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검주, 아니, 천하제일인(2)2021.06.12.
“칼침 하나만 쿡 놔도 뒈질 놈한테.”
“크흐흐…….”
“끼요오옵!”
사무라이가 기합을 내지르면서 슌스케를 향해 왜도를 찔러 들어왔다. 그 순간, 슌스케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흣!!!!”
쏴악!!!! 다 죽어가던 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였다. 사무라이는 슌스케의 왜도가 자신의 목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빌어먹…….”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목에서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쓰, 쓰러졌다!”
“괴물이 쓰러졌다!!”
뒤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은 사무라이가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는 아래를 쳐다보자 슌스케가 왜도를 휘두르던 자세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왜도를 들 힘조차 없는 것이다. 그런 슌스케의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본 사무라이의 눈에 살기가 번쩍하고 튀었다.
“죽엇!!!!”
사무라이의 왜도가 슌스케의 목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순간, 사무라이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손 치워.”
뻐억!!!! 갑자기 튀어나온 발바닥이 왜도를 휘두르던 사무라이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러자 사무라이의 몸이 물수제비처럼 뒤로 튕겨져 나오더니 퉁퉁하고 바닥에서 몇 번 튀어 올랐다. 휘리릭!!! 발바닥으로 사무라이의 얼굴을 밀어 찬 인형(人形)의 옷자락이 휘리릭하고 돌더니 슌스케의 앞에 누군가 떨어져 내렸다. 쿠웅-!!!! 쩌저적!!! 꽈르릉-!!! 그냥 가볍게 착지한 것도 아니고, 내려앉은 것만으로 주변의 땅이 쫘자작하고 실금이 일어나더니 슌스케의 베고 찌르기에 반파되어 있던 담장과 가옥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니, 그 강력한 진각(震脚)에 사무라이들은 중심도 제대로 못 잡고 픽픽거리면서 쓰러졌다. 동시에 태산 같은 중압감이 슌스케와 갑자기 뛰어든 인형의 주변을 내리눌렀다.
“대…… 대장…… 쿨럭.”
슌스케는 자신이 입은 것과 같은 붉은 창의자락을 보고는 희미하게 웃었다. 이 익숙한 목소리와 기세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모든 검을 쥔 자들의 위에 군림하는 자. 검주 만우. 슌스케의 새로운 대장인 그밖에는 없었다.
“대장은 개뿔.”
만우가 엉망이 된 슌스케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썼다.
“뒤에서 칼 맞았네.”
“그렇게 되었…… 쿨럭…… 습니다.”
“입 다물고.”
만우는 혀를 쯧하고 차고는 지풍을 튕겼다. 그러자 슌스케의 허리춤에서 흐르는 피가 줄어들었다. 동시에 슌스케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상처 부위에 점혈을 하고, 수혈을 누른 것이다.
“후우…….”
만우는 엉망진창이 된 슌스케를 보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예쁜 놈이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최악의 첫인상을 안겨주었던 놈인데, 마냥 나쁜 놈은 아니라는 생각에 머슴으로 쓰면서 하나씩 알려주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든 놈이었다. 그러니 그냥 죽게 놔두면, 만우 자신의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내 마음이 시원한 게 최고지.”
갑자기 나타난 자신을 경계하는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을 보면서 만우는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야. 너희들.”
만우가 발산하는 기세에 잔뜩 주눅이 든 채 경계만 하면서 눈을 굴리고 있던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을 만우가 불렀다.
“타케노, 그 하켄인가 뭔가 하는 자식한데 얌전히 돌아가. 이놈 놔두고. 가서는 본주가 돌아가라고 했다고 하고.”
“…….”
만우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조선말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왜어만 하는 사무라이들 중 만우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놈들은 없었다. 만우는 볼을 긁적였다.
“못 알아듣네.”
만우는 슌스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름 통역까지 하던 놈인데, 다시 깨워서 통역하라고 할까 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되겠네.”
둥실 슌스케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하고 떠올랐다. 허공섭물을 제3의 손처럼 사용하는 만우였다. 허공섭물로 인해 발생하는 공력의 소모는 이미 뛰어넘은 지 오래다.
“가야겠네. 그놈한테로.”
만우가 주변을 빽빽하게 둘러싼 사무라이들을 보면서 주먹을 치켜들었다.
“대장을 부려먹고 말이야. 깨어나면 너도 내 얼굴 좀 봐야겠다. 슌스케.”
