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9. 천하무쌍(3) (249/400)

249. 천하무쌍(3)2021.05.18.

16553251652721.jpg“놈!”

곡왕이 그런 만우를 보면서 씩 웃었다. 동시에 곡왕은 피리를 더욱더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삘릴리~~~~

16553251652721.jpg“이 무슨.”

만우는 술을 잔뜩 마셨을 때,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모든 감각이 흐트러진 것을 느끼고는 황당함을 금치 못 했다. 이미 만우는 내공을 끌어올려 청각을 보호하고 있었다. 모름지기 음공이란 것이 소리를 통해 하는 공격이니만큼, 이에 신경을 쓰는 것은 당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리의 음률에는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16553251652721.jpg“감각을 흐트러트리는 음률이라.”

만우는 단박에 이것이 곡왕의 무공이 아니라 저 피리가 특별한 것이란 것을 눈치챘다. 곡왕이 무공을 사용한 것이라면 만우의 공력을 뚫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면, 저 피리가 기물이라는 뜻이다. 피비비빗!!!! 만우의 옷 여기저기가 잘려나갔다. 만우는 술에 잔뜩 취한 것처럼, 몸의 균형이 잡히질 않자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지만 곡왕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대소를 터뜨렸다.

16553251652738.jpg“흐하하핫! 이것이 바로 곡왕 부고야님이다!!!!”

피비비빗!!!! 음검이 계속해서 만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만우는 휘청거리는 와중에도 절묘한 움직임으로 음검을 종잇장 한 장 차이로 피해냈다. 하지만 계속해서 날아드는 음검으로부터, 만우가 완벽하게 피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스걱!

16553251652721.jpg“음.”

만우의 가슴팍에서 핏줄기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얕게 베인 것이지만, 처음으로 곡왕이 만우의 몸에 상흔을 남겼다는 점에서 곡왕의 입가가 벌어졌다. 신교에서 나올 때 주취적(酒臭笛)을 가지고 나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곡왕이었다. 주취적은 별 다른 효과가 있는 피리는 아니지만, 내공을 불어넣어 불면 상대방의 공력을 뚫고 무조건 주취, 말 그대로 술이 취한 듯한 효과를 불러낼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게만 해도 고수들의 격전에서는 그 작은 차이가 목숨줄을 가르는 법이다. 물론, 주취적은 개방의 취권(臭拳)과는 상극이라 통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십만 거지를 거느리고 있는 개방에서도 취권을 익힌 이들은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취권은 장점보다는 약점이 더 많은 무공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주 만우가 취권을 익혔다는 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16553251652721.jpg“따갑네.”

만우는 비틀거리는 시야로 자신의 가슴팍을 훑었다. 그러자 진득한 피가 손바닥에 묻어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자상(刺傷)이었다. 만우의 입가가 뒤틀렸다.

16553251652721.jpg“기격폭천뢰부터 시작해서 이상한 이놈까지. 준비를 많이 해놓았구나?”

만우는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쓰던 발목의 힘을 풀었다. 그러자 갈지자(之)로 휘청거리는 만우의 움직임이 쓰러질 것처럼 더욱 심해졌다. 곡왕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음험하게 웃었다.

16553251652738.jpg“물론. 허나 검주라고 하여 이리 쉽게 쓰러질 줄은 몰랐다만.”

만우를 끝까지 도발하는 곡왕이었다. 만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음검을 이룡검을 빗겨내며서 피식 웃었다.

16553251652721.jpg“뭐, 본주가 안 해본 싸움이 있을 줄 알고?”

16553251652738.jpg“하! 큰 소리를 치는 구나. 몸이 난도질을 당하고서도 그런 여유가 있는지를 보겠다!”

곡왕은 이를 갈면서 피리를 부는 입술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피리 소리가 한층 강해지면서 만우의 비틀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특히나 주취적은 경지가 높은 고수에게 더욱 잘 통했다. 경지가 높은 고수들은 웬만해서는 잘 취하지 않는다. 억지로 내공을 억제해놓고 술을 마시지 않는 다음에야 강대한 공력이 알아서 주정(酒情)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때문이다. 웬만한 고수들은 어지간히 술을 좋아하지 않는 다음에야 내공을 억제하면서까지 술에 취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지가 높아질수록, 술에 대한 저항력이 낮아진다. 강대한 공력 때문이다. 오히려 경지가 낮은 하급 무사일수록 몸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약점을 안고 싸우는 개싸움이 능했다. 반면 경지가 높아질수록 이러한 작은 변수가 어이없게 목숨을 앗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곡왕은 만우 역시도 센 척을 한다고 생각했다.

