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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천하무쌍(1) (247/400)

247. 천하무쌍(1)2021.05.11.

혈세천마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금각사를 걸어 올라갔다. 일본국 최고의 권력가인 요시미츠의 야심이 녹아 있는 금각사는, 혈세천만의 기세에도 끄덕도 없을 만큼 견고하고 아름다웠다. 온갖 산해진미와 아름다움에 익숙한 혈세천마가 금각사 내부를 보면서 감탄을 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바깥에만 금박을 발라 화려한 것이 아니라, 그 내부는 화려하면서도 정갈했기 때문에, 혈세천마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16553251240145.jpg“반편이들이 제법이군.”

원하는 목적이 있어 일본국에 들어왔지만, 대천마신교의 고수들을 고작 사무라이 같은 낭인들과 비교한다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혈세천마다. 그렇게 계단을 한 칸씩 올라 3층에 도달한 혈세천마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두 소녀를 무감정하게 쳐다보고는 다다미 위에 발을 내디뎠다.

16553251240151.jpg“오, 오지 마!”

그래도 몇 살 더 먹은 언니라고, 방매는 김향을 감싸며 보호했다. 싸울어미로부터 투술을 전수받은 김향이 방매보다 훨씬 더 강했지만, 방매는 단호한 표정으로 김향의 앞을 막아섰다.

16553251240145.jpg“……너희들이더냐. 검주의 약점.”

혈세천마는 그런 두 소녀를 쳐다보다가 피식 웃고는 그 둘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가장 상석에 주저앉은 혈세천마가 두 소녀들에게 말했다.

16553251240145.jpg“앉거라. 검주, 그 자가 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을 테니.”

16553251240151.jpg“우, 웃기지마!”

방매는 김향을 붙잡고 일어나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방매는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덜커덩!!! 덜컹덜컹! 방매와 김향이 가는 곳의 문이 아무도 없는데 저절로 닫히며 둘의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방매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을 대지 않고 물건을 움직이는 것. 만우만 할 줄 아는 기술이 아닌 모양이었다. 방매는 고개를 돌려 혈세천마를 쳐다봤다. 아무리 쳐다봐도 무서운 무림인이기보다는 옆집이나 저자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얼굴이었다. 미끈한 몸매를 가진 다른 무인들과는 다르게 살집도 있었고, 배도 뽈록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매는 본능적으로 혈세천마에게서 께름칙함을 느꼈다. 자꾸만 방매의 본능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혈세천마가 겉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방매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혈세천마는 다다미 위에 주저앉아 턱으로 자신 옆에 놓인 탁자를 가리켰다.

16553251240145.jpg“앉아라.”

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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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3251240151.jpg“이, 이익.”

16553251240184.jpg“꺅!”

혈세천마가 방매와 김향을 한 번 쳐다보자 둘의 몸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 치 정도 떠올라 끌려왔다. 방매는 혈세천마가 말한 곳에 앉고서야 자신의 몸을 강제로 움직이던 힘이 사라졌음을 깨닫고는 얼굴을 굳혔다.

16553251240151.jpg‘만우.’

방매가 되뇔 수 있는 이름은 만우밖에는 없었다. 방매가 아는 한 가장 강한 사람이 만우였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중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만우였기 때문이다.

16553251240145.jpg“검주가 아끼는 여아들이라.”

혈세천마는 방매와 김향을 쳐다보다가 피식하고 웃었다.

16553251240145.jpg“사화보다 못 하거늘.”

마교에는 죽음의 꽃이라는 나찰사화 옥령이 있다. 그녀에 비해 미모로만 따지면 방매와 김향은 많이 부족했다.

16553251240145.jpg“아니면. 무화라는 그 아이도 있다고 하던데. 왜 너희들일꼬.”

혈세천마는 궁금하다는 눈으로 방매와 김향을 쳐다봤다. 방매는 침을 크게 꿀꺽 삼켰다. 긴장감이 자꾸만 고조되면서, 심장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점점 더 크게 쿵쾅거렸기 때문이다. 이 소리가 혈세천마의 귀에 들리면, 무언가 지는 느낌이 들어 방매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들키지 않게 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건 방매가 조절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존본능. 혈세천마라는 맹수 앞에선 방매의 본능이 살아남기 위해 언제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과정이었다.

16553251240145.jpg“저 아이는 재밌는 것을 익혔구나. 주술고, 무공도 아닌 잡것을 익혔어.”

