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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2. 봇짐장수 방매(2) (262/400)

262. 봇짐장수 방매(2)2021.07.03.

16553254522541.jpg“뇌물? 진짜? 그래서 뫼자를 찾는 거야?”

방매의 눈이 반짝였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래현감의 방 안에서 발견된 쪽지이니 틀릴 리는 없다.

16553254522546.jpg“사흘 뒤. 비단 열 필. 호피 하나. 왜에서 들여온 은병 열 개. 거기에 다른 잡다한 것들까지.”

16553254522541.jpg“지, 진짜?”

16553254522546.jpg“한양의 이조에 보내는 뇌물. 동래현감이 한양으로 가고 싶은 것 같다고 감찰 나리가 그러던데…….”

꿀꺽 만우는 방매가 침을 꿀꺽 살피는 것을 쳐다봤다.

16553254522546.jpg“눈 먼 재물이잖아. 그러니까, 너한테 선물로 주면 좋아하겠다 싶었지. 감찰 나리야 너가 옹주마마니까…….”

16553254522541.jpg“끙…….”

방매는 객주를 한 번 더 쳐다봤다. 부상단의 장돌뱅이들은 돈이 된다면 이런 일도 비일비재로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사정이라는 것이 있고, 움직여야만 재물을 벌 수 있으니 이런 은밀한 부탁에도 재물을 벌어들이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끌린다는 것을 방매는 부정할 수 없었다.

16553254522546.jpg“동지를 곤란에 빠뜨리게 하는 게 걱정이 된다면, 안 할게. 뭐, 사실 재물이야 임금한테 뜯어내면 되거든.”

16553254522541.jpg“이, 임금님한테?”

16553254522546.jpg“어. 달라면 줄걸?”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라고 중얼거리긴 했지만 만우라면 태연하게 임금을 찾아가 돈을 달라고 할 것이다. 그깟 재물에 연연할 정도로 임금의 혜안이 어둡다면, 뭐 그건 조선의 운명이 거기까지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몇 번 만나본 임금은 그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았다.

16553254522541.jpg“뇌물…… 진짜 뇌물인 거지?”

16553254522546.jpg“어. 내가 직접 봤거든. 감찰 나리도 봤고.”

16553254522541.jpg“…….”

고민을 하던 방매가 고개를 번쩍 들어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54522541.jpg“첫째. 망언을 하지 말라. 둘째.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라.”

16553254522546.jpg“뭐라는 거야?”

16553254522541.jpg“기다려봐. 셋째. 음란한 행위를 하지 말라. 넷째. 도적질을 하지 말라.”

방매는 네 가지를 주르륵 말하고는 만우를 쳐다봤다.

16553254522541.jpg“이게 부상단 강령이거든.”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방매는 짧게 심호흡을 했다. 강령이 있고, 그걸 어긴 것이 발고되어 사실로 밝혀지면 그 등짐장수는 채장을 몰수당하고 영원히 등짐장수를 할 수 없게 된다.

16553254522541.jpg“둘째랑 넷째, 다 어긴 건데.”

돈을 받고 뇌물을 나른다는 것은 둘째와 넷째 강령을 모두 위반하는 일이다.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54522541.jpg“그러니까 난, 동지를 고발하는 게 아니야. 죄인에게 죄가 있다고 알리는 거지. 그러니 죄인이 등짐장수인 척을 하는 거니까…….”

16553254522546.jpg“좋아. 그럼 들어가서 아작을 내버리고…….”

만우가 한 말에 방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54522541.jpg“뇌물이 우리 손에 들어와야지. 그게 아니면 나만 괜히 부상단에 찍히게 될 테니까…….”

방매는 객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만우가 그런 방매 뒤로 따라붙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16553254522546.jpg“그래서?”

16553254522541.jpg“간단하잖아. 사흘 뒤라면서. 뇌물을 옮기는 게.”

16553254522546.jpg“그렇지.”

16553254522541.jpg“나도 같이 옮기지 뭐.”

16553254522546.jpg“……너도?”

16553254522541.jpg“한 손이라도 늘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아.”

방매가 짓궂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턱을 치켜들었다.

16553254522541.jpg“그리고 보부상들 사이에서, 나 꽤 유명한 여자야.”

  *****

16553254522541.jpg“아저씨들?”

방매가 임방의 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었다. 문을 열자 문밖에서도 들리던 구수한 가락이 훨씬 더 크게 들렸다. 그 때문에 문이 열렸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방매는 아예 안으로 들어갔다. 객주 한 켠을 쓰는 임방 안은 등짐장수들의 짐이 빼곡했다. 안에 장식이라고 불릴 만한 것도 거의 없었고 홀애비 냄새가 가득했다. 여기저기 술병과 음식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니, 거하게 한잔하면서 장돌뱅이의 피로를 풀고 있었던 모양이다.

16553254522541.jpg“음음.”

방매는 그런 등짐장수들을 보고는 목을 가다듬었다.

16553254522541.jpg“아저씨드으으으을!!!!!”

