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 봇짐장수 방매(3)2021.07.06.
“뻔뻔한 게 한양 제일이었던 모양이야.”
“저 정도는 돼야 한양 제일이 되는 모양이야.”
“과부 제조기라니. 끔찍하기도 해라.”
다른 장돌뱅이들이 수군거렸다. 하지만 대부분 접장이 방매 앞에서 쩔쩔매는 게 웃긴 모양이었다. 접장이 고개를 돌려 장돌뱅이들을 째려보자 그들이 일어나 분분히 흩어졌다.
“좋아. 방 주지. 하나면 되지?”
“남녀가 유별한데. 두 개 줘요.”
“보부상에 남녀가 어디 있어. 어차피 같이 노숙할 텐데. 그냥 같이 써.”
“…….”
어차피 한양까지 이들과 함께할 것도 아니다. 뇌물이 어떤 건지 확인이 되는 순간, 털어 버릴 생각이었기 때문에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그때 접장의 목소리가 확 뒤바뀌었다. 방매의 눈이 반짝였다. 본능적으로 뇌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것임을 직감한 것이다.
“소란 일으키거나 문제 일으키면…… 알지?”
장돌뱅이들은 거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몸이 유일한 재산이며 두 발로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별의별 꼴을 다 겪기 때문이다.
“소란이나 문제 일으킬 일이 뭐가 있겠어요.”
“다른 사람의 등짐에 대해서 관심 가지지 마. 끼어든 건 너란 걸 명심하고 눈에 안 거슬리게 해. 확 그냥 버리고 갈 수도 있으니까.”
“아, 알았다고요.”
방매가 신경질을 냈지만 눈을 빛냈다. 짐에 관심을 가지지 말란 것은 괜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있지만, 뇌물이란 것을 들키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 사흘 뒤에 봐요.”
“그래. 늦어도 놓고 갈 거야.”
“거 참. 텃세 엄청 부리시네. 알았어요.”
방매가 그렇게 말하고는 임방의 문을 열고 나왔다. 방매가 사라진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접장이 목소리를 낮춰서는 옆에 있는 장돌뱅이에게 말했다.
“걔 맞지? 동래현감 관아에 들른 양반이랑 같은 주막 쓰는 애.”
“칼 찬 놈들도 여럿 있었구먼요.”
접장이 차갑게 웃었다.
“냄새 맡았으면, 승냥이들이 모여들어야지.”
*****
“크읍.”
쿠르릉!!!! 주창 주변으로 자욱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런 주창의 기세에, 척사영 역시 동조하듯 기세를 끌어올렸다. 주창의 마련검과 척사영의 좌검우도가 화경다운 기세를 내뿜었는데, 그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고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까닥.
그들의 기세가 향하는 곳에 바로 만우가 있었다. 두 화경의 고수가 뿜어내는 막대한 기세에 주변의 수풀들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듯 죽어 나갔지만, 만우는 눈썹 한 번 찌푸리지 않고 이룡검을 까닥였다.
[우어어엉!]
[먹으면 안 된다. 특히 저건 먹으면 안 돼.]
불가사리가 두 화경 고수의 날붙이를 보면서 식욕을 드러냈다. 소서노는 그런 불가사리를 기겁하면서 말렸다. 특히나, 불가사리가 마련검을 먹게 하면 안 된다.
[불가사리가 저 검을 먹게 하면 안 돼.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찬 저 검.]
소서노는 주창의 마련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만우의 귓가에 떽떽거렸다. 마련검(魔鍊劍)은 쇳물을 녹일 때부터 마교의 최고 보물인 마정(魔精)을 녹여 만든 검이다. 검 자체도 마기를 다룰 줄 아는 대장장이가 만들었기 때문에 마공을 펼치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신검(神劍)으로 알려져 있었다. 문제는 불가사리가 성수(聖獸)라는 것이다.
[불가사리가 마기에 물들면 끔찍한 마물이 태어날 것이야. 그러니…….]
“아, 나도 알아! 시끄러! 지금 대련하는 거 안 보여?”
슈가가가각!!!! 만우가 채찍처럼 휘어지며 뿌려진 마기를 이룡검을 들어 올려 비스듬하게 흘려보냈다. 콰가가강!!!! 숲의 일부분이 터져 나가며 그곳에 있던 땅거죽이 뒤집히고 나무들이 흉하게 부서져 나갔다. 만우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야! 그렇게 무식하게 힘쓰지 말고, 딱 적당한 만큼만 쓰라고!”
