]
만우는 불가사리가 뜨끈한 열기와 대장간에서 가득 피어오르는 쇠냄새를 맡고서는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씩 웃었다.
“얼마 되지 않았지. 그래, 일은 좀 어때?”
“연습. 열심히. 하고 있다. 대장은?”
마익후는 여전히 서툰 말로 만우에게 말했다.
“저기, 바다 건너 왜까지 다녀왔다. 신기한 곳이던데.”
“왜? 왜까지 다녀오셨습니까, 형님?”
간장이 끼어들면서 아는 체를 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쓸 만한 철이 많이 난다고 하던데, 혹시 광산도 가보셨습니까?”
만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왜 광산에 간단 말인가. 대장장이도 아닌데. 그렇게 쳐다보자 간장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 하고 다셨다.
“마익후의 실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이제 검형 정도는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어요.”
“그래?”
만우는 기특한 표정으로 마익후를 쳐다봤다. 마익후도 씩 웃어 보였다. 괴권이 아니라 야장으로 살고 있는 지금이 마익후는 더 행복해 보였다.
“배워서 고향. 갈 거다. 고향, 이런 대장장이 필요하니까.”
“서역? 서역에 간다고? 마익후! 나는 어쩌고!”
마익후가 한 말에 간장이 펄쩍 뛰었다. 그 사이 둘이 붙어 있으면서 꽤나 친해진 모양이었다. 마익후가 간장에게 말했다.
“말했다. 내 고향. 거기 진귀한 광물. 많다.”
“오, 진귀한 광물?”
“중원, 조선에선. 보지도. 못 한 것들.”
“오, 오오오! 나도 같이 가자 그러면!”
“좋다! 대장장이. 많을수록. 더 좋다.”
만우는 만담을 나누듯 이야기하고 있는 둘을 보면서 키득 하고 웃었다. 만우는 그렇게 웃다가 웃음을 멈추고는 손에 들린 이룡검을 간장에게 내밀었다.
“형님. 이건?”
“불을 품은 성수로 만든 검이다. 뭐, 만들었다고 하긴 뭐하지만.”
[구어어엉-!!!]
놀란 간장이 검을 떨어뜨릴 뻔하다가 허둥지둥 끌어안았다. 불가사리의 울음소리에 놀란 것이다.
“정화의 기운이 있는 놈이라더구나. 불가사리라고 강한 놈이다. 질 좋은 철과 불을 좋아하는 놈이고.”
“그런데....”
“기왕에 최고의 대장장이가 되려거든.”
만우는 불가사리로 만든 이룡검을 가리켰다.
“이놈보다는 나은 검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한 번 보라고 주는 것이다. 배우는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최고의 대장장이. 그리고 세계제일검. 만우는 씩 웃었다. 현경의 초입에 든 자신이다. 그리고 혈세천마를 꺾으면서, 만우는 자신이 명실공히 무림의 최강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무림십좌의 일패를 꺾었으니, 천하제일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천하는 중원과 조선이 전부가 아니었다. 일본국도 있고, 마익후가 온 서역도 있으며 문형일의 출신지인 천축국도 있다. 그곳에도 검을 쓰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간장과 약속한 대로 세계제일검쯤은 한 번 돼 봐야 하지 않겠는가.
‘내 운명이 한 곳에 눌러앉아 살 운명도, 그럴 만한 성미도 되지 못하는 걸 확인했으니.’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자신이 동군영이 떠났을 때 얼마나 지루해했는지 만우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리고 혈세천마를 비롯한 마교의 고수들과 싸웠을 때 느꼈던 희열. 혈사(血士)와 혈세천마. 그리고 지금 진인에 든 자신도 넘을 수 없었던 주작까지. 아직 검을 들고 이 세상을 주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인간이건, 신수이건 그 어떤 존재이건 그 모두를 꺾고 최고에 오를 세계제일검. 만우는 그런 자신을 위한 그 검을 간장이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합니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 준 이룡검은 부서지고, 이상한 놈이 들어 있는 검이 되었지만 간장은 기뻐하면서 그 자리에서 펄쩍 거리며 뛰었다. 그런데 그 때 마익후가 만우 앞으로 튀어나오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불끈! 대장일을 하면서 더 팔이 두꺼워진 것인지 마익후의 팔뚝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대장. 누가, 오고 있다.”
척!!!!!
“그대가 만우인가?”
만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웬 처음 보는 늙은이가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린 것처럼 나타나 어린아이 같은 눈으로 만우를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주가 맞다. 그런 노인네는?”
무시할 수 없는 고수다. 만우가 그렇게 말하며 나서자 늙은이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과연. 그 아이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어. 허나, 세가의 규수를 데려갔으면 돌려보냈어야지.”
“세가? 규수?”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늙은이가 아이 같은 얼굴로 웃었다.
“척사영의 할애비 되는 사람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