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 천하무쌍(2)2021.05.15.
“가십시다. 도망가는 놈이나 붙잡아 놨다가 만우 그자에게 돌려주기라도 해야지. 보아하니…….”
여포는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있는 놈들이 다 죽거나, 만우가 죽거나, 어느 한 쪽이 다 죽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오.”
정론(正論)인 여포의 말에 마일이 끄응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마일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곳에서 전황을 지켜보면 될 것 같소.”
“그럼 가십시다.”
여포는 옥령의 등을 떠밀었다. 방그 전까지 치열하게 검을 휘두르다가, 갑자기 휘두를 곳이 없어진 감령과 필두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곳에 언제까지 가만히 서있을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나중에 보지.”
“대주. 부디 몸을 보중하십시오.”
“부디…….”
주창은 현장이 정리가 되가는 것을 느끼고는 말했다. 그런 주창의 말에 투귀대의 고수들이 걱정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들도 따라나서고 싶지만, 주창이 그것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걱정하지 마시게. 만우 그 자가 있고, 나도…… 두 번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어차피 진정한 신교의 교주가 되기 위해서는 홀로 혈세천마와 싸워 이겨야만 했다. 그렇다면 결국 혼자 움직이는 것이 가장 편했다. 만우가 있으니 말이다.
“검주, 검주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먼저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약속해 주십시오.”
마일은 간절하게 주창에게 말했다. 주창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창도 교주가 되기 위해 도전하러 가는 것이지, 개죽음을 당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여포와 주창, 척사영의 얼굴이 설핏 굳었다.
“이건…….”
“어마어마한 내공.”
“은공!”
금각사 초입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기세가 여포와 주창, 척사영의 기감을 찢어발기는 것처럼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만우였다. ***** 만우는 금각사 초입부터 단단하게 틀어막고 있는 한 명의 고수를 보면서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금각사 전체가 자욱한 마기로 뒤덮여 있었다. 거기에 그 가장 위의 금각사에서는 혈세천마의 기세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숨길 생각도 없다는 것이 두 눈에 똑똑히 보였던 것이다. 만우는 혈세천마 외에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쳐다봤다.
“비파와 피리. 네놈이 곡왕 부고야구나.”
금각사로 들어가는 관문을 홀로 틀어막은 곡왕 부고야는 품이 넓은 장포에 비파와 피리를 들고 있었다. 곡왕 부고야는 허연 얼굴을 들어 만우를 쳐다봤다.
“네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까분다는 그 애송이구나.”
“후으.”
만우는 푸들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숨에 옅은 혈향이 느껴졌다. 기격폭천뢰를 상대하면서 입었던 충격이 아직 몸에 남아있었다. 급속도로 치유가 되어가고 있다지만, 그런 사소한 차이가 커다란 싸움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만우는 잘 알고 있었다. 만우는 젊지만, 그가 중원을 유랑하면서 싸운 강자와의 경험만을 따져보면 웬만한 노고수에 못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는 싸우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진법인가.’
만우는 자욱한 마기가 느껴짐에도 다른 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살군회의 수장이라는 신이치가 전해준 대로 진법이란 것을 알아챘다. 곡왕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두 손을 늘어뜨렸다.
“일전에 십만대산에 왔다고 하더군. 그것도 내가 없을때.”
“아, 그때? 저 아재가 나 무섭다고 숨었을 때 말하는 거 아니야?”
“이놈!”
부고야가 두 눈을 부릅 떴다. 만우의 말본새는 천하고 경박했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왜. 맞지 않아? 지금은 나 무섭다고 이렇게 애들 끌고 와서, 남의 나라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데.”
만우는 부고야가 껄끄럽게 생각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꼬집었다. 곡왕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닥쳐라. 무인에게 싸우는 곳이 어디이건 간에 그 무엇이 중요할까. 중요한 것은…….”
촤르륵!!!! 곡왕의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이 비파의 현 위에 얹혀졌다. 곡왕의 전신에서 공력이 솟구쳤다.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겠지.”
“누가 살고 누가 죽느냐…….”
스릉! 만우는 검집에서 신이룡검을 꺼내들었다. 이룡검의 백색 검신이 자욱한 마기 속에서 하얗게 불타오르듯 빛을 뿜어댔다.
“좋은 자세야. 그런데 본주는 결과를 알 것 같은데 말이지.”
만우의 두 눈이 광오하게 빛났다.
“네 놈들은, 네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 해.”
촤라라랑!!!! 곡왕의 손가락이 현을 튕겼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는 기검들이 만우를 향해 쇄도했다. 곡왕은 그런 만우를 조롱하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어디 한 번 견뎌내보거라. 검주.”
“견디거라…….”
피식 만우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와 함께 만우의 전신에서 공력이 치솟았다. 그리고, 곡왕의 눈이 커졌다. 서거거걱!!!!! 비파의 현에 기를 담아 튕겨낸 곡왕의 기검이, 허공에서 모조리 끊어져 나갔다. 척 만우는 이룡검을 어깨에 걸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다야?”
“…….”
얼굴이 굳은 부고야의 두 손이 비파 위를 눈부시게 노닐기 시작했다. 촤라라라랑!!! *****
“커흑…….”
방매가 털썩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혈세천마는 목을 부여잡으면서 숨을 몰아쉬는 방매를 보면서 살기와 광기로 점칠된 눈을 들었다.
“잡술이 제법이구나.”
“…….”
김향은 파랗게 변한 안색으로 당장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위태위태하게 버텼다. 방매를 구하기 위해 혈세천마에게 달려들었다가 오히려 반발력에 의해 뒤로 튕겨나버린 김향이다. 혈세천마의 김향의 격차는 눈으로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한 혈세천마와는 달리 달려든 것 만으로도 내상을 입은 김향이다. 푸흣! 김향의 입에서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혈세천마는 그런 김향을 보면서 혀를 쯧하고 찼다.