16553251652721.jpg“누가 그래?”

슈아아아악!!! 하지만 곡왕의 표정이 덜컥 굳었다.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비틀거리는 만우가, 마치 강풍에 버드나무 가지가 휘날리듯 몸을 흔들자 음검들이 만우의 몸을 알아서 피해갔기 때문이다. 아니, 피해간 것이 아니라 만우가 음검들을 모두 피하고 있었다. 음검들은 바람처럼 몰아쳤지만, 만우의 몸을 흔들리게만 할뿐 만우의 몸에 닿는 것이 정작 하나도 없었다.

16553251652738.jpg“무, 무슨…….”

당황한 곡왕은 주취적에 더욱더 강하게 바람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만우의 몸은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면서도, 계속해서 음검들을 피해내다.

16553251652738.jpg‘발목.’

곡왕도 보통 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만우가 피해내는 방법을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만우의 비밀은 바로 발목에 있었다. 굳건한 발목이, 만우의 몸이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려도 굳건하게 버텨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발목을 노리면 된다. 상대가 만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후아아아앙!!!! 콰다닥!!!

16553251652738.jpg“……크윽???”

휘청휘청 만우의 발목을 노리고 비파를 튕기려던 곡왕이 있는 힘껏 허리를 옆으로 꺾었다. 그러자 방금까지 곡왕의 머리가 있던 곳으로 엄청난 파공성과 함께 빗살처럼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스치고 지나간 그것은 곡왕의 영웅건을 뜯어버리고, 곡왕의 옆머리를 긁고 지나가며 상처를 만들었다. 금세 곡왕의 얼굴 한 쪽이 피범벅이 됐다. 휘리릭! 턱! 황망한 표정으로 곡왕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나는 동안, 자신의 머리를 부숴버릴 뻔한 것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16553251652738.jpg“거, 검집?”

만우의 손에 휘리릭하고 돌아가 잡힌 것은 검집이었다. 간장이 만들어준, 공을 들여 만들어준 이룡검의 검집. 비록 이룡검은 부서졌고, 불가사리가 그 검신을 대체하고 있었지만 검집은 그대로였다. 만우는 검집을 손에 쥐면서 씩하고 웃었다.

16553251652721.jpg“네 음률은 본주의 몸에 닿지 못 해.”

16553251652738.jpg“이, 이익!!”

곡왕이 뒤로 화악하고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을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만우가 아니었다.

16553251652721.jpg“어딜.”

콰앙!!! 만우의 신형이 곡왕에게 빠르게 짓쳐들었다. 뒤로 물러나는 것보다 앞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빠를 수밖에 없었다. 곡왕의 손가락이 비파의 현에 닿았다.

16553251652721.jpg“검(劍)도 아닌 것을 검이라 부르지 말라.”

만우는 그런 곡왕을 보면서 싸늘하게 눈을 굳혔다. 계속해서 음검, 음검 거리는데 저것은 검이 아니었다. 곡왕은 그런 만우의 눈을 보고는 서늘한 얼음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곡왕의 눈에 번쩍하는 빛이 잡혔다. 서걱!!!!

16553251652738.jpg“크…… 크우아아악!!!”

만우의 손에서 터져나온 빛이다. 이룡검의 백색검신이, 이글거리는 검강을 담고 타오르고 있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만우의 베기가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하얀 선을 폭발시켰다. 동시에 곡왕의 입가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털썩! 곡왕이 입에 물고 있던 주취적이 두 동강이 났다. 검강의 무지막지한 절사격 앞에서는 만년한철도 제대로 버틸 수 없다. 심지어 피리임에야. 동시에 곡왕의 입가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만우의 검강이 곡왕의 입까지 베어버린 것이다.

16553251652738.jpg“끄르륵.”

입가가 피투성이가 된 곡왕이 뒤로 빠르게 물러섰다. 만우는 그런 곡왕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16553251652721.jpg“호오. 그 사이에?”

