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 봇짐장수 방매(4)2021.07.10.
“문제 있지. 동군영, 너네 싫어해.”
문제가 있다면, 동군영이라는 조금만 이상하게 발음을 해도 낯 뜨거운 별명이 되어 버리는 이가 투귀대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검주 만우가 그의 머슴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도 주창에게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다.
‘천마신교의 교주가, 머슴에게 죽었다고?’
검주고 무림십좌라고는 하나 어쨌든 지금은 머슴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그 동군영이라는 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겠소.”
동군영이란 자는 무공을 익히지 않은 조선의 관리다. 그 조선의 관리가 자신들을 싫어하는 이유도 주창과 투귀대는 잘 알고 있었다. 낭황과 살풍대. 만우에 의해 모두 검하고혼이 된 그들 때문에 가문이 멸문지화를 입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같은 천마신교의 식구였기 때문에 주창이나 투귀대의 고수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아니라고 굳이 변명하지 않았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해도, 변명처럼 들릴 뿐이니까. 그리고 그때 마교에 연락을 하여 그 일이 일어나게 한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도 할 수 없었기도 했다.
“신교에 돌아가면 소교주의 명예를 걸고 반드시 익주동가의 재건을 위한 원조를 약속하겠소.”
“병 주고 약 주냐?”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은원이 흔한 무림에서 살아온 만우라면 모를까,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지나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동군영에게는 이들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주모자라고 할 수 있는 혈세천마를 만우가 죽였기에 마교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지는 않았지만, 동군영은 이들을 불편해 했다. 끼익
“어, 왔어 나리?”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동군영이 때맞춰 주막의 싸리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창이 그런 동군영을 보고는 슬쩍 주막 뒤편으로 사라졌다.
“현감은 좀 어때?”
“동래현감. 그냥 평범한 지방 관리네. 한양에서 온 감찰이라고 내 눈치를 어찌나 살피던지.”
“수상쩍었습니까?”
척사영이 동군영에게 말했다. 동군영은 피식 웃었다. 장계를 올리기 위해 동래관아에 갔다가 그곳에서 뇌물 쪽지를 발견했던 동군영이었다. 그래서 동래현감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고자 사흘 내내 동래관아에 나가 현감을 만나고 왔던 동군영이었다.
“아니오. 그냥 평범했소. 지극히도.”
동군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사람의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다고 하더니, 정말 그 말이 맞았다. 동래현감은 여러모로 봐도 그런 뇌물까지 보내 가면서 한양으로 올라가고 싶어 할 만한 깜냥이 되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여기 있고 싶겠어. 짠내 나고 한양만큼 번화한 저자도 없고.”
“왜상이 드나들고 행상인들이 많으니 북적하고 좋지 않겠는가?”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반문했다. 만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난 싫어. 검이 녹슬거든. 해풍을 맞으면 검이 너무 빨리 녹슬어.”
“참, 사람도. 그런데 그 작자는 왜 날 보고 숨는 겐가?”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픽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생각났다는 듯 동군영이 만우에게 말했다.
“작자? 누구?”
“그…… 마교의 소교주라는 작자.”
“아. 봤구나?”
“못 볼 수가 없지. 그렇게 시커먼 옷만 입고 다니는데.”
만우는 볼을 긁적였다. 주창을 떠올리면서 짓는 동군영의 표정에 별로 탐탁지 않다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눈치를 보는 놈들이 아닌데, 나리가 하도 눈치를 준 모양이야. 나리 눈에 안 띄겠다는데.”
“한양까지 같이는 가고?”
“그럴 모양이야.”
“……하아.”
동군영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동군영도 알고 있었다. 주창이나 투귀대의 고수들은 익주동가가 무너진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일이 그렇게 단순하던가? 사람인 이상, 그리고 감정이 있는 이상 마교와 관련된 이들이 전부 동군영에게는 목에 생선가시가 걸린 것처럼 턱 하고 걸리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란 것은 나도 알겠네. 하지만.”
