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소문 나르는 보부상(1)2021.07.13.
“하.”
만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분명 가락을 흥얼거리는 등짐장수들로 가득했던 임방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튀었다고?”
“어떻게 해요. 방매 언니는요? 네?”
김향이 긴장한 표정으로 만우를 돌아봤다. 동군영도 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옹주께서 위험에 처하신 것 아니신가?”
“그럴지도 모르지.”
만우는 고개를 돌려 동래현 바깥으로 난 산을 쳐다봤다. 검푸른 하늘에 달이 반쯤 걸려 있었다. 그 아래로 둥그러니 솟은 산을 본 만우의 입가가 쭉 찢어졌다.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만우가 고개를 돌려 동군영과 김향을 쳐다봤다.
“우리가 이럴 거라는 걸 알았다는 뜻이야. 혹시, 동래현감 눈치챘어?”
등짐장수들이 약속된 시간보다 먼저 임방을 비웠다는 것은 이쪽의 접근에 어떠한 의도가 있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뜻이다. 혹시나 해서 동래현감의 동태를 물었지만,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네. 만약 알았다면 날 그리 대하지 않았겠지.”
동래현감이 한양에 보낸 그 재물들은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참고 아끼면서 모은 재물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만약 감찰인 동군영이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동래현감은 눈이 돌아 동군영에게 무슨 짓을 했어도 진작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래현감은 그럴만한 깜냥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 등짐장수 놈들이 알고 있었다는 뜻이겠네.”
만우가 입술을 혀로 살짝 핥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보부상 놈들의 정보력이 만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건 조선 내 정보망의 부재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만우에게는 희소식이다. 꿍꿍이가 늘 있는 하오문이나 은월루보다는 훨씬 더 써먹을 가치가 있으니까.
“방매나 나리의 뒤를 등짐장수 놈들이 밟은 거라면 가능하지. 주막 안에 검을 찬 애들이 득시글거리니까, 눈치를 까고 튄 거지.”
“그렇다면 방매는…….”
“인질로 삼을 생각이 아닐까. 살리고 싶으면 공격하지 말라고.”
보부상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었다. 물론 그게 최선이라고 했지 최상의 선택이라고는 한 적이 없었다. 이쪽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등짐장수들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자. 그럼 우리 계획을 바꾸자고.”
만우는 동군영에게 말했다.
“감찰 나리는 주막으로 돌아가서 척사영이랑 같이 동래현감 털어. 그놈이라도 있어야지. 실토를 하게 하려면.”
“처, 척 무사와 함께 말인가?”
“어. 걔 곡산척가라면서. 뭐, 나라를 수호하는 가문 같은 거. 나랏일에는 그런 성격이 제격이지.”
“……조금 너무 대쪽 같다고 생각되네만.”
“에이. 그렇다고 산적이나 수적을 데려갈 거야? 형일이 걔도 나 쫓아다니던 놈이야. 정상은 아니란 소리지. 그렇다고 다친 사무라이나 호랑이를 데려가기도 그렇고.”
“끄…… 응…….”
폐부를 푹푹 찌르는 만우의 말에 동군영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알겠어.”
“잘 됐네. 한양에 돌아가면 장계 새로 올릴 때 한 줄이 더 늘어서.”
“되었네. 되었어. 자네는 어서 옹주께 빨리 가보시게. 옹주께 큰일이라도 나면 어찌하려고.”
만우가 씩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돌림과 동시에 동군영의 앞섶을 광폭하게 휘날리게 만드는 광풍이 휘몰아쳤다.
“아이고.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자기도 노총각이면서 동군영이 만우가 사라진 방향을 보면서 낄낄대면서 웃다가 척사영을 떠올리고는 우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 수박희(手搏戲)는 대단히 익히기 어려운 무예다. 쾌(快), 강(强), 유(流), 만(慢), 중(重) 등 한 사람이 하나 익히기에도 힘든 움직임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수박희의 고수라고 해도 저 다섯 개 중 많아야 두 개, 혹은 세 개 정도를 익힌 정도가 다였다. 팟! 팟!! 짚신을 신은 방매의 발이 날카롭게 창촉처럼 등짐장수 둘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발끝을 모아 힘을 준 방매의 저 발끝에 명치나 인중 같은 곳이 찔렸다면 그대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해 냈다는 것에 등짐장수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한 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계집일 뿐이고, 이쪽은 건장한 사내가 열 명도 넘었기 때문이다.
