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 소문 나르는 보부상(2)2021.07.17.
퍼억!!!
“꺽.”
눈이 뒤집힌 방매의 각법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자랑했다. 방매의 발차기가 떡떡 하고 꽂힐 때마다 방매에게 여기저기 얻어터진 등짐장수들이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심히 좋지 못한 곳에 발이 꽂히는 경우도 많았다.
“미, 미친년. 진짜 미친년.”
접장은 그런 방매를 보면서 턱을 덜덜 떨었다. 등짐장수가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열 명이나 됐다. 그것도 험하게 살아온 것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등짐장수들이 열이나 됐던 것이다. 그런데 고작해야 스물도 되지 않는 계집한테 모두 왕창 깨져서는 파들거리며 땅바닥에 쓰러지고 있었다. 방매의 발이 번뜩이며 좋지 못한 곳에 틀어박히는 것도 모자라 무자비하게 쓰러진 놈의 머리통까지 손에 들린 짱돌로 내리찍었다. 확실하게 일어나지 못하도록 보내 버리는 것이다.
“한양제일매분구…….”
방매는 한양제일매분구라 불렸다. 그 소문이 이곳 동래현에 있는 장돌뱅이들까지 알 정도였다. 그 이유는 방매가 단순히 가장 많이 파는 매분구라는 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한양제일광녀. 한 번 잘못 건드리면 두 번 다시 자손을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하여 그녀의 악랄한 손속에 소문이 자자했던 것이다. 매분구답게 여리고 예쁘장했기 때문에 남정네들이 많이 꼬였는데, 그 남정네들 중 소중한 곳에 좋지 못한 일을 당한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 정신!”
접장은 자신의 뺨을 짝 하고 때렸다. 그리고는 일부러 전의를 불태웠다. 이런 상황에서 전의까지 꺾여 버리면 정말 죽도 밥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접장은 마지막 한 수를 품에서 꺼내들었다.
“넌 진짜 뒈졌어. 광년. 진짜…….”
접장의 손에 들린 것은 대나무로 만든 대롱이었다. 대롱 안에는 독이 발린 침이 들어 있었다. 장돌뱅이들이 하나씩 들고 다니는 최후의 무기 같은 것이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 사용할, 자신의 목숨을 한 번쯤은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비장의 무기.
“소도 한 번에 보내 버리는 마취산이다. 흐흐.”
접장은 대롱을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대롱의 끝을 들어 방매에게 조준했다. 방매는 마지막 남은 등짐장수의 소중한 곳을 발로 짓이기고 있었다.
“끄어어어…….”
마지막 등짐장수 하나가 눈을 까뒤집으면서 정신줄을 놓았다. 그리고 접장의 볼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
‘쓰러져라!’
아무리 독한 방매라고 해도, 소도 쓰러뜨린다는 마취산이라면 쓰러질 것이다. 그건 인간이 맞고 버틸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니까. 후우우우우웁!!!!
“쀼우우욱~”
접장이 있는 힘껏 볼에 잔뜩 모인 바람을 물어넣었다. 그런데 바람이 훙 하고 통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지 못한 바람이 항문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처럼 접장의 입에서 났다.
“어, 어?”
접장은 그제야 가느다란 손가락 하나가 대롱의 끝을 정확하게 막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당황해하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쿵!!!!
“어이구. 이거 저 애 하나 잡겠다고 이런 것까지 쓰셔?”
손가락 끝에 대롱을 꿰어 올린 만우가 히죽거리며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너, 넌 누구…….”
“나? 쟤 일행.”
접장은 만우의 허리춤에 매달린 이룡검을 보고서는 눈을 크게 떴다. 방매가 검을 든 무사들과 같은 주막에 묵고 있었다는 것이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접장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거, 거기에는 소도 마취시키는 마취산이 꽂혀있다! 해,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마취산? 아, 그래서 손가락이 얼얼한 거구나?”
만우는 히죽 웃으면서 대롱 안에서 손가락을 뺐다. 그런 만우의 손가락 끝에 가느다란 침이 박혀 있었다.
“이, 이 개자식!!”
그것을 본 방매가 달려와 접장의 얼굴을 걷어찼다. 방매의 발등에 접장의 코에서 피가 쭉 하고 뿜어져 나왔다.
“크악!!!”