동군영도 지난 한 달 간 그들과 함께 배를 타고,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서 부딪치면서 그들의 천성이 악하지 않다는 것은 이해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선하다는 것도 아니다. 만우와 그 주변에 있는 무인들을 보면서, 무인들이란 이들이 글을 배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동군영이다. 만우나 부여에서 만났던 정파라는 자들도 그럴진대 마교라는 자들은 어떻겠는가. 만우는 정파나 마교, 사파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 단지, 그들이 검과 권, 폭력과 공포를 휘두르는 자들이란 것을 마음에 담아 두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군영은 마교가 불편했다. 가문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을 떠나서, 그들이 마교란 이름 아래 자행했을 일들이 껄끄러웠다. 그래서 그들을 불편해 했고, 거리를 유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에서 만난 듯, 길에서 만난 듯 그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되네. 내가 무엇이라고 거슬린다 하여 피한다는 말인가.”
“호오…… 나리. 조금 어른이 됐는데?”
“처음부터 어른이었네만.”
“나리처럼 겁쟁이 어른은 본 적이 없어서.”
“거, 겁쟁이라니!”
발끈하는 동군영을 보며 만우가 낄낄거리며 놀렸다.
“아, 맞다. 척사영.”
만우가 척사영을 불렀다. 다 큰 아녀자이지만, 만우는 척사영의 이름을 거침없이 불렀다. 그리고 척사영 역시 그것을 편해 했다.
“방매랑 약속한 시간 안에 만나야 하니까, 다른 애들 미리 준비시켜 줘.”
“예, 은공. 감 소협와 필 소협, 슌스케 소협과 호선이면 되겠습니까?”
“응.”
“술(戌 : 저녁 5시~7시)시였지?”
“어. 그때쯤이면…….”
만우는 산등성이를 쳐다봤다. 뫼자라 불린 등짐장수 놈들이 이따가 열심히 기어올라야 할 산이었다.
“될 거야, 아마.”
만우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주막의 싸리문을 누군가 부서질 것처럼 열면서 뛰어 들어왔다.
“마, 만우 아저씨.”
김향과 드디어 호칭 정리를 한 만우다. 김향은 만우에게 오라버니라 부르겠다 했지만 만우가 그것을 거절했다. 그래도 만우의 은인인 어르신의 손녀인데, 머슴 출신인 자신이 오라버니 소리를 들을 수는 없다며 고집을 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향은 만우를 아저씨라 불렀다.
“왜?”
“그, 이상해요. 저기 저자에 있는 객주 맞죠? 임방이란 게 있는 곳.”
“응. 그런데?”
김향과 방매의 사이가 각별하다는 것은 일행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김향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도 없어요. 거기. 임방이라는 곳에요.”
“……뭐?”
만우가 몸을 돌리며 되물었다. 김향이 싸리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은 채로 만우에게 손짓을 했다.
“어서요. 가서 보면 확실하게 알 거 아니에요.”
“알았다. 같이 가자. 감찰 나리?”
“나도 같이 가겠네.”
“그럼 척사영은 아까 말해 놓은 거, 준비 부탁해.”
“예. 은공.”
***** 방매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런 방매를 뒤에서 지켜보던 접장이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지만, 이내 속으로 미소를 얼른 삼켰다. 감이 좋은 방매가 고개를 돌려 접장을 쳐다봤기 때문이다.
“출발 시간이 다른데요?”
“뭐, 원래 우리 일이란 게 그렇지 뭐. 딱 시간 맞춰 놓고 일하면 저기 관아에 있는 포졸이나 현감이제.”
접장은 너스레를 떨었다. 방매는 산길을 오르는 등짐장수들을 쳐다봤지만, 이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다 내 주머니로 들어올 돈인데.’