다른 이들에게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초식으로 보였을 테지만 만우에게는 아니었다. 주창은 천마검의 대성을 이루지 못해 과도하게 힘을 쓰는 경향이 있었다.
“알겠소!”
번쩍!!! 주창의 마련검에서 다시 마기가 번쩍였다. 만우는 가벼운 보법으로 사방을 휩쓰는 검기의 한가운데를 활보했다. 그럼에도 검기는 만우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아니 뭘 공격하는 거야. 그냥 허공에 내공 낭비하는 거야? 정확하게 노리고 초식을 쓰라니까. 이렇게.”
훅!!! 만우의 소맷자락이 확 하고 부풀어 올랐다. 그와 동시에 주창이 기겁하면서 천마보를 밟으며 뒤로 물러섰다. 갑자기 만우의 주먹이 확대되는 것처럼 확 하고 커지더니 주창의 얼굴로 쇄도했기 때문이다. 팟.
“자. 한 번 죽었다?”
주창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보를 이용해 뒤로 물러섰음에도 주먹이 멀어지지 않고 기어코 주창의 눈앞까지 도달했다가 휙 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창의 앞머리가 살랑이며 휘날렸다.
‘정말…… 죽었겠군.’
주창은 쓰게 웃었다. 만우와 대련하는 중이 아니었다면, 방금 일권에 피하지도 못하고 머리가 부서졌을 것이다.
‘정말 현경이란 말인가.’
주창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사람이 강해지는 속도에서 적당한 게 있어야지, 이건 뭐 만우를 쫓아가기도 전에 만우가 훌쩍 다음 경지로 넘어가 버렸다. 현경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검도 아니고 주먹 하나로 간단하게 제압했다는 것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백두(白頭).”
척사영이 만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울돌(鬱陶).”
척사영의 오른손과 왼손에서 각기 다른 초식이 뿜어져 나왔다. 곡산척가의 독문무공으로 검과 도로 각기 펼쳐야 하는 무공이 한 명에게서 펼쳐진 것이다. 그건 마치 두 명과 싸우는 듯한 착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조선팔도의 산세와 풍광을 담아 만들었다는 척준경의 곡산검법과 도법처럼, 척사영의 몸에서 웅혼한 기세가 뿜어졌다. 쿠과가강!!!! 조선의 영산(靈山) 중 하나인 백두의 삼층 산세를 본떠 만든 백두 초식이 만우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산세가 험준하고 기후가 거칠기로 소문난 백두의 봉우리처럼 척준경의 좌검이 거칠게 검격을 뿌려댔다. 동시에 험한 물길로 소문난 전라 진도 울돌목의 물길처럼 척사영의 우수(右手)에 들린 도가 도기의 흐름으로 만우를 옭아맸다.
“아니, 대체 너희 둘 다 왜 사람이 아니라 공간에 집착을 하는 거야?”
하지만 만우는 산봉우리처럼 휘몰아치는 검기와 거센 물길처럼 소용돌이치는 도기 속에서도 혀를 끌끌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도 못 쫓아가는데, 공간에 욕심을 낸다고? 왜, 내공이 많아서?”
콰가가강!!!! 척사영은 이를 악물었다. 분명 만우를 향해 검과 도를 휘두르고 있었지만 마지 허상을 쫓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검과 도를 휘둘러도 척사영의 검과 도가 닿는 곳은 만우의 뒤밖에 없었다. 단 하나도 만우를 앞지르거나 만우를 향해 검과 도가 가질 않았다. 그렇다고 만우가 빨리 움직이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산책을 하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척사영의 검과 도는 만우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더 큰 벽이 됐어.’
척사영은 만우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여실하게 느꼈다. 안 그래도 높아 보이던 눈앞의 산이 끝이 아니라 사실 그 뒤의 구름 속에 가려진 더 높은 산봉우리를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파샤샤샥!!!! 척사영은 만우가 검 끝을 살살 흔들어 척사영이 있는 힘껏 만들어 낸 초식을 전부 파훼하는 것을 보고는 손을 내렸다. 만우와는 둘이 덤벼도 대련 비슷한 것도 될 수가 없었다. 일방적인 지도면 모를까.
