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 소문 나르는 보부상(3)2021.07.20.
절반 이상이 초절정 고수로 이뤄져 있는 일행의 이동 속도는 과연 어떨까. 그 안에 무공을 전혀 못 하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 삼류 수준인 여자 아이가 하나, 그리고 다쳐서 제 구실을 못 하는 남자가 하나 포함되어 있다고 할 때 그들이 동래에서 출발해 한양까지 도착하는 시간은?
“도착했다!!!”
“이렇게 칠주야(七晝夜)만에 동래에서 한양까지…….”
동군영은 찌그러진 갓을 피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한양에서 영남까지는 꾸준히 최선을 다해 걷는다면 보름이면 갈 수 있기는 했다. 그런데 그걸 절반으로 줄인 이 일행의 이동력에 새삼 놀라는 동군영이었다.
“전 자러 들어갈게요. 너무 졸려요오오…….”
호선은 말꼬리를 길게 흐린 채 비척이면서 지붕 위로 쉭 하고는 사라졌다. 만우는 관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소 한 마리라도 잡아다가 줘야 하나.”
동군영과 방매, 김향과 슌스케를 등에 업고 이동해 준 호선이다. 그녀 덕분에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 칠주야만에 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덜커덩!
“후우. 후우.”
주창이 작게 숨을 몰아쉬며 끌고 왔던 수레를 마당 안에 털썩 하고 내려놓았다. 성내에서는 그 수레를 등에 이고 왔기 때문에 숨이 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든 모양이오?”
척사영이 숨을 몰아쉬는 주창에게 말했다. 주창에게 묘한 경쟁심을 불태우는 척사영이었다. 같은 화경임에도 주창이 척사영보다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주창도 그런 척사영에게 지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호흡을 정리하고는 씩 웃어 보였다.
“빈 몸으로 온 그대와는 달리 이 몸은 짐이 있었던지라.”
등짐장수 열 명이 나눠서 지고 가야 했던 분량의 뇌물이었다. 그것을 하나로 합쳐 근처에서 구한 수레에 싣고 칠주야 동안 달린 투귀대의 고수들이다. 만우가 자신을 쫓아오는 대신 일이라도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 악명 높은 투귀대의 고수들이 짐말 노릇을 한 것이다.
“그 정도가 무에 무겁다고 그리 헉헉대는지. 체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오?”
“글쎄. 체력이 부족해도 그대 정도는 이길 수 있소만.”
척사영의 눈썹이 역팔자로 확하고 휘었다. 주창과 여포에게 당한 것이 어지간히도 분했던 것인지 척사영은 툭하면 주창에게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었다. 그러면 그것을 주창이 받아쳤고 둘은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처럼 으르렁대곤 했던 것이다. 따악! 따악!
“악!”
“꺅!”
물론 그 둘의 대결이 성사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둘이 그렇게 싸울라고 치면 그때마다 끼어드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지? 애가 보고 배운다고.”
바로 만우였다. 만우는 김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척사영과 주창에게 으르렁거렸다. 화경이라고 해도 만우 앞에서는 다른 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우를 받았다. 현경의 초입에 든 만우에게는 주창과 척사영도 전심전력을 다한다면 십초지적이 채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야. 너네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 가. 저기 서쪽의 돈의문(敦義門)으로 나가면 나루들이 있으니까, 가서 알아서 타고 어서 가.”
만우는 마치 독을 품은 뱀을 쫓아내듯 주창을 향해 손을 홰홰 내저었다. 하지만 그간의 여정을 통해 익숙해진 것은 만우 뿐만이 아니었다.
“끼니만 한 끼 때우고, 여독을 풀고 곧바로 떠나겠소.”
“아니, 안 돼. 돌아가.”
만우는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때 옥령이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섬뜩한 단어들이 붙기는 하지만 그래도 꽃(花)라 불리는 옥령이다. 만우가 여자에게 남자만큼 단호하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며칠만 머물게 해 주신다면 반드시 보은을 하고 떠나도록 하겠습니다, 대협.”
옥령은 만우에게 포권을 취해 보이며 말했다. 만우는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만우의 집에 방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방은 남아돌았다. 만우는 옥령이 앞으로 나서자 자신도 모르게 뒤로한 발자국 물러섰다. 호선이 옥령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는 것을 옆에서 제지해 온 만우다. 거기에 만우도 취향이 이상한 것은 아니라 옥령이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칼을 서로 뽑아 들고 대치하는 중이라면 모를까, 마교 소속의 마인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무방비하게 나오면 만우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
만우는 고개를 휙 하고 돌려 옆을 쳐다봤다.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척사영과 방매가 만우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만우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겠다는 것 같았다.