기절한 상태에서도 슌스케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찔하고 떨렸다. 만우는 그런 슌스케를 보면서 웃어 보였다. 후우우웅-!!! 그리고 바로 그 다음 순간, 일진광풍이 그 주변을 휩쓸었다. *****
“쇼군.”
“……하켄!!!!”
요시미츠는 부복한 타케노의 어깨를 손수 잡아 일으켜 세웠다. 타케노는 황송하다는 듯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요시미츠는 그런 타케노의 어깨를 쓸어내렸다.
“장하다. 장해! 하켄! 나, 요시미츠의 검 하켄!!!!”
패검(覇劍)을 뜻하는 하켄이란 말처럼, 타케노는 일본국에서 내노라하는 사무라이다. 그의 유일한 숙적이 일월조의 슌스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출신이 비천해 요시미츠를 도와 남북조의 전쟁을 종결하는데 힘을 보탰음에도 만족할 만큼 얻지 못 했던 타케노는, 이번에야말로 요시미츠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셈이 되었다. 절묘한 순간에, 호코슈가 덴노와 공가 불러들인 연합군에 패퇴를 하면서 난감하던 상황에 3만이나 되는 사무라이가 쿄토를 점령하는데 성공을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3만의 신센조 사무라이들이 없었다면 요시미츠는 호코슈까지 패퇴한 상황에서 닌자들과 휘하의 사무라이들만으로는 쿄토를 점령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연합군이 쿄토에 입성을 했을 것이고, 요시미츠는 쿄토에서 도주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전의 시작이다. 그 모든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타케노였다.
“내 그대를 중하게 쓸 것이다. 귀하게 쓸 것이다. 그대야말로 나, 요시미츠가 가진 최고의 검이다!!”
요시미츠의 극찬에 타케노의 눈에 기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원하는 것을 말하라. 그리하면 내 그대가 원하는 것 모두를 들어주리라!”
타케노의 두 눈이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드디어, 그의 야망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다이묘. 떠돌아다녀야 하는 3만 사무라이의 수장이 아닌,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자신의 가문과 세력을 일굴 수 있는 영주. 다이묘가 된다는 것은 당당히 공가의 새로운 일원이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천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필요 없는,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공가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소, 소신은 쇼군께 영원히 충성을 바치는 다이묘…….”
휘리릭!!!! 꽈아앙-!!! 쩌적-!! 바로 그 때, 머리를 누군가 후려치는 거대한 충격에 그대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타케노의 앞으로 희끗한 인형이 땅에 착지했다. 주변의 들썩거리는 충격이 고스란히 단단한 바닥을 쪼개놓았고, 갑작스런 상황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오로치 하나가 그림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요시미츠에게 날아들던 파편들을 번개처럼 쳐냈다. 쉬익!!!! 눈 깜박할 사이에 요시미츠의 앞을 막아선 오로치가 갑작스레 나타난 괴한을 향해 수리검을 날렸다.
“왜 너 혼자냐. 다른 놈은?”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요시미츠가 흠칫했다. 그가 어떻게 저 목소리를 잊겠는가. 무력 하나만으로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던 자신의 기를 팍 꺾어버린 그 괴물 같은 놈인데 말이다.
“오로치. 그만!!”
오로치 셋 중 하나는 만우의 손에 아직도 요양 중이었고, 하나는 오니(鬼)에 의해 유명을 달리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오로치 하나까지는 잃고 싶지 않았던 요시미츠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자. 이건 다시 가져가고.”
자신의 착지로 인해 자욱하게 일어난 흙먼지를 날려 보낸 만우가 손에 잡힌 수리검을 오로치의 손에 쥐여 주고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타케노의 뒷덜미를 집어 들었다.
“다, 다 칼을 거둬라! 어서! 어서 거두라니까 말을 듣지 않고!”
요시미츠는 만우의 등장에 놀라 각자 무기를 뽑아든 사무라이들과 닌자들에게 서둘러 손짓을 했다. 만우에게는 그 무엇도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눈으로 똑똑하게 확인을 했기 때문이다. 요시미츠는 생존에 있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감이 뛰어났다.
“검주 대협. 그… 타케노는 왜…….”
“어. 쓸데가 있어서. 얘네 부하들이 자꾸 날 잡겠다고 뛰어오잖아. 이놈이 있어야 말을 들을 것 같아서.”