데구르르르 접장이 땅바닥에서 굴렀다. 만우는 피식 웃으면서 자신의 손가락 끝을 쳐다봤다. 만우의 손끝에서 검게 물든 마취산 한 방울이 동그랗게 맺혔다. 화르륵!!!! 동시에 만우의 손에서 삼매진화가 치솟았다. 접장은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귀신을 쳐다보는 것처럼 만우를 쳐다봤다. 사람의 손에서 불이 치솟는다는 것은, 접장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방매. 진정해. 그놈 두들겨 패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이, 이 치사한, 같은 보부상을 공격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방매는 씩씩대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놈의 국부를 터뜨릴 기세였다. 만우는 대체 방매의 손과 발에 의해 미래에 태어날 후손들이 얼마나 태어나지도 못하고 사라진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부모 아래서 태어난 애들이 불쌍하지.’
만우는 내공을 실타래처럼 풀어 접장의 몸을 들어올렸다. 접장의 얼굴이 귀신을 본 것처럼 허옇게 변했다.
“허, 허억…….”
접장의 입장에서는 귀신에 홀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손에서 불이 솟아오르질 않나, 자신의 몸을 보이지 않는 누군가 잡아 올리지를 않나, 다 이해하지 못 할 일인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자. 우리 서로 힘 빼지 말고 이번 일 잘 해결하자고. 응?”
만우는 빙글거리면서 접장을 향해 말했다. 접장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그, 그러면 나리. 절 살려주시는…….”
만우는 빙긋 웃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웃음이었다.
“에이. 그건 너 말하는 거 보고. 여자애 하나 우르르 몰려가서 쥐어 패 놓은 걸 내가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날 만족시켜야겠지.”
어린 여자애에게 열 명이 넘는 등짐장수들이 전부 나가떨어졌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더 괴물 같은 놈이 튀어나왔다.
“뭐,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답하겠습니다.”
접장은 빠르게 반항할 생각을 포기했다. 바위에 계란, 아니 거암에 계란 치기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 하나. 저거 이조로 가는 거 맞지?”
“이, 이조라 하심은…….”
“아, 몰라?”
만우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저 잠시 고개를 돌려 방매를 쳐다봤다.
“눈 감고, 귀 막아.”
“왜!”
방매는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었다. 방금 등짐장수들 여럿을 고자로 만들었으면서도 접장도 고자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은 듯 했다. 만우는 아무 말 없이 방매를 쳐다봤다.
“씨…… 알겠어.”
방매는 그런 만우의 시선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았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접장을 쳐다봤다.
“마, 말하겠습니다. 아니, 나리 제가…….”
뒤늦게 이게 아니라는 것을 느낀 접장이 서둘러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때 만우가 지풍으로 접장의 아혈을 점했다.
“……!!!!!”
접장은 자신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입을 뻐끔거리면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동시에 만우의 손가락이 튕겨졌다.
“!!!!!!!!”
우드득, 우득! 우드드드득!!! 접장의 눈가에 핏줄이 섰다. 만우는 겉으로는 아닌 듯 보이지만 사실은 상당히 분노한 상태였다. 그리고 천하제일인의 분노는, 범인이 감히 감당해 내기에는 버거웠다. 만우는 곧바로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접장의 몸에 분근착골을 시전했다.
“!!!!!!!”
접장은 온몸의 근육과 뼈를 누군가 하나씩 발라내며 뒤트는 것 같은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접장이 되기까지 온갖 고생은 다 해봤다 자부한 접장이지만 이런 고통은 절대로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기절하고 싶어도 기절할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고통 때문에 뇌가 잔뜩 예민한 상태가 되어 아주 작은 자극에도 마치 활어처럼 펄떡거리며 뛰어댔기 때문이다. 거기에 목소리까지 나오지 않으니 접장의 입가에 허연 거품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
퍼버버벅!!!! 활어처럼 펄떡거리던 접장이 몸이 축 늘어졌다. 접장의 벌어진 입으로 침이 주욱 하고 늘어졌다. 눈물과 콧물, 오줌까지 지린 접장에게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이제 괜찮아.”
만우는 방매에게 말했다. 방매는 귀에서 손을 떼고 감았던 눈을 떴다.
“뭘 한 거야. 뭘 하지도…….”
방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방매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던 시간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접장의 몰골이 마치 십 년은 고문을 받은 사람처럼 변한 것이다. 자신들 같은 보부상들이 얼마나 독기와 오기로 똘똘 뭉쳐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방매였기에 놀라움이 더욱 컸다. 아무리 만우라고 해도 접장의 입에서 진실이 나오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딱! 만우는 마지막으로 손가락을 튕겨 접장의 아혈을 풀어 주었다. 분근착골은 무림에서 금지된 고문술 중 하나였다. 말 그대로 근육과 뼈를 강제로 분리하는 고통을 준다 하여 분근착골이라 불렸는데 그 수법이 잔혹하고 고통이 극심해 윤리적인 차원에서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아무리 내공의 화후가 깊고 강건한 육체를 가진 무림인이라고 해도 일 각 이상 받으면 백치가 될 정도로 극악한 고문술이 바로 분근착골이다. 그러니 일반인에 불과한 접장은 찰나의 순간만 겪었음에도 저렇게 넋이 나간 표정을 지은 것이다. 분근착골은 무림에서 엄격하게 금지된 고문술이지만 이곳은 무림이 아니라 조선이다. 더군다나 보는 눈도 없고. 분노한 천하제일인이 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왜, 왜 저래?”