방매가 배에 힘을 딱 주고, 목에 힘을 딱 주면서 고함을 내지르자 순간적으로 방매의 목소리가 여러 부상들이 내는 목소리를 덮었다. 어마어마한 목청이 아닐 수 없었다.

16553254608486.jpg“엉?”

16553254608486.jpg“뭐, 뭐야?”

16553254608486.jpg“계집?”

깜짝 놀란 부상들이 뒤를 돌아봤다가 방매를 보고는 한 번 더 놀랬다. 여자 부상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여자들은 부상이 아니라 보상이라고 해서, 봇짐을 메고 다니며 장거리가 아니라 한 지역 내에서만 주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방매도 딱 그 보상이었다. 부상이 압도적으로 더 많아 부상청이니 뭐니 했지만, 보상도 분명 부상과 갈래를 같이 하는 장사치였다.

16553254608486.jpg“아이야.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들어온 거니?”

16553254608486.jpg“무서운 아저씨들이 어흥하고 잡아먹는다!!!!”

방매는 자신을 보고 농을 걸어오는 짓궂은 부상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웃통을 까고 노는데, 참 봐줄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54522541.jpg‘만우랑 비교하면…….’

조각 같은 만우의 몸을 떠올리면 정말 눈이 아까울 정도의 몸들이었다. 방매가 가까이 다가온 부상의 다리를 번개 같은 호미걸이로 턱하고 걸어 다리를 쫙 찢어주었다.

16553254608486.jpg“으악!”

우당탕!! 갑자기 과하게 찢어진 사타구니 때문에 부상이 바닥을 굴렀다. 방매는 곧바로 품(品) 자를 밟으며 자신을 애 취급했던 부상을 향해 발차기를 했다. 파앗!!! 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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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코앞에 떡하니 와서 멈춘 발등에 부상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저것에 그냥 얻어맞았다가는 그냥 하루 이틀 누워 있는 정도로는 아니겠구나란 생각이 든 것이다.

16553254522541.jpg“아저씨들. 여자한테 맞아본 적 있어?”

방매가 부상들을 기세로 찍어누르면서 말했다. 그런 방매에게서 자신들 못지 않은 독기 같은 것을 본 부상들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기세와 독기라면 여자나 남자나 웬만하면 그냥 피하는 것이 더 나았다.

16553254608486.jpg“우리가 사람을 잘못 봤군. 그래도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와서 행패를…….”

임방의 우두머리, 즉 접장(接長)이 방매에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 방매가 자신의 봇짐을 뒤적거렸다.

16553254608486.jpg“……채장?”

채장을 본 접장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다. 봇짐장수가 임방에 찾아왔으니, 사람을 잘못 본 장돌뱅이들이 먼저 잘못한 일이 되버린 것이다.

16553254608486.jpg“한, 한양제일매분구?”

방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알아본 장돌뱅이를 쳐다봤다. 장돌뱅이가 방매의 눈길에 자신도 모르게 사타구니를 슬쩍 오므리고는 손으로 가렸다.

16553254522541.jpg“날 아네?”

방매가 초승달처럼 휜 눈으로 나긋하게 말했다. 그런데 묘하게 그 나긋한 목소리가 더 무서웠다. 방매를 알아본 장돌뱅이가 헤헤하고 웃었는데 이가 딱딱거리며 부딪쳤다.

16553254608486.jpg“아, 알다마다. 한양에서 가장 잘나가는 매분구인데.”

16553254608486.jpg“매분구 방매?”

16553254608486.jpg“그게 걔야?”

16553254608486.jpg“한양에 있어야 할 애가 왜 여기 있어?”

장돌뱅이들이 시끄러워졌다. 한양제일매분구라 불리는 방매의 이름이 그만큼 보부상 사이에서는 유명하다는 소리였다. 특히나 전국 팔도를 떠도는 부상들 사이에서는 서로 정보 교류가 잦기 때문에 더 유명했다.

16553254608486.jpg“아따, 예쁘장허다.”

16553254608486.jpg“말씀 가려하시오 성님. 쟤, 보통 독헌 애가 아니에요. 쟤한테 이쁘다고 지분대다가 여그, 여그가 아작난 놈들이 한둘이 아닌디…….”

으으, 하는 소리와 함께 장돌뱅이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방매를 알아본 장돌뱅이가 제일 심했다. 딱 보면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을 해 본 장돌뱅이였기 때문이다. 방매가 씩 웃으며 접장을 쳐다봤다. 접장은 여전히 똥 씹은 표정이었다. 뭐라고 한마디 하고 싶은데, 이쪽에서 먼저 잘한 것이 하나도 없어 뭐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54608486.jpg“그래. 왜 왔는가?”

접장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포기하고는 방매에게 물었다. 방매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54522541.jpg“아니, 봇짐장수가 임방 오는 게 이상한 일이에요? 마치 못 올 곳 왔다는 것처럼 말씀하시네.”