“가만히 있었으면 되었을 것을.”
혈세천마의 손가락에 마기가 모여들더니, 혈세천마의 손가락이 방매와 김향의 마혈을 짚었다. 감히 자신에게 달려들 생각을 할 줄이야. 혈세천마는 피식하고 웃어보였다.
“검주, 그 놈의 동료면 다들 간이 커지는 모양이군. 본좌에게 달려들 줄이야.”
신교의 교주가 된 지 몇 십년. 그동안 혈세천마는 누군가 자신에게 달려든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세월의 반의 반이나 될 법한 어린 여아가 자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혈세천마는 그것이 썩 유쾌했다.
“지금 그 모습도 나쁘지 않겠지.”
혈세천마는 그 둘을 보면서 웃었다. 김향의 내상은 그녀의 경지가 일천해 그리 중하지 않았다. 대신 눈으로 보이는 효과는 제법 강렬했다. 어린 소녀와 피는 대단히 자극적인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라랑!!! 콰가가가강!!! 그 때, 혈세천마의 귀에 아름다운 음률과 함꼐 거대한 폭음이 연달아 울려퍼지는 것이 들렸다. 아름다운 음률이라고는 하지만 그 안에 내재된 파괴력은 가히 천하일절이었다. 곡왕의 내기를 느낀 혈세천마는 드디어 생각이라는 사실에 긴장된 마음을 숨기지 못 했다. 긴장과 흥분. 감히 신교주인 자신을 숨게 만들었던 검주를 상대한다는 긴장과, 그를 꺾으면 큰 산을 넘는다는데서 오는 흥분. 그 두 가지의 감정이 혈세천마를 지배하고 있었다.
“너희도 보고 싶지 않으냐?”
혈세천마는 방매와 김향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두 소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마혈에 아혈까지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검주. 그 놈이 처절하게 사지가 찢겨 땅바닥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꼴을.”
혈세천마의 두 눈에서 음험한 살기가 치솟았다. 그와 동시에 두 소녀의 몸이 둥실하고 떠올랐다. 혈이 짚인 두 소녀는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덜컹! 그와 함께 금각사의 창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리고 그 난간에 발을 얹은 혈세천마가 두 수녀와 함께 금각사의 지붕에 올랐다. 그러자, 요시미츠가 공을 들여 꾸민 금각사 정원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혈세천마의 눈에 보이는 것은, 금각사 정원을 뒤덮은 살인진의 기세였다. 마군자 마원이 찾아낸 고대의 진법. 그 진이 발동된 이상, 저 안에서 검주는 절대로 신교주인 자신을 이길 수 없었다.
“그 전에, 곡왕과 천마대를 넘을 수 있다면 말이다.”
혈세천마가 끌끌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방매는 저 멀리 나무들이 삐걱거리며 우수수 넘어가는 것을 눈에 감으며 간절하게 염원했다.
‘도망가. 만우.’
방매는 만우의 도망을 바랐다. 그가 자신들을 구한답시고 위험을 자초하지 않기를 바랐다. 항상 만우가 위기에서 자신들을 도와줬으니, 이번만큼은 만우가 도망가 그 스스로가 안전하기를 바랐다. 푸쾅!!!!!! 무언가가 부딪치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흙먼지가 높이 치솟았다. 방매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모양이었다. *****
“잘도 물러나는구나.”
“…….”
만우는 이룡검을 비스듬이 옆으로 늘어뜨리면서 말했다. 반면 곡왕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비파의 현에 손가락을 얹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 것이냐?”
“……!!!!”
만우의 말에 곡왕의 눈이 커졌다. 만우는 광오한 표정으로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어디까지 가야, 네놈들이 준비한 것에 내가 걸리느냐는 말이다.”
“네 이 놈…….”
곡왕 부고야는 이를 뿌득하고 갈았다. 만우의 말을 듣자 만우가 일부러 자신을 봐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거기에, 저 광오함은 또 어떻고. 자신들이 무슨 준비를 해놨던 간에, 정면으로 부딪쳐 깨부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만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강해.’
하지만 곡왕은 만우가 강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강한 것이 아니었다. 만우는 정말 끔찍할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그렇기 떄문에 곡왕은 확실했다.
‘살인진에 걸리면, 네 놈은 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우는 검을 옆으로 늘어뜨린채 곡왕을 빤히 쳐다봤다. 만우는 절대로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곡왕이 먼저 움직이면 그 다음에 움직였고, 곡왕이 공격을 하면 그 다음에 공격을 받아쳤다.
“건방진 놈!!”
촤라라랑!!!! 곡왕이 그런 만우를 더욱 방심시키기 위해 비파의 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리고는 입가에 피리를 물었다. 만우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지금껏 비파의 현만 튕겼던 곡왕이 처음으로 피리를 입에 물었기 때문이다.
‘두 개를 동시에?’
피리를 가지고 있기에 피리도 쓸 줄 안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비파와 피리를 동시에 사용할 것이라는 것은 만우도 예상하지 못 했다. 뚱가당!!! 삘릴리!!!
“!!!!!!!”
서거거걱!!!
그리고, 비파와 피리가 동시에 연주된 순간 만우의 눈이 커졌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보이지 않는 음검(音劍)이 만우를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느낀 만우가 움직이려 했지만, 만우의 몸이 만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만우의 옷자락을 음검이 할퀴고 지나갔다. 곡왕이 처음으로, 만우의 몸에 흔적을 남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