혈세천마는 김향을 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냈다. 싸울어미인 소서노가 가르쳐 준 것을 잡것이라고 평가절하하는 혈세천마를 쳐다보는 김향의 얼굴이 굳었다.

16553251240145.jpg“당찬 여아들이로다. 매우 당차.”

혈세천마는 자신을 노려보는 두 소녀를 보면서 껄껄거리며 웃었다. 이미 장성한 아들인 주창, 그 주창이 자신을 노리는 시점에 소녀들이 썩 마음에 든 듯했다. 뭐, 마음에 든다고 해도 그냥 지나가는 강아지가 귀엽다고 하는 정도이니, 큰 의미는 없었다.

16553251240145.jpg“본좌는 말이다.”

거기에, 혈세천마가 방매와 김향을 구속한 이유가 명확했다. 그리고 마교의 고수는 잔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이다. 그게 설령 여아가 아니라 영아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필요하다면, 갓난아기의 팔다리를 뽑을 수 있는 독심이 있어야만 마교의 고수라 믿는 혈세천마다. 둥실!

16553251240151.jpg“윽, 으윽!!!”

16553251240184.jpg“언니!”

혈세천마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방매의 몸이 둥실하고 떠올랐다. 방매는 힘을 주면서 몸부림을 치려고 했지만, 어느새 마혈이 짚여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방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도끼눈을 뜨는 것밖에는 없었다. 

16553251240145.jpg“검주, 만우를 이길 수 있는 짓이면 무슨 짓이든지 할 것이다.”

허공섭물로 방매를 끌어당긴 혈세천마의 눈 깊숙한 곳에서 광기가 일렁였다. 그 광기를 엿본 방매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평범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가질 수 없는 광기였다. 미친 세상에서, 같이 미친 사람만이 품을 수 있는 광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무림인의 광기였다. 그 때문에 무림에서는 주화입마와 심마를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어떤 삼류문파든 가장 처음부터 배운다. 무림인이 한 번 광기에 미치면, 그냥 일반인의 광증과는 달리 주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16553251240145.jpg“그러니.”

방매를 쳐다보는 혈세천마의 두 눈에 살기가 일렁였다.

16553251240145.jpg“본좌를 원망해도 좋다.”

방매의 몸이 둥실하고 위로 치솟았다. *****

16553251297538.jpg“커헉!”

16553251297545.jpg“크헉!”

16553251297551.jpg“크윽…….”

척사영과 감령, 필두, 호선까지 답답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뒤로 물러섰다. 분명 대인전으로는 자신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 적들인데, 합격으로 덤벼드는 적들을 상대하니 한시도 쉴 새가 없이 승기를 점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척사영은 살인진이 발동되자 그 여파로 인해 공력이 움직이는 속도가 줄어들어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했다. 하지만 그때, 그곳에 투귀대 고수들이 난입하자 상황이 반전이 됐다. 서거거걱! 서걱! 크아악! 크윽! 여포와 주창의 움직임도 둔해졌으나, 그래도 살인진의 한 가운데가 아니라 외각 부분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운신이 가능했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천마대의 공격에 이들 중 반드시 희생자가 나왔을 것이다.

16553251297538.jpg“주창! 여포!”

척사영은 난입해 자신을 도와준 주창과 여포를 보고는 끄응하는 소리를 냈다. 속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금세 천마대를 정리한 여포와 주창이 척사영에게로 걸어왔다. 척사영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다리를 억지로 펴 그 둘을 마주했다.

16553251297566.jpg“엉망이군.”

여포는 척사영의 상태를 보고는 혀를 쯧 하고 찼다. 살인진이 갑자기 발동되면서 공력의 흐름이 늦어져 난 상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그 짧은 순간에 치명상은 모조리 피했지만, 출혈이 상당해 척사영의 안색이 창백했다.

16553251297571.jpg“힘을 합쳐야 하지 않겠소?”

그때, 주창이 척사영에게 말했다. 감령과 필두가 움찔했다.

16553251297545.jpg“마교와?”

16553251297551.jpg“그게 무슨…….”

투귀대가 마교에 의해 반역자가 되었다는 것을 만우 일행들은 모르고 있었다. 그것을 군사인 마일이 나서서 설명하자 감령과 필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16553251297545.jpg“그래서 저자에서 진혼대의 고수들이 마얼 당신을…….”

그런데 그때 호선이 말했다.

