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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3) (253/400)

253.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3)2021.06.01.

혈세천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그 순간, 혈세천마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기천 속에서 시퍼런 귀화가 피어올랐다.

16553252448738.jpg“네놈은.”

새하얗게 타오르는 검강을 이룡검에 뒤집어씌운 만우는 시퍼런 광망을 터뜨리며 자욱한 기천 속에서 저벅거리며 걸었다. 혈세천마는 그런 만우를 향해 일권을 내질렀다. 콰아아아아-!!!!! 천마가 남긴, 천마의 무학이 담긴 천마권의 일권이 내질러졌다. 그 안에 담긴 기운은 가히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가를 정도로 대단했다. 하지만.

16553252448738.jpg“본주를 그리 부를 자격이 없다.”

서컥!!!!! 강대한 기운을 담은 혈세천마의 일권이 만우의 검강에 의해 너무나도 가볍게 잘려나갔다. 혈세천마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권강과 검강이다. 그런데, 만우의 검강은 혈세천마의 권강을 마치 무나 두부 자르듯 너무나도 쉽게 잘라 버렸다.

16553252448738.jpg“천마를 데려오거라.”

만우는 질책하는 듯한 목소리로 혈세천마에게 말했다.

16553252448738.jpg“패배하는 것이 무서워 뒷방에 숨었던 가짜 천마여.”

서걱!!!!!

1655325244876.jpg“크아아아악!!!!”

권강이 피어오르고 있던 혈세천마의 왼쪽 팔이 피를 내뿜으며 잘려나갔다.

16553252448738.jpg“패도(覇道)의 길을 걷고자 했던 네 원류를.”

서컥!!! 만우의 검강이 혈세천마의 몸부림을 무시하고, 남은 팔을 잘랐다. 두 팔이 잘린 혈세천마가 뒤로 비척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만우는 그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16553252448738.jpg“신교를 버리고, 네 아들을 버려 고작 이 정도라면.”

만우는 감히 조선을, 그리고 무고한 동군영의 가문을 그냥 짓밟아버린 살풍대를 떠올렸다. 그러자 만우의 두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16553252448738.jpg“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버러지 같은 놈이군.”

16553252448778.jpg

  서거걱!!!! 철퍽!!

1655325244876.jpg“끄아아!!!”

뒤로 물러나려던 혈세천마의 몸뚱이가 철퍽하고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만우의 검이 혈세천마의 무릎을 자르고 지나간 것이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은 혈세천마의 몸뚱아리 주변으로 피가 흥건해졌다. 잘린 부분에서 피가 뭉클거리며 새어나왔기 때문이다. 파아아앗!!!

16553252448738.jpg“네 놈은 기천무를 끝까지 끌어내지도 못 하였군.”

만우가 진인에 다다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혈세천마가 생각보다 너무나도 허약했다. 차라리 혈세천마의 아들인 주창이 더 손맛이 좋았다. 혈세천마는, 떠나가야 할 것을 떠나보내기 싫어 두 손에 쥐고 아둥바둥 발악을 하는 늙은이일 뿐, 극마라 부를 수도, 아니 무인이라 부를 수도 없는 욕심쟁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1655325244876.jpg“마군자! 마군자아아아아! 놈의 식솔들을. 그 식솔들의 머리를 베어라! 목을 쳐라 이 말이다!!!!!!”

혈세천마는 몸뚱이만 남아 바닥에 처박혔으면서도 마군자가 있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만우의 손에 들린 이룡검이 휘둘러졌다. 샤악!

1655325244876.jpg“끄악!!!”

혈세천마의 두 눈에서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만우의 이룡검이 혈세천마의 두 눈을 앗아간 것이다. 그 때문에 혈세천마는 미처 보지 못 했다.

16553252480594.jpg“교, 교주…….”

마군자의 목에 시린 마련검이 겨누어져 있다는 것을. 진작에 김향과 방매는 자유의 몸을 되찾았다는 것을 말이다.

16553252480598.jpg“……저것이 교주란 말인가.”

그런 마군자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는 주창은 충격 받은 표정을 지은 채 팔다리가 잘려 버둥거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니,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항상 강인하고, 마인의 표본이었던 주창의 기억 속 혈세천마는 이미 죽은 지 오래였고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명예와 욕심에 미친 노인이었으니까.

16553252480603.jpg“만우!!!!!!”

16553252480608.jpg“아저씨!!!!”

김향과 방매는 만우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자 만우에게로 날듯이 뛰어갔다. 만우는 방매와 김향을 양 손으로 하나씩 안았다. 토닥토닥

16553252448738.jpg“괜찮아. 다 끝났어.”