곡왕은 주취적이 잘려나가는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뒤로 뺐다. 그게 아니었다면 만우의 검강은 곡왕의 머리를 수박처럼 갈라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만우는 깊은 물속에 빠진 것처럼 몸놀림이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물러나던 곡왕의 신형이 멀어졌다. 만우는 늪 속에 빠진 것처럼, 몸속의 공력이 끈적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멀어지는 곡왕이 말은 할 수 없지만, 이글거리는 두 눈으로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그렇게 멀어지는 곡왕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16553251652721.jpg“이게, 준비해 놓던 진이구나. 진.”

만우는 여유롭게 웃어보였다. 몸 속을 누비는 공력의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은, 경지가 강제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우는, 멀어지는 곡왕을 보면서 시리게 웃었다.

16553251652721.jpg“그런데, 누가 네 놈 보고 도망갈 수 있다고 했지?”

번쩍!!! 만우의 손에 들려있던 이룡검이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함께, 멀어지고 있던 곡왕의 머리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재껴지더니 그의 몸이 딱딱한 통나무처럼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쑤욱! 곡왕의 이마 한 가운데 박힌 이룡검이 만우의 손짓에 쑤욱 하고 빠져나왔다. 핏자국 하나 묻지 않은 이룡검의 불가사리가 웅웅거리며 울었다.

16553251652721.jpg“무슨 함정을 파놓은 것인지는 알겠으나.”

만우의 손에 이룡검이 돌아와 잡혔다. 그와 동시에 만우는 저 멀리서 천마대의 고수들이 경공으로 날듯이 뛰어오는 것을 느꼈다. 만우는 확신했다. 마교는, 원하던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우우우웅!!!!!! 끈적한 액체처럼 변했던 만우의 공력이 다시 원래의 활발함을 되찾기 시작했다. 내공의 바짓자락을 붙잡는 진의 기운은, 진인에 오른 만우에게 별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만우가 하필이면 일본국에 오는 길에 진인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 그것이 마교의 가장 큰 패착이다.

16553251711362.jpg

16553251652721.jpg“기천무.”

우우우우우웅!!!! 이룡검의 불가사리가 미친 듯이 검신을 떨어대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만우의 몸에서 뭉클거리면서 뿜어져 나온 기(氣)의 하늘(天)이 내달려오는 천마대의 고수들을 향해 쏟아졌다. ***

16553251652738.jpg“크헉.”

16553251652738.jpg“크헤엑!”

마원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살인진을 유지하고 있던 진혼대의 고수들 중 몇이 토혈을 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마원은 떨리는 눈으로 자욱하게 깔린 기의 하늘을 쳐다봤다. 무공 실력이 부족한 마원으로써는 자욱하게 깔린 기를 들여다볼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16553251711441.jpg‘교주님이 아니면 상대할 수 없다.’

극마의 극에 도달해 탈마에 들었을지도 모르는 혈세천마다. 무림십좌의 일패인 혈세천마가 아니면, 검주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촤악!!! 털퍼덕!!! ‘기천’이라는 한마디와 함께 자욱하게 깔린 기(氣)가 요동치자 살인진을 유지하고 있는 300명의 진혼대 고수들에게 막대한 과부하가 걸렸다. 거기에 곡왕 부고야는, 검주를 살인진으로 끌어들어야 한다는 일차 목표는 달성했지만 결국 검주의 검에 목이 달아났다. 다름 아닌 화경의 고수인 곡왕 부고야가 말이다.

16553251711441.jpg‘정 안 되면…….’

으득. 마원은 자욱하게 깔린 연무 속에서 솟아오른 살덩어리, 원래는 사람의 몸뚱아리에 붙어있어야 할 팔 한 짝이 철퍽하고 땅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이를 뿌득 깨물었다.

16553251711441.jpg‘폭천뢰건, 금기건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야.’

마원의 뇌리 속에서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의 명특한 머리로도 검주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그런 금기를 제외하고는 떠오르지 않았다.

16553251711441.jpg‘살인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니, 그럴 리 없다. 마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검주라고 해도 살인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특별히 진법에 정통한 마원이 마가(魔家)의 모든 인원을 동원하여 파헤친 뒤 재정립한 것이 바로 살인진이기 때문이다.

16553251711441.jpg‘그럴 리 없다. 그저 검주의 무공이 뛰어난 것일 뿐.’

천마대 고수들의 비명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두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16553251741945.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