16553251325855.jpg“텁텁하고 끈적끈적한 기운이에요. 대체 이걸…….”

호선은 마기가 중첩되고 또 중첩되어 주변의 자연의 기운을 끈적끈적한 풀처럼 만들어 버렸다는 점에서 살인진을 꿰뚫어 본 셈이었다. 주창은 그런 호선에게 말했다.

16553251297571.jpg“마교에서 검주, 검주를 노리고 만든 진이다. 그쪽. 그쪽도 느꼈을 텐데. 진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것.”

16553251297538.jpg“…….”

척사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포가 그런 척사영에게 말했다.

16553251297566.jpg“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 재정비를 해야 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다들 지치고 몰골이 말이 아니야. 이 상태로 저 안에 뛰어든다는 것은…….”

무려 수백의 마교 고수들이 펼친 진법이다. 저런 진에 제대로 된 진법 전문가 하나 없이 뛰어든다는 것은 자살 행위다.

16553251297538.jpg“우린…… 들어간다.”

척사영이 두 눈을 빛냈다.

16553251297538.jpg“은공을 노리고 판 적들의 저열한 수작이다. 은공께 알리고 은공을 도와야 해.”

마교 고수들의 합격술을 겪으면서 그들의 두려움을 톡톡히 느낀 척사영이다. 그녀는 아무리 만우라고 해도 마교를 상대로는 고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6553251325855.jpg“안 돼요. 저건 저라도…….”

호선은 이를 질끈 깨물었다. 그녀에게 선주가 있었다면 모를까, 지금의 실력으로 호선은 척사영보다도 약했다. 자연스레 호선의 시선이 혈성을 지니고 있는 옥령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호선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여포가 호선의 시선을 가렸다.

16553251325855.jpg“물러나야 해요. 이곳은…….”

호선은 옥령을 노리는 것을 단념하고는 고개를 돌려 척사영을 쳐다봤다. 저런 끈적끈적하고 이쪽을 자극하는 듯한 저런 마기는 피하는 것이 옳았다. 거기에 정상인 상태도 아니고, 격전을 치른 지금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16553251297538.jpg“크으…….”

척사영은 그게 분한 것인지 두 주먹을 말아쥐고 부들거리며 떨었다. 감령과 필두도 그녀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약자. 지금껏 살면서 자신이 약하다는 것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감정에 더욱 익숙하지 않았다.

16553251297571.jpg“아 물론.”

주창이 씩 웃으면서 나섰다. 척사영을 쳐다보는 주창의 두 눈은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16553251297571.jpg“난 들어갈 것이오. 좀 거슬리기는 해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까.”

주창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서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주창 말대로, 주창은 다른 이들보다 저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훨씬 수월했다. 그 이유야 간단했다. 천마신공의 마기는, 마교의 다른 무인들이 익히고 있는 모든 마기보다 우월한 상위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주창이 나서자 척사영의 이마가 순간적으로 꿈틀했다. 여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포는 저곳에 뛰어들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모든 일의 마무리는 만우가 짓기로, 그렇게 이야기가 오갔기 때문이다. 여포는 옥령에게 말했다. 정확히는 옥령의 뒤에 선, 머리를 잘 쓴다는 것이 겉으로 보이는 마일에게 물었다.

16553251297566.jpg“적들의 퇴로가 보이오?”

1655325135437.jpg“퇴로…….”

마일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포를 쳐다봤다.

1655325135437.jpg“퇴로라니. 마교가, 살인진이 패퇴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까?”

마일의 질문에 여포가 무슨 그런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16553251297566.jpg“당연하 거 아니요? 그게 아니었다면 만우, 그자가 무식하게 뛰어들지는 않았겠지.”

만우는 일견 보기에는 무식해 보였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자신이 헤쳐 나오지 못할 어려움이 없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 보인 것이다. 물론 손이 두 개고, 발도 두 개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막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만우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선에서 정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여포는 그 자신감이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16553251297566.jpg‘나보다 위. 어쩌면…….’

화경의 위라는 현경일지도 모른다. 같은 화경인 척사영을 상대적으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여포다. 그런 여포를 간단하게 누른 것이 만우다. 그렇게 강하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16553251297566.jpg“그자가 해달라는 것을 해주면 되는 일이지. 어차피 댁들에게도 만우 그자가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오.”

여포의 말은 은근히 정곡을 찌르고 있었다. 그에 다른 사람들이 침묵에 잠기자, 여포는 어깨를 으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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