“사흘. 사흘 뒤에는 떠나.”
한양에 마교 출신의 고수들이 돌아다녀봤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애를 보듯 마교 고수들을 관리하는 것은 질색이었기 때문에 만우는 짧지도 길지도 않은 딱 사흘을 제시했다.
“감사합니다, 대협!”
만우가 허락하자 옥령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자 만우의 눈치를 보고 있던 감령과 필두, 문형일이 씩 웃었다.
“마교 떨거지 놈들아. 약속했던 술 내기다. 크하하핫!!”
감령이 백영과 위문, 웅풍을 도발했다. 그 도발에 넘어가지 않을 백영과 위문, 웅풍이 아니었다.
“얼굴만 기름지게 생긴 수적 따위가.”
“감히 이 폭혈도에게 술 내기를 하자는 것이냐!”
“널 삼켜 버리겠다!!”
말은 살벌하지만 무인들은 사실 실력을 겨루면서 사이가 돈독해지는 법이다. 거기에 투귀대의 고수들은 마인들 특유의 잔혹함이 어느 정도 있기는 했지만, 폭력의 기준이 나름대로 명확했다. 주창을 따르면서 생긴 기준이라고 한다. 주창은 마인이라고 해서 모두 악독해질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투귀대에 절대적인 기준 하나를 삼았다.
[우리는 무공을 좋아하는 미친놈들이지, 피를 갈구하는 미친놈들은 아니다!]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에 매료된 것이지, 피를 보기 위해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그 때문에 투귀대의 고수들은 다른 이의 무공을 견식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라면 모를까, 그냥 신경에 거슬린다고 죽이기 위해 무작정 무기를 휘두르진 않았다. 그게 엄밀히 말하면 산적과 수적으로 사파 소속인 감령과 필두, 그리고 정사지간(正邪之間)에 있는 문형일과 은근히 잘 맞아떨어졌다. 그 때문에 오는 내내 묘하게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심심함에 서로 무공을 겨루다 보니 알 수 없는 친근감이 쌓인 것이다. 단지 그 표현이 거칠 뿐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표현이 거친 것 이상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늘 만우가 나서서 한동안은 서로에게 말도 걸지 못 할 정도로 흠씬 두들겨 패 버렸기 때문에 그 이상으로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난 곧바로 입궐해야겠어. 만우, 너는?”
방매와 김향이 아직 몸이 좋지 않은 슌스케를 방 안에 눕히고 나왔다. 만우는 방매를 쳐다봤다.
“옹주마마. 궁에 들어가시지 않으십니까?”
“으아악! 시, 싫어. 조씨 할아범 보러 갈 건데.”
“저도 같이 갈래요!”
방매가 김향의 손을 붙잡고는 만우가 붙잡을까 두려운 나머지 부리나케 대문 바깥으로 사라졌다. 동군영까지 입궐한다면서 의복을 차려입고 온다며 사라졌다. 조용. 순식간에 사람들이 훅 하고 빠져나가자 적막이 맴돌았다. 만우는 척사영과 주창, 옥령을 차례대로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싸우지 말고 얌전히 있다 가. 나도 보고 올 사람이 있으니까.”
“보고 올 사람이라면…….”
“내 검 만들어준 노안 동생 놈. 그리고 부하 놈 하나.”
만우가 손에 든 이룡검을 흔들어 보였다. 간장과 마익후를 보러 갈 생각이었다. 만우마저 휙 하고 사라지자 척사영과 주창, 옥령 사이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이내, 척사영이 기다렸다는 듯 숨겨 놓았던 호승심을 다시 드러내면서 주창을 도발했다.
“한 번 붙으러 가시겠소?”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그 정도 조절은 할 줄 알아야 화경 아니겠소?”
“좋소. 내 그대에게 특별히 세…… 번은 아니고 한 번까지는 선공을 양보해 주리다.”
주창이 세 번이라고 하려다가 한 번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마저도 척사영에게는 치욕스러웠다. 본래 고수가 하수에게 선공을 양보해 주는 법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 오만함이 쏙 들어가게 해 주겠소. 오시오.”
