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검주, 아니, 천하제일인(1)2021.06.08.
“후욱.”
쩌저정!!!! 슌스케는 호흡을 빨아들이면서 내공을 조절했다. 한 팔을 잃고, 외팔 검객이 되어 만우에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늘어난 것은 단순히 그의 검술 실력만이 아니었다. 체력. 하체와 체력 자체가 만우의 지독한 훈련으로 인해 이전에 비해 배는 넘게 좋아진 것이다. 그 체력과 하체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슌스케의 왜도술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교함과 위력을 자랑했다. 촤아악!!! 슌스케의 왜도에 스친 사무라이들은 비명도 내지르지 못 하고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라이들은 눈이 뒤집혀 슌스케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놈을 벨 때마다 은이다!!!”
“타케노. 미친 새끼.”
사무라이들은 전부 돈에 미친 돈귀신들이다. 돈이란 항상 써도 부족한 법이고, 타케노는 3만의 신센조들을 돈귀신으로 만들어, 돈만 주면 누구든지 베려 달려드는 쩐귀들로 만들었다. 슌스케는 그런 타케노를 떠올리면서 이를 앙 다물었다.
“고작 두 놈이다! 죽여!!!”
한 놈을 죽이자 두 놈이, 두 놈을 죽이자 네 놈이, 그렇게 슌스케와 곤조를 쫓는 사무라이들이 수십으로 늘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는 소란을 감지한 사무라이들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슌스케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슌스케! 일월조의 슌스케다!!!”
“놈을 죽이면 금이다! 금!!”
슌스케는 차갑게 웃었다. 신센조와 일월조는 오랜 경쟁 관계이자 앙숙 관계이다. 타케노는 슌스케의 목에 늘 금을 현상금으로 걸어두었다. 슌스케를 알아본 사무라이들의 눈이 더욱 뒤집혀 슌스케를 향해 달려들었다. 누가 내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 사무라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목표. 돈을 벌어다 줄 목표만이 사무라이들의 눈에 들어왔다. 서커거걱!!!
“곤조!!! 뒤처지지 마라!”
“헉, 헉. 예! 오야붕.”
슌스케를 쫓는 것만으로도 곤조의 숨은 턱 끝에 차 있었다. 가장 실력이 부족한 곤조였기 때문에 슌스케의 뒤를 쫓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친 것이다. 쉬익! 쉬익! 쉭!!!! 슌스케의 손에서 도광이 번뜩일 때마다 신센조의 목이 끊어졌다. 베어낸 신센조의 피가 슌스케의 왜도에 베 끈적하게 들러붙었지만, 몰려드는 신센조는 적어지긴 커녕 더 많아졌다. 사십. 오십. 그리고 육십, 칠십. 슌스케는 칠십부터는 벤 적의 수를 세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작 칠십을 죽인 것으로는 3만이나 되는 신센조의 포위망을 뚫을 수 없다는 점이었다.
“곤조!!!”
슌스케의 발을 묶어 둘 놈은 없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움직일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곤조의 체력이었다. 슌스케는 숨을 몰아쉬느라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곤조에게 소리쳤다.
“정신차려! 멈추면 죽는다!!!!”
쉭!!! 슌스케가 곤조를 노리고 뻗어진 왜도 하나를 걷어내고, 그 주인의 목을 베었다. 서컹하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의 목이 솟구쳤지만, 금세 그 자리를 메운 사무라이들에 떨어진 머리통이 가려졌다. 후두둑!!! 그 바람에 핏물을 뒤집어 쓴 사무라이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슌스케는 이를 까득 깨물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큰 거 한 방이다 곤조!”
“허억… 허억… 오야붕…….”
철퍽!!! 도갑 역시 피에 젖어 찰칵하는 소리가 아니라 철퍽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슌스케는 도병을 말아 쥔 유일한 손으로 내공을 불어넣었다. 우우웅-!!!!! 내공을 먹은 왜도가 부르르 거리면서 떨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내공심법은 일본국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슌스케의 내공 총량은 초절정 중에서도 가장 적은 축에 속했다. 그 때문에 호흡으로 최대한 내공을 조절하면서 체력 분배에 쓰는 것을 만우에게 몸으로 배운 슌스케다. 그런 슌스케가 마음을 먹고 끌어올린 내공으로 하는 공격이, 단순할 리 없었다.
“내가 일월조의 슌스케다!”