저 안에 실린 것이 무엇인지 방매는 볼 수 없었다. 이미 방매가 왔을 때 등짐에 다 결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매듭을 보니 오늘 막 준비를 한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지어 놓은 매듭이 분명했다. 뇌물은 이미 오래 전에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어휴. 무거워 보이는데. 안 무거워요?”
보부상들은 대부분 지역과 지역을 움직일 때 웬만해서는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호랑이가 튀어나올 수도 있고, 산적을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임방에 소속된 모든 등짐장수들이 길에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방매 혼자 이 장돌뱅이 사이에 낀 봇짐장수인 셈이다.
“안 무겁제. 저 정도로 무거우면 이 일 하지 말아야지.”
접장이 누런 이를 드러내 보이며 씩 웃었다. 방매는 뒤를 한 번 힐끗 돌아봤지만, 만우에게 지금 이 사실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무공을 익힌 것도 아니고, 전서구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흔적을 남겨 두고 올 만한 시간도 없었어.’
방매가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접장과 등짐장수들이 부리나케 출발을 한 덕분에, 방매는 흔적을 남겨 놓고 올 시간조차도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레 출발 시간을 앞당긴 접장과 등짐장수들이 수상쩍긴 했지만, 접장의 말대로 그걸 꼬투리 잡아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본래 등짐장수들은 전부 대중으로 움직였지, 정해진 시간에 칼 같이 움직이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지.’
이대로 가다가는 꼼짝없이 저 뇌물이 한양까지 가게 될 판이다. 그렇게 되면 방매 자신의 호주머니로 들어와야 할 저 뇌물들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빠져나가게 되는 셈이다. 방매는 어차피 나쁜 놈들끼리 주고받는 재물이라면 자신이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자.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고들.”
“벌써요?”
방매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이미 접장의 말에 등짐장수들은 등짐을 내려놓고들 있었다. 접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가는 길이 십 리, 이십 리 거리도 아닌데. 새재를 건너려면 부지런히 쉬어 줘야 돼.”
“흐음…….”
방매는 뭔가 께름칙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접장이 방매를 불렀다.
“방매. 방매. 여기 와서 일단 앉아 보드라고.”
“거기에요?”
“그래. 우리, 한양은 가본 적들이 별루 없어. 그래서 한양 설명 좀 해 줘. 한양제일매분구라믄서.”
접장은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퉁퉁 하고 두드렸다. 방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접장의 옆자리에 가서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까닥 그런 방매의 뒤로 접장이 다른 등짐장수들에게 눈짓을 했다. 동시에 흩어져 쉬는 척을 하고 있던 등짐장수들이 등짐 사이에서 낫이나 단검 같은 무기를 하나씩 조용히 꺼내들었다.
“그러니까 한양이 어떤 곳이냐면요.”
방매가 접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방매는 무슨 단어가 한양에 알맞은지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따악
“맞아. 혹시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어요?”
접장은 열심히 주변의 등짐장수들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등짐장수들이 숨을 죽이고 발소리를 죽인 채 방매의 등 뒤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콰악
그런데 그때, 방매가 손을 뻗어 접장의 가랑이 사이를 움켜쥐었다.
“으, 으아아아아악!!!!!”
“눈 뜨고 있어도 코 베어 가는 곳이라고. 그런데 말이야 접장 아재.”
접장의 비명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방매는 접장의 사타구니를 한 손으로 꽉 움켜쥔 채 고개를 돌려 뒤에서 무기를 들고 접근하던 등짐장수들을 쳐다봤다.
“아재는 거시기가 잘리겠는데?”
“으, 으악! 주, 죽여! 죽여어어어어!!!!”
“이런 썅!”
“계집년이!!!”
접장의 사타구니를 한 손으로 움켜쥔 방매를 향해 등짐장수들이 달려들었다. 방매는 달빛을 눈에 머금은 듯, 눈을 반짝이며 달려드는 등짐장수들을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