“자. 그러면.”
만우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은 주창과 척사영에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둘 모두 터덜터덜 힘 빠진 걸음으로 만우 앞에 섰다.
“둘 다 비슷한 문제네. 그러니까 간단해.”
만우는 이룡검을 들어 보였다.
“기초부터 다시 해. 기초부터.”
“기초라면…… 베기, 휘두르기, 찌르기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뭐래. 그게 기초야? 준비 운동이지. 당연히 완벽하게 끝내야 하는 기초 중에 기초.”
베기와 휘두르기, 찌르기 같은 것은 만우에게는 기초에도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우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차고 넘쳤다.
“자. 그럼 여기서 문제. 그런 준비 운동을 왜 하는 걸까?”
“…….”
“…….”
만우의 질문에 척사영과 주창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유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간단하잖아. 그런 반복 훈련으로 검을 휘두르는 감을 익히는 이유는 하나야. 내가 베려는 것, 내가 찌르려는 것을 정확하게 베고 찌르기 위해서지.”
“…….”
“그 다음에 하는 게 안법 수련이고.”
검을 휘두르는 손과 팔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눈이다. 눈의 수련을 반드시 동반해야만 검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아니, 검을 백날 휘둘러도 내가 휘두르거나 찌르려고 하는 곳을 정확하게 못 노리면 말짱 꽝이잖아.”
만우는 쯧쯧 하고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러니까, 너희 둘은 손에 들린 걸로 정확히 하고자 하는 목표를 못 노리겠으니까 무식하게 내공 밀어 넣어서 공간 자체를 쓸어버리는 거잖아.”
“아…….”
“하지만 은공께서 기묘한 경신법을 쓰신 게 아닙니까?”
주창은 뭔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척사영은 만우에게 질문을 했다. 이 차이가 주창과 척사영의 실력 차였다. 주창은 만우와의 대련에서 이걸 이해했지만, 척사영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했다.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간극인 것이다.
“후발선제(後發先制).”
만우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들은 척사영의 눈이 커졌다. 이제야 그녀도 이해를 한 것이다. 만우는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니까 연습부터 다시 해. 너네 손에 들린 거, 휘둘러서 원하는데 가닿게 하는 거. 솔방울을 매달아 놓고 하건 뭘 하건.”
만우는 쯧 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공 없이. 어느 자세에서건, 움직이면서건 쌀알을 베는 순간 다시 와. 그러면 다른 길이 보일 테니까.”
“감사합니다, 대협.”
“감사합니다, 은공.”
“됐어. 공짜로 해주는 것도 아니잖아?”
“아닙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저 역시.”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둘은 표정이 밝았다. 그들이 언제 자신들보다 월등한 고수에게 이런 지도를 받아볼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만우의 가르침은 그들에게 천금을 준다 하더라도 바꾸지 않을 것들이었다.
“야. 너.”
만우는 주창을 불렀다. 주창이 고개를 들어 만우를 쳐다봤다.
“한양까지 쫓아올 거야? 진짜?”
“그러고자 하오만. 무슨 문제 있소?”
주창은 이상하게 만우에게 친근감을 드러냈다. 만우 때문에 자신을 낳은 혈세천마의 목숨을 제 손으로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창은 마치 배알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그것에 투귀대 고수들이 우려를 표했지만, 주창은 그들에게 딱 한 마디만을 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또한 주창은 파천서생 마일에게도 신신당부했다.
[검주가 무림으로 다시 돌아올 경우에 대해서 모든 가능한 대책을 수립해 놓아라.]
왜냐고 묻는 마일에게 주창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는 돌아온다.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과 주변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니.]
주창은 확신했다. 본래 힘을 가진 사람의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힘을 가진 자는 오히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세상 일이 풀리지 않는다. 그것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혈세천마가 그렇게 일패에 집착을 하다가 결국 허무하게 죽었듯이 똑같은 운명이 만우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 운명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선 만우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너희들도. 가만히 있지 말고 만우의 수하들과 친해져라. 그래서 만우에 대한 모든 것을 모아라. 이건 소교주로서의 명령이다.]
그 때문에 투귀대의 고수들까지 만우의 수하들과 어울려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