“이야야야!”
“우아아아!!!”
곰처럼 두 손을 번쩍하고 치켜든 등짐장수 둘이 방매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방매는 접장의 사타구니를 움켜쥐었던 손을 비틀어 어깨를 흔들었다.
“끄아아아악!!!!”
쿵!!!!! 방매의 손에 잡힌 사타구니가 뒤틀리는 느낌이 나자 접장이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같은 남자라면 저절로 오금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한 것은, 방매가 몸을 흔들자 목표물을 잃고 서로 쾅 하고 부딪친 등짐장수 둘이었다. 뻐억!!!
“꺼억!”
“꺼으으…….”
양쪽에서 달려든 등짐장수 둘은 달려들다가 서로 머리를 부딪치고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방매의 발이 등짐장수 둘의 사타구니를 정확하게 올려 찼다. 하나는 정강이에, 나머지 하나는 발끝에.
“끄어어…… 끄으…….”
털썩, 털썩! 특히 발끝에 걷어 채인 등짐장수는 입가에 거품을 물고는 옆으로 쓰러졌다. 그 처참한 모습에 달려들려던 등짐장수들의 몸이 덜컥하고 굳었다. 같은 남자로서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으으…… 무자비한 것!”
“무자비하다고? 하.”
방매는 자신을 향해 욕을 하는 등짐장수들을 비웃었다.
“여자 하나에 열이 달려드는 네놈들은 어떻고!”
“죽여, 죽이란 말이다!!!!”
접장은 사타구니가 방매의 손에 들어가 있음에도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면서 소리쳤다. 끔찍한 고통이 느껴지지만 그 역시도 괜히 접장까지 오른 것이 아니라는 듯, 독기가 충만했다.
“어? 그렇게 힘주면 진짜 터져 접장 아재.”
방매가 고개를 돌려 접장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 웃음이 마치 악귀의 미소처럼 보였다. 그때 방매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접장의 몸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끄아아아악!!”
“계집이잖아! 한꺼번에 달려들자고!”
“못된 년!”
“잡아도 하필이면 거길!!!”
등짐장수들이 방매를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그들의 손에 들린 단검과 낫이 위험하게 번쩍였다. 방매는 우르르 달려드는 등짐장수들과의 거리를 재면서 손에 쥐고 있던 접장의 사타구니를 탁 하고 놓고는 발을 들어올렸다. 꽈직!!!
“끄아아아아악!!!!”
그리고는 망설임 없는 발바닥이 접장의 사타구니를 깨부쉈다. 방매는 손을 바지에 비벼 닦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후환은 없이 해야지. 접장 아재랑 같은 핏줄 타고 나면, 그것도 못 쓸 것일 테니까.”
방매는 그렇게 물러서면서도 접장에 대한 도발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접장이 풀려났다는 것에 등짐장수들의 기세가 한층 강해졌다.
“잡히면 팔다리는 얌전히 두려고 했는데.”
“저 년은 사타구니도 없으니 어쩐다?”
등짐장수들의 살벌하게 한 마디씩을 했다. 그들 전부 사람이 죽는 것을 한두 번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본 이들이다. 등짐을 나르면서 별의별 꼴을 다 보는 법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방매는 품(品)자를 밟으면서 두 팔을 늘어뜨리고는 어깨를 가볍게 박자에 맞춰 율동을 하듯 앞뒤로 흔들었다.
“드루와. 아재들.”
수박희의 기본 자세를 잡은 방매가 씩 웃었다. 등짐장수들이 방매의 웃음에 괴성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죽엇!!!”
쉿!!! 낫이 베어야 할 잡초가 아니라 사람의 목을 노리고는 예기를 번쩍하고 토해냈다. 그 순간 방매의 몸이 아래로 훅하고 꺼졌다.
“억!!!”
투두둑!!! 아래로 몸을 숙인 방매가 낫을 휘두른 등짐장수의 앞다리를 걸어 다리를 앞뒤로 찢었다. 낫을 쥐고 있던 손으로 사타구니를 움켜쥔 등짐장수가 바닥을 굴렀다.
