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 검주, 아니, 천하제일인(4)2021.06.19.
주창. 투귀대의 고수들이 주군으로 모시겠다 다짐한 주창이 방에 칩거한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 식사 하십시오. 헤, 헤헤.”
그 때 누군가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만우는 비굴한 표정으로 헤헤 웃고 있는 타케노를 힐끗 쳐다봤다. 불과 열흘 만에 타케노는 이런 하찮은 일을 모두 도맡아 하는 머슴이 됐다. 그 이유? 간단했다. 만우가 무력으로 타케노를 완전히 찍어 눌렀다. 슌스케를 엉망으로 만든 것에 타케노가 전혀 책임이 없다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화풀이를 한 것이었다. 그 화풀이라고 한 것이 만우가 살기를 뿜어대고, 그걸 타케노가 정면에서 맞는 것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타케노가 만우에게 굴복하는 데는 채 한 시진이 걸리지도 않았다. 완숙한 현경은 아니지만 화경의 벽을 깬 만우다. 반면 화경도 넘지 못한 타케노에게 있어 만우의 살기는, 마치 바로 코앞에서 절대로 막을 수 없는 맹수가 으르렁거리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앞에서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공포. 그 공포에 타케노는 순식간에 굴복했다. 정확히는 어느 정도 버티려고 했지만, 요시미츠가 직접 사람을 보내 타케노에게 만우가 하라는 대로 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완전히 굴복했다. 요시미츠가 자신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 아니 찾으러 올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반항을 해서 될 사이즈가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어쨌거나 만우의 살기를 온 몸으로 오롯이 받아낸 타케노는 만우의 숨소리 하나에도 반응할 정도였다.
“슌스케는?”
“슈…… 슌스케 형님은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이제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거기에 만우는 타케노에게 슌스케를 형님이라 부르도록 강요했다. 타케노의 입에 이제 슌스케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붙었다. 어쨌거나 이제 슌스케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는 말에, 만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타케노를 데려온 것도 사실은 신센조 애들이 못 덤비게 하려고 했던 것인데, 슌스케의 상처가 깊어 생각보다 오래 타케노를 부리고 있었다. 그 사이 요시미츠는 떠나지 않는 만우의 눈치를 보느라 덴노를 비롯한 공가와의 협상도 미뤄놓은 채였다. 적어도 요시미츠한테는 가까이 있는 만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야. 너도 안 가? 여기가 어디라고 자꾸만 숨어들어.”
그 때 만우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버럭 짜증을 냈다. 바로 그 순간 허공에서 스르륵하고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신이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옆에 오니(鬼)라 불린, 오로치와 대적한다는 닌자를 대동한 채였다.
“공. 공께서 한 번만 폐하와 만나보시면…….”
신이치는 살군회의 수장이다. 그의 목적은 저번에 일어났던 내전에서 요시미츠를 죽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니는 오로치에게 막혔고, 호코슈를 익힌 공가의 연합군은 신센조의 사무라이에게 막혀 결국 덴노는 쿄토를 빠져나가지도 못 하고 잡혀서 현재 어소에 유폐 중이었다. 그런데 그렇게만 해놓고, 요시미츠가 만우 때문에 협상을 하건 협박을 하건 상황을 진전시키질 않으니 신이치가 만우를 찾아온 것이다. 요시미츠를 죽여 달라고, 천금과 요시미츠가 올라 있는 최고 관직인 태정대신을 내걸면서 읍소를 한 것이다. 하지만 만우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귀찮게 그 짓을 왜 한단 말인가. 조선도 아닌 일본국에서 말이다.
“한 번만 그 소리 더 하면, 덴노고 뭐고 싹 다 죽여 버릴 거야.”
만우의 기세가 강렬해졌다. 진짜 짜증이 나기 일보 직전인 것이다. 그런 만우를 본 신이치는 침음을 흘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도깨비 가면을 쓴 오니의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왔다. 그 짧은 순간에 신이치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 오니가 만우의 기세에 내상을 입은 것이다.
“이제 진짜 가야겠다.”
개성 인삼은 여포의 손에 얌전히 들어오게 됐다. 타케노가 만우의 충직한 머슴이 된 덕분이었다. 개성인삼을 넘기는 데에는 만우의 한 마디면 됐다. 개성인삼을 얻은 여포는 그냥 떠나도 되지만, 옥령 때문에 눌러앉은 것이고 말이다.
“가, 가신단 말씀이십니까?”
만우의 한 마디에 타케노의 눈이 커졌다. 타케노는 만우가 언제 떠나나 매일 같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우는 픽하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배 준비해. 좋은 걸로. 물길도 잘 아는 놈 붙이고. 다 준비해놔.”
배도 만우가 직접 준비할 필요가 없었다. 타케노에게 한 마디만 하면 된다. 타케노는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만우가 간다. 만우가 가기만 한다면, 쿄토의 모든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어 줄 수도 있는 타케노였다. 타케노는 이제 조선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았다.