16553254608486.jpg“봇짐장수, 그것도 한양제일매분구가 그냥 여기 멀고 먼 동래까지 오지는 않았을 테고. 거기에 임방까지 들렀다면 목적이 있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이런 주군(州郡)이나 현에 자리한 임방의 우두머리를 접장이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각 도의 도반수, 도접장이 있고 그 위로는 오도도반수 같은 최고 직책이 있다. 대개 이런 접장, 도반수, 도접장은 부상단에 소속된 이들의 거수로 결정이 된다. 누군가 임명을 해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상단 소속 보부상들의 결정으로 다수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접장이나 도접장, 도반수가 되기 위해서는 능력이 출중하고 경험이 많아야 하며 인덕이 두터워야 됐다.

16553254522541.jpg“역시, 접장이셔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기도 하셔라.”

동래현 임방의 접장도 다른 이들과 비교되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통찰력인 것이다. 방매는 배시시 웃어 보이고는 말했다.

16553254522541.jpg“자, 여기서 물어볼게요. 뫼자. 다들 아시죠?”

16553254608486.jpg“그걸 모르는 장돌뱅이도 있는가.”

접장이 방매에게 되물었다. 방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부상 중에 뫼자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또한 기본적으로 영남에서 한양이나 호남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을 넘어야 한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영남으로 들어온 모든 보부상들은 뫼자라고 보면 된다.

16553254522541.jpg“나도 좀 껴줘요. 뫼자에 껴서 문경새재 넘읍시다.”

문경새재는 관도다. 하늘재는 관도로 다닐 수 없는 이들이 다니는 길이다. 올 때야 하늘재로 왔지만 갈 때는 당당하게 문경새재로 나가도 된다. 보부상들은 관에서 장사를 허락해준 관허상인이기 때문이다.

16553254608486.jpg“사흘 후에 있기는 헌데…….”

접장이 날카로운 눈으로 방매를 아래위로 훑었다.

16553254608486.jpg“거기, 임자를 알아본 장돌뱅이 놈이 있기는 하지만, 한양 봇짐장수가 왜 동래현까지 왔는지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접장은 집요했다. 한양에서 활동한다고 알려진 방매가 갑자기 동래현까지 내려온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계속해서 물어봤기 때문이다. 방매는 어깨를 으쓱했다. 봇짐장수와 등짐장수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봇짐장수들은 부피가 작고 값비싼 것들을 주로 가지고 다니면서 팔고, 등짐장수들은 부피가 큰 곡식이나 가축, 면포 등을 운반한다. 문제는 봇짐장수들이 상대하는 것이 높으신 양반들이 더 많기 때문에 항상 봇짐장수로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새로운 것을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16553254522541.jpg“아저씨. 등짐장수 출신이죠?”

방매는 접장의 두꺼운 목과 까맣게 탄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유추하고는 말했다. 그러자 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54608486.jpg“그렇고만.”

16553254522541.jpg“에이. 그러니까 잘 모르지. 나, 왜국에 다녀왔어요. 왜국.”

16553254608486.jpg“왜국?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단 말인가?”

16553254522541.jpg“저기 한양에 높으신 대감님 집에 계신 마님이 왜국에서 나는게 꼭 필요하다고 하시지 뭐에요.”

16553254608486.jpg“그래서 동래현까지 왔다?”

16553254522541.jpg“보빙사단 아시죠? 거기에 껴서 다녀왔어요. 에이, 그런데 하필이면 갔을 때 왜국에서 난리가 나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 구해왔지 뭐예요.”

방매는 입술에 침 한 번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다른 장돌뱅이들은 다들 믿는 눈치였다. 방매는 확실히 쐐기를 박기로 했다.

16553254522541.jpg“자. 이게 내가 왜국을 다녀왔다는 증거예요. 이거, 왜국에서만 나는 거 아시죠?”

방매가 손에 들린 은 공예품을 내려놓았다. 한양에 가져가면 비싸게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교토 저자에서 산 공예품이었다. 조선에는 이 정도 수준으로 금속을 이용해 공예품을 만들지 않기 때문에 장돌뱅이들의 눈이 커졌다. 그들은 조선팔도를 다니면서 온갖 물건을 본다. 그런 그들의 눈에 방매가 꺼내놓은 것은 분명 왜까지 다녀왔다는 증거였다.

16553254608486.jpg“좋아. 근데 혼자야?”

16553254522541.jpg“아니요. 한 명 더 있어요. 그런데 등짐장수는 아니고…… 역참에서 일하던 역졸이래요.”

16553254608486.jpg“……역졸이 왜 역참에 있지 않고?”

16553254522541.jpg“보빙사와 함께 내려온 역졸인데, 시키는 일 하러 갔다가 자기만 빼고 다 올라갔대요. 그래서 한양으로 가야 한다고 하던데요.”

접장은 방매가 이렇게까지 대답하자 결국 의심을 풀 수밖에 없었다. 방매의 증거물도 그렇고 방매의 말에 딱히 의심을 해야 할 구석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54608486.jpg“좋아. 사흘 뒤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이 객주에서 묵든지 해.”

16553254522541.jpg“알았어요. 뭐 방도 주면 좋죠.”

방매는 뻔뻔하게 방을 달라고 요구했다. 임방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보부상들에게 이렇게 쉬어갈 곳을 제공하는 것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매의 요구가 해선 안 될 것은 아니지만, 뻔뻔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에 접장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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