정확히 말하면 슌스케를 잡겠다고 몰린 사무라이들이었다. 그 사무라이들은 만우가 등장한 순간 만우의 눈치만을 봤다. 그런 사무라이들을 만우가 거치적거린다고 이곳까지 오는 길에 오면서 눈에 띌 때마다 모조리 기절을 시켜 버렸고 말이다.
“그…… 제가 그럼 잘…….”
“아니. 그냥 이놈 데리고 다니게. 네가 말한 대로 했는데도 또 달려들면 다 죽여 버릴것 같아서.”
만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만우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것은 덴노가 중원에서 끌어들인 마교라는 무림인들도 모조리 만우에게 당했다는 뜻이다. 요시미츠는 만우의 박력에 침만 꼴깍하고 삼켰다.
“난 얘만 데리고 가면 되니까 이제 할 것들 해. 이겼잖아. 기뻐하던 거 계속 해.”
쉭!!! 기절한 슌스케와 타케노를 모두 허공으로 들어 올린 만우가 그 자리에서 팟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런 자리에 남은 것이라고는 만우가 착지하면서 바스러진 바닥의 잔해만이 전부였다.
“쇼, 쇼군.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이 무더기로 기절을……”
“……며, 몇이나 기절을 했더냐?”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을 일일이 상대하는 것이 귀찮아 타케노를 납치해 간 만우다. 다행히 기절이라는 것을 보니 만우가 손을 과하게 써서 사무라이를 죽이진 않은 모양이었다. 만우가 왔다 간 것을 모르는 요시미츠의 수하는 하얗게 질린 요시미츠의 안색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답했다.
“대략 천 정도…….”
“……천?”
요시미츠의 입이 헤하고 벌어졌다. 천이라니. 천이 넘는 사무라이들이 죽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기절만 했으니 수하가 저렇게 불난 것처럼 뛰어오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곳으로 오는 길에, 만우는 홀로 천이 넘는 사무라이를 기절만 시킨 것이다.
“……내버려 두거라.”
“예? 하지만 쇼군. 만약 이게 잔당들의 소행이라면……”
“내버려 두라면 내버려 둘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느냐!!”
“히, 히익! 예, 알겠습니다 쇼군.”
요시미츠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수하가 넙죽하고 엎드렸다. 그 모습이 마치 만우 앞에서 자신의 모습 같아 보였기 때문에 요시미츠는 마른세수를 했다.
“하아…….”
일본국 최고의 권력자인 요시미츠의 얼굴이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
“…….”
무림맹(武林盟) 천안각(千眼閣). 그곳은 넓디 넓은 중원의 모든 정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무림의 정도를 걷는 이들이 모여 만든 무림맹은, 늘 무림일통이라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힌 마교와 사파의 맹주인 사림곡을 하루도 빠짐없이 감시했다. 또한 잘못된 힘을 가진 자들이 언제 어디서 세력을 키우고 있거나, 악독한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기 떄문에 무림맹의 천안각은 평화의 시대인 이때에도 가장 바쁜 곳 중 하나였다. 퍼드득. 천안각주 제갈명공. 그는 머리로라면 중원 둘째라 불리는 것 자체가 수치인 제갈세가의 가주이자 무림맹의 군사였다. 그런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거의 웃는 일이 없는 그가 자주 보일법한 미소는 아니었다. 제갈명공이 웃는 경우는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그의 책략이 먹혀들어서, 정확히 그가 바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제갈명공은 발가락 끝부터 차오르는 희열감에 미소를 짓곤 했다. 그런 제갈명공의 얼굴이 악귀처럼 변한 적 역시도 딱 한 번 있었다. 검주 만우. 그가 일으킨 돌풍을, 그냥 단순히 스쳐지나갈 산들바람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겼던 것과, 그가 일으킨 산들바람이 거대한 돌개바람이란 것을 깨달았을 때, 섣불리 그를 치워 버리려고 했던 것. 그로 인해 정도 무림맹에 소속된 문파들이 철저히 만우에게 유린을 당했을 때 제갈명공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보기 좋은 미소를 입가에 걸친 제갈명공은 전서구를 새장에 들여보낸 뒤 그곳에서 풀어낸 전서를 손에 쥐었다.
“맹주. 천안각주입니다.”
[들어오시지요.]
제갈명공은 그 길로 곧바로 맹주전으로 향했다.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무림맹은 작금의 최고 성세를 달리고 있는 무림맹의 위세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