“어. 그렇게 알고 준비해.”
따악! 만우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따악하는 소리와 함께 호선이 또 다시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본능을 이길 정도의 교육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잊지 않도록 알려줘야 만우가 없다고 허튼 짓을 하지 않는 법이다.
“어, 어디 가시는지…….”
“그래도 역졸인데, 어사…… 아니 감찰 나리한테는 알려야지.”
만우가 피식 웃으면서 동군영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군영이 어디에 있는지는 만우가 잘 알고 있었다. 매일같이 향하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울상하고 있으면, 강제로 입을 찢어놓으려고. 웃상으로 만들게.”
만우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 익주동가. 비록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였다. 어머니는 익주동가라는 명문가의 안주인답지 않게 소탈하고 정이 많았다. 아버지도 그런 어머니를 끔찍이도 아꼈기 때문에 어머니와만 정을 나누었다. 집안에서는 그런 동만익의 행동에 우려를 표했지만, 건강한 동군영이 태어나 집안 어른들의 걱정을 불식시켰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고, 조선이 혁명이 아니라 반역으로 세워진 국가기에 아버지인 동만익은 사직하고 본가로 내려왔다. 왕위에 오르기 전인 지금의 주상이 두문동에서 불을 질러 수많은 뜻을 함께 한 유림의 학자들을 죽였다는 것에 분개한 동만익은 한양 쪽으로는 잘 때 머리도 두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동군영은 관직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동만익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이긴 것은 동군영이었다. 어머니가 쥐어준 몇 푼의 돈으로 홀로 한양에 상경해 과거를 치렀고, 장원으로 급제를 한 것이었다. 하지만 금의환향 같은 것은 없었다. 장원으로 급제를 했음에도 선천적인 소심증 때문에 춘추관에서 기사관밖에 하지 못 했다. 그래서 금의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동군영은 그런 자신을 아버지가 보면 비웃으면서 조롱을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차일피일 본가에 들르는 것을 미뤘다. 그러다 그렇게 부여에서 동천익과 만났고, 익주 근처까지 온 김에 이제는 들리려고 했다. 임금의 명만을 받는 암행어사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떳떳하게 아버지를 뵐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무상하다.”
모두 죽었다. 한 번 면식도 없는 멀고 먼 명나라의, 그곳에서도 먼 남쪽에 있다는 마교, 그 빌어먹을 종자들이 연고도 없고 원한도 없는 익주동가를 짓밟았다. 동군영은 꼭 익주동가를 닮은 교토의 외곽을 매일 같이 찾았다. 교토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란이 가라앉고, 여유가 생기자 동군영은 자신이 일본국에 왔단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마교에 대한 복수. 익주동가를 짓밟은 살풍대란 놈들을 조선에 보내기로 결정한 마교 놈들. 그 놈들에 대한 복수를 결국 이룬 것이다.
‘내 손이 아니라 남의 손으로 이룬 것이지만.’
복수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만우는 일본국까지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니까.
‘웬 무뢰배냐고 생각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 채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동군영은 소심했지만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관 기사관에 불관한 자신을 갑작스레 왜 암행어사로 삼았는지 눈치를 채고 있었다. 만우. 같은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그 초인(超人)이 손에 쥐고 휘둘러도 문제가 되거나 탈이 나지 않을 사람으로 자신을 붙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동군영은 많은 것을 얻었다. 상왕인 이성계를 만났고, 주상과 독대를 했다. 그리고 일신상의 무력만으로 조선의 임금과 그 전의 임금까지, 그 둘과 마주할 수 있는 만우를 친우로 삼았다.
‘만우도 나를 친우로 생각한다면.’
그래도 자신을 위해 대신 복수까지 해주었으니 그렇게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것뿐일까. 호랑이 신선인 호선을 만났고, 방매라는 재기 넘치는 옹주와도 친해졌다. 거기에 감령과 필두처럼, 기사관으로 남아 있었다면 무서워 제대로 말도 못 걸어봤을 이들과도 관계를 맺었다. 거기에 이제는 검도 휘두를 줄 알게 됐다.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던 체력이 이제는 뛰는 것도 가능할 정도가 됐고.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체통은 뒷전으로 미루어 두었지만, 지켜야 할 체통보다 훨씬 더 귀중하고 소중한 것들을 경험했고, 인연들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출사하기를 잘 한 것 아닙니까 아버지?”
동군영은 하늘을 쳐다보면서 중얼거리다가 피식하고 웃었다. 생각해보니 여긴 조선이 아니라 일본국이다. 저승은 모르지만, 만약 저승에도 국경이 있다면 아버지는 절대로 이곳까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말을 해도 듣지 못할 것이다.
“주상 전하가 아버지 원수 갚으라고 감찰방에 감찰로 삼아서 보내주시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싫어하는 주상 전하께서요.”
