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봇짐장수 방매(1)2021.06.29.
“경주랑 상주에 가면 큰 부상단(負商團)도 있어. 여기도 작긴 하지만 왜에서 물건이 들어오는 곳이기 때문에 작게 있기는 할걸?”
“그걸 네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만우가 방매에게 물었다. 방매는 그런 만우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꼬리를 씩 끌어올렸다.
“왜? 만우 너도 모르는 일인거지. 그치?”
“……아니.”
묘하게 그게 만우의 신경을 긁었기 때문에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웬지 여기서 모른다고 하기가 싫어졌기 때문이다. 방매는 빙글빙글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만우의 팔을 콕 하고 찔렀다.
“에이. 맞잖아. 응? 지금 그거 알아보려고 미친듯이들 돌아다닌 거 아니야?”
“아니야. 그냥 네가 이런 쓸모도 있구나 해서…….”
“아하. 그치? 역시 내가 말 안 해줬으면 몰랐던 거지? 응? 응? 응?”
방매가 만우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깐족거렸다. 만우는 끄응 하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고개를 돌린 만우의 눈이 문형일과 딱 마주쳤다.
“뭘 봐.”
문형일의 눈이 곡선을 씩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만우의 눈이 도끼눈처럼 커졌다. 문형일은 그런 만우의 눈을 보고는 기겁해서는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대장.”
“왜. 보기 좋구만. 대장님. 그런데 방매는 교육 같은 거 안 시킵니까? 저렇게 까부는데?”
감령이 눈치 없이 쌱 끼어들었다. 문형일은 옳다구나하고 쌱 하고 뒤로 빠졌다. 만우의 눈이 감령에게로 돌아갔다.
“뭐?”
그 와중에도 방매는 계속해서 만우 옆에서 깐족거렸다. 감령은 그런 방매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니, 저렇게 깐족대고 까부는데 항상 방매는…….”
퉁. 따악-!
감령의 눈이 회까닥하고 돌아갔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감령이 그대로 뒤로 넘어간 것이다. 투귀대 고수들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감령이 눈치가 없다고 하지만, 초절정 고수다. 그런데 그 초절정 고수가 미처 눈치도 채기 전에 만우가 날린 지풍이 감령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때린 것이다. 그 때문에 감령은 단 한 방, 단 한 방에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어? 왜 저래? 감령! 감령! 일어나!”
방매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눈치를 채지 못했다. 만우는 눈을 희번득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쳐다봤다.
“할 말 있으면 해봐.”
“아, 아닙니다. 그, 그러니까 아! 부상단! 부상단을 찾아볼까요?”
“찾아보고 오겠습니다!”
“우리도 돕겠소.”
“가자. 가자고.”
다들 만우의 눈을 피하더니 부상단을 찾아보겠다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만우는 모두가 사라지자 혀를 쯧하고 한 번 찼다.
“만우! 감령이 이상해. 많이 힘들었나 봐!”
방매만이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고 기절한 감령을 손가락으로 콕콕하고 찔렀다. 만우는 그런 감령을 보면서 버럭 소리질렀다.
“그냥 내비둬! 콱 죽어버리게!”
“왜 소리를 질러!!!”
방매가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주먹을 부들부들 떨다가 휙하고 몸을 돌렸다.
“에이. 삐졌어? 내가 모른다고 놀려서? 응? 응? 삐졌지? 삐졌지?”
“안 삐졌어!!!”
“그런데 있잖아.”
만우는 옆에서 깐족거리는 방매를 흘겨봤다. 방매는 키득거리면서 일행들이 사라진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들 어딜 가는거야?”
“어딜 가긴. 뫼자라는 놈들, 보부상이라면서.”
“그러니까. 어디 가는거냐고. 뫼자 찾으러 간다면서.”
“그……어?”
무언가를 깨달은 만우가 고개를 휙하고 돌려 방매를 쳐다봤다. 방매는 씩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기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있잖아. 보부상. 나, 이래뵈도 채장도 있는 여자야.”