척사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창이 흐릿하게 웃으며 그런 척사영을 따라나섰다. 옥령은 무공에 미친 두 화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주창을 위해 따라나섰겠지만 칠주야 동안 내리 달리기만 해서 지친 것은 옥령도 마찬가지였다.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
옥령은 퀴퀴한 냄새가 나려고 하는 옷을 힐끗 내려다봤다. 활동이 편하도록 만들어진 짙은 남색의 궁장의였다. 문제는 여벌의 의복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신없이 움직이느라 내공으로 간단하게 분비물과 노폐물을 날렸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다. 끼익, 탁. 대문이 탁 하고 닫혔다. *****
“전하!”
“운검. 어찌 되었는가?”
“……동 장령이 한양에 들었다 하옵니다.”
“…….”
임금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근정전에 일월오봉도를 뒤에 두고 옥좌에 앉은 임금의 손에는 상소문이 들려 있었다.
“보빙사 여의손을 겁박한 장령 동군영을 삭탈관직하고 사사로운 이득을 편취한 죄를 물어 그를 유배 보내야 한다…….”
상소문의 내용은 그런 내용이었다. 본론을 밝히기 전까지 이런저런 미사여구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런 상소문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임금은 이 때문에 머리가 다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상소문이 한두 개도 아니라 이걸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일로 인해 상소문이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여의손이 동군영에게 악감정을 품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걸 무시해 버리면 또 다시 다른 말이 나올 것이다.
“그렇다고 동군영을 유배를 보내자니.”
“만우, 그 자가 문제시라면…….”
권희달은 자신의 검을 꽉 쥐어 보였다. 하지만 임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의손과 이런 상소문 때문에 만우와 척을 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우 그 자를 잡으려면 군대를 일으켜야 할 것이다.”
“허나 전하. 이 나라의 지존은 전하십니다. 그러니 소신은…….”
“그대는 운검이지. 만우, 그 자에게 맞서게 하여 잃고 싶지 않은.”
임금이 고개를 가로젓자 권희달은 고개를 숙였다. 임금을 위해서라면 만우와 맞설 수 있는 권희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우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써 두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뿐이지.
“일단 그대가 가서 장령 동군영을 은밀하게 데려오시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네. 장계 따위로 말고.”
동래에서 올라온 동군영의 장계를 받아 본 임금이다. 장계와 비슷한 속도로 한양에 올라온 그 속도가 놀라웠지만 말이다.
“명을 받드옵니다, 전하.”
*****
“자. 이건 김 대감 집으로.”
“예, 지부장님!”
“잠깐만.”
삼복은 수레를 끌고 나가려던 하오문도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는 수레를 덮은 짚을 옆으로 스윽 밀고는 초라해 보이는 상자를 열었다. 촤르륵!! 그 안에는 한 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패물들이 가득했다. 그 중 삼복은 한 주먹을 꺼내고는 다시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우리 보수를 빼먹을 뻔 했네. 흐흐흐흐.”
삼복은 음흉하게 웃었다. 황홀한 색을 보이는 패물 중 비녀 하나를 삼복이 꺼내 손에 말아 쥐었다.
“이건 어리 거.”
“지부장님. 이번에도 어리를 찾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내 그 년을 자빠뜨리기 전까지 매일 같이 갈 생각이다.”
“하이고. 저기 돈 많은 집 화화공자들도 어리 고 계집애 한 번 넘어뜨리겠다고 난리인데요.”
빡! 삼복은 하오문도의 뒤통수를 딱하고 내리쳤다.
“여자는 다 똑같아! 엉? 돈 안겨 주고, 달콤한 말 해 주고 그러면 싹 넘어온다 이 말이지!”
“그래서 아직까지 혼인도 못 하셨소?”
“이, 이놈이!”
하오문도가 부리나케 도망을 쳤다. 삼복은 씩씩 대면서 패물을 자신의 주머니에 슥 하고 밀어 넣었다.
“다음! 이건 또 뭐야?”
삼복은 텅 빈 상자를 보면서 도끼눈을 떴다. 삼복이 하오문도들과 함께 정신없이 물건을 분류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곳은 하오문의 비밀 창고였다. 각 지방에서 한양에 올릴 뇌물을 모아두는 곳으로, 그것을 양반 댁에 배달하는 것이 하오문의 업무 중 하나였다.
“이건 왜 비었어?”
“그, 그게. 사향을 구하지 못 했다고 해서…….”
“못 구했다고? 왜? 함주에서 우리한테 팔던 놈 있잖아!”
“그, 다른 사람한테 팔았다던데요…….”
하오문도 하나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삼복은 이를 으득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