아마 만우를 믿고 보내줬을 것이었다. 그만큼 만우와 인연을 맺으면서 동군영이 조선과 주상에게도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제어가 불가능한 초인과 적대감이나 경계심을 가지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통로였기 때문이다.
“아. 어머니, 아니 엄마 보고 싶다.”
동군영이 뒤로 벌러덩 드러누웠다. 복수를 했으니 무자비하게 짓밟힌 익주동가에 대한 마음의 빚은 없다. 하지만 홀가분하지 않고 오히려 허탈해졌다.
“이제 뭐하고 산다…….”
동군영은 아버지인 동만익이 죽고 나서야 그가 장원임에도 춘추관 기사관을 하면서, 주변의 비웃음을 받으면서 한양에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인정. 동군영은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토록 말렸던 자신이 사실은 옳은 결정을 내렸음을, 자신이 아버지 자신만큼이나 훌륭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이 세상에 없다. 복수는 했지만, 이제 자신은 무엇을 목적으로 살아야 할까. 높은 관직? 부? 명예?
“……가문. 가문을 다시 재건해야지.”
아직 가문이 있었다. 아버지의 흔적이자 자신이 나고 자란, 익주동가.
“힘내야지. 힘.”
동군영은 자신의 뺨을 손바닥으로 짝짝하고 떄렸다. 그런데 그 때, 바람이 휭하고 불었다. 동군영은 급히 갓을 손으로 잡았다.
“얼씨구.”
아직 바람이 채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동군영의 뒤에서 들렸다. 동군영이 깜짝 놀라 뒤를 쳐다봤다.
“그렇게 쳐서 제대로 정신이 들겠어? 내가 쳐줄까? 감찰 나리?”
“자네 왔는가?”
동군영은 그것이 만우임을 알고는 웃었다. 신출귀몰하기가 진짜 귀신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무공이란 걸 익혀 초인이 된다면 모두 저렇게 될 수 있는 것일까.
“내 또 여기서 궁상을 떨고 있을 줄 알았지.”
동군영은 만우가 스스로를 ‘본주’가 아니라 ‘나’, 혹은 ‘내’로 지칭하는 것을 들으면서 키득하고 웃었다. ‘본주’로 자신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와 친하다는 증거였다. 만우는 적대관계이거나 딱히 친분이 없으면 스스로를 본주라 부르며 스스로의 지위를 상대방에게 주지시키곤 했다.
“내일 조선으로 돌아갈 거야, 나리. 그러니까 가서 짐 싸.”
만우는 동군영에게 귀찮다는 듯 말했다. 동군영은 고개를 돌려 그런 만우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자네에게 하지 못 한 말이 있군.”
동군영은 자신이 만우에게 중요한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만우에게 동군영이 말했다.
“고맙네. 내 복수를 도와줘서.”
“핫.”
동군영의 말에 만우가 짧고 크게 웃었다.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똥구녕, 네 복수를 도와준 게 아니야.”
“똥구녕? 동군영일세. 이름은 제대로 불러줘야…….”
가끔 만우가 자신을 똥구녕이라 불렀기 때문에 동군영은 인상을 썼다. 안 그래도 그게 동군영이 자신의 이름이 가끔 싫은 이유였다.
“똥구녕이건 동군영이건. 너, 지금 얼굴 딱 똥구녕 같아서 그래.”
만우는 손가락으로 동군영의 얼굴을 가리키면서 원을 그렸다. 동군영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어쩄든, 내가 그 놈들을 죽인 이유는.”
만우는 인상을 팍 썼다.
“혈세천마, 그 놈이 중원에서는 꽁무니 빠져라 도망가 숨어놓고는 여기선 뭐 대단한 거라도 준비해놓은 마냥 도발해서 그런 거야. 조선에서 살풍대랑 낭황이란 놈이 한 짓을 보니까 열이 확 뻗치더라고.”
동군영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말하지만 만우가 사실은 마음이 은근히 약하다는 것을 동군영은 이미 파악한 지 오래였다. 자신과 상관도 없는 양민들이 짓밟힌 모습을 보고 열이 뻗쳤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더 이상 살려둘 생각이 없어서, 이 세상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치우러 온 거야.”
“그래도. 고맙네, 만우. 자네가 아니었더라면 복수는 꿈도 꾸지 못 했겠지.”
만우가 있기 때문에 마교에 대한 복수를 감히 입에 담은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원통하더라도 계란에 바위치기란 것을 알고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면서 스스로를 깎아 먹었을 것이다.
“아우. 그런 닭살 돋는 공치사 그만하고. 일어나. 나 좋으려고 한 거니까, 네 감사 받을 생각도 없어.”
“그래도, 고맙네.”
“안 되겠다.”
만우는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동군영은 그런 만우를 빤히 쳐다봤다. 만우는 동군영을 보면서 씩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