“끼욥!!!”
그런 등짐장수를 뛰어넘으며 단검이 방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흔들거리던 방매의 두 팔이 번쩍하고 번개처럼 움직였다. 탁!!! 휘익!!! 쿠웅!!!!
“꺼…… 꺼어억…….”
달려들던 등짐장수의 힘을 그대로 이용해 방매가 등과 어깨로 등짐장수를 쳐서 앞으로 넘겼다. 그러자 붕 떠서는 등으로 떨어진 등짐장수가 애벌레처럼 몸을 배배 꼬면서 컥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잡았다!!!!”
덥썩! 그때 방매를 등짐장수가 뒤에서 껴안았다. 그 순간 방매가 그 자리에서 몸의 힘을 빼면서 주저앉듯이 팍 하고 앉았다.
“억?”
그 무게에 등짐장수가 당황해 몸이 앞으로 쏠린 순간, 방매가 있는 힘껏 발로 땅을 밀어내며 뒤통수를 뒤로 제꼈다. 뻐억!!! 와작!
“끄…… 끄어어……”
와작거리는 소리와 함께 방매의 뒤통수에 얻어맞은 등짐장수가 부러진 잇 조각과 함께 뒤로 넘어갔다. 싯! 시익!!! 데구르르!! 그 순간 방매가 그대로 앞구르기를 했다. 그러자 방매가 서있던 곳으로 번쩍하면서 낫과 단검이 휘둘러졌다. 낫과 단검이 지나간 다음, 방매가 구르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손바닥으로 있는 힘껏 당황해 하고 있는 등짐장수의 턱을 올려쳤다. 빠각!!!!
“끄르르…….”
털썩. 콰악!!!
“익!!”
그런데 그때, 방매에게 당하고 쓰러졌던 등짐장수가 방매의 발목을 덥석 하고 붙잡았다. 순간적인 힘에 방매의 몸이 휘청거렸다.
“쳐!!!”
“이 망할 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등짐장수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방매는 발을 들어 자신의 발목을 잡은 등짐장수의 손목을 콱 밟아 버린 다음에 급하게 몸을 날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발 늦었다. 퍼억!!!
“꺅!!”
방매가 달려든 등짐장수의 몸을 날린 돌진에 받혀서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리고 그런 방매의 위로 매서운 등짐장수들의 몰매가 떨어져 내렸다. 퍼버버벅!!! 방매는 몸을 한껏 말아 쥐고는 머리와 배를 보호했다. 어깨와 등, 팔 욱신거리지 않는 곳이 없었지만 방매의 눈에 붙은 불꽃은 쉬이 꺼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수년을 구르면서 채워진 독기는 이 정도의 폭력으로는 빠져나가지 않는다. 덥석. 방매는 발길질이 조금 뜸해진 틈을 타 손을 뻗어 짱돌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짱돌로 등짐장수들의 발등을 내리찍었다. 퍽! 퍽! 퍽!
“끄악!”
“으아악!!!”
등짐장수들이 펄쩍거리며 제자리에서 뛰었다. 그 사이에 방매는 몸을 일으키며 눈에 보이는 정강이까지 닥치는 대로 짱돌로 내리찍었다. 뻑! 뻑! 뻑!!
“으악!”
“으어억!!!”
덩치가 방매보다 한 배 반은 더 큰 것 같은 등짐장수들이 나방처럼 사방으로 펄쩍거리며 뛰었다. 방매는 씩 웃었다. 주르륵 그때 방매는 뜨끈한 것이 코 아래서 느껴지는 것을 알고는 손등으로 코 아래를 훔쳤다. 진득한 피가 묻어 나왔다. 코피가 난 것이다. 피를 본 방매의 눈이 해까닥 하고 돌았다.
“다 뒈졌어!!!!!”
봇짐장수로 수년을 살아온 방매다. 등짐장수들도 그렇듯, 방매 역시 자신의 몸을 가장 끔찍이 생각했다. 몸이 곧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매분구인 방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은 바로 얼굴이었다. 직접 가져온 물건들로 화장도 해 보이면서 대갓집 마님들과 아씨들의 마음을 혹하게 하기 위해서는 얼굴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지중지하고 아껴온 얼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코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