“천벌 받았나 보지.”
만우는 피식 웃었다. 뭐 사람을 잘못 보고 건드렸으니 저 정도는 각오를 하지 않았겠는가?
“한 번만 더 묻는다. 이조, 맞지?”
“……이조판서가 아니라 이조판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흐흐흑.”
어디로 물건을 가져다 줘야 하는지 모르고 이 일을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만우는 이조가 아니라는 것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조가 아니라고?”
“일개 동래현감이 어떻게 이조판서와 알고 있겠습니까. 그러면 진작에 동래현감이 아니라 경주나 상주에라도 가지 않았겠습니까.”
접장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분근착골을 받는 동안 정말로 이게 죽는 것인가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그 때문에 접장은 죽고 싶지 않았다. 만우가 물어보면 정말 속의 심장을 꺼내서라도 보여주고 싶을 따름이었다.
“이조가 아니라…… 다른 놈이 있다? 그놈에게 뇌물을 바치는 거다?”
“예, 예. 그 전에 부임했던 현감도 그 자에게 뇌물을 바치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하여….”
접장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어차피 보부상들은 뇌물이나 전달해 주는 심부름꾼에 불과했다. 그러니 더 깊은 것에 대해서는 접장도 아는 바가 없었다.
‘모른다고 하면 죽일지도 몰라.’
접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죽어도 그냥 깔끔하게 죽고 싶지, 아까처럼 그런 끔찍한 고통을 느끼면서 죽고 싶지는 않았다. 만우는 그런 접장에게 말했다.
“어디에 가져다주기로 했는데?”
*****
“내 세상이다!!!!!”
하오문 한양지부의 지부장인 삼복은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는 만세를 외쳤다. 한양에서 하오문도들을 이끌고 왕처럼 살던 삼복에게 북경에서 온 하오문주의 딸인 임수미의 존재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임수미와 하오문의 간부들이 모두 떠났다. 정확히는 하오문의 간부들은 임수미가 동래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에서 곧장 대륙으로 향하기 위해 한양을 모두 떠났다.
“내 세상이라고!!!”
삼복은 대소를 터뜨리면서 묵은 체중이 쑥 내려간 것처럼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하오문주의 딸이라는 임수미의 외모는 남자의 혼을 빼 갈 정도로 대단했지만 판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기 때문에 무섭기 그지없었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말 한 마디로 결정을 내릴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 외에 하오문 간부들도 삼복쯤은 손가락 두 개로도 죽일 수 있는 초강자들이었으니 삼복은 몇 달을 기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찍소리도 내지 못한 채 살았어야만 했다.
“술을 가져와라! 내가 그놈의 눈치를 본다고 술도 못 마셨던 것을 생각하면.”
삼복은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갑작스레 하오문에서 오는 바람에 못 한 일들이 산더미였지만 지금은 즐겨야겠다고 생각한 삼복이다.
“일단 술 한 잔 하고. 검계 애들 다시 수소문해서 뽑고. 검투장도 다시 만들고…….”
삼복이 씨익 하고 웃었다. 검계를 지원했던 만우가 간장을 만나고 분노해 통째로 날려 버렸던 검투장은 전부 삼복의 작품이었다. 대담하게도 한양 한복판에 그런 검투장을 만들어 놓고 거대한 노름판을 벌였던 삼복이다. 기둥서방들을 모아 몰래 기생들도 데려오고, 술도 파는 한양 한복판의 무법지대를 운영하던 것이 바로 삼복이다. 그로 인해 벌어들이는 돈이 꽤 짭짤했다. 물론 그 대부분의 돈들이 포졸들과 포도청 나리들의 입을 막기 위해 들어가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먹지 않고 배부를 정도는 됐다.
“캬아! 맛 좋다!”
삼복은 싸구려 탁주를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고는 입맛을 쩌억 하고 다셨다. 더 먹고 싶었지만 술보다는 돈이 더 좋았다. 삼복은 바깥에 소리쳤다.
“얘들아! 준비해라! 그동안 쌓인 성의들 좀 확인하러 가야겄다!!!”
“예, 지부장님!!!”
하오문도들이 삼복에게서 떨어질 콩고물을 기대하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