만우가 눈을 크게 치켜떴다. ***** 동래현 임방(任房). 임방은 보부상들이 모이는 거점으로 전국의 현, 군 단위에 퍼져있었다. 임방의 거점은 개성의 발가산(發佳山)에 있었다. 그들은 비록 신분은 미천하였으나, 보부상단을 세워 전국의 행상인을 규합하여 조선 건국에 공로를 세운 이들로 그들 중 우두머리인 백달원은 이성계의 목숨을 구한 공로를 인정 받아 건국 후 전국 주군(州郡)에 임방을 설치했다. 또한 백달원은 부상청(負商廳)을 세워 최초의 오도도반수(五道都班首)에 오르기까지 했다. 물론 고려, 그보다 전에도 행상인들은 있었으나 그들을 위한 관청을 세우고 전국 단위로 시설을 설치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봇짐장수나 등짐장수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관아에 등록을 해서 채장이라 불리는 신분증도 발급을 받아야 했고 세금도 내야했다. 게다가 워낙 조직력이 좋아 그들을 잘못 건드리면 조직적으로 복수에 나섰기 때문에 이 사실을 모르면 몰라도 아는 산적들은 보부상들은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여기야.”
“객주잖아.”
“응. 뭘 바랐어?”
“음…….”
만우는 생각보다 작은 동래현 임방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임방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객주를 빌려 쓰는 모양이었다.
“어차피 돌아다니는게 인생인 보부상들이니까.”
하긴, 보부상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굳이 임방이 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한 곳에 오래 머무는 일 없이 일이 생기면 곧바로 다른 곳으로 봇짐과 등짐을 메고 떠나는 것이 보부상들이다.
“동래현은 작기도 하니까. 하지만 경주나 상주에만 가도 임방이 엄청 커.”
“그래?”
“개성에 있는 임방엔 나도 가보지 않았는데, 거긴 궁궐만큼 크대. 99칸도 넘는다고 하던데.”
방매는 자신의 분야이기 때문인지 신이 나서는 말을 했다.
“그런데 왜 보부상들이 뫼자(山者)라는거야?”
“아. 그거?”
방매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부상들 사이에서는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종의 별명이었기 때문이다.
“보부상에게는 시간이 생명이거든. 보통 계약을 할 때 이렇게 한단 말이지.”
방매는 만우에게 손가락을 들어가며 설명했다.
“여기서 여기까지, 달포 이내로 뭘 옮겨주면 얼마를 준다. 그런데.”
방매는 검지와 엄지를 비볐다.
“얼만큼 시간을 줄이면, 돈을 더 준다. 이러면 눈이 더 뒤집혀 안 뒤집혀.”
“뒤집히겠지.”
만우는 방매의 말에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런데 관도는 꼬불꼬불하잖아. 직선으로 가면 빠른데. 그래서…….”
“산을 넘어간다?”
“여러 명이서 한 조를 짜서. 그래서 이런 곳에 임방이 있는거야. 같이 갈 사람을 찾는거지. 산을 넘으면서 직선으로 가면 훨씬 더 빠르니까.”
“호랑이나 산적들에게서도 안전하고.”
“산적들이야…… 뭐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우릴 건드리겠어?”
호환(虎患) 때문이라는 소리다. 뭐, 가끔 미친 산적이 있을수도 있고. 어쨌든 산도 비켜가지 않고 가로지른다고 해서 스스로를 뫼자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런 곳이 전국에 퍼져있다고? 조선 전역에?”
“응. 조선 전체에.”
방매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등짐장수나 봇짐장수가 되어 채장을 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믿을만한 사람이라 판단되지 않으면 각 임방의 책임자인 도접장이 추천조차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호오. 그래?”
만우는 눈을 반짝였다. 부상단에 대해서 듣고나니, 이들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조선은 관도가 있으나 그 관도가 중요한 구간이 아니라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산이 많기 때문인데, 그 때문에 물류의 이동이 굉장히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부상단이고, 임방이라는 것이다. 사람의 발을 통해서 나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전국에 임방을 두고 활동하는 전국적인 조직이라면, 아주 딱 적합한 사용처가 이들에게는 있었다.
‘정보.’
개방과 하오문이 왜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 단체겠는가. 무공으로만 따지면 개방과 하오문을 가볍게 넘을 수 있는 문파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파들이 별도로 정보 조직을 운용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인원과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정보란 것을 취합하여 구분해내기 위해서는 일단 기본적으로 전국에서 정보를 물어와야 한다. 하지만 개방이나 하오문보다 큰 문파는 중원에 존재하지 않았다. 개방의 거지들은 십만이 넘었고, 하오문에 소속된 뒷골목 인생들은 십만 정도가 아니라 수십 만도 넘었다. 그리고 개방의 분타와 하오문의 지부는 중원 전체에 반드시 존재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그곳에 사람들이 모이면 개방의 거지와 하오문도는 반드시 존재했다. 하지만 중원에서 일개 세력으로 가장 크다고 하는 마교도 모든 문도를 합쳐봤자 일만이 조금 넘는다. 마교가 아닌 구파나 오대세가만 해도 진짜 크다고 하는 규모가 삼천 명 남짓이다. 그러니 모을 수 있는 정보의 양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에는 개방과 하오문이 없는 대신, 부상단이 있었다. 그들은 전국팔도를 발로 뛰어다니면서 사람이 살아 물건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스며든다. 물건을 교환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부상단의 존재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정보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누가 지금은 우두머린데?”
“우두머리가 아니라 도접장이나 도반수라고 부르고. 오도도반수까지 오른 백달원 어르신이 아직까지는 계시지.”
“흐음…….”
만우는 재밌겠다는 듯 씩 웃어보였다. 조선에 와서 가장 불편한 것이 바로 정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없는 것이 아니라 만우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은월루나 하오문보다 차라리 그쪽이 더 낫겠어.”
고개를 주억거린 만우가 방매에게 말했다.
“어서 들어가자. 들어가서 뫼자에 대해서 알아내야겠어.”
“그런데 뫼자는 갑자기 어디서 나온거야?”
방매가 만우에게 물었다. 만우가 멈칫했다. 동래현감의 뇌물을 뫼자라 부르는 이들이 나르기로 했고, 그것을 털어서 방매에게 주려고 했다는 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고민이 된 것이다. 이곳까지 데려다준 것이 방매이고, 방매도 부상단 소속인데 과연 부상단을 털어먹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든 것이다.
“음…… 하나만 물어보자.”
만우는 방매에게 그냥 물어보기로 했다. 그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너, 재물 좋아하지?”
“재물? 당연히 좋아하지. 내 꿈이 여각이나 객주 세우는 거라니까.”
“그렇지? 그러려면 돈 많이 필요하고?”
“응.”
거기에 방매는 대륙으로 넘어가 연락이 끊긴 부모를 찾기 위해서라도 재물이 많이 필요했다. 여각을 세우려는 것도 드나드는 행상인들을 통해 정보를 모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런데, 만약 재물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생겼어.”
“그런 일이 있어?”
방매의 눈이 반짝였다. 만우는 일단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만약에.”
“흠…….”
방매는 고개를 돌려 객주를 쳐다봤다. 작은 객주였지만 동래에 있는 거의 유일한 객주였기 때문에 드나드는 사람들 때문에 계속 북적였다. 무엇보다 전국을 돌아다니는 등짐장수들이 모이는 임방은 늘 떠들썩했다. 역마살을 다들 하나씩 안고 태어난 등짐장수들은 어디에 모이건 간에 늘 여유 시간이 생기면 최선을 다해 놀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해가 중천에 걸린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객주 안에서는 등짐장수들이 부르는 가락이 흘러나왔다.
“뫼자. 뫼자랑 관련된 일이구나? 설마, 장돌뱅이들을 털려고?”
등짐장수를 장돌뱅이라 부르기도 한다. 방매가 눈을 크게 뜨고 말하자 만우가 입가에 손가락을 붙였다.
“쉿.”
“아니, 등짐장수들이 뭐 털어갈게 있다고 등짐장수를 털어. 아니, 애초에 왜 털어! 이럴꺼면 그냥 왜에서 챙겨주는거 가지고 오지.”
“너가 하도 난리를 피워서 그랬다 왜!”
“나?”
방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우는 칫하는 소리를 냈다.
“너가 하도 그것 때문에 꿍얼거려서, 그래서 묻는거잖아. 만약 뫼자란 애들이 옮긴다고 하는 등짐이 뇌물이라면 넌 어떻게 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