촤라라락!!!!! 써컹!!!! 슌스케의 도갑에서 왜도가 뽑혀져 나왔다. 왜도에 담긴 내공에 질퍽거리던 피가 말라붙어 연기처럼 사라졌다. 동시에, 초절정의 내공을 고스란히 녹여낸 슌스케의 도격이 사무라이들을 휩쓸었다. 서거거거걱!!!! 한 번. 한 번으로 보였던 슌스케의 팔 주변으로 잔영이 몰아쳤다. 보이는 것은 일격이지만, 눈으로 보이는 속도를 넘는 속도로 슌스케의 도가 휘둘러진 것이다. 도격의 폭풍. 그 안에 걸려든 사무라이 수십이 고기 조각이 되어 피보라를 일으켰다. 촤아아악!!!! 적의 핏물을 흠뻑 뒤집어 쓴 슌스케의 눈에서 살기가 쭈욱하고 폭사했다. 악귀 같은 슌스케의 모습에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지만, 그들은 다시금 이를 드러냈다. 한 마리의 호랑이를 둘러싼 수백 마리의 승냥이떼들. 슌스케를 둘러싼 사무라이들이 빙빙거리며 돌았다. 슌스케는 왜도를 쥔 손에 힘을 준 채 주변을 살폈다. 푹
“곤……조?”
그런데 그 때, 슌스케의 허리춤이 뜨끔했다. 슌스케는 고개를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허리춤에 단검을 꽂아 넣은 곤조를 쳐다봤다. 곤조는 두 눈에 광기를 띄운 채 슌스케의 허리춤에 꽂아 넣은 단검을 깊숙하게 밀어 넣으면서 소리쳤다.
“내가, 내가 슌스케를 잡았다!!!! 금은 내 거야! 금은 내 거라고!!!!!”
슌스케가 미처 알지 못한 것이라면, 슌스케가 조선에서 임무를 실패하면서 와해된 일월조의 남은 사무라이들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 좇았다는 것이다. 곤조에게 슌스케는, 현상금이 걸린 금덩이였지 자신의 오야붕이 아니었다. 비틀비틀 슌스케는 피가 흐르는 허리의 상처를 막을 손이 없었다. 왜도를 쥔 손이 하나였기 때문이다. 슌스케는 이를 악물었다.
“곤조 네놈!!!!”
배신자. 배신자에 대한 일월조의 처벌은 간단했다. 푹!!
“꺼…….”
허리 깊숙이 파고든 단검에도 슌스케가 왜도를 휘두를지 몰랐던 곤조의 입에서 헛숨 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슌스케의 왜도가 곤조의 폐와 심장을 비스듬하게 꿰뚫은 것이다. 곤조의 입에서 빨간 피가 왈칵 튀어나왔다.
“배신을 하려고 살아 있었던 놈아.”
슌스케의 두 눈에서 시린 한기가 흘러나왔다. 곤조는 입을 뻐끔거렸다.
“변명하지 마라. 배신자.”
푸확!!!! 슌스케가 왜도를 비튼 뒤 뽑아내자 곤조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털썩하고 쓰러졌다. 잘게 경련을 일으키는 곤조에게서 눈을 돌린 슌스케가 쿨럭하고 상체를 숙였다.
“치잇.”
슌스케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슌스케는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곤조의 단검이 몸속에서 덜그럭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제대로도 꽂아 넣었군.”
하지만 슌스케의 살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 정도에 쓰러지기에는, 슌스케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도 파란만장했기 때문이다.
“이깟 칼침 한 방에.”
슌스케는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러자 승냥이떼들처럼 달려들려고 하던 신센조 사무라이들이 멈칫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는 바람에 흐르는 피의 양이 많아져 하반신을 흠뻑 적실 정도가 되었지만, 슌스케는 손 하나 떨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지 않는다. 이 슌스케는.”
슌스케의 눈이 번뜩였다. 동시에 슌스케의 손에 들린 왜도가 한 줄기의 섬광을 허공에 만들어냈다. 번쩍!!!! 촤악!!!! 슌스케의 허리와 입에서 흐르는 피가 많아졌다. 하지만 슌스케는 착실하게 달려드는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을 썰어버렸다. 슌스케의 왜도에서 흐르던 내공도 이제는 거의 시냇물로 줄어들었지만, 슌스케의 도격은 간결하고 깔끔했다. 살과 뼈를 한 번에 베어 버리는 매서운 참격. 사람의 몸에 톡하고 건드리면 갈라지는 결이 있는 것처럼 슌스케의 왜도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사람의 몸이 쩍쩍하고 갈라졌다. 슌스케는 자신의 피와 자신이 죽인 이의 피로 흠뻑 젖어 혈인이 된 채 숨을 몰아쉬었다. 만우 덕분에 끊임없이 솟아오르던 체력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내공도 모자라 근력까지 쥐어짜낸 슌스케의 텅 번 소매는 격전 와중에 잘려나가 맨 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후욱.”
슌스케는 그 와중에도 만우가 알려준 대로 호흡을 다잡으면서 살기를 드러냈다. 그런 슌스케의 주변으로 쓰러진 시신들이 작은 산을 이루었다. 그 산 위에 올라선 슌스케는 도병을 그러쥔 채 고요함을 가장하며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을 기다렸다. 슌스케는 이곳에서 죽어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아니,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 이미 일본국에서 자신이 근 10년 동안 죽을 둥 살 둥을 하면서 동고동락을 했던 일월조도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죽기 싫었다.
‘재밌더군. 세상천지를 유랑하고, 나보다 강한 무(武)와 겨뤄볼 수 있다는 것.’
그러면서 강해진다는 것. 슌스케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뭐가 그리도 웃긴 것인지, 피를 흠뻑 뒤집어 쓴 상태에서도 슌스케는 웃었다.
“지쳤다!”
“놈이 지쳤다! 잡아라!!”
“금이다! 놈을 잡으면 금이란 말이다!!!”
신센조의 사무라이들이 잠시간의 대치 상황을 끝내고 다시금 슌스케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요를 가장하고 있던 슌스케의 두 눈이 부릅뜨였다.
“네 놈들을 위해 아껴둔 것이다. 어디 한 번 받아 보거라.”
슌스케의 주변으로 바람이 한줄기 깃들었다. 동시에, 슌스케의 손에 들린 왜도가 원을 그리기 시작하더니, 한줄기 바람이 수백 갈래로 나뉘면서 왜도에 깃든 예기를 머금었다.
“베고 찌르기.”
피에 젖은 슌스케의 창의가 허공으로 휘날렸다. 슌스케에게 깃든 예기를 머금은 바람이 사무라이들을 향해 짓쳐들었다. 슌스케의 손에 들린 왜도는 진즉에 사라져 있었다.
“극한(極限).”
덜컥 부르르르 슌스케를 향해 달려들던 사무라이들 수십의 몸이 그대로 덜컥하고 멈춰 섰다. 동시에 그들의 몸이 일제히 경련을 일으켰다. 푸화아아악!!!! 그리고 잠시 후, 사무라이들의 이마에 손가락만한 구멍이 뚫렸다. 동시에 사무라이들이 일제히 쓰러지는 모래성처럼 생명을 잃고, 털썩하고 무릎을 꿇은 뒤 머리를 땅에 처박았다. 쿠르르르! 쾅! 콰광!!!! 그러고도 남은 여파가 주변의 담장과 가옥들을 무너뜨렸다. 슌스케의 베고 찌르기, 극한은 왜도로 일으킨 도풍(刀風)에 극쾌(極快)와 극도의 예기를 실어 날리는 초식이었다.
“크학.”
푸확!!!! 그러나 그 위력이 대단한 만큼 멀쩡하지 않은 슌스케의 몸은 그만큼의 과부하를 견뎌낼 수 없었다. 슌스케가 왜도로 땅을 짚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피가 왈칵 튀어나왔다.
“크르륵.”
피가 목에서 걸리는 소리에도 슌스케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슌스케가 만들어냈던 작은 시체산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슌스케가 일으킨 바람에 반경 이내의 모든 것이 뚫리고 날아가 버린 것이다.
“아프군.”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단전이 끊어질 것처럼 아팠기 때문이다. 그 고통이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덮었다. 슌스케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피로 흠뻑 젖은 선홍빛의 이가 드러났다.
“괴물…….”
“이 정도로 괴물이란 말은…….”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신센조의 사무라이들도 그런 슌스케를 보면서는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백, 이백? 저 한 명을 잡기 위해 죽어나간 사무라이가 200을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저 놈은 괴물처럼 웃고 있었다. 자신의 피와, 자신이 죽인 이의 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채.
“뭣 하는 거야! 비켜! 내가 가서 죽인다! 다 죽어가는 놈인데 뭐가 무섭다고!”
다들 멈칫거리고 있자 뒤에서 뒤늦게 합류한 사무라이 하나가 왜도를 꼬나쥐고는 앞의 사무라이를 옆으로 밀쳐내고 걸어 나왔다. 슌스케는 걸어오는 사무라이를 보면서 웃었다.
“누가 죽어준다고…… 끄르륵…… 했나?”
숨을 쉴 때마다 피가 끓는 소리가 났다. 슌스케를 죽이겠다며 나온 사무라이는 왜도를 꼬나쥐고는 걸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