만우는 발광을 하는 혈세천마의 마혈과 아혈에 지풍을 날려 짚은 뒤, 눈물을 터뜨리는 방매와 김향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고개를 돌려 주창을 쳐다봤다. 만우는 이미 주창이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아챘다. 마군자의 살인진. 그 고대의 진법을 개량한 구속진은 진인, 즉 현경의 초입에 든 만우에게는 거의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 했다.

16553252448738.jpg“네 아버지라 했나.”

16553252480598.jpg“…….”

주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창의 몸은 피로 푹 젖어 있었다. 주창이 몸에서 나온 피가 아니었다. 살인진을 펼치고 있던 진혼대의 고수들. 그들의 피였다.

16553252448738.jpg“마지막 인사를 할 정도의 시간은 주지.”

쉬익!! 김향과 방매를 품에 안은 만우가 가볍게 발을 굴러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주창은 마군자의 목에 겨누었던 마련검을 스르륵하고 내렸다. 그리고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터벅터벅 걸어 혈세천마 앞에 도달했다.

16553252480598.jpg“……아버지.”

1655325244876.jpg“주창. 주창이냐? 그놈. 그놈의 여자들을 죽여라. 그놈의 여자들을…….”

마혈과 아혈을 푼 주창은 혈세천마의 발광을 보면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지를 잃고, 두 눈을 잃은 혈세천마의 말로가 추악하기 그지없었다. 마지막 순간이 이렇다는 것이 슬펐지만, 어찌 보면 이건 이미 정해져 있던 건지도 모른다. 혈세천마가 검주 만우에게 집착하고, 무림십좌에 집착하기 시작한 순간, 그래서 아들인 자신조차도 반역자로 만든 순간 이미 내정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16553252480598.jpg“이 패륜은, 저 세상에 가서 그 죄를 달게 받겠나이다.”

주창은 마련검을 거꾸로 쥐었다. 그리고는, 두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그대로 마련검으로 혈세천마의 심장을 찔렀다. 푸욱!!!! 혈세천마의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자신의 심장을 파고드는, 이물감을 그가 느끼지 못했을 리 없다.

1655325244876.jpg“꺼, 꺼어…….”

툭. 무림십좌의 일인, 일패(一覇) 혈세천마의 빛이 그렇게 허무하게 중원에서 멀고 먼 일본국에서 꺼졌다. *****

16553252511105.jpg“문 별감.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16553252448738.jpg“정말 뭐?”

16553252511105.jpg“으허어어어억!!!!”

문형일을 설득하려고 애를 먹고 있던 동군영이 갑작스런 만우의 등장에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퍽하는 소리가 난 것이, 꽤나 아파보였지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52448738.jpg“뭘 그래 놀라.”

16553252511123.jpg“대장님!”

1655325254106.jpg“괜찮으십니까?”

16553252541067.jpg“은공!!!!”

만우는 자신을 향해 우르르 몰려드는 감령과 필두, 척사영과 문형일과 호선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52448738.jpg“응. 괜찮은데?”

16553252511123.jpg“대, 대장님이 이곳에 오셨다는 것은…….”

감령과 필두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아직도 어둑한 북쪽 하늘을 쳐다봤다. 혈세천마가 뿜어낸 마기가 얼마나 지독했는지, 마치 먹구름이 몰려오듯 북쪽 하늘이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그 어두컴컴한 하늘이 조금씩 원래의 하늘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16553252511123.jpg“이기신 겁니까?”

1655325254106.jpg“저, 정말로. 그 혈세천마를, 마교주를요?”

감령과 필두, 문형일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만우는 품에 안긴 방매와 김향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려주면서 호선을 쳐다봤다. 방매와 김향이 겪은 고초를 짐작한 호선이 방매와 김향 곁으로 다가와 선기로 그 둘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만우는 주먹을 들었다. 쾅! 쾅! 쾅!

16553252511123.jpg“억!”

1655325254106.jpg“악!”

16553252541153.jpg“왜 때리십니까, 대장님!”

만우는 호들갑을 떨고 있는 세 명에게 꿀밤을 놔주었다. 소리만 들으면 꿀밤이 아니라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셋은 펄쩍 뛰면서 만우를 원망스런 눈빛으로 쳐다봤다.

16553252448738.jpg“당연한 말을, 뭐 그리 호들갑을 떨면서 하고 있는 거야.”

16553252511123.jpg“저, 정말이라니.”

1655325254106.jpg“이기실 줄은 알았지만…….”

16553252541153.jpg“아니지. 내상을 입으셨을 수도 있잖아.”

너무나도 멀쩡한 만우의 신색에 감령과 필두, 문형일이 수군거렸다.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리고는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척사영에게 걸어갔다.

16553252448738.jpg“몸이 또다시 망가졌네.”

16553252541067.jpg“괜찮습니다, 은공. 은공께서는…….”

16553252448738.jpg“걱정할 사람이 없어서 내 걱정을?”

만우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혈세천마와의 대결은 만족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그 경지에 이르고도, 치열하게 살지 않은 고수의 최후가 그 정도라는 것에 오히려 씁쓸했다. 혈세천마는, 내공만 많은 늙은이에 불과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싸움을 피했고, 안전함만을 추구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전성기의, 그러니까 일패에 올랐을 때의 혈세천마라면 만우는 꽤나 고전을 했을 것이다. 천마신공의 묘용은 그렇게 무식하게 마기를 쏟아붓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까.

16553252541067.jpg“그, 그렇긴 하지만.”

16553252448738.jpg“몸조리나 잘 해. 임수미, 고 계집은 어디 잘 숨은 것 같고.”

만우는 임수미에 대해 신경을 쓰진 않았다. 자기가 따라오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나름 하오문의 북경지부장까지 올랐으니 알아서 살아남았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버려둔 것에 서운할지는 몰라도 만우는 임수미를 일부러 끌고 온 적이 없었다.

16553252541067.jpg“다행입니다, 은공. 승리를 감축드립니다.”

척사영은 그 무지막지한 마교주를 만우가 이겼다는 것에 기뻐했다. 만우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만우는 고개를 돌렸다.

16553252572441.jpg“거, 검주 대협. 소교주께서는, 소교주께서는.”

투귀대의 고수들은 만우에게 감히 다가오지 못 했다. 그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 하고 있었는데, 만우가 혈세천마를 이겼다는 것 때문이다. 일패인 혈세천마의 경지는 무림 최강이다. 하지만 그런 혈세천마를 잡아내고도 만우가 너무나도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내상이든, 뭐든 부상을 입었다면 그 흔적이 남아야 했는데 만우는 너무나도 깔끔했다. 그것이 강자를 숭상하는 투귀대의 고수들에게는 많은 것을 뜻했다. 그리고, 마교에서는 대대로 교주를 꺾은 강자가 다음 대 교주가 되었다. 그런 천마신교의 교주인 혈세천마가 검주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16553252572441.jpg“무사하신건가요? 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만우에게 용기를 내 말을 건 사람이 있었다. 바로 옥령이었다. 만우는 옥령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52448738.jpg“마지막 시간을 주고 왔다. 제 아비랑.”

16553252572441.jpg“아…….”

옥령은 주창이 무사하다는 소리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만우는 투귀대 고수들 사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여포를 보면서 혀를 쯧 하고 찼다.

16553252448738.jpg“아니, 우리 애들 도와주라니까 거기서 뭐한 거야?”

16553252602149.jpg“……같이 도왔다.”

옥령을 쳐다보다가 만우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포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만우는 방천화극을 든 여포를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16553252448738.jpg“아닌 것 같은데? 누가 보더라도 마교 애들 도운 것 같은데?”

16553252602149.jpg“같은 적을 두고 있더군. 같이 싸웠으니까.”

만우는 혀를 쯧하고 찼다. 옥령을 쳐다보는 여포의 눈을 봤기 때문이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사랑에 빠진 남자의 눈이었다.

16553252448738.jpg“뭐, 됐다니 되었다.”

그때, 만우의 소맷자락을 동군영이 덥썩 붙잡았다. 만우는 고개를 돌려 동군영을 쳐다봤다.

16553252511105.jpg“만우. 지금 성 밖에서 군대가 몰려오고 있네.”

16553252448738.jpg“군대? 요시미츠는?”

동군영은 그제야 하려던 말을 만우에게 할 수 있었다. 동군영은 침을 한 번 꿀떡 삼켰다.

16553252511105.jpg“연회장에서의 전투는 이겼으나, 전쟁을 준비하려는 듯 했어. 요시미츠, 그 자의 휘하에 있던 군대가 패퇴한 것 같은데. 만약 그 군대가 성내로 들어오면 큰 일이 아닌가?”

16553252448738.jpg“흐음…….”

만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창백한 얼굴의 척사영과 감령, 필두를 차례대로 훑어봤다.

16553252448738.jpg“보빙사도 있지. 그러고 보니까.”

16553252511105.jpg“그렇네.”

16553252448738.jpg“보빙사 안 챙겨 가면…